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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요아힘 나겔 지음, 정지인 옮김 / 예경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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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라고 말하면 정말 귀신의 일족인 것 같으니까, 뱀파이어로 말하는 게 왠지 더 나은 기분이 드는 그런 종족(!)이 있죠. 나라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역사와 성향, 성격을 가졌지만, 어쩌거나 마력과 같은 매력이 넘치고, 별 일 없으면 영원히 살고, 늙거나 병들지도 않아서 어찌보면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은 무리가 있는데, 이들이 바로 뱀파이어입니다. 완벽해보이는 사람일수록 완벽하지 않을 때 폭발적인 매력이 상승하게 되는데, 아마도 그런 이유로 뱀파이어는 치명적인 단점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지역의 뱀파이어는 별로 영향을 안 받긴 하지만, 햇빛에 타죽는 경우도 있고, 흡혈을 하지 않으면 시들시들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영생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인간을 사랑하게 되면, 인간은 시간에 따라 죽는데, 뱀파이어는 그러지 않으니까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는 거거든요. 아이고, 써보니 이렇게 낭만적인 이별이 또 어디있겠나 싶습니다. 이별은 이별인데 사랑은 영원한 거잖아요.

 

문학작품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캐릭터를 가만 두고 볼 수 없겠죠. 같은 인간이라도 극적, 예술적 성과를 위해 극단으로 몰아부치는 판에 인간과 닿아있는 뱀파이어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나요. <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살펴봅니다. 뱀파이어 캐릭터는 어떻게 문학작품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시대를 지나면서 뱀파이어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고, 또 시대에 따라 어떻게 옵션을 바꿔가며 살아남았는지 등등.

 

저자는 작품을 중심으로 뱀파이어를 설명해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뱀파이어를 다루는 작품이 많아서 놀라기도 했고,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캐릭터와 전개를 보이고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에겐 약간 지루한 작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건 줄글에서 강조점없이 뱀파이어의 성격이나 변화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분명 작품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뱀파이어에게 흡혈을 당하면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이 처음 시작했다’ 정도의 설명이 나오는 거죠. 생각없이 읽다가는 그대로 흘려버리겠다 싶은 부분들이어서 정독의 욕심이 없다면, 일렬로 서 있는 뱀파이어 작품 목록 해제를 읽은 기분만 들고 끝날 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재미있었던 건, 뱀파이어라는 캐릭터가 어느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서 갑자기 톡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거였죠. 유럽을 관통했던 수많은 전염병 때문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여럿이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두려움. 죽은 자가 살아돌아올 것이란 공포와 식육과 식육을 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그 형체를 갖게 된 것이죠. 파묻은 시체를 파내어 뜯어먹는 구울이란 캐릭터도 사람의 피를 마셔 생기를 띄는 뱀파이어도 그렇게 조금씩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거에요.

역으로 생각해보면 유럽인들의 상상력의 산물이긴 하지만 뱀파이어를 통해 유럽인이 가진 두려움과 잔인함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는 거죠. 뭐랄까요. 처녀귀신이나 박수무당처럼 우리가 전설의 고향 류의 드라마를 통해 만나는 한국형 귀신과 괴물(?)을 생각해보면 쉽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한번 태어난 캐릭터는 소멸하지 않고 세련미를 갖추어갈 뿐 아니라 특화됩니다. 드라큘라 백작이 마늘과 십자가에 무력해진 것과는 달리 최근에 등장한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 종족은 완벽에 가깝지요. 렛미인에 등장하는 북유럽형 뱀파이어는 또 어땠나요. 초대받지 않으면 남의 집에 들어갈 수 없지만, 초대를 받은 후에는 모든 게 가능해지죠. 피는 필요하지만 자신이 피를 보는 수고는 덜합니다. 빛을 피해 잠을 청하지만,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여럿을 죽여버릴 정도의 괴력을 행사할 수 있죠.

이런 뱀파이어 캐릭터는 이제 그 뱀파이어 역사가 전무한 한국까지 진출합니다. 박찬욱의 <박쥐>가 그렇죠. 성직자와 뱀파이어의 조합이 주는 긴장이 송강호와 겹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뱀파이어가 등장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더욱 앞으로 나타날 뱀파이어를 상상하게 됩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지도 모를 어떤 뱀파이어, 인간이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인간이란 이름으로 해낼 지도 모를 또 어떤 뱀파이어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죠. 뱀파이어의 영생만큼이나 뱀파이어의 이야기 또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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