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사이바라 리에코 지음, 김문광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언제쯤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 시절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도 이런 마을이 있다면, 그건 너무 비참한 일이니까.


말도 못하게 가난한 바닷가의 마을. 십대에 이미 가출과 매춘과 약물은 기본이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일도 다반사고, 매맞는 여인과, 폭력이 일상인 남자들이 가득한 그런 마을의 이야기이다. 


책이 좋다는 소리를 몇 번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려운 소재였다. 비참해도 너무 비참했고, 처절해도 너무 처절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속절없이 웃고 마는 그런 주인공들을 보며 '희망'을 떠올릴 수 있는 건지, 그들을 응원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기시감이 들었던 것은 '자학의 시' 때문이다.

그 작품도 그랬다. 초반에는 뭐 이런 매저키스트 여주인공이 다 있나 싶어 화딱지가 났다. 날마다 밥상이나 엎으며 도박하겠다고 아내의 노동에 쩔은 돈을 가져가는 그런 남자를 여전히 사랑하는 여자라니...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사냐고 화를 내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놓고는 작품을 다 읽을 무렵에는 막 눈물 나게 만드는,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냐고 외치게 하던 그 작품이 떠올랐다. 비슷하게 성의 없는 그림체고, 비슷하게 짤막한 이야기들의 연속이건만, 마지막에 다달을 때에는 어떤 철학마저도 느끼게 하고, 가슴 깊이 찐하게 우러나오는 감동 같은 게 있었다. 이런 아픈 이야기, 비참한 이야기에 감동 받기 싫었는데 말이다. 



여자를 울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저버린 자신을 반성하는 남동생. 그런 동생에게 '절대'란 건 없다고 말해주는 누나.

최대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니 세상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에도 동생을 용서해주겠다고 말하는 이 속깊은 누나.

그런데 누나는 거의 사기단 수준의 창녀였고 동생은 어린 아이를 앵벌이 시키는 폭력범이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조화라니...



새끼는 아무 여자나 다 낳지만 모두가 엄마가 되는 건 아니라고, 그래서 자기는 자식을 버렸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 호탕한 아줌마는 괭이 할매라고 불린다. 모두 열다섯 정도의 아이를 낳았지만 열손가락 안으로 살아남았고, 집집마다 버려져서 이동네 저동네에 살고 있다. 버려진 아이들이 엄마를 곱게 볼 리 없지만 끼니를 챙겨주며 살뜰히 맞아주는 딸도 그 중에 하나는 있다. 이 괭이 할매가 죽었을 때 온동네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모인다. 그리고 죽은 엄마를 찾아온 아이들이 만나면서 이웃이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서로가 형제임을 확인한다. 그런 동네다. 이곳은...



자기 인생에 익숙해지란 말은 얼마나 답이 없는가. 초연해지라는 것인가, 인정하고 포기하라는 것인가...



삶이 너무 비참한 까닭에, 조그마한 행복에도 크게 기뻐하는 누나의 삶의 자세가 돋보인다. 

행복을 너무 많이 갖다 주면 다 흘러버려서 아깝단다. 자신의 손은 작으니까.



한 걸음짜리 충고 때문에 350보 쯤 후퇴한 사랑이라니... 꼬마가 누나 닮아서 개똥철학이 깊어지고 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들. 그 말이 딱 맞을 것이다.

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하고 돌아온 어느 기자가 그렇게 말했다. 

그곳의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니 그게 뭔지를 못 알아듣더라고.

미래에 뭐가 되고 싶냐고 다시 물어보니 '미래'라는 말을 모른다는 것이다.

설명에 설명을 거듭했지만 끝내 이해시키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전날 미래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 지역이 폭격으로 주민들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 마을 아이들이 꼭 그랬다. 십대에 이미 처절한 삶의 고통을 맛보고, 20대에 이미 늙어버린다. 

젊어서 칼맞거나 약물중독으로 사망하는 일도 다반사다.

온전히 제 수명을 살아가는 아이를 축복이라 해야 할지, 저주라고 해야 할지...



