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2 - 결의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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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마지막에서 료코는 학교를 휩쓸었던 살인사건의 진실을 자신들의 손으로 파헤치겠노라고 결심했다. 의분에 가득차서 나온 말이었고, 어느 정도는 충동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신중한 아이는 한때의 감상으로 이런 커다란 일에 제 몸을 던지지 않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설명했고, 자신이 당한 부당한 대우를 역이용해서 유리한 패를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일종의 마음의 빚 덜기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심을 다해 변호인 측과 검사 측으로 나뉘어서 사건을 파고들다 보니 어느새 모두가 진심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제법 전문적인 느낌이 나는 법정인으로!


가장 시선했던 것은 변호인 가즈히코의 등장이다. 조토 제3중학교 학생도 아닌 가즈히코는 지난 해 크리스마스에 죽은 가시와기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다. 같은 학원도 다녔던... 오이데 슌이의 변호를 맡으려 했던 후지노 료코가 검사가 되는 바람에 비어버린 자리를 가즈히코가 차지했다. 사건에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이데 슌지로부터는 객관적인 시선이 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변호인 낙점은 적절해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서 노다 겐이치가 '강 건너를 보고 온 눈'을 읽었을 때 그는 이 사건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1권 첫 시작에서 등장했던 공중전화 박스의 인물이 가즈히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사연과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그의 과거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똑똑하고 냉정한 아이가 한번씩 무너질 때를 생각하면 이번 재판은 오이데 슌지의 변호가 아니라 가즈히코의 변호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중2에서 중3으로 막 올라간 아이들, 그래봤자 열다섯, 열여섯인 아이들이 살인사건과 관련된 재판을 치른다. 어이없다고 치부하기 딱 좋은 상태지만,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아이들은 이 재판을 준비하면서 확실히 변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 사실 재판을 시작하게 만든 후지노 료코가 제일 그랬다. 같은 반 학우였던 가시와기가 죽었을 때 반 아이들이 흐느껴 우는 걸 보며 짜증나 하던 게 그 아이였다. 평소에 전혀 친하지도 않았고, 한달 이상 등교거부를 하고 있어도 걱정조차 없던 사이였는데, 그 아이가 죽었다고 하니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본 것이다. 인정한다. 둘 모두 맞다고 본다. 후지노의 지적도 사실이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 그것도 나랑 동갑인, 그래서 아직 어린 학우가 자살했다고 한다면 이제껏 없던 관심도 새로 생겨서 안타깝고 가엾고 슬퍼질 수 있다. 그것 역시 인지상정이니까. 그러나 이후 반응은 다르다. 그때 눈물 한방울 안 흘렸던 후지노는 입시를 앞두고 이 사건에 끼기 싫어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진실에 도달하고자 애썼다. 이건 후지노가 우등생이어서 가능한 작업이 아니다. 진심으로 이 답답함을 깨부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재판의 당사자인 피고인 오이데 슌지. 불량 패거리의 리더이고, 학교와 친구들에게 참으로 민폐 덩어리인 아이였다. 그런 아이도, 만약 억울하게 살인자라는 오명을 쓴 거라면 마땅히 변호받아야 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야케 주리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가 고발장을 쓴 사람이라고 어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왜 그런 고발장을 썼는지, 정말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닌지... 


후지노는 재판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진실과 맞닥뜨린다. 머리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검사로서 자신의 증인을 믿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믿어야 하니까 믿는 게 아니라, 믿으니까 믿어지는 진짜 신뢰를 확인한다. 이 똑똑한 아이가 재판에서 어떤 활약을 할지 사뭇 기대가 된다. 반대편 변호인도 보통 인물이 아니니 말이다.


