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5주

1.

 트루맛쇼가 어떤 영화인지 사전정보가 전혀 없었고, 다만 7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다. 영화 본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개봉관이 많지 않던데 30분 안에 갈 수 있는 곳에 독립영화관이 셋이나 있다는 건 축복이라는 걸 새삼 알아버렸다.  

영화는 방송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속여 입맛까지 속이는 행태들을 속속들이 파헤쳤다. 유명 맛집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일은 없지만, 어떤 밥집을 갔을 때 벽을 지저분하게 장식해 놓은 어느 방송 출연 사진들이 늘 피곤했다. 그런 간판 없어도 맛있고, 있어도 맛 없을 때가 많았으니까. 영화는 왜 그런 소문난 맛집이 맛 없는지를 있는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맛으로 소문난 것이 아니라 방송에 소개될 자격을 돈으로 샀다는 것이다. 심지어 브로커가 방송용 메뉴도 만들어 준다. 당연히 그 메뉴는 TV를 보고 군침 흘린 시청자가 다시 가서 맛볼 수 없다. 어디까지나 방송용이고 일회용이니까.  

방송에 잡힌 손님들은 이런 일에 전문적으로 고용되는 연출된 사람들. 아무 맛도 없지만 맛있다고 해야 하고, 죽도록 매워도 죽도록 좋겠다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심지어 대사도 작가가 다 써준다. 이런 사례는 일반인 뿐아니라 연예인의 맛집에도 자주 적용된다. 어느 연예인이 자주 가는 맛집이라는 수식어를 내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가는 것이다.   

TV 전파를 탔다는 그 한 번의 경험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잔뜩 끌고 그로 인한 매출 효과가 분명 이익이 되니까 이런 당당하지 못한 방법을 너도 나도 쓸 것이다. 그 비용으로 맛의 증진과 서비스의 확대, 또 다른 참신한 홍보를 기대한다는 건 순진한 바람일까. 

오히려 맛집 간판 없는 집을 골라서 가는 손님들도 늘어가는 실정이다. 방송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광고하는 집들을 보면 피식 웃으면서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도 생긴다.  

영화가 이런 속사정을 낱낱이 보여준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인데 그걸 설명하는 과정도 좀 더 위트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째 이런 것도 모르고 속았냐? 하고 나무라는 것 같아서 조금 언짢았달까. 뭐, 내가 속은 일도 없지만서도... 

 

이렇게 TV 맛집 신드롬과 또 공공연히 자행되는 브로커를 통한 거래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일까? 다른 나라에서도 곧잘 있는 일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2.

지난 주 화요일에는 알라딘에서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에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대 안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상영을 했는데 학교 안에서는 '아트 하우스 모모'라는 이름으로 안내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관리실 기사님도 이름을 몰라 찾느라 다소 애를 먹었다.  

이브 생 로랑은 패션의 문외한인 나에게 낯선 이름이다. 크리스찬 디오르의 제자였고, 그의 사후 디오르를 이끌다가 사주로부터 해고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건 옷을 만들게 되었다고 영화 초반에 설명된다. 디오르의 특징은 모르지만 그 이름까지는 나도 안다.^^ 

그는 여성 옷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한 사람이라고 한다. 여성용 정장에 바지가 도입된 게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니 놀랍다. 하긴, 100년 전 사진을 보면 바지 입은 여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로랑이 참 대단한 일을 했구나!  

몬드리안의 그림을 디자인으로 승화시킨 몬드리안 룩을 보는 순간 눈이 확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요런 스타일인데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변형시켜서 무척 다양한 컬러의 옷들을 선보였는데 그 순간 원피스를 아름답게 소화하는 여자가 가장 부러울 만큼 예뻐 보였다. 그 밖에 그가 유행시킨 많은 옷들을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입지 못해도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꽤 큼을 알 수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개막식에서 그의 데뷔 40주년 헌정 패션쇼가 열렸는데, 전 세계에서 오디션을 통해 고용한 수많은 패션 모델이 그의 옷을 입고 그 넓은 잔디밭을 가득 채웠다. 

 

그의 이름 이브 생 로랑의 이니셜 모양대로 모델들이 서 있는데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이었다. 그에게도 더 없는 영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년의 그는 무척 힘들어 했다. 우울증이 심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자신이 마약 중독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했다. 더 이상 디자인을 할 수 없다고 여긴 그는 은퇴를 발표한다. 최고의 영예를 누렸고, 부귀와 명성도 얻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갉아먹는 우울증과의 싸움은 이 고독해 보이는 인상의 노신사를 지치게 했다. 2008년 그가 사망하자, 그의 연인이며 파트너였던 피에르는 그들이 평생에 걸쳐 수집했던 미술품 콜렉션을 경매에 내놓는다. ‘세기의 경매’라 불렸던 그들의 콜렉션은 3억7천3백50만 유로(한화 약 6천억 원)에 달하는 단일 경매 사상 최고의 낙찰액으로 화제가 되었고, 수익금 전액은 에이즈 재단에 기부되었다. 만약 자신이 죽고 로랑이 남겨졌다면 그는 경매에 내놓지 못했을 거라는 피에르의 인터뷰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된 책 두 권.

 옷 이야기 출간 이벤트에 '라무르'가 재상영된 것이니 당연히 꼽을 책이고 '사토리얼리스트'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페이스 헌터'도 흥미가 생겼다.

 

 

3.  

그리고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제 본 플레이다. 

