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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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컬하게도 세상이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세상에 자신을 맞춘다는 것은 세상과 민첩하게 타협하는 것이고 세상을 추수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행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려는 그 우직한 노력이 좀더 인간다운 세상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단순히 비교하는 선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소위 전망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그 내면에 자기의 소망을 담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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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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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프란츠, 2019)]을 통해 접했던 그의 글은 당혹스러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말과 소리, 그리고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와 표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읽는 내내 따라잡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을 읽기 전 또 다시 그의 언어의 바다에서 표류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습니다.
다행이 언어, 특히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조금씩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잘못 이해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키냐르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전통적인 수사학과는 다른 의미의 수사학을 제시하였다고 봅니다. 수사학(rhetoric)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설득의 말하기/쓰기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키냐르가 말하는 수사학은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는 모든 것, 특히 열린 생각과 자유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라는 장에서 전통 또는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언어를 규정하고, 재단하여 정형화되거나 권위를 부여받은 것들만이 허용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미지없는 논증으로서의 철학’, ’형이상학의 난폭한 확산‘ 등으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자유롭고 열린 생각과 표현으로서의 수사학을 ’사색적 수사학, ‘반철학적 문학전통‘, 그리고 <소론집>을 통해 열린 질문을 던지지만 답을 제시하지 않는 텍스트, 즉 읽는이가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 글을 위한 것이라 말합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반 철학적(반 이성적) 글쓰기의 전통을 불러 옵니다. 마치 푸코가 근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위해 역사 속에서 소수자 혹은 소멸된 것들을 되살리듯이…언어를 사용한 이래 이것은 끊임없이 규정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규정짓기는 한편으로 그 의미를 제한하고 축소시켰을 뿐 아니라, 규정이 의미를 다시 규정하는 모순까지 있어 왔습니다. 결국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가 도리어 인간의 생각을 규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질은 사라지고 언어로 규정된 무의미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키냐르는 이런 수사학, 논리나 이성 또는 추상적인 것에 매달린 수사학이 아닌 살아있는 날 것 그대로의 수사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키냐르의 수사학은 말과 글이라는 언어가 인간의 생각을, 또는 그것이 무엇이든 제대로 표현하려면 규정되지 않은 한계없는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고 생각됩니다.
무엇을 읽고, 쓰거나 혹은 말을 하던지 규정된 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책 속에서 건진 몇 문장
‘우리의 겉모습은 떠도는 지배에사슬을 던진다. 우리의 눈길은 모든 걸 말하고, 검은 안경은 더 많은걸 말한다. "나는 가면을 쓰고 나아간다Larvatus prodeo"는 데카르트의 금언은 실행 불가능한 명령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 때문에 진정성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더더욱 실행 불가능하다. 데카르트의 금언은 우리 자신에 대한 무지 때문에 우리가 다가가는 게 불가능한, 진정성보다 훨씬 더 실행 불가능한 명령이다.
라틴어로 페르소나 persona 가면을 내미는 건 그 선택에서 당장의 immedita 복잡성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드러낸다. 누구도 자신이감출 때 무엇을 드러내는지 알지 못한다. 아풀레이우스는 참으로불행한 한 인간을 무대에 올린다. 그를 욕망하지만 그가 겁내는 어느 여자에 대한 기억을 친구가 떠올리자 그는 흐느낀다. 고통으로부어오른 자기 얼굴을 그가 입고 있던 덕지덕지 꿰맨 옷으로 가리자 배꼽umbilico부터 아랫배pube까지 노출된다.’p.83

‘ 임재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당혹스러운 문체의 스승이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격렬한 문체의 스승이듯이 임제는 당혹스러운 문체의 스승이다.” 삶이 살아진 순간부터 삶에 환대를 제공하는 유일한 장소는 오직 말뿐이다. 그리스의 온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수사학자인 로기노스는 삶이 어떻게 문자언어 속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묘사했다. 글로 쓰인 작품은 라이터에서 솟구치는 불꽃처럼 그것을 쓴 사람의 내면에서 급격히 전개된다. 쓰는 사람은 스크린도, 이론도, 숙고도 없이, 무엇보다 언어도 없이, 갑자기 장면들을 눈앞에 보아야 한다. ‘p.129

#파스칼키냐르 #파스칼키냐르의수사학 #을유문화사 . #수사학 #문학이론 #문학추천 #책추천 #열린생각
#RhetoriqueSpeculative #PascalQuignard

- 본 게시물은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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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그레이트북스 84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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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정권은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모든 인간이하나의 개인인 것처럼 조직한다. 인간의 세계를 구성하는 복수의다원성은 사라지고 단수의 획일성만이 존재한다. 개인들은 전체주의 운동의 도구가 되어 ‘한 사람 (one man)이 된다. 대중들이똑같은 의견을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동일하게 행동할 때 그들은전체주의의 폭민이 된다.
전체주의 국가의 모범적인 시민은 ‘파블로프의 개 이고 가장 기초적인 반작용으로 축소된 인간 표본이다. 그들은 행위 대신 반응을할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양성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면 언제든지 전체주의가 태동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테러는 서로 고립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절대적 지배를행사할 수 있다. 대중들이 가치와 원칙으로 서로 연대하지 않고 고립될 때에만 그들을 조직하려는 전체주의 정권이 나타날 수 있다.
세계 속에 어떤 자리도 없는 남아도는 사람들은 전체주의 정권의 희생자가 된다.
우리는 여전히 20세기의 산물인 대중사회에서 살고 있다. 21세기의 대중사회가 개인의 인권과 개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전체주의 이후의 사회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 사회에서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이렇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사회는 우리를 필요한 존재로 대우하고 있는가 아니면 쓸모없는잉여존재로 만들고 있는가?"
• 옮긴이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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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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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그렇지만 정작 문제는 사진 자체에 있다.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진들의 초점, 모든 것을 그들이 무능함으로 환원하는 그 초첨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들이 달려 있는 설명에 그가 찍은 무력한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39개국에서 이주민들의 모습을 찍은 상이한 살가도의 사진은 이런 단일한 방향 아래에서, 그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상이한 고난과 그 고난을 불러온 상이한 원인을 한데 뭉그러뜨려 버린다. 어떤 고통을 전 세계적인 것으로 다룸으로써 실제보다 과장되게 만들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이 훨씬 더 많아 ‘보호‘ 받아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게다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고통이나 불행은 너무나 엄청날 뿐만 아니라 도저히 되돌릴 수 없고 대단히 광범위한 까닭에 아무리 특정 지역에 개입을 하고 정치적으로 개입을 하더라도 그다지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어떤 문제가 이 정도의 규모로 인식되어 버리면, 고작 연민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해당 문제를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지만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로 모든 정치는 구체적인 것이다. (본문 121 - 122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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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시대 - 에릭 홉스봄 자서전
에릭 홉스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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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노쇠하고 회의적인 역사가의 눈에도 그것은 대량 학살, 훌륭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기술, 할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하는 현실 속에서 신의 세력과 사탄의 세력이 온 세계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선언 등 20세기의 가장 고약한 요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삼류문사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불행하게도 잘도 찾아서 내뱉으면서 서양 세계는 언론을 타는 사람들의 게거품에 휩쓸렸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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