아이들이 들려주는 행복심리학 - 유치원, 초등학교 1,319명의 아이들이 들려주는 "행복에 대하여"
안톤 부헤르 지음, 송안정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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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만 보고도 지금의 내가 꼭 읽어야 할 지침서라고 생각했던 책. 나는 지금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보육교사 자격취득을 함께 하기 위해서 유아,아동과 관련한 과목도 함께 공부중에 있다. 더불어 5세의 딸이 있고 뱃속에 둘째도 무럭무럭자라고 있으니 이 책이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자랑이라기 보다 주변의 시선과 가족들의 평가로 미루어 보아 나는 그다지 '나쁜 엄마'는 아니다. 첫 아이가 뱃속에 있을때부터 습관적으로 나누던 대화를 지금까지 하고 있고 장난감보다는 책을 선호하는 아이를 위해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한권한권 정성껏 책을 읽어주고 그날 그날의 일과는 아이와 상의해서 하고 싶은 활동 위주로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살림을 하던 전업주부도 아니었고 별보고 출근해서 별보고 퇴근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아이의 시선에서 함께 하고자 노력했다. 주말엔 짧은 여행이라도 꼭 함께 다녔고 지역에서 열리는 체험행사는 모두 출동~ 물론 신랑이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덕분인지 아이는 여러면에서 발달과 생각이 빨랐고 호기심도 왕성하다. 떼부리는 일도 거의 없고 그렇다고 한들 대부분은 대화로 해결이 가능할 지경이니까. 겨우 5살이지만 아직까지는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도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둘째는 전업주부로써 내가 100%양육을 해야하는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에 첫째보다 오히려 내 어깨가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말 못하는 신생아 시절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그 길고 어려운 시간들 속에서 어떻게 아이의 행복을 찾아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할 때 행복할까?

 

이 책은 작가가 1,300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행복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만 보더라도 수 많은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서 내 자녀의 행복을 찾을 수 많은 방법을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팍팍 차오른다. 더불어 어쩌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자녀의 행복을 찾아야하는 시대가 되었는지 조금은 울적해지기까지 한다. 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점을 주어야할지 고민할 정도로 책을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서평을 쓰기전에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다른분들의 서평을 보았는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람의 '생각의 차이'가 판이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 1장 행복이란 무엇인가? / 2장 긍정적 정서들, 기쁨과 행복의 발달 / 3장 아이들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다 / 4장 행복을 위한 교육은 가능한가? >라는 주제로 구성이 되어있다. 목차에서 느껴지듯이 조금은 이론적일 것 같고 딱딱한 느낌이 살짝 든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야기 한다니 그런 걱정은 하지말자~하고 책장을 넘겼다가 책의 반절에 가까운 이야기가 거의 이론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있어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이론적이고 통계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꺼내 놓는다. 더불어 누구인지도 모르는 연구자들의 이름이 계속적으로 나열되면서 딱딱함이 조금은 더 느껴졌다. 물론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기에 상당수의 연구내용을 들어본 탓도 있겠지만 그들을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흥미있게 읽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결론적인 이야기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와 더불어 <아이들은 특별한 조건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정도가 될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느끼는 기준들이 책에 나열되어 있었다. 새로운 깨달음이라기 보다 이미 나는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생활에서 많이 행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정리였기때문에 조금은 더 지루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들도 실천하기가 어려워서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만약 이론적인 내용이거나 연구결과에 의한것이 아니고 순수한 아이들의 인터뷰나 대표적인 아이들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갔다면 조금은 더 친근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어른들은 새로운 유년기의 행복을 믿지 않는다. 행복에 대해, 특히 아이들의 행복을 판단할 때 항상 자신의 유년 시절 추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행복은 아이들에게도 주관적인 어떤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이 유년 시절에 느꼈던 행복함을 요즘 아이들에게도 추천할만한 행복으로 판단하고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행복을 증진하려는 교육이라면 강요된 행복을(이것은 종종 치밀하게 일어나고 대부분 좋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단념해야 한다.                 p 28

 

 

과욕하지 마라. 예를들어 푼토에서 포르쉐로 바꿔야 한다고 욕심 부리지 마라. 우리가 포르쉐에 익숙해지면 이미 레라리를 겨누게 된다. 이것은 행복을 줄인다.

" 스물한 살에 나의 기대들은 0으로 줄었다. 그 후로는 온통 얻는 것 뿐이다. "                               P 40~41

 

 

중요한 건 단순히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의 질, 서로 간의 충실도, 집약성, 강렬함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차츰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 아빠와 함께 수영장에 가도 예전만큼 행복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와 함께 가는 것을 주저하거나 또는 자기 친구들을 동반할 수 있을때만 함께 가려고 하는 시기가 곧 오게된다.  한 가지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 우리 아들딸들의 유년기는 빨리 지나가버린다. 특히 우리가 그 시절을 다시금 돌리고 싶어 할 때 아이들은 이미 자라있다.              p138

 

 

 

