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를 움직이는 삼성의 스타 CEO - 반양장
홍하상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05년 6월
평점 :
삼성그룹의 철벽 수비수 이학수(1946. 06. 25출생) 구조조정본부 부회장
삼성전자의 2인자 이고 삼성의 어머니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로 이건희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다.
이학수 부회장의 성공의 가두는 능동적인 자세이다.
경리과에 근무하면서 공장의 공정을 익혀 국내 모방직업계의 최초의 원가분석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철저한 준비성과 일마무리가 정평이 나있다.
제왕의 의중을 꿰뚫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이건희가 바라보는 방향을 똑 같이 보고 있다는
뜻이다. 제왕의 방향을 미리보고 철저히 준비하였기에 지금의 삼성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삼성의 간판스타, 삼성의 맏형 윤종용(1944. 01. 21출생)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의 인사정책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인재발굴과 육성을 길라잡이 하는 사람이다.
삼성전자는 각국의 대학과 산학협력을 체결하는 이유는 현지의 인재들을 다른기업보다 선점하겠다는
의도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포천>은 2004.08.09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지니스 리더 25인중 5걸중
한명으로 꼽혔다. 1위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자후지오, 2위는 소니의 이데이노부유키, 3위는 홍콩 허치슨의 리가성, 4위는 일본 닛산의 칼를로스 곤, 5위가 삼성의 윤종용 부회장 이었다.
이학수 부회장은 철두철미한 준비성이 주 특기라면 윤종용 부회장은 꼼꼼한 메모술이 주특기 이다.
윤종용 부회장의 경영철학은 첫째 과학기술의 중요성 둘째는 디지철 혁명 셋째는 기업이 초인류로 가기 위한길에 역점을 두고 다음과 같은 경영 철학을 강조 하였다.
첫째는 모든것이 급변는 디지털 시대에 경영자는 내일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변화를 주도하고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세쨰는 유능한 경영자는 인재를 키울 줄 알아야 한다. 디지탈 시대에서의 가장 큰 경영자원이 사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현장경영을 중시해야 하며,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해야 한다. 경영판단을 위한 계수나 국제적 감각까지도..
마지막 다섯번째는 지혜와 통찰력, 그리고 선견지명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든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을 배제한다는 것이 아니라 포용과 동반자적 대상으로 삼고 점진적으로 일관성있게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종용 부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이면서 경영자로 신선한 아이디어는 그의 젊은 마인드에서 나온다.
35년 반도체의 산 증인 이윤우(1946. 06. 26출생) 삼성전자 기술총괄 겸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이윤우는 명실공히 국내 반도체의 개척자이고 반도체 기술의 1인자 이다.
일본 샤프에서 반도체 기술을 배웠다. 당시만 하더라도 샤프는 2류급 반도체 회사 였다.
하지만 1983년말에 64KD램을 개발하였다. 이 것은 미국의 마이크론사에서 기술이전을 받은 것이다.
1984년 10월에 256KD램을 독자적으로 개발에 성공했다.
256KD램의 성공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삼성 반도체는 없었을 것이다.
세계최조로 1994년 08월에는 256MD램을 개발에 성공 하였다.
2003년 세계최조로 80나도 2GB DDR D램을 개발하였고 60나노 공정으로 8휴 SO 낸드플래시를 개발하여 세계최고의 반도체 기술을 지닌 기업으로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
이윤우 부회장이 탁월한 엔지니어이지만 삼성을 이끌어갈 최고의 경영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질 위주의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 내 엔지니어 출신 CEO를 대거 등용하였다.
그가 오늘날 삼성전자의 최고 경영자 중 한명이 될수 있었던 것은 리더십, 경영마인드, 인간적인 매력이라는 경영의 3박자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라는 평이다.
삼성생명 글로벌화의 주역 배정충(1945. 03. 31출생) 삼성생명 총괄사장
삼성전자의 CEO들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영업전략을 현시대적 감각에 적합하게 현실화 하여 영업전략을 강화 하였다.
삼성생명에는 3.3.7 운동이라는 것이 있다.
첫번째 3은 보고서의 양을 30% 줄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중요한 문서라도 A4용지 2장을 넘지는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두번째 3은 부하가 상관에게 결재를 받아야 할 때 대면 보고하는 비율이고
세번째 7은 비대면 보고의 비율이다. 결재를 받더라도 3번정도는 대면하고 나머지 7번은 대면하지 않고 보고해도 무방 하다는 것이다.
