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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로 바람이 무척 차고 거칠게 불었다.

밤새 걱정하다 새벽에 인삼이 널린 비닐하우스와 공사 중인 3층에 다녀온 아빠는

우리는 다행히 괜찮은데 어느 찻집 지붕이 날아갔다고 한다.

휘이잉거리며 몰아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웬일인지 태민이는 무서워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창밖을 내다보며 앉아 첫 날부터 못보내나 고민하다가 그냥 챙겨서 아빠를 따라나서게 했다.

나가기 직전에 누나 앞에 마주앉아 같이 도리도리하며 놀자고 하는 태민이가 불쌍해서

"누나, 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와!" 했더니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어, 그, 그건 좀 안되겠는데..."란다. 

보내고나니 든사람은 몰라도 난사람은 안다고

청소, 빨래, 설겆이, 아궁이 불넣기,,, 다른 날과 하는 일은 똑같은데 조용하고 한적하고 허전하기가 그지없다.

혼자 물 떠다 마시고 혼자 화장실에도 가고 요즘엔 윗도리도 혼자 입어서

수민이가 내 손타는 일은 많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수시로 간식을 챙겨주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걸까?

누나 눈치 보지않고 엄마랑 눈도 맞추고 그림책도 두어권 읽어주고 시소도 태워주고 그래도 심심해보이는 태민!

스쿨버스가 없어서 5시에 학교에서 일 하시는 아저씨가 아이들을 하교시키며 한의원에 내려주었다.

오늘따라 아빠에게도 손님, 외할아버지께도 손님이 오셔서 데리러 갈 사람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실장님의 빨간 티코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마당에 나갔더니 차 안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 눈가가 촉촉하길래 수민이 울었어?했더니 울었대요.

   아빠 차 타고 싶은데 모르는 아저씨가 차를 태워주셨다고 울었다네요.

하시면서 방에까지 안아다 뉘어주셨다. 실장님 차를 타니 마음이 놓여서 졸렸나보다.

오늘 유치원에서 뭐 했어?

- 소꼽놀이도 하고 모양만들기도 했어.

공부는 안했어?

- (잠깐 골똘히 생각하더니) 응, 공부는 안했어.

그림그리기나 노래부르기는 안했어?

- (깜짝 놀라며) 종이접기를 했어! 거기에 빨대도 하나 붙이고 그림도 그렸어. 노래는 안 불렀어.

    엄마 보여줄려고 가져올려고 했는데 깜박 잊어버리고 안 가지고 왔다!

안 가지고 와도 괜찮아. 그런데 너는 뭘 그렸는데?

- 사람이랑 번개.  엄마, 우르릉 하는 게 천둥이지?

응.

- 번개를 그려서 스케치북에 비가 내렸어!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하셨어?

- 여자들은 여자끼리 줄서세요. 남자들은 남자끼리 줄서세요.

  그런데 나는 요구르트에 빨대를 잘 못 꽂아서 오빠가 도와줬어.

   그래서 오빠 옆에 앉았어. 그 오빠가 나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해주었어.

쉬하고 싶을 때 어떻게 했어?

- 선생님, 화장실에 데려다 주세요 그랬어. 그런데 선생님이 화장실은 교실에 있어요라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쉬도 하고 응아도 하고 그랬어.

응아는 누가 닦아줬는데?

- 내가 닦았어. 휴지는 초록색 뚜껑 휴지통에 버렸어.

  그리고 식당에서 밥도 먹었다!!!

수민이가 급식소에서 먹은 것은 매운 돼지고기와 밥, 김치.

매운 떡은 먹지 않았고 이제 밥이랑 김치도 먹을 수 있다고 자랑이다.

조금 매운 음식은 먹을 거라며 매운 것이 몸에 좋은 것이냐, 그러니까 먹어야 되느냐고 묻는다.

흘리지 않고 잘 먹었어?

- 응, 그런데 실수로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어. 엄마, 한 번 떨어뜨린 건 실수지?

   두 번은 실수 아니고 세 번도 아니고 네 번도 아니지? 두 번은 일부러야, 일부러!

내가 평소에 실수로 한 번 그랬다는 말을 자주 썼나?  혼자 생각해봤다.

- 선생님이 간식도 주셨어. 요구르트랑 과자!

무슨 과자를 주셨는데?

- 음, 부드러운 과자.  아무래도 조그만 빵 같아.

밤에 유치원입학 축하한다고 전화한 막내이모는 쵸코파이, 난 카스타드를 생각했다.

- 선생님이 동화책도 읽어주셨어.

제목이 뭐였는데?

- 그건 기억이 안 나.

그럼 무슨 이야기였어?

- 어떤 아이가  친구들이 안 놀아줘서 다른 친구를 만났어.

응, 새친구를 사귀었구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 새친구하고 길을 떠났어. 그래서 나중에 다른 친구들이랑 다 섞였어.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수민이는 기분이 어땠어?

- 응, 뿌드~읏했어!

싸운 아이들은 없었어?