대부분의 부모들이 알고 있겠지만 아이들은 용돈을 많이 주는 것이나 장난감을 많이 사주는 것 보다는 부모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속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낀다. 나 또한 유치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내 시간이 적다는 것에 조금은 아쉬워하면서도 아이가오면 아직도 만지고 안고 이야기하는 즐거움에 살고 있으니까. 맞벌이를 하면서 주변에서 두가지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 아직 엄마손이 많이 갈때는 돈도 좋지만 집에서 아이를 보는게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나중에 학교 보내고나면 엄마랑 보내려고도 안할텐데 그때는 직장구하기가 어려우니 몇년 힘들어도 계속 다녀야한다." 어떤게 정답일까? 사람의 생각의 기준에 따라서 틀리겠지만 물론 맞벌이를 유지하는 것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롭다. 그렇다면 질적인 면에서는 아이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가능성도 훨씬 높다. 후자처럼 다면 몇년간의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면 어차피 아이들은 부모를 찾지 않는 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틀렸다고 말할 것이다.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발달은 유아기에 거의 완성이 되고 성장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게 되겠지만 기본적인 성장을 끝낸 내 아이의 정서는 인생 전반에 걸쳐서 작용을 할테니까. 고로 유년시절 겪었던 행복의 기억이나 그로 인해 아이의 정서적, 성격적인 부분이 발달한다면 과감하게 아이에게 그 시간을 투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짧은 몇년의 시간조차 아이와 공감할 수 없다면...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 가진 엄마가 직장을 그만둬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연구결과에서도 나왔지만 맞벌이든 전업주부든 아이들의 느끼의 행복의 양은 차이가 없다. 다만 얼마나 질적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을 즐기는지가 관건이다.

 

 

 

'어떤' 부모의 자녀는 더 행복할까? 미국 버클리 대학의 발달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는 '권위적인'('권위죽의적인'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양육 태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p 254

 

* 아이들에게 이유를 들어 설명한 규칙들(아이들도 함께 의논하고 결정한다)을 지킬 것을 분명하게 요구한다.

* 분명한 지침을 제시한다.

* 전적으로 신뢰할 만하다.

*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

* 자녀에게 관심이 매우 많다.

* 자녀를 격려하고 칭찬한다.

 

 

 

위의 기준으로 본다면 다행히도  나는 아이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어떤'부모에 해당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이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은 그리 멀리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만 앞서고 행동이 되지 않는 '다이어트'같다고 할까? 한꺼번에 변하려하지 않고 한번에 하나씩 바뀌다보면 다른 하나의 조건이 또 바뀌어 있을 것이다. 12년간 다니던 직장을 아이의 유치원 입학과 함께 과감하게 그만두고 육아에 조금은 더 신경을 쓰면서 '60분부모,영재의 비법'등의 프로그램을 가끔 시청하게 되는데, 실질적인 적용면에서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책보다는 더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목과는 다르게 너무 이론적이로 지루했기에 아쉬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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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 - 택꼬의 630일간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기
김태현 지음 / 더난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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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도 금방 고민에 빠진다. "그럼 나는 청춘인걸까? 아닌걸까?"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나이로는 물론 난 청춘에 해당되지만 청춘이라면 떠나야한다는데 내가 앞으로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확율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 아.. 그게 그러니까 난 결혼했고 남편하고 이제 둘째가 태어나면 아이가 둘이 되고.. .에... 또 하고 있는 공부도 있고 12년간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것 원없이 해보자'고 마음먹은지 10개월째 접어들어서 이젠 주머니도 숭숭거리기 시작하니까....' 결론은? <떠날 수 없다>가 아니고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이다. 물론 결혼전부터 친구들과의 소소한 여행을 즐겼던 나이기에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여행 경험을 가지고 있고(비록 패키지지만 푸헐헐~) 결혼을 하고도 남편과 아이와 먼곳 가까운곳 자주 여행을 했기에 가망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홀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건 왠지 자신도 없고 겁도 덜컥나고 조금은 더 확율이 떨어지는 것 같다. 정했다. 일단.... 아이들이 중학생쯤이 되면 떼어놓고 신랑이랑 둘이 손잡고 다녀와야지... ^^
 
 
 
택꼬의 630일간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기
 
 
여행에 빠져 9년째 대학생 신분을 유지중인 택꼬님. 630일간 자전거를 타고 아메리카여행에 나선다. '9년째 대학생 신분이라면서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해외에서 보낸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 아니, 그 비용은 누가 대주는거지? 부잣집 아들인가??' 이런 생각부터하는 나는 역시 아줌마이상이 아닌가보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것이 기억난다. 처녀시절엔 멋진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가면 경치나 분위기에 빠져 너무 좋다고 생각하기바쁜데 아줌마들은 모이면 "돈 많은가봐. 인테리어비 얼마나 들었을까?"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고.. 그래 맞는 말이긴 한 것 같다. 조금은 팔자좋은 사람들의 여유있는 스토리일거라 생각했던 내 편견은 작가 소개를 읽어내려가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진짜 '검소하다'못 해서 '지독하게'까지 보이는 작가의 모습에 '정말 팔팔한 청춘이 아니면 시작할 수 없는 고생길'이 그의 여행길임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북아메리카 - 중앙아메리카 - 남아메리카로 이어지는 그의 여정은 책의 마무리에 보니 비행기로 반나절 걸리는 거리. 그는 그 거리를 630일간 달렸고 '여행기'라고 하기엔 조금은 안타까운 힘겨움들이 담겨 있었다. 모든 자전거 여행자들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하기도 어려운 저렴한 예산으로 630일을 버티려는 그는 사막에서는 버려진 물병이나 음료수병에 남은 음료를 마시고 식사는 뽀글이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고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거나 노숙을 일삼는 여행을 했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여행. 그는 보통의 여행자들이 갖는 낭만과 편안함, 휴식을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자연친화적,인간적'인 여행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흑..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먹고 자는것 자체가 힘들면 장기간 여행이 절대로 불가능해보이는데, 그는 그걸 해냈다니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tecggo(작가 블로그)

