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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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독특했다. 엄마 사용법이라니? 아이가 원하는 엄마상 같은 걸까? 내 짐작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아이는 정말로 본인이 원하는 엄마 스타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엄마가 배달되어 온단다. 이 무슨 놀라운 상황인가?

 

작품의 배경이나 시대는 크게 신경쓰지 말자. 어느 시대 어느 때건, 작품 속에선 '생명장난감'이라는 게 등장한다. 조립한 다음에 작동을 시키면 살아서 움직인다. 주인공 현수는 이전에 '익룡'을 샀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조립을 다 하기 전에 작동을 시켜서 눈이 없었던 익룡은 여기저기 부딪히다가 사고를 내고 파란  사냥꾼에게 잡혀갔다. '파란 사냥꾼'이란 바이오 토이 사의 직원들이다. 파란 옷에 피노키오 모양의 마크를 단 작업꾼들.

 

 

창밖으로 떨어져 나뭇가지에 걸린 익룡이 파란 피를 흘리고 있다. 마치 찢어진 연처럼 걸린 익룡은 현수에게 상처로 남았다. 파란 사냥꾼들은 생명장난감이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익룡은 분명 비명을 질렀다. 마음이 없는 생명장난감은 고통도 없다고 했다. 그 얘기, 믿을 수 있을까?

 

그때의 경험으로 아빠는 현수가 '엄마'를 사달라고 했을 때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나 출장 중에 손자를 돌봐주기로 했던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가시는 바람에 당장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빠는 결국 엄마를 사주기로 한다.

 

마침내 배달되어 온 엄마. 현수는 택배 상자를 직접 집 안까지 들고 갔다. 제법 무거웠지만 어린 아이가 들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생명장난감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무겁지 않은 거라고 했다. 마음의 무게라... 왠지 마음이 묵직해 진다.

 

생명장난감은 깨어나서 처음 본 사람만 따르게 되어 있다. 엄마를 처음 만나는 소중한 자리다. 현수는 거의 목욕재계 한 뒤에 엄마를 조립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열심을 보였지만 실수로 손끝을 베어서 핏방울이 엄마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피는 금세 엄마 몸에 스며들었다. 마치 심장이 뛰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듯이... 그런데 깨어난 엄마는 현수를 낯설어 했다. 식사를 챙겨 주었지만 방에 우두커니 앉아서 나오지를 않았다. 현수가 생각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날, 현수는 또 다시 지각했다. 학교 가는 길엔 지붕 위에서 똥을 던지는 고릴라와 마주치곤 했다. 벌써 두번이나 머리에 똥을 맞은 전력이 있던 현수는 하늘도 보랴, 똥도 피하랴 아주 힘들었다. 선생님은 또 다시 고릴라 핑계를 댈 거냐고 타박이시다. 현수는 속상했다. 릴라보다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가 깨워주지 않으신 것이다. 선생님은 현수에게 엄마가 없었던 것을 알기 때문에 또 믿지 않으시는 눈치다. 현수는 자꾸만 속상해졌다.

 

날씨가 화창했지만 현수는 비가 오기를 바랐다. 비가 오면 엄마가 우산을 들고 학교에 데릴러 와줄 것만 같아서였다. 본인이 원하는 엄마 모습이 분명 나타날 거라고 아직도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같은 반의 정태성은 현수의 엄마가 '불량품'이라고 했다. 파란 사냥꾼이 와서 잡아 갈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힘도 세고 키도 큰 정태성은 학급 친구들을 많이 괴롭혔다. 급식에 싫어하는 토마토가 나오면 주머니에 숨겼다가 현수처럼 작은 아이들에게 던지는 아이다. 사냥꾼에게 엄마가 잡혀가면 저 토마토처럼 망가질 거라고 무시무시한 소리도 해대는 아이다. 현수는 엄마가 불량품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정태성은 아침에 깨워주지도 않는 엄마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불량품이라고 거듭 말했다. 정태성이 설명하는 엄마의 역할이란 아이를 위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설거지하고, 온갖 집안일을 해주는 도우미에 불과했다.

 

현수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집에 왔을 때 초인종을 누르면 환한 얼굴로 문을 열며 맞아주는 엄마, 잘못한 일이 있으면 야단도 치는 엄마, 벽에 세우고 키도 표시해 주고 심부름도 시키는 엄마, 같이 구름도 보면서 뭉실뭉실 하얀 양이랑 토끼도 찾고 축구도 같이 하고 화분에 꽃도 심는 엄마다. 지렁이가 나오면 무서워해서 자신이 쫓아내주면 자랑스럽게 바라봐주는 그런 엄마...