- 내가 언니하고 싸웠어. 장난감을 서로 가지려다가 언니가 내 등을 밀어서 여기 무릎이 다쳤어.

  그래서 언니가 장난감 하나 줬어.

오늘 유치원에서 제일 좋았던 일이 뭐야?

- 모양만들기! 내가 모양만들기에서 일등을 했거든!!!

모양만들기가 뭔지 모르겠지만 무슨 블럭놀이 같은 것이리라. 나름대로 일등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럼 힘들거나 싫었던 일은?

- 으음~ (한참 생각만 하고 결국 대답을 못한다.)

그럼 제일 기분좋았던 일은?

- 엄마! 내가 아까 모양만들기라고 했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첫 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유치원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신기하고 나중에 다 자란 수민이와 누군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엄마 쓰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런 일들이 신기하고 궁금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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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7-03-0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똘한 수민이 아마 할말도 많겠지. 난 아직까지도 마이 궁금하네.. 알도는 물으면 대답을 안하지만 놔두면 종알종알 하는 편이라 그래도 다행이긴 한데 말 안하는 아이들도 많은 모양이더라고..
 

처음엔 왕성초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는데

병설유치원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이 부족하다는 주위의 읍소(?!)로

쌍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엄마와 태민이랑 같이 가지 않고 혼자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다섯 살이 되면 유치원에 보낼까봐 전전긍긍하는 한편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한다고 또 3월을 기다리기도 하더니 

아침에는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한 마디 한다.

입학식이라곤 하지만 그냥 편안하게 입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고무줄을 넣어 항아리 모양이 되는 윗도리가 깜찍한 쫄쫄이 옷 한 벌을 입고가자 했더니

-치마는 어떨까? 춤추기 딱 좋은 치마 있잖아!

모자가 달린 외투를 입고가자 하니 분홍가디건과 리본 달린  둥근 챙모자를 쓰고 가겠다고 한다.

아빠가 교문 앞까지 바래다 주셔서 유치원 교실에 먼저 들렀다가

2층 과학실에 마련된 입학식장으로 올라갔다.

어서 유치원 교실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어서 칭얼대는 것을

입학식하지 않으면 유치원 다니지 말라고 한다고 을러서 앞줄에 세워 놓았더니

7살 오빠 셋, 언니 하나, 동갑내기 하은이 여섯 중에 키가 제일 작다.

그래도 1학년 입학생들은 의젓하게 기다리는데

유치원생들은 몸을 비비꼬고 돌아보고 떠들고 수민이는 계속 손톱을 물어뜯고 볼 만했다.

교장선생님 환영사가 한창일 때 갑자기 획 뒤돌아보며

- 이게 원래 이렇게 길게 하는거야? 하더니

교가 제창을 하자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씰룩하며 춤을 추었다.

유치원교실에서 놀고 있다가 엄마들 얘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닭똥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엉엉 울기 시작하더니

걸어서 목압에 거의 닿을 무렵까지 그치지 않는다.

저녁을 차리고 있을 때도 갑자기 생각이 나는지

- 엄마, 아빠는 정말 너무해!

   나는 유치원에서 더 놀고 싶은데 조금만 놀고 집에 데리고 오면 어떡해!

  일요일에도 유치원에 가고 싶어!

이러면서 거짓 울음을 내더니 눈물 한 방울을 억지로 짜내는 것이었다.

결국 아라언니와 큰이모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하고 엄마, 아빠가 너무해서 저녁도 못먹겠다고

엉터리는 내고서야 그쳤다.

세영이 동생 서연이가 등록하여 7명이 되면 오후 5시까지 종일반을 운영하실 듯 하다.

그 작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보내게 하느니 오후 한 두시 쯤 집으로 데려오면 좋겠는데

장난감과 친구들을 남겨놓고 과연 혼자 집으로 돌아올런지 모르겠다.

시영이처럼 종일반을 고집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눈 쌓이면 유치원 못가는 겨울엔 또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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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7-03-04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민이 입학했군. 벌써. 수민이 입학 축하해. 등원 하원 문제가 가끔 신경쓰이겠지만 정말 잘됐다. 모두에게.. 축하해. 지금은 종일 있겠다하여도 또 몇일 지나면 모를일이니까 종일반을 하는건 차차 생각해봐. 수민아. 다시한번 축하해!

지금여기 2007-03-0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다섯살인데 빨리 입학하네? 산골에서 학교는 좀 멀지 않나요?

2007-03-05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ony 2007-03-0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늦게 읽었네!^^;;
예섬언니가 보내준 그림책들 재미있게 읽고 있단다.
특히 고구마파이 굽는 얘기랑 로지의 산책, 마이프렌즈. 다시 한 번 고마워.
그런데 예섬이는 다섯 살 때부터 안다녔니? 요즘은 3년동안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많거든. 병설유치원인데 집에서 자동차로 넉넉잡아 15분 쯤 걸리는 곳이란다.

지금여기 2007-03-1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되게 머네요...
저는 다섯 살때 어린이집 다니다가 일곱 살때는 유치원 안가고 집에서 놀았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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