 
 
한국에서는 밥을 먹고 잠자는 것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없다. 어떻게든 밥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다.
대신 어릴 적부터 경쟁하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미국의 사막을 자전거로 여행할 땐, 하루에 세 번 배가 고파질 때마다 끼니를 걱정하고, 하루에 한 번 해가 질 때마다 잘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경쟁도 스트레스도 없었다. 언제나 배가 고프고 잠자리 걱정이 끊이지 않았지만, 더불어 자유도 느끼기 시작했다.                        < P 033 >
 
 
 
 
 대부분 여행서나 여행에세이는 뭔가 큰 깨달음을 주거나 그곳의 경치와 유명한 관광지를 다녀온 저자들의 글과 사진 솜씨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반면, 이 책은 읽으면서 내가 너무 힘들었다. 마치 내가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여행을 떠나고 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면서 '그냥 포기하지.. 이렇게 위험하고 힘들면서 왜 꼭 가야하지?'하는 생각을 몇번이고 했다. 그의 책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거추장스러운 설명도 없다. 딱 남자다운 짧고 약간은 무뚝뚝해보이는 문체. 그래서 가끔은 보태어도 좋으니 조금의 표현이라도 더 해줬더라면..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나만의 작은 바램까지 갖게 만들었으니까. 책을 읽는 초입에는 그런마음에 조금은 조급하기도 했고 재미없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과 함께 그래서 결론은 뭘 얻었다는거지?하는 말도 안되는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한장한장 책장을 넘겨가면서 그가 여행을 통해 자연과 사람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급하게 돌아다니며 유명한 곳에서 사진을 찍기바쁜 패키지지 여행이 아닌 조금은 느린 걸음이지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이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면 도시에서는 위험한 순간이 많이 찾아오지만, 시골에서는 따뜻한 인정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어느 나라를 가든 도시보다 시골이 더 따뜻한 느낌이 들겠지만, 중앙아메리카는 이런 차이가 특히 많이 났다. 이상하게도 어느 정도 잘사는 곳을 여행할 때 위험한 경우가 더 많았다.         < P 134 >
 
마이꼴과 콜롬비아와 한국, 남미와 아시아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일,동물, 날씨,문화...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동경한다.                             < P 183 >
 
 
 
물론 그의 여행에서는 위험한 상황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스스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상황들도 자주 나타났고 지갑이나 소지품을 도둑맞는 경험들과 심지어는 돈이 없어 구걸하는 남들은 평생가도 해볼일 거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일쑤다. 더불어 그는 장기간의 여행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비통한 소식을 접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간이 또 수일 걸리기에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마져 지키지 못 한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올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때가 바로 이때. 할머니의 소식과 함께 여러가지 안좋은 일들이 그를 힘들게 만들고 정말 심각하게 여행을 포기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지만 그는 결국 남은 여행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너무나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게다가 1년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아 모든 면이 반질반질해졌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그 바람에 큰맘 먹고 90달러나 되는 티켓을 사서 관람했던 쿠스코 태양 축제를 찍은 사진까지 날아가버렸다. 노트북과 외장 하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두 달 동안의 여행기도 사라졌다. 쿠스코에서 리마, 리마에서 쿠스코, 다시 리마. 꼬박 하루가 걸리는 구간을 몇 번이나 왕복했다. 한국에서 택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군 시절을 떠올리며 여행을 떠난 이후 가장 힘든 이 순간을 이겨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 P 248-249 >
 
 
 
여행기를 계속 읽어가면서 아메리카여행에 '일본'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와서 조금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 작은 땅덩어리의 민족이 정말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멀고도 먼 아메리카에서도 여러가지면에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났다. 특히 여행자들중에 일본인 여행자가 많았다는 것과 사람들이 동양인이라고 하면 의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일본인들이 고마운 존재라고 여겨지는 것.. 책의 마무리쯤에 작가 또한 자신의 여행일정중에 수없이 접하는 일본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여행을 시작한 지 500일이 넘었다. 우리나라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메리카를 여행하고 있지만, 의외로 이웃 나라 일본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았다. 곳곳에서 보이던 일본국제협력기구 자이카, 성공적으로 진출한 일본 대기업들, 유별난 일본 여행자들, '세계 인류의 평화를 기우너합니다'라는 글을 적은 막대기, 일본 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칠레의 일본 정원, 동해를 'Sea of Japan'이라고표시해놓은 지도들, 그리고 일본 문화에 열정적으로 호감을 표하던 수많은 서양인들, 일본의 봉사 활동을 감사히 여기는 많은 원주믿늘..... 일본은 우리와 정말 가깝고 비슷한 나라이지만, 그만큼 다른 면도 정말 많은 나라다.        < P 293 >
 
