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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어릴 때부터 신께 바쳐진 아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마치 사무엘처럼. '신'의 이름으로 낙인 찍힌 그 말이 주술처럼 나를 옭아매어서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소망하는 것도 안 된다고 여기며 살았다. 인생의 행로가, 도착지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다른 샛길로 나가봐야 무엇하는가 싶었다. 교생 실습을 목전에 두고 있던 대학교 4학년 봄, 답답한 마음에 교수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교수님은 아주 심플하게 충고해 주셨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내가 아무리 피해가려고 해도 그 길을 가야 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길이라면 내가 가고자 기를 써도 갈 수 없다고. 그 말은 나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모두 무색해졌다. 신의 섭리는 삶의 모든 과정에서 드러나지 목적지 하나만 두고 말하지 않을 것인데, 나는 불필요한 고민에 너무 오래 내 몸을 담그고 괴로워했다.
이후 파울로 코엘료의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에서도 비슷한 깨달음과 감동을 얻었다. 사랑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치유의 은사를 접고 신에게로 향하던 진로를 내려놓은 남자를 보는 것이 여자는 괴로워서 도망쳤다. 하지만 남자는 따라와서 그녀를 잡았다. 그가 아니더라도 신이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필요하다면, 신은 그리 할 것이다.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물론, 나는 겁먹고 내쳤었지만......
이 작품은 W수도원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작품 후기를 보고서 이곳이 왜관이겠구나 싶었다. 요한 신부님께 아빠스님(대수도원장)은 자신의 조카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냈다. 아마도 죽을 병에 걸린 모양이다. 10년 전에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그래서 신부 서품을 앞두고 있던 젊은 사제 요한이 소명을 내려놓으려고 결심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자신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슴 속 불덩이가 다시 치올랐고, 그들의 10년 전 이야기가 재생된다.
천주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그다지 없어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수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내게 무척 신선했다. 요한에게는 삼총사로 묶이는 친구 수사가 둘 있었다. 냉철하고 이지적인 미카엘과 천생 천사같은 착한 심성의 조각같은 얼굴의 안젤로. 둘의 성격을 보여주는 말투를 들어보자.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역설하면서 가난한 자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교회, 낙태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왜 젊은 엄마들이 배 속에 든 자신의 아이를 죽일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조금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교회,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강대국의 무기 판매에 아무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 이혼은 죄라고 하면서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불행하게 사는지 보이는데도 모른 척하는 교회! 동성애가 무슨 취향인 줄 아는 교회! 그 교회가 나를, 여자들과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수도원의 형제들이 노동한 대가인 그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수사들과 같은 수위로 처벌하려 하는군. ‘부자가 재산을 자랑할 때 약탈과 착취가 묵인되고, 군지휘관이 승전보를 알릴 때 대량 학살이 묵인되고, 고관대작이 권력을 뽐낼 때 폭력이 묵인되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것들이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그 부류 속에 있음을 의심하라!’하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67쪽
교회와 장상들을 거침없이 비판하던 미카엘의 각진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에 비하면 안젤로의 목소리는 좀 더 느리고 보다 부드럽고, 그리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안젤로는 초콜릿을 노수사님들의 입에 넣어주고는 노수사님들의 식판에 담긴 밥을 자신의 입에도 넣었다.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꼭 같이 고통받기를 정말 바라실까요? 토마스 수사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병실에서 자기는 아파서 물도 삼키지 못하면서 제가 친척들이 사 온 주스며 빵을 먹고 있는 걸 보기를 그리 좋아하셨는데요.” -37쪽
안젤로는 요한이나 미카엘에 비해서는 배움이 짧았다. 그래서 모르는 것도 많았고 실수도 아주 잦은 수사님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말에는 본질적인 깨달음이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금식하는 것을 자랑삼던, 계율을 지키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던 바리새인의 오만함이 그에게는 없다.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꼭 같이 고통받기를, 정말 바라실까? 신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부모도 그리 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교회와 장상의 처사에 염증을 느낀 미카엘 수사가 신부 서품을 아예 내려놓으려고 할 때 요한 수사가 말렸다.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69쪽
분노와 충동 속에서 급하게 내린 결정은 반드시 후회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평화 속에서, 그리고 침묵 속에서 스스로와 만난 뒤 내려야 한다. 이렇게 강조한 요한도 10년 공부를 물리고 사랑하는 여자, 그것도 약혼자가 있는 여자의 손을 잡기 위해 수도원을 나가려고 했다. 비극적인 그 사고가 없었다면 그리 했을 것이다.
큰 사고가 일어났고 죄없는 사람이 죽었다. 많이 사랑한 만큼 더 큰 슬픔이었고, 젊은 목숨이었기에 더 아까워 했다. 사랑은 뜨겁고 사랑은 달달했고 사랑은 또 더없이 가슴을 충만하게 만들었지만 현실의 벽은 언제나 그보다 높고 견고했다. 살아온 배경이 달랐고, 넘어야 할 산도 많았으며, 앞으로는 더 막막했다. 세상의 비난과 손가락질보다 무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누군가는 제동을 걸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소희 자신이었을까, 아빠스님이었을까, 아님 신이었을까.