기업은 문서와 격식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행동할 때 움직이는 것이란 철학이다.
한 업종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갱신해온 인물이어서
자기자신의 관리에 철저한 인물임을 보여 준다.
삼성생명의 글로버화는 1986년 미국뉴욕과 일본동경에 89년에는 영국런던에 95년도에는 중국북경에
주재 사뭇소를 설치 하였고 2004년에 인도시장에 진입하였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한국최대.최고의 보험업계의 최고경영자가 된 그는 인재양성에서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다. 핵심역량을 가진 인재라면 미국, 영국 가릴 것 없이 영입하라는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은 60여명의 해외파 자산운용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다.
관리경영의 대부 배종렬(1943. 02. 18출생) 삼성물산 사장
삼성의 경영스타일은 두개의 진형으로 나뉜다. 공격형과 수비형
대표적인 공격형은 윤종형 부회장과 애니콜의 신화 이기태 사장이 불도저식 공격형 스타일이고
수비형은 이학수 부회장과 배종렬 삼성물산 사장이다.
중간형이 미드필드의 역할을 하는 경영자가 위에서 소개한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이다.
수비형 경영자 이학수와 배종렬은 이건희 회장이 가장 신뢰하는 경영자들이다.
우학수 좌종렬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1994년 이건희 회장은 비서실을 폐지하고
이학수는 삼성화재 부사장으로 배종렬은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외유를 보내 그가 주도하는 신경영
개혁작업의 일환으로 경영일선에 배치해 체질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배종렬 사장의 좌우명은 석수화향 심강무성 (石壽化香 深江無聲)
돌처럼 단단하고 꽃처럼 향기로우나 깊은 강처럼 소리나지 않는다.
즉, 소리없이 변화하였으니 돌처럼 단단해지고 꽃처럼 향기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는 평가기준에서 가장 크게 반영하는 것은 경영실적이다.
성과중심의 평가 시스템을 가동하여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는 윤리경영을 통한 강력한 통제가 지금의 삼성물산이 되었고 외부기업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휴대폰 하나로 세계를 개척하다. 이기태(1948. 10. 06출생) 삼성전자 휴대폰 부문 사장
이기태 사장의 별명은 깜빡이가 없는 불도저다.
한번 설정된 목표는 옆도 뒤도 안보고 앞으로만 밀고 가는 불도저다.
그는 삼성 사장단 중 가장 집념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화술은 투박하고 단도직입적이며 고집스럽다. 앞뒤를 재지 않고 일단 밀어 붙이기식 스타일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고 예와 아니오가 분명하고 아니오라고 할때 그에게 타협이란
없다. 그래서 CEO가운게 가장 사표를 많이 제출한 사람이란다.
삼성 사장단중 가장 창의적이며 동시에 가장 파워풀한 리더로 평가 받고 있다
소리없이 강하다 송용로(1945. 04. 23출생) 삼성코닝 사장
브라운관하면 떠오른 회사, 30년전 미국의 코닝사와 삼성이 50:50지분을 출자하여 설립된 회사이다.
송용로 사장은 눈에 뛰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내성적이며 보수적이고 매사에 이성적이며 냉철하다. 한마디로 쇼맨십이 없다.
그의 경영성격은 관리경영으로 안정경영을 추구 한다. 삼발이 경영을 주창한 바 있다.
삼성전관이 브라운관에 치우친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영상디스플레이 사업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인재상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는 부하직원이라 한다. 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업무를 신대륙처럼 개척해 나가는 사원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는 특별한 별명도 좌우명도 없이 최고 경영자 까지 올랐다.
과연 이면에 무엇이 존재할 까 궁금하다. 과연 안정경영의 결과일까?
안정경영과 나는 할 수있다는 의지가 이번에는 빛을 발할지 지켜볼 일이다.
삼성그룹 최장수 CEO 허태학 (1944. 04. 17출생) 삼성석유화학 사장
창의성, 자발적인 태도와 글로벌화된 마인드, 그리고 탁월한 리더십과 능력, 인간적인 됨됨이까지
고루 갖추고 삼성에서 가장 오랫동안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CEO들이 가장 닮고 싶은 CEO중 한사람이다.