 
 
그의 여행이 외롭고 힘겹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새로운 곳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친절, 그리고 여행자 친구들. 더불어 그가 여행을 하면서 포스팅을 했다는데 그의 글을 보면서 힘이 되어주는 후원자들이 함께 했다고 한다. 2주넘게 씻지도 못하고 냄새를 풍겼다는 글과 화장실에서도 노숙을 마다하지 않는 그. '거지여행'포스를 날리면서 630일간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그에게 남은건 무엇일까?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지만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또 다른 여행을 분명 준비하게 될 것이다. 떠나는 자들은 떠남에 중독되기 마련이니까. 그의 여행은 오지로 떠나는 봉사활동도 유명한 관광지를 소개하는 재미난 여행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보지 못 한 세상, 그리고 우리가 접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연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다. 사실 그의 바램대로 난 책을 마무리하면서 '당장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이렇게 힘들게 장기간 여행할 자신도 체력도 없으니까. 여행이라면 어느정도 즐거움과 휴식을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하지만 언젠가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허락될 때는 자전거 여행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문화와 일상에 녹아내리는 장기간의 여행을 떠나보고 싶은 충동을 들게 만들었다.
 
책을 다 읽고 찾은 작가의 블로그에는 책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들이나 특히 생생한 사진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책으로 편집되기 이전에 올린 그의 조금은더 투박하고 짧은 여행기를 맛보고 싶다면 작가의 블로그를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tecggo(작가 블로그)
 
 
 
 
 
어제는 꿈에 불과하고
내일은 단지 상상일 뿐이나
오늘을 잘 살면
모든 과거를 행복한 꿈으로 만들고
내일의 희망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을 잘 보살펴라.
 
- 파타고니아의 어느 호스텔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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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괜찮아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 두 번째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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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 두 번째 이야기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지난주에 접했다. 영화를 보기전에 이미 후작인 '결혼해도 괜찮아'를 읽고 있었기에 소설이 아닌 한 여인의 인생을 담아낸 실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먹고..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읽고 있었지만 전작과 크게 연결되는 부분은 없었기에 읽기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영화라도 보지 않았다면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는 책속의 이런 고민들과 감정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엘리자베스 길버트. 그녀는 8년의 결혼생활을 힘겨운 이혼으로 마무리하고 30대 초반의 조금은 늦은 것 같은 나이에 자신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친구들과 고민의 연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17살차이의 남자친구 펠리페를 만나게 된다 (먹고...의 내용).
'결혼해도 괜찮아'는 이미 이혼의 상처를 아주 심하게 안고 있는 작가의 '두번째 결혼에 대한'아주 깊은 고민과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실화인 것을 알기 전에는 결혼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싱글들에게 결혼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행복한 선택인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재미있는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요즘은 결혼의 시기도 없을 뿐만 아니라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미혼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코드가 맞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고 행복한 생활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리라.(실로 결혼 6년차인 나는 결혼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부류중에 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선가 백마탄 왕자님이 나타나서 결혼으로 신분상승을하고 공주가 된다는 결혼에 대한 허황된 기대를 갖는 사람에겐 결혼이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쳐드니 이미 결혼을 '끔찍한 법적 제도'쯤으로 겪어본 작가의 '재혼'에 대한 고민이었고, 그래서 결혼은 하지 않기로 했던 그들이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헤어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결혼'을 행복한 제도로 받아들이기위한 연구(?)와 노력에 대한 이야기들 이었다. 
 
사실 이혼에 대한 아픈 상처를 경험한 적도 없고 주변에서도 아직 그런일이 일어난 적이 없기에 '어느정도면 이렇게 재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까?'싶을 정도로 그녀의 결혼에 대한 공포는 실로 대단했다. 논문을 찾고 세계 곳곳의 여러사람들에게 결혼이 왜 중요한지, 왜 해야하는지, 그들의 결혼문화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하는 리지. 그덕인지 너무 결혼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파고들려는 내용에 지루함도 있었다.
 