작품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서, 가난한 자들을 향한 한 사제의 연민과, 수도원 가족들을 향한 동지애와 신을 향한 사제들의 사랑까지 다양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북한 자강도 옥사덕 수용소에서 생지옥을 경험하고도 고국 독일을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 토마스 신부의 이야기와, 흥남부두 철수 때 무려 14,000명의 피난민을 무사히 실어나르고, 이후 신께 바쳐진 삶을 살았던 마리너스 신부의 이야기는 독자마저도 숙연하게 만들었다. 특히 마리너스 신부님의 이야기는 실화이기 때문에 더 뜨겁다. 배는 기름을 끌어안고 있었고, 폭격이 시작되면 모두 죽을 판이었다. 당장 떠나도 위험한 판에 끝도 없이 밀려드는 피난민들을 싣겠다는 선장을, 선원들은 당연히 말렸다. 그런 그들에게 캡틴은 이렇게 말했다.
‘압니다. 할 수 없는 이유 9999가지를요. 그러나 합시다. 이건 생명의 문제입니다. 이건 흥정의 대상도 고려의 대상도 아닙니다.’ -334쪽
지난 삼주간, 우리는 사람의 생명이 돈 앞에서 얼마나 휴지조각처럼 취급되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았다. 그래서 더 가슴을 쳤을 것이다. 이런 선장을, 이런 배를......
영하 20도의 눈보라 치는 항구를 떠나 사흘 만에 도착한 그 나라의 남쪽 항구는 영상 1도. 생명과도 같이 보드라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거제도의 주민들이 우리 배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히 주먹밥을 준비해 부두에 나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맑고 신선한 이 나라의 물도 함께 말입니다. 우리 선원들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지요. 예수라는 이름도 없고 교회도 없고 심지어 십자가도 없는 이곳에서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펼쳐지고 있다고 말이지요. -341쪽
사흘동안 무사히 항해를 했다는 것도 기적이었다. 그런데 그 사흘동안 정원의 몇 배를 초과한 승객들이 보여준 질서도 기적이었다. 누구하나 죽지 않고 누구하나 해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버텨낸 기적의 사흘 뒤 도착한 전혀 다른 풍경의 항구 모습. 누구라도 이 순간을 목격했다면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2부에 도착했던 따듯한 남쪽 항구에서 읊조린 '메리 크리스마스'에 눈물이 났다. 전쟁 중에도 인간은 이렇게 사랑을, 기적을 보여주는구나.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전쟁이 아닌 데에도 이토록 비참한 죽음들을 본 것이구나......
속세를 떠난 사제들이 겪는 유혹이나 스트레스를 논문 주제로 삼았던 소희는 그 자신이 바로 유혹이 된 셈이었다. 그녀의 행보는 충동적이었고 이기적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에게 충실했고 솔직했다. 마지막 순간에 더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에도 그녀의 사랑이 깔려 있었다. 신과 대결하기에는 한없이 약한 인간이지만,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었던 사랑이 그녀에게 있었다.
다시 십년 전의 나로 돌아가 본다. 그 사람은 중학교 때 이미 신께 자신을 바치겠다고 스스로 서원한 사람이었다. 선교사가 되고 싶었고, 이미 그 길을 걸었던 전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맑고 투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었다. 지극히 세속적인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함께 가자고 하면 가지 않을 나를 알기에 그는 스스로 내려오겠다고 했다. 소명도 내려놓고 서원도 팽개치고 내 곁에 있어도 되겠냐고 했지만 그 순간 나는 더 무서워졌다. 마치 내가 신을 향해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살면서 해본 거절 중에 가장 매몰찼던 순간이 아닐까. 그 순간의 이별은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했다. 다시 십년이 지나고 그때의 내 선택을 후회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할 때에, 늘 내게 잔잔한 조명불이 되어주던 야곱이 충고해 주었다. 인연이 아니었던 거라고.
동의한다. 결과를 보고서 되짚는 설명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야 편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거기까지가 우리의 인연이었을 거라는 지적에도 수긍한다. 진정 연이 닿았다면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의 남자 주인공처럼 그녀를 끝까지 붙잡았을 것이다. 그 사람도 나도 그러지 않았으니까 우린 여기까지인 것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알고 있는 공지영 작가의 이 책에서는 무턱대고 강조하는 종교성이 없다. 오히려 나같이 그 세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좋은 책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인간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한 수사에게서 지극히 작고 평범한 우리네 사람을 본다. 그 혹독한 갈등과 시련 속에서 성장해가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본다. 우리의 역사와 맞물려서 펼쳐놓은 기적같은 이야기들은 더 진한 여운과 감동도 주었다. 좋은 책이다.
연재를 마치고 떠난 에스파냐의 수도원에서 작가는 후기를 썼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깊이 절망하겠습니다. 더 높이 희망하기 위해서. -379쪽
야곱이 환상 속에서 보았던 높고 푸른 사다리를 작가를 통해서 보았다. 이 깊은 절망 뒤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 날기 위한 이 추락을...fall to 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