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분 2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단 한권의 책으로 내 마음을 빼앗아 버렸던 작가 조디 피콜트.

2009년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내 마음을 흔들었던 책을 꼽으라면 나는 "쌍둥이 별"을 꼽을 것이다.

등장 인물들의 세세한 감정묘사와 치밀한 정보와 자료, 체계적인 구성... 책의 두툼함에 주춤하고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나중에 보았다가 결말이 다른 것을 알고는 정말 큰 충격에 휩싸여 한참을 울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를 흠뻑 빠지게 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총기난사사건>을 이야기한다.

 

 

 

 

뭔가를 고대하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도 않고 그저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한 소년의 손에서 총이 발사 되었다.

 

뉴햄프셔 주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인 스털링. 어느 날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19분간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다.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고 1,026명의 증인에게 목격되고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17살의 너무나도 외소한 소년 '피터 호턴'이었다.

유일한 생존자인 판사 알렉스의 딸 '조지'와 유일하게 총을 2발 맞아 사망한 그녀의 남자친구 '맷'의 이야기가 계속 풀리지 않은 채 재판은 진행된다.

 

피터는 유치원 시절부터 왕따를 심하게 당하는 아이였다. 양가 어머님의 특별한 인연을 통해 유일하게 얻은 친구가 있다면 바로 '조지'.

둘은 절친하게 지냈고 자신을 지킬 수 없었던 피터를 항상 감싸고 챙겨주던 조지가 있어 피터는 매일 힘든 생활을 참고 견디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조지마저 소위 '잘 나가는 그룹'에 속하게 되고 피터는 그렇게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 하는 아니, 조지에게 마저 버림을 받는 존재로 추락하고 만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 하지만 누구에게나 관심(놀림)의 대상이 되는 피터. 자신의 도시락은 매번 놀림에 의해 버려지고, 조지가 보는 앞에서 팬티까지 끌어 내려지는 수모를 겪고, 조지에게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메일이 스팸메일로 전교생에게 전달된다. 유치원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놀림감이 된 피터는 컴퓨터를 친구삼아 자신만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사람들을 총기로 살인하는 게임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쯤되면 '부모는 무얼하고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부모의 무관심이 너무 심했던게 아닐까? 아이는 왜 부모님에게 한번도 어려움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자연스레 갖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피터의 아버지 루이스는 '행복'에 관해서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엄마 레이시는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조산사였다. 그리고 피터에겐 잘생기고 공부도 잘 하는 형 조이도 있었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평범했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었지만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대화".  자신의 일을 알아서 잘 하던 모범생 조이. 그런 형에게 누구에게든 비교 대상이 되는 '피터'. 사건 1년전 조이마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레이시는 조이의 사망과 함께 그가 생각지도 못한 '마약쟁이'였음을 알아내고 그제서야 자녀가 자신이 믿고 기대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만약 레이시가 그런 문제를 남편과 상의 했다면,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아들에 대해 알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피터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 레이시는 피터를 사회에 적응 시키고자 원하지도 않는 일들에 합류시켰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이 판단하는 길로 아이를 이끌었다. 조이의 죽음이후에 아들의 방을 뒤져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려 피터가 방에서 무엇을 하던 무엇을 가지고 있던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무관심'이 아닌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루이스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 모르겠어." 피터가 아기였을 때 레이시가 너무 많이 안아줘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아니면 아장아장 걷던 피터가 넘어졌을 때 그만한 일로 울 건 아니라며 루이스가 짐짓 웃었기 때문일까? 아들이 무엇을 읽고 보고 듣는지 더 면밀히 감시를 했어야 했을까..... 피터가 하는 일에 일일이 참견하며 숨 막히게 키웠어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가? 아마도 이것은 레이시와 루이스의 합작품일 것이다. 만약 아이들을 부모 중 어느 한쪽의 결실로만 본다면 부모들은 비참하게 주저않고 말 것이다. 갑절로 비참하게.            < 1권 P 166 >

 

그제야 레이시는 깨달았다. 낯설어 보이는 피터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이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라고 자신이 단정 짓고 있었다는 것을.