 
 
 
몽족 여자들을 만난 날, 옛 속담 하나가 떠올랐다. "기대를 심으면 실망을 수확하게 되리라." 몽족 할머니는 아내를 미칠 듯이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남편의 의무라고 배우지 않았다. 애초에 미칠 듯이 행복해지는 일이 자신의 본분이라고 배운 적도 없다.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결혼 생활에 특별히 환멸을 느낄 일도 없다. 할머니의 결혼은 그 역할을 완수했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본분을 다했으며, 결혼의 의미에 부합되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 P  70 >
 
 
붓다는 인간의 모든 고통은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진리다. 원했던 것을 가져보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붓다가 말한 고통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을 원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욕망이다.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을 원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욕망이다. 누군가를 원하는 순간, 우리는 수술용 바늘로 그 사람의 살갗에 우리의 행복을 봉합해놓는다. 따라서 그 사람과 조금만 떨어져도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욕망의 대상을 손에 넣어 다시는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앉으나 서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사람 생각뿐이다. 그런 원초적 욕망에 사로잡혀 더 이상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욕망의 하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 P 132 >
 
 
 
 
그녀는 여러곳에서 이러한 깨달음을 얻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는 서로 다른문화에서 성장했다는 것. 과거처럼 정략결혼이나 얼굴한번 보지 않고 결혼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우리 나라만해도 자유연애의 시대이고 내 배우자는 내가 선택하며 고로 그 안에서 수 많은 꿈과 욕망을 품는 건 어쩜 당연한 것이 아닐까? 몽족의 문화는 이해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에겐 적용시킬 수 없음을 알아낸 작가는 자신이 꿈속에서 수 많은 욕망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첫 결혼이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는 것이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연애시절 남편에 대한 욕심과 욕망을 버리지 못 했던 수 많은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집착에 가까운 상대에 대한 욕망으로 내 스스로를 힘들게 하진 않았을까?
 
 
 
시인 잭 길버트는 결혼이란 "기억에 남는 사건들 사이"의 일들이라고 썼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배우자의 사망과 같은 이유로 결혼 생활을 뒤돌아보면 기억나는 "휴가와 비상사태", 즉 가장 좋은 때와 가장나쁜 때뿐이다. 나머지는 그저 똑같은 일상이 희미학 ㅔ뒤섞여 있다. 그러나 길버트는 결혼을 이루는 것은 바로 그렇게 희미하게 뒤섞인 똑같은 일상이라고 주장한다. 결혼은 별다른 특징 없는 2천번의 아침을 먹으면서 나누었던, 별다른 특징 없는 2천 번의 대화이며 바로 거기서 친밀감의 바퀴가 서서히 굴러간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친밀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일이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눈만 돌리면 곁에 있어서 공기에 버금갈 정도로 필수 불가결한 존재.    < P 260 >
 
 
 
시인 잭 길버트의 결혼에 대한 정의는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희미하게 뒤섞인 똑같은 일상... 지루할 것만 같은 이 말은 그 일상속에서 안정과 행복을 찾는 행복한 가정이 연상되기도 한다. 겨우 결혼 6년차인 나도 언제나 눈을 돌리면 내 곁에 있어주는 남편과 아이. 잠시라도 떨어져있으면 낯설어지는 익숙함. 연애시절의 두근거리는 설렘은 없을 지라도 또 다른 깊은 사랑이 자라게 되는 것이 결혼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펠리페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결혼을 선택해야했기에 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자신이 이해할 수 있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결혼의 정의에 대해서 찾아나섰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와의 소박한 결혼과 정착에 성공했고 그렇게 책은 마무리 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아직 책으로 접하지 못 하기에 전작과의 내용이나 스타일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그녀의 경험이나 일상보다는 결혼에 대한 수 많은 연구와 이론에 대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몇장을 넘기기도 전에 졸고 있는 내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영화를 너무 좋게 봤기에 곧 '먹고...'를 읽어볼 생각이긴 하지만 그 만큼의 책을 기대하고 두번째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면 약간의 실망을 안을 수 있다는 점. 여기서도 욕망을 살짝 내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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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2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단 한권의 책으로 내 마음을 빼앗아 버렸던 작가 조디 피콜트.

2009년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내 마음을 흔들었던 책을 꼽으라면 나는 "쌍둥이 별"을 꼽을 것이다.

등장 인물들의 세세한 감정묘사와 치밀한 정보와 자료, 체계적인 구성... 책의 두툼함에 주춤하고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나중에 보았다가 결말이 다른 것을 알고는 정말 큰 충격에 휩싸여 한참을 울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를 흠뻑 빠지게 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총기난사사건>을 이야기한다.

 

 

 

 

뭔가를 고대하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도 않고 그저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한 소년의 손에서 총이 발사 되었다.

 

뉴햄프셔 주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인 스털링. 어느 날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19분간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다.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고 1,026명의 증인에게 목격되고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17살의 너무나도 외소한 소년 '피터 호턴'이었다.

유일한 생존자인 판사 알렉스의 딸 '조지'와 유일하게 총을 2발 맞아 사망한 그녀의 남자친구 '맷'의 이야기가 계속 풀리지 않은 채 재판은 진행된다.

 

피터는 유치원 시절부터 왕따를 심하게 당하는 아이였다. 양가 어머님의 특별한 인연을 통해 유일하게 얻은 친구가 있다면 바로 '조지'.

