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교육 때문에...
* 불의에 대한 저항
우리 애들은 나를 닮았는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키웠는지... 불의에 저항하는 마인드가 강하다.
순오기님의 글을 읽다가 제 자신을 비추어 생각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씁니다. 저는 머리가 나쁘기도 하지만 좋은 면도 있어, 어떤 사람이 명시적이던, 암묵적이던 명제가 주워졌을 때, 신속하게 그 나름대로 가치판단을 하게 됩니다.
대화 상대가 수평적일 때는 논쟁,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고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여기서 감정의 앙금은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 저의 경우는 할머니와 친척 분들이 해당됨.)나 선생님, 선배, 직장 상사의 경우 처음에는 의견 교환처럼 수평적으로 시작되나 결국에는 아랫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위 사람의 주장을 관철시킵니다. 더욱이 더 분노하게 하는 것은 위 사람의 의지를 관철한 것을 가지고 회의를 통해 아랫사람으로부터 의견 수렴을 거친 모양새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불의에 저항하는 마인드가 강하지 않습니다. 제가 피해 받지 않는 선線?에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할 뿐입니다. 적극적인 정의 실천자보다는 소극적 정의 실천이지요. 보다 정의로운 세상이 되려면 적극적 정의 실천자가 많아야 되겠지만 저는 소극적 정의 실천만으로도 살만한 세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 자의적인 적극적 정의正義 실천과 소극적 정의 실천의 정의定義는 예를 들어 부적절한 지역 재개발을 - 이하 재개발로 설명하면) 적극적 정의 실천는 재개발로 인해 피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재개발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소극적 정의 실천은 그 지역 안에 살면서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개발이 악이냐, 불의냐, 무엇이 부적절한 것이냐고 물으시면 안 됩니다. 논지에서 벗어냐요. 재개발로 이익을 얻지 못하므로 상대적인 손해도 물론 동반합니다.) 다른 예로 장애인 시설 유치가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애인 복지 시설을 반대하기도 합니다. 반대하지 않는 정도의 실천. 또 다른 소극적 실천으로 투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투표율이 낮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지하는 대상도 이기적은 공약을 하는 정치인을 지지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표현했던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선생님이 그 일을 갖고 불이익을 준다면 달게 받으라고 한다.
저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서 살아왔지만, 표현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불이익을 가능하면 피하려 하면서 살아왔고 어쩔 수없이 주어지는 불이익을 달게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월욜에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기로 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위 문장 때문입니다. 뭐가 죄송할까? 자신의 의견을 표시한 것이 죄송한 것일까? 어른 입장에 대한 버릇없는 짓이 죄송하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버릇 있게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은 있을까? 특히 학생을 올바르게 지도해야 할 선생님의 입장에서 로비와 관련된 것이라면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불의에 저항하려면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이 실력 기르는데 몰입하다 보면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핵심적인 문제는 실력이 아직 길러지지 않았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냥 잡설雜說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