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가져다준 평화 - 전쟁 중에 있었던 하루 동안의 휴전 이야기
존 매커천 글, 헨리 쇠렌센 그림, 이수영 옮김 / 해와나무 / 2008년 8월
절판


어린 손자와 손녀들이 할아버지에게 안겨 가장 즐거웠던 크리스마스가 언제였냐고 묻는다.
할아버지는 자기 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콕 짚어서 얘기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 해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한참 진행중이었던 참호 속에서,
할아버지는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신다.

중립지대를 사이에 두고 독일군과 대치 중이었던 연합국 병사들.
크리스마스 날까지도 적군과 싸워야 하는 현실의 암담함에 더더욱 마음까지 추웠을 것이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는 성스러운 날에 그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총을 들고 있다.
인생 최악의 크리스마스가 될 법도 하건만,
할아버지는 어째서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고 얘기하셨을까.
그 사연을 들어보자.

독일 진영 측에서 어떤 소리가 울렸다.
낯선 언어의 그 무언가가 뭔지 몰랐는데, 귀를 기울여보니, 그것은 노래 소리였다.
그리고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어떤 곡조였다.
맙소사. 크리스마스 캐롤이 아닌가!
때가 크리스마스였으니, 당연한 노래겠지만, 그들은 전투 중이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총부리를 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살육의 현장에서 훈훈한 캐롤 송을 듣게 되다니, 그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상대 진영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짝 긴장하여 총을 조준하였는데, 독일 진영 측에서 나온 병사는 흰 깃발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정말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연합국 측 병사들도 반가운 마음에 뛰쳐나간다.
작품 속에서는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그 자리로 달려나갔다.

언제 서로 죽이기 위해서 싸웠냐는 듯, 이들은 가족을 얘기하고 선물을 나누고,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명절을 제대로 즐겼다.
누군가 아코디언을 꺼내자, 또 누군가는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합창이 되고, 하늘 가득히 울려 퍼진 그 노래가 어느 교회의 경건한 예배보다도, 어느 성당의 미사보다도 더 아름다운 곡조였을 것이다.

게다가 병사들은 축구 시합까지 하기 시작했다.
독일 팀, 영국팀! 난다 긴다 하는 유럽 축구 강호가 여기서 이미 붙었구나!
병사들의 천진난만한 얼굴들이 명화 그림 같은 느낌의 일러스트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그림을 아마도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게 아닐까 싶다. 질감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사실 저기에 참가한 군인들 중 상당수는 아직 앳된 얼굴의 십대 청소년도 많았을 것이다.
저렇게 합창을 하고 축구를 하고, 서로 어울려 마음을 나누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그들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휴전은 그렇게 하루 뿐이었다.
그들은 다시 자신들이 있던 참호 속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리고 다시 '적'이 되어 싸워야 했다.
전쟁은 그렇게 조금 전까지 친구였던 사람들을 가차 없이 원수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기막힌 현실이며 역사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실제로 1914년의 크리스마스 휴전 때 휴전에 참가한 병사들은 무려 1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 후 인류는 단 한 순간도 전쟁이 없는 날을 만들지 못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죽음, 미움 등등등...
아프고 무서운 단어들을 쭈욱 나열하고 싶지 않다. 더더구나 크리스마스와는 어울리게 두고 싶지 않은 그 단어들, 의미들...

작가가 남긴 메시지가 마음을 울린다. 전쟁은 전쟁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그러니 전쟁이 끝날 수 있는 곳도 바로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평화를 갈망할 때, 그 마음들이 모두 모여서 모두의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나와 내 가족, 내 이웃, 그리고 우리 사는 지구 곳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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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1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 무한 감사예요! (>_<)

순오기 2008-12-12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실화라죠~ 무한 감동~~~ 이 책이 웬디양님 선물이었군요.^^

마노아 2008-12-12 08:19   좋아요 0 | URL
넵! 웬디님 선물이에요. ^^ 어저께 도착했답니다. 선물 후기를 하루 더 늦게 쓸걸 그랬어요^^;;

비로그인 2008-12-12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척거리는 참호에서 추위라는 또 다른 적과 싸워가며 맞이한 크리스마스와 하루 뿐이었지만 감동적인 휴전.
각 국의 정치인들과 군장성들은 이 임의적인 휴전을 굉장히 못마땅해했다더군요. 자신들은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잘 먹고 잘 자면서 젊은 사람들 징집해 사지로 몰아넣다니. 누군들 서로 죽이고 싶을까요 그래서 더 크리스마스 휴전이 안타까워요. 영화에선 그래도 해피 엔딩이라 위안이 되었죠.

마노아 2008-12-12 14:11   좋아요 0 | URL
최전선에서 피튀기며 싸우는 건 일반 병사들인데, 꼭 제일 안전한 곳에 있는 사람들이 입으로 전쟁을 하지요.
전 이 이야기를 지식 E에서 읽었을 때 막 울었어요. 오히려 영화는 좀 더 담담하게 본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하엘 유르크스<크리스마스 휴전: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은 더 두툼하고 성인용이죠.제주 4,3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을 뻔했어요.

마노아 2008-12-12 14:13   좋아요 0 | URL
미하엘 유르크스 책은 알라딘에서 이 책 하나만 검색되는군요.
아, 그런데 제주 4.3 때도 이 비슷한 일이 있을 뻔 했다고요? 아, 뭔가 사연이 많아 보입니다. 하긴, 제주의 그 시간은 사연이 너무 넘쳐 탈이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압군과 빨치산이 일시휴전한 적이 있었어요.그때문에 그 진압군 지휘자가 해고되었지요.새로 온 지휘자는 강경파라서 전투재개...

마노아 2008-12-13 16:52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해고된 진압군 지휘자 분은 그 후 어찌 살고 계신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