둘은 절친하게 지냈고 자신을 지킬 수 없었던 피터를 항상 감싸고 챙겨주던 조지가 있어 피터는 매일 힘든 생활을 참고 견디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조지마저 소위 '잘 나가는 그룹'에 속하게 되고 피터는 그렇게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 하는 아니, 조지에게 마저 버림을 받는 존재로 추락하고 만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 하지만 누구에게나 관심(놀림)의 대상이 되는 피터. 자신의 도시락은 매번 놀림에 의해 버려지고, 조지가 보는 앞에서 팬티까지 끌어 내려지는 수모를 겪고, 조지에게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메일이 스팸메일로 전교생에게 전달된다. 유치원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놀림감이 된 피터는 컴퓨터를 친구삼아 자신만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사람들을 총기로 살인하는 게임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쯤되면 '부모는 무얼하고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부모의 무관심이 너무 심했던게 아닐까? 아이는 왜 부모님에게 한번도 어려움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자연스레 갖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피터의 아버지 루이스는 '행복'에 관해서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엄마 레이시는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조산사였다. 그리고 피터에겐 잘생기고 공부도 잘 하는 형 조이도 있었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평범했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었지만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대화".  자신의 일을 알아서 잘 하던 모범생 조이. 그런 형에게 누구에게든 비교 대상이 되는 '피터'. 사건 1년전 조이마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레이시는 조이의 사망과 함께 그가 생각지도 못한 '마약쟁이'였음을 알아내고 그제서야 자녀가 자신이 믿고 기대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만약 레이시가 그런 문제를 남편과 상의 했다면,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아들에 대해 알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피터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 레이시는 피터를 사회에 적응 시키고자 원하지도 않는 일들에 합류시켰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이 판단하는 길로 아이를 이끌었다. 조이의 죽음이후에 아들의 방을 뒤져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려 피터가 방에서 무엇을 하던 무엇을 가지고 있던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무관심'이 아닌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루이스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 모르겠어." 피터가 아기였을 때 레이시가 너무 많이 안아줘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아니면 아장아장 걷던 피터가 넘어졌을 때 그만한 일로 울 건 아니라며 루이스가 짐짓 웃었기 때문일까? 아들이 무엇을 읽고 보고 듣는지 더 면밀히 감시를 했어야 했을까..... 피터가 하는 일에 일일이 참견하며 숨 막히게 키웠어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가? 아마도 이것은 레이시와 루이스의 합작품일 것이다. 만약 아이들을 부모 중 어느 한쪽의 결실로만 본다면 부모들은 비참하게 주저않고 말 것이다. 갑절로 비참하게.            < 1권 P 166 >

 

그제야 레이시는 깨달았다. 낯설어 보이는 피터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이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라고 자신이 단정 짓고 있었다는 것을.

혹은 변해버림 피터의 모습에서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아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으려 했다는 것을.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 1권    P 218 >

 

아들 중 하나는 마약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살인자가 되었다. 그녀와 루이스는 아이들에게 나쁜 부모였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부모가 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아이들은 저 혼자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들은 부모가 이끄는 구덩이로 뛰어들 뿐이다. 레이시와 루이스는 아이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진실로 믿었지만, 사실은 멈춰 서서 방향을 물어보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조이, 다음에는 피터가 그런 비극적인 걸음을 옮겨 추락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 2권    P 83   >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루이스와 레이시는 많은 생각과 후회를 하게 된다.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비행청소년과 정신질환자들의 배경엔 항상 가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공통점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과연 '내 가정은 건강한가? 행복하게 지낸다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내 아이의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도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루이스와 레이시는 두 아들을 훌륭히 키워내고자 자신들 입장에선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이런 모습은 부모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모습이리라.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아이의 속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말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 아이를 잘 안다고 자만하고 있고 레이시도 알렉스도 그렇게 자신했지만 결국 아이들의 본 모습을 아는 부모는 없었으니까..

 

 

 

 

세계 각국의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을 조사한 FBI 특별 수사관들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학교 총기 사건의 범인들에게서는 가족 역학의 유사점이 발견된다. 흐니 범인은 부모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고, 부모는 병적인 행동을 보이는경향이 있다. 또한 가족 구성원 간의 친밀도가 부족하다. 범인은 텔레비전 시청이나 컴퓨터 사용에 제한을 받지 않고, 때로는 무기에도 접근할 수 있다.  < 1권 P 221 >

 

삶이란 만약의 연속이다. 지난밤 로또를 해봤더라면, 다른 대학을 선택했더라면, 채권 대신 주식에 투자를 했더라면, 9·11 아침에 유치원생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떤 교사가 됐든 한 번이라도 복도에서 피터를 괴롭히는 학생을 저지했더라면.  < 2권 P 267 >

 

 

 

 

나는 항상 지금 나의 모습이 과거 내가 했던 수 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도 직장도 배우자도 내가 선택했고 심지어는 오늘 아침에 먹은 반찬도 내가 선택했다. 지금 나는동영상 강의를 듣느냐 서평을 남기냐는 두가지 문제를 놓고 서평을 쓰기로 선택했기에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부모들도 아이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그 결과로 현재 자신의 모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을까? 어느 싯점에서건 돌아보고 반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반성하기 보다는 조금의 여유를 두고 삶을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레이시와 알렉스가 겪고 있는 후회들이 부모의 입장으로써 너무나도 공감이 갔지만 그들의 양육방식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2권으로 넘어가면서 왜 조이가 피터에 의한 살인에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는지, 그녀의 남자친구 맷은 왜 2발의 총상을 입은 유일한 희생자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 된다. 쌍둥이 별에서 보여줬던 생각지도 못 했던 반전이 19분에서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피터는 자신이 치른 일에 대한 정당한 판결을 받게 되고, 이제 이 사건의 배경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은 피터를 비난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누구나 모두에게 좋은 존재일 수 만은 없다. 사람이기때문에 좋고 싫은 것에 대한 구분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다만 이것이 생각에서 그치느냐, 말과 행동으로 옮겨지느냐의 문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단걸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문제아로 비춰지던 사람이 훌륭한 스승의 칭찬 한마디에 자신감을 갖는 것처럼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서 죽는 개구리도 있을 수 있다는 것.