노다 겐이치의 성장도 눈부셨다. 이 아이는 그야말로 강 건너편을 보고 온 아이다. 그때 그렇게 절망에 몸부림치던, 그래서 무서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했던 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다는 변했다. 평소에 얌전하고 조용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던 노다 겐이치. 성적으로 눈길을 끌거나, 말썽을 부려서 관심을 갖게 하는 아이가 아니라면 학교에서 집중받기 힘들다. 노다도 그랬다. 그런 노다의 장점들이 변호인의 조수 역할을 하면서 여려 면에서 관찰되었다. 세심하고 따뜻한 아이다. 노다가 변하니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변했다. 좋은 쪽으로. 그렇게 가족의 상처가 아주 조금씩 아물어가는 듯 보인다. 다행스럽다. 


망나니 아빠를 둔 오이데 슌지. 이 재판의 피고인인 오이데. 이 아이도 자랐다. 느리지만, 아주 더디게 천천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도 성장했다. 몸은 이미 어른이지만 마음은 자라지 않은 아이어른이었던 오이데도 변화를 보였다. 폭력 아빠 밑에서 폭력으로만 모든 걸 해결할 줄 알았던 상처입은 짐승 같던 이 아이가 주변 사람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맞을까 봐 걱정했고,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의 손길을 잡을 줄 알게 되었다. 흡사 늑대 소년같던 아이가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구사하는 것처럼 변했다. 이제 이 아이도 자신이 저질렀던 무수한 악행들과 찬찬히 마주할 때가 왔다. 6일에 걸쳐 이루어질 3권의 재판에서 오이데 슌지도 진정으로 구원받고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학생들은 어린대로 그 순수함과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어른은 어른대로 그 성숙함으로, 또 배려하는 마음으로 따스함을 느끼게 했다. 딸을 잃고 마음이 지옥이었을 마쓰코의 엄마는 재판의 검사를 맡고 있는 료코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네 입장이 이렇게 곤란해지는 건 마쓰코도 원치 않을 거야."

"제가 시작한 일인걸요."

"하지만 넌 아직 어린아이잖니. 도망쳐도 괜찮아."  -398쪽


일련의 사건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임 교장 쓰자키 선생님도 그랬다. 좋은 선생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속물이거나 무책임한 선생들이 많았던 학교에서 처음부터 온전히 학생들의 편이셨던 쓰자키 선생님은 이번에도 역시 존경의 눈빛을 보내게 만들었다. 제몫의 역할을 잘해내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동시에 기꺼이 방패도 되어주고 무기도 되어주는 그런 어른, 그런 선생님. 그런 분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참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강렬한 반응을 보이게 하는 것은 '억울함'이라고 들었다. 공감이 간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들고, 한겨울에도 열로 달아오르게 하는 감정이란 다름 아닌 억울함 아니던가. 그 억울함 때문에 수년 동안 거리 시위를 하고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이 작품 속 아이들도 그랬다. 어른들도 그랬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싶어했고, 그래서 진실을 밝히고 싶어했다. 이제 바로 그 진실을 밝혀낼 재판의 막이 오른다. 아이들이 치르는 교내재판이니 법적 효력도 없고, 얼마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모두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진실에 이미 많이 다가섰다. 이미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지금껏 드러났던 것과 전혀 다른, 혹은 허를 찌르는 새로운 진실과 마주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기꺼이 마음을 열고 참여하겠다. 진실은 후련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프기도 하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으니. 나 역시 겐이치처럼, 가즈히코처럼 제 그림자를 밟고서 지켜보겠다. 누구도 그림자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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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1-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걸 장르소설이라고 하나요?아닌가??
리뷰 읽으면 한번 읽어 보고 싶다 생각하다가도
이상하게 딱 손이 안가네요.

아..저는 언제 이렇게 잘! 그리고 성실하게 리뷰를 써볼까요. ㅜ..ㅜ


마노아 2014-01-24 13:28   좋아요 0 | URL
미스테리 혹은 추리물 장르소설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확실히 밤을 새워 읽을 만큼 흡인력이 있는 소설은 이쪽 장르 같아요.
감동 때문보다는 재미 때문이지만요.^^
읽는 데 워낙 오래 걸려서 리뷰 쓰고 나니까 막 후련해요.
3권은 며칠 쉬었다 읽어야겠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