밴드 메이트를 처음 본 것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는데 노래가 무척 좋았다. 이후 스케치북에 한 해에 세 번을 나왔던가, 무척 밀어주는 분위기였는데, 기대에 잘 부응해 주었다. 건반과 보컬을 맡고 있는 정준일, 기타와 보컬을 맡은 임헌일, 그리고 드럼을 맡은 이현재가 어떻게 만나 밴드를 구성하고 성장하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영화는 청춘 성장 드라마 보여주듯 펼쳐낸다. 물론, 이야기의 극적 구성을 위해서 그들의 연애 이야기가 섞였는데 이쪽은 픽션으로 보인다.  

정준일은 꽤 까칠한 캐릭터였고, 임헌일은 연기가 몹시 훌륭했다. 정은채와도 그림이 예뻐서 정말로 응원해 주고 싶은 기분. 드러머 이현재는 워낙 인물이 모델이니(실제로도 모델이었고!) 비쥬얼은 이미 책임지고도 남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들의 노래가 이야기를 담아 계속 울리니 영화 보는 재미가 아주 컸다.  

오히려 원래 배우였을 (아마도?) 수현 역의 여배우가 발연기를 선보여서 옥의 티였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성인 남자 셋이 모였는데 왜 트러블이 없겠는가. 더구나 젊은 패기와 재능으로 무장했지만 사회와 현실의 벽은 언제나 높은 법. 그 벽 앞에서 그들은 좌절하기도 하고 서로 부딪치기도 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에게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스웰시즌의 공연이었다.  

 

 

 

 

영화 원스의 성공 이후 스웰 시즌은 내한 공연을 가졌는데, 그때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공연 전 버스킹을 하던 메이트를 글렌 핸사드가 일부러 나와서 보고는 자신의 본 공연에 이들을 올렸던 것이다. 이때 글렌 핸사드는 이현재에게 먼저 접근을 했는데 아마 그의 외모를 보고는 영어가 될 거라고 여긴 게 아닐까. 나도 볼 때마다 혼혈 아닐까 무척 궁금한데 그는 영어 못하는 그냥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이때까지도 밴드 이름이 없어서 글렌 한사드가 '친구(mate)'를 소개한다며 이들을 무대로 부르는 장면에서 영화는 극적인 마무리를 짓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지금 우리가 보아온 메이트의 모습으로 연결하면 되겠다.  

메이트 노래 '그리워'  

작년 7월, 이들이 진행하던 라디오에 이승환이 나와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데 무척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현재 임헌일은 군대에 가  있고 정준일은 솔로로 활동한다 했고, 이현재는 프로젝트로 재즈 연주를 한다고 했다. 이 젊은 열정의 친구들이 빨리 다시 뭉쳤으면 좋겠다. 공연의 게스트로는 만나 보았지만 그들만의 공연으로도 충분히 다시 보고 싶은 뮤지션들이다.

일부러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영화 세 편의 맥락을 이어보니 혀와 눈과 귀로 상징되는 주제들이다. 모두 서로 다른 스타일과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만든 영화들인데 '다큐멘터리' 안에서도 이렇듯 다양성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즐겁다. 무엇보다도 오감을 제대로 자극하는 영화들이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원스 ost를 듣다가, 메이트의 노래를 듣다가, 다시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잘 어우러지는 음색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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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1-06-2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감상들도 좋지만 오늘 이 페이퍼에서 제일 좋은 것은 마지막 문장이에요. 그러고 있을 마노아님을 떠올리니까 되게 좋다.

마노아 2011-06-29 17:51   좋아요 0 | URL
헤헷, 네꼬 님이 좋다고 하니까 저의 오늘 오후가 더 근사해지고 있어요.^^

프레이야 2011-06-2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이 페이퍼 좋아요.ㅎㅎ 눈과 귀와 혀.
트루맛쇼만 봤네요. 이거도 사실 눈만 즐거웠지요.ㅋ 맛은 보지도 못했으니..
저 이번 달 미션도 아직 수행 못하고 다음번 기수도 신청 못하겠어요.
오늘이 신청마감일이던데요. 아웅~ 흑..

마노아 2011-06-30 00:51   좋아요 0 | URL
트루맛쇼는 혀를 즐겁게 해주기보다 경종을 울려주었죠.^^;;;
영화 쿠폰 때문에 저도 신청해볼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분명 밀릴 것 같아서 도저히 신청할 자신이 없어요.
프레이야님은 그동안 참 잘해 주셨는데 아쉬워요.(>_<)

... 2011-06-2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백지영이 네이버에서 몇몇 노래들을 추천하면서 메이트 1집을 같이 추천했거든요, 그래서 메이트를 처음 들어보게 되었는데... 1집에 담긴 노래들이 생각보다 훨씬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이번에 새로 앨범을 내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더니, 그게 플레이인가 보죠?

마노아 2011-06-30 00:52   좋아요 0 | URL
노래들 좋아요, 좋아. 영화는 원스 같은 감동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풋풋하니 좋았어요.
연기 초짜들일 텐데도 제법 자연스러웠고요. 글렌 한사드 목소리도 막 반갑고요.^^ㅎㅎㅎ

BRINY 2011-06-30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답고 몽환적이었어요. 튀니지의 별장이 특히요.

마노아 2011-07-01 01:17   좋아요 0 | URL
몽환적이란 말이 딱이네요. 게다가 이브 생 로랑은 어쩜 그렇게 지적으로 생겼나요. 젊었을 적 모습이 나이들어서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게 참 신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