 

 

 

 

쏘는 사람만 없다면, 총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 1권   P 158 >

 

 

 

 

현실에선 상상하기 조차 끔찍한 학교의 총기 난사사건. 있어서도 안되고 상상하기도 싫지만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종종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책을 보면서 2007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조승희 사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당연히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을 슬픔, 그리고 목격자들이 평생을 살면서 겪어야 할 공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왜 무엇때문에 그가 그들을 죽여야만했는지'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다만 우리는 그들이 '싸이코패스'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분명 정신질활을 앓고 있었을 것이란 추측만 할 뿐.

 

조디 피콜트는 19분을 통해 희생자의 억울함에 대하여 보다는 범인인 피터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다. 왜 그들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런 끔찍한 결과과 당연하다거나 무죄여야한다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자세히 살핌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그 또한 평생을 걸친 희생자중에 한명이었음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리라. 이제는 누가 희생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희생자일까? 가해자일까? 부모로써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써 정말 수 많은 생각과 의문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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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단 한권의 책으로 내 마음을 빼앗아 버렸던 작가 조디 피콜트.

2009년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내 마음을 흔들었던 책을 꼽으라면 나는 "쌍둥이 별"을 꼽을 것이다.

등장 인물들의 세세한 감정묘사와 치밀한 정보와 자료, 체계적인 구성... 책의 두툼함에 주춤하고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나중에 보았다가 결말이 다른 것을 알고는 정말 큰 충격에 휩싸여 한참을 울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를 흠뻑 빠지게 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총기난사사건>을 이야기한다.

 

 

 

 

뭔가를 고대하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도 않고 그저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한 소년의 손에서 총이 발사 되었다.

 

뉴햄프셔 주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인 스털링. 어느 날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19분간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다.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고 1,026명의 증인에게 목격되고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17살의 너무나도 외소한 소년 '피터 호턴'이었다.

유일한 생존자인 판사 알렉스의 딸 '조지'와 유일하게 총을 2발 맞아 사망한 그녀의 남자친구 '맷'의 이야기가 계속 풀리지 않은 채 재판은 진행된다.

 

피터는 유치원 시절부터 왕따를 심하게 당하는 아이였다. 양가 어머님의 특별한 인연을 통해 유일하게 얻은 친구가 있다면 바로 '조지'.

둘은 절친하게 지냈고 자신을 지킬 수 없었던 피터를 항상 감싸고 챙겨주던 조지가 있어 피터는 매일 힘든 생활을 참고 견디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조지마저 소위 '잘 나가는 그룹'에 속하게 되고 피터는 그렇게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 하는 아니, 조지에게 마저 버림을 받는 존재로 추락하고 만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 하지만 누구에게나 관심(놀림)의 대상이 되는 피터. 자신의 도시락은 매번 놀림에 의해 버려지고, 조지가 보는 앞에서 팬티까지 끌어 내려지는 수모를 겪고, 조지에게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메일이 스팸메일로 전교생에게 전달된다. 유치원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놀림감이 된 피터는 컴퓨터를 친구삼아 자신만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사람들을 총기로 살인하는 게임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쯤되면 '부모는 무얼하고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부모의 무관심이 너무 심했던게 아닐까? 아이는 왜 부모님에게 한번도 어려움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자연스레 갖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피터의 아버지 루이스는 '행복'에 관해서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엄마 레이시는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조산사였다. 그리고 피터에겐 잘생기고 공부도 잘 하는 형 조이도 있었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평범했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었지만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대화".  자신의 일을 알아서 잘 하던 모범생 조이. 그런 형에게 누구에게든 비교 대상이 되는 '피터'. 사건 1년전 조이마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레이시는 조이의 사망과 함께 그가 생각지도 못한 '마약쟁이'였음을 알아내고 그제서야 자녀가 자신이 믿고 기대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만약 레이시가 그런 문제를 남편과 상의 했다면,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아들에 대해 알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피터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 레이시는 피터를 사회에 적응 시키고자 원하지도 않는 일들에 합류시켰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이 판단하는 길로 아이를 이끌었다. 조이의 죽음이후에 아들의 방을 뒤져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려 피터가 방에서 무엇을 하던 무엇을 가지고 있던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무관심'이 아닌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루이스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 모르겠어." 피터가 아기였을 때 레이시가 너무 많이 안아줘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아니면 아장아장 걷던 피터가 넘어졌을 때 그만한 일로 울 건 아니라며 루이스가 짐짓 웃었기 때문일까? 아들이 무엇을 읽고 보고 듣는지 더 면밀히 감시를 했어야 했을까..... 피터가 하는 일에 일일이 참견하며 숨 막히게 키웠어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가? 아마도 이것은 레이시와 루이스의 합작품일 것이다. 만약 아이들을 부모 중 어느 한쪽의 결실로만 본다면 부모들은 비참하게 주저않고 말 것이다. 갑절로 비참하게.            < 1권 P 166 >

 

그제야 레이시는 깨달았다. 낯설어 보이는 피터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이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라고 자신이 단정 짓고 있었다는 것을.