 

아이의 소박하면서도 구체적인 엄마 상이 뭉클하다. 다감한 아이다. 세상 때 묻지 않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아이다. 자주 넘어지곤 했던 현수는 넘어져서 다친 할아버지께 귀여운 조언도 해준다.

 

"이건 비밀인데요, 아무도 안 볼 때는 조금 창피하더라도 앉아서 신발을 신으면 돼요. 저도 사실 친구들이 안 볼 땐 바닥에 앉아서 신발을 신어요."

 

할아버지께도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는 당찬 어린이 현수! 할아버지도 현수에게 조언을 해주실 차례다.

 

 

할아버지는 현수의 고민을 이해하셨다. 그러나 '엄마사용법'을 자세히 읽어봤지만 거기에는 현수가 원하는 '진짜' 엄마가 없다. 회사에서 소개한 사용법에는 가사 도우미 역할만 하는 엄마가 있을 뿐이다. 기계적으로 일만 하는 엄마는 표정이 없다.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습득이 빠른 엄마에게 현수가 진짜 엄마 역할을 가르쳐주라고 했다. 해서 현수는 본인이 만나고 싶은 그 엄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 책도 읽어주고, 학교 갈 때는 환하게 웃으며 손도 흔들어주었다. 엄마는 현수보다도 더 실감나게 이야기책을 읽어주셨고, 현수와 함께 산책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현수의 얼굴이 활짝 핀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표정을 갖게 된 엄마, 웃을 줄 아는 엄마는 기존에 보이던 생명 장난감과 달랐다. 아랫집 할머니는 불량품이 분명하다며 신고까지 해버렸다. 파란 사냥꾼이 엄마를 잡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 왔다. 현수는 엄마를 지붕 위로 끌어올려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처음 받았을 때와 달리 엄마가 너무 무거웠다. 그렇다! 엄마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마음이 자라서 표정도 있고, 생각도 있고, 감정도 있는 엄마는 결코 장난감이 될 수 없었다.

 

 

위기에 처한 현수를 도와준 것은 뜻밖에도 고릴라였다. 늘 현수에게 똥을 던져서 힘들게 했던 바로 그 고릴라 말이다. 고릴라는 더듬더듬 말도 했다. 도움을 입은 현수는 왜 똥을 던지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고릴라는 그게 친구가 되자는 의미라고 생각했단다. 불량품으로 분류되어 수거될 상황에 처한 고릴라가 도망친 것은 정태성의 집에서였다. 늘 무언가를 던지곤 하는 정태성에게서 처음 받은 인상을 '친구가 되자'는 의미로 해석한 고릴라. 마음이 짠하다. 정태성은 무려 마음을 가진 이 고릴라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잠시 벗어난 위기가 끝이 아니었다. 파란 사냥꾼을 피하려면 엄마는 현수 곁을 떠나야 한다.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주어야 한다. 감정을 가진 엄마를, 진짜 엄마 같은 내 엄마를 만났는데, 그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 어린 현수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아픈 이별이다. 현수는, 정말 엄마와 헤어지게 되는 것일까?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상상력이 기발한 책이다. 재밌를 뛰어넘는 깊은 감동도 있다. '엄마'에게 기대되곤 하는, 그리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엄마의 '사랑'이라는 것을, 또 아이가 엄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작품은 무생물 장난감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 무게를 지닌 마음이 계속 입가에 맴돈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피노키오 마크를 가진 파란 사냥꾼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마저리 윌리엄스의 '헝겊 토끼 인형'이 괜히 진짜 토끼가 된 것이 아니다. 시간과 추억을 사랑으로 메꾼 관계가 생명력을 주었다. 그것이 마법이고, 그것이 기적이었다. 진짜 엄마 사용법을 알아차버린 현수, 진정한 엄마 사용법이란 '사랑'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낸 현수에게 진짜 엄마가 무사히 곁에 있어주기를!

 

덧글) 오타 하나 있다.

50쪽 그렇지만 그런 일을 절대로 없을 거야 >>> 그런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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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3-01-1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무슨 편집자의 글 같은 리뷰인가요.... 궁금해도 너~무 궁금해지잖아요.

마노아 2013-01-12 22:26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이 무슨 과찬의 말씀을~ 파비아나님 반갑습니다. 새해 복 듬뿍듬뿍 받으셔요~
혹시 작품의 결말이 궁금하시다면 비밀글로 말해줄 수 있어용~^^ㅎㅎㅎ

같은하늘 2013-01-17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지난주에 빌려왔다 못 읽고 반납했다는 슬픈전설이...ㅜㅜ
다시 빌려와야징~~ㅋㅋ

마노아 2013-01-18 18:45   좋아요 0 | URL
다시 봐요. 참 좋은 책이에요. 뭉클뭉클(>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