그렇게 여자 등처먹는 남자들이 부지기수고, 그걸 수다거리 안주거리로 삼아 껄껄껄 웃어버리는 여자들이 즐비한 곳...

그게 이 마을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겹쳐서 지나치지 못하게 만들었던 똥파리 같은 지저분한 아이들...



그 아이들을 키우지만 어쩌면 그 아이들은 모두 친자식이 아닐 것 같은 그런 아저씨에게서 자신의 미래가 겹친다. 

원래는 아이들에게 일거리를 주어서 푼돈이라도 쥐어주려고 했던 것인데 결국 아저씨에게 일감을 주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일은 잘 못하고 연신 사고만 친다. 그런데 버릴 수가 없다. 이 가난한 아저씨와 그 아저씨의 아이들이 밟히기 때문이다.



움막만도 못한 집이 불타버렸다. 건질 세간 하나 없었겠지만 비를 피할 집한칸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하하 웃는 이 아저씨. 아이의 소풍날이었다는 것도 기억해내는 자상한 아버지다. 

이 와중에 같이 소풍가자고 말하는 이 아픈 부정...

언덕 위에 올라가 바다도 보여주고 숲도 보여준다. 이런 좋은 아빠가, 이 지독한 가난으로 좋은 아빠 노릇을 하기 어려운 이 참담한 현실을 계속 지켜보는 게 참 힘겨웠다. 그게 작품 속 픽션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맛난 걸 어딘가에 숨겨두고 잊어버리는 누나. 그러다가 몇 년 지나서 발견하면 보물상자 찾은 것처럼 기뻐하는 소박한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누나. 그 누나의 가장 큰 추억은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던 기억이다. 그래서 그 집이 소중했던 것이다. 그 집에서 한 울타리를 지키고 사는 가족들이 소중한 것이다.



아까 그 네아이의 아버지처럼, 주인공 형제의 누나처럼 인생을 끌어안아 주는 소중한 가족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삶을 살아갈 용기를, 최소한의 용기라도 가질 텐데, 모두가 그런 가족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가족이 되어주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의사는 없지만 약쟁이는 가득한 동네. 그런 동네에 깃발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주인공. 그 주인공이 차린 포장마차는 오뎅 가게다. 욕심 없이 오뎅만 팔게 놔두지 않는 세상이라는 게 함정...



누구도 끊어낼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그렇게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던 청춘은 소리 소문 없이 연락두절이 되고, 그런 형을 기다리는 동생은 그런 형의 인생을 되밟아간다. 그런 인생들이 가득 모여 있는 동네의 '우리집'이다.


다시 '자학의 시'를 떠올린다. 자학이라는 단어와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은 '시', '희망'이라곤 쥐똥만큼도 없을 것 같은 이 몹쓸 동네와 우리집에, 그런데 그 조심스러운 희망이 보인다. 감히 희망이라고 명명하기도 미안한, 그래서 더 귀하디 귀한 희망이... 


이 동네 사람들이 보다 잘 살고, 약물중독도 치료하고, 십대 소녀들이 매춘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극적인 변화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어도 품어 안으며 따뜻하게 키우려고 하는 아버지가 있고, 세상 모두가 버려도 나만은 너를 지지하겠다고 말하는 누나가 있고, 너만은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한 인생을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형이 있다. 동생이 장만해 준 발에도 맞지 않는 커다랗고 촌스런 하이힐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신발이라고 행복해하는 누나가 있다. 이런 가족들... 때로 짐이 되지만 때로 힘이 되는, 때로 멍에가 되지만 때로 버틸 기둥이 되어주는 그런 가족과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이, 이토록 시궁창같고 쓰레기 같은 현실 속에서도 빛이 난다. 그들에게서 숭고한 삶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작품, 참으로 아프고, 참으로 속상하고, 참으로 고맙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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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8-25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람들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좀 답답했엇습니다.

평생을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한다면..
도대체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까 하구요...

마노아 2014-08-26 10:38   좋아요 0 | URL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저 조용히 응원해 주고 지켜봐주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살라고도, 살지 말라고도 할 수가 없어서 참 아파요...

2014-08-28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28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