혹은 변해버림 피터의 모습에서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아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으려 했다는 것을.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 1권    P 218 >

 

아들 중 하나는 마약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살인자가 되었다. 그녀와 루이스는 아이들에게 나쁜 부모였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부모가 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아이들은 저 혼자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들은 부모가 이끄는 구덩이로 뛰어들 뿐이다. 레이시와 루이스는 아이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진실로 믿었지만, 사실은 멈춰 서서 방향을 물어보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조이, 다음에는 피터가 그런 비극적인 걸음을 옮겨 추락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 2권    P 83   >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루이스와 레이시는 많은 생각과 후회를 하게 된다.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비행청소년과 정신질환자들의 배경엔 항상 가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공통점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과연 '내 가정은 건강한가? 행복하게 지낸다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내 아이의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도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루이스와 레이시는 두 아들을 훌륭히 키워내고자 자신들 입장에선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이런 모습은 부모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모습이리라.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아이의 속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말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 아이를 잘 안다고 자만하고 있고 레이시도 알렉스도 그렇게 자신했지만 결국 아이들의 본 모습을 아는 부모는 없었으니까..

 

 

 

 

세계 각국의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을 조사한 FBI 특별 수사관들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학교 총기 사건의 범인들에게서는 가족 역학의 유사점이 발견된다. 흐니 범인은 부모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고, 부모는 병적인 행동을 보이는경향이 있다. 또한 가족 구성원 간의 친밀도가 부족하다. 범인은 텔레비전 시청이나 컴퓨터 사용에 제한을 받지 않고, 때로는 무기에도 접근할 수 있다.  < 1권 P 221 >

 

삶이란 만약의 연속이다. 지난밤 로또를 해봤더라면, 다른 대학을 선택했더라면, 채권 대신 주식에 투자를 했더라면, 9·11 아침에 유치원생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떤 교사가 됐든 한 번이라도 복도에서 피터를 괴롭히는 학생을 저지했더라면.  < 2권 P 267 >

 

 

 

 

나는 항상 지금 나의 모습이 과거 내가 했던 수 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도 직장도 배우자도 내가 선택했고 심지어는 오늘 아침에 먹은 반찬도 내가 선택했다. 지금 나는동영상 강의를 듣느냐 서평을 남기냐는 두가지 문제를 놓고 서평을 쓰기로 선택했기에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부모들도 아이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그 결과로 현재 자신의 모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을까? 어느 싯점에서건 돌아보고 반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반성하기 보다는 조금의 여유를 두고 삶을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레이시와 알렉스가 겪고 있는 후회들이 부모의 입장으로써 너무나도 공감이 갔지만 그들의 양육방식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2권으로 넘어가면서 왜 조이가 피터에 의한 살인에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는지, 그녀의 남자친구 맷은 왜 2발의 총상을 입은 유일한 희생자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 된다. 쌍둥이 별에서 보여줬던 생각지도 못 했던 반전이 19분에서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피터는 자신이 치른 일에 대한 정당한 판결을 받게 되고, 이제 이 사건의 배경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은 피터를 비난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누구나 모두에게 좋은 존재일 수 만은 없다. 사람이기때문에 좋고 싫은 것에 대한 구분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다만 이것이 생각에서 그치느냐, 말과 행동으로 옮겨지느냐의 문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단걸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문제아로 비춰지던 사람이 훌륭한 스승의 칭찬 한마디에 자신감을 갖는 것처럼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서 죽는 개구리도 있을 수 있다는 것.

 

 

 

 

쏘는 사람만 없다면, 총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 1권   P 158 >

 

 

 

 

현실에선 상상하기 조차 끔찍한 학교의 총기 난사사건. 있어서도 안되고 상상하기도 싫지만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종종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책을 보면서 2007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조승희 사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당연히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을 슬픔, 그리고 목격자들이 평생을 살면서 겪어야 할 공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왜 무엇때문에 그가 그들을 죽여야만했는지'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다만 우리는 그들이 '싸이코패스'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분명 정신질활을 앓고 있었을 것이란 추측만 할 뿐.

 

조디 피콜트는 19분을 통해 희생자의 억울함에 대하여 보다는 범인인 피터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다. 왜 그들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런 끔찍한 결과과 당연하다거나 무죄여야한다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자세히 살핌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그 또한 평생을 걸친 희생자중에 한명이었음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리라. 이제는 누가 희생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희생자일까? 가해자일까? 부모로써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써 정말 수 많은 생각과 의문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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