혹은 변해버림 피터의 모습에서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아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으려 했다는 것을.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 1권    P 218 >

 

아들 중 하나는 마약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살인자가 되었다. 그녀와 루이스는 아이들에게 나쁜 부모였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부모가 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아이들은 저 혼자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들은 부모가 이끄는 구덩이로 뛰어들 뿐이다. 레이시와 루이스는 아이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진실로 믿었지만, 사실은 멈춰 서서 방향을 물어보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조이, 다음에는 피터가 그런 비극적인 걸음을 옮겨 추락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 2권    P 83   >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루이스와 레이시는 많은 생각과 후회를 하게 된다.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비행청소년과 정신질환자들의 배경엔 항상 가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공통점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과연 '내 가정은 건강한가? 행복하게 지낸다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내 아이의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도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루이스와 레이시는 두 아들을 훌륭히 키워내고자 자신들 입장에선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이런 모습은 부모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모습이리라.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아이의 속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말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 아이를 잘 안다고 자만하고 있고 레이시도 알렉스도 그렇게 자신했지만 결국 아이들의 본 모습을 아는 부모는 없었으니까..

 

 

 

 

세계 각국의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을 조사한 FBI 특별 수사관들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학교 총기 사건의 범인들에게서는 가족 역학의 유사점이 발견된다. 흐니 범인은 부모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고, 부모는 병적인 행동을 보이는경향이 있다. 또한 가족 구성원 간의 친밀도가 부족하다. 범인은 텔레비전 시청이나 컴퓨터 사용에 제한을 받지 않고, 때로는 무기에도 접근할 수 있다.  < 1권 P 221 >

 

삶이란 만약의 연속이다. 지난밤 로또를 해봤더라면, 다른 대학을 선택했더라면, 채권 대신 주식에 투자를 했더라면, 9·11 아침에 유치원생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떤 교사가 됐든 한 번이라도 복도에서 피터를 괴롭히는 학생을 저지했더라면.  < 2권 P 267 >

 

 

 

 

나는 항상 지금 나의 모습이 과거 내가 했던 수 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도 직장도 배우자도 내가 선택했고 심지어는 오늘 아침에 먹은 반찬도 내가 선택했다. 지금 나는동영상 강의를 듣느냐 서평을 남기냐는 두가지 문제를 놓고 서평을 쓰기로 선택했기에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부모들도 아이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그 결과로 현재 자신의 모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을까? 어느 싯점에서건 돌아보고 반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반성하기 보다는 조금의 여유를 두고 삶을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레이시와 알렉스가 겪고 있는 후회들이 부모의 입장으로써 너무나도 공감이 갔지만 그들의 양육방식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2권으로 넘어가면서 왜 조이가 피터에 의한 살인에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는지, 그녀의 남자친구 맷은 왜 2발의 총상을 입은 유일한 희생자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 된다. 쌍둥이 별에서 보여줬던 생각지도 못 했던 반전이 19분에서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피터는 자신이 치른 일에 대한 정당한 판결을 받게 되고, 이제 이 사건의 배경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은 피터를 비난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누구나 모두에게 좋은 존재일 수 만은 없다. 사람이기때문에 좋고 싫은 것에 대한 구분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다만 이것이 생각에서 그치느냐, 말과 행동으로 옮겨지느냐의 문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단걸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문제아로 비춰지던 사람이 훌륭한 스승의 칭찬 한마디에 자신감을 갖는 것처럼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서 죽는 개구리도 있을 수 있다는 것.

 

 

 

 

쏘는 사람만 없다면, 총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 1권   P 158 >

 

 

 

 

현실에선 상상하기 조차 끔찍한 학교의 총기 난사사건. 있어서도 안되고 상상하기도 싫지만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종종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책을 보면서 2007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조승희 사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당연히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을 슬픔, 그리고 목격자들이 평생을 살면서 겪어야 할 공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왜 무엇때문에 그가 그들을 죽여야만했는지'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다만 우리는 그들이 '싸이코패스'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분명 정신질활을 앓고 있었을 것이란 추측만 할 뿐.

 

조디 피콜트는 19분을 통해 희생자의 억울함에 대하여 보다는 범인인 피터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다. 왜 그들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런 끔찍한 결과과 당연하다거나 무죄여야한다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자세히 살핌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그 또한 평생을 걸친 희생자중에 한명이었음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리라. 이제는 누가 희생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희생자일까? 가해자일까? 부모로써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써 정말 수 많은 생각과 의문을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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