신라호텔, 삼성에버랜드 사장을 지내면서 서비스정신이 가장 투철한 사람이다.
그는 한학자이신 할아버지의 유교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동양적인 멋스러움이 들어 있는 것이 그의 강점으로 꼽는다.
그의 도전정신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혁신경영에서 나타났다.
그의 혁신 경영의 3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
경영자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아랫사람 탓만하여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우수인력을 확보하고 전면에 배치 하는 것
셋째 적극적인 지원 체제를 갖추는 것
예기치 못한 비상시에도 어떻게든 인적, 물적, 자본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체제를 들었다.
그의 장점으로 부각된 서비스 경영은 일방이 아닌 쌍방일 때 원할하게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공장을 호텔로 바꾸는 석유화학맨이 요즘 그의 닉네임이다.
제조업에 서비스 정신을 새롭게 접목시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그만의 독특한 경영이 담겨있다.
영원한 반도체 유목민 황창규(1953. 01. 23 부산출생) 삼성전자 사장
D램과 S램으로 대변되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 에서는 오랫동안 세계1위를 지켜왔고 이제는 부동의
위치를 굳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된 사업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이다.
반도체 분야의 개척자 이자 산증인은 이윤우 부회장과 국보급 박사로 반도체 교과서에 까지 나온 진대제 전사장 마지막 또 한명은 반도체의 유목민이란 닉네임을 가진 황창규 사장이다.
256KD램을 개발한 이윤우, 16MD램를 개발한 진대제, 256MD램을 가져온 황창규가 삼성반도체의
계보을 잇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견언은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만이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이다. 난 이 말을 징기스칸이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옛 돌궐제국의 장수였던 톤유쿠크의 비문에 있는 글이라 한다.
이것은 반도체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의미하고 목표를 향한 그의 집념이기도 하다,
그는 미술과 음악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아마도 구한말 화원화가로 활동했던 황매선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무어의 법칙이라고 하는 메모리 집적도가 1년 6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깨뜨리고
황의 법칙이라고 하는 메모리 집적도는 1년에 2배식 증가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을 증명하게 위해 99년도부터 황의 법칙을 실현해 왔다.
유목민의 삶은 끊임없이 좀더 나은 것을 찾아 떠나는 삶이며, 도전하는 삶이다.
든든한 지원사격 대장 최도석 (1949.05.03 서울 출생) 삼성전자 경영지원 총괄 사장
삼성의 경영자중 위상은 높은데 잘 드러나지 않는 CEO가 최도석사장과 삼성코닝 사장 송용로가 있다.
이들은 멀티프레이어 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색깔을 고집할 수 없다. 멀티프레이어는 개인적인 특색은 없어 보이지만 팀차원 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들 이다.
세밀하게 드러다 보면 최도석사장은 멀티플에이어는 아니다. 직접 경영일선에 서지 않고 지원사격을
해주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용맹한 병사라도 총알이 빗발치는 곳을 뚫기란 어렵다. 후방에서 지원 사격이 있어야만 주춤한 틈을 타서 그 곳을 뚫을 수 있는 것이다.
GBM (GOLOBAL BUSINESS MANAGEMENT) 글로벌화된 기업시스템 구축이다.
삼성전자는 모든 사업부를 16개의 GBM으로 나누고 무한책임제를 윤종용부회장이 선포할 당시 그옆에는 항상 최도식 사장이 있었다.
그이 경영혁신의 특징은 크게 네가지로 나눠진다.
첫째 일시적인 혁신 활동에 자양하고 지속적이고 단계적인 혁신 활동을 전개한다.
둘재 혁신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사업부 간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혁신을 가속화 시키는 것이다
넷째 경영혁신과 관련한 물적, 인적, 그리고 금전적 인프라를 다른 어떠한 사업 사안보다 우선시 하고 전면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다.
삼성의 CEO들 대부분은 제일모직 재무분야 출신들이 많다. 심지어는 삼성 사관학교라고 부른다.
2003년 홍콩의 금융 전문지 <파인낸스아시아>지에서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최우수 CFO로 뽑혔다.
2001년 당시 그가 사장으로 승진 했을 때 5마리의 용의 등극이라 했다.
반도체 황창규, 시스템LCI의 임형규, LCD의 이상완, 정보통신의 이기태 그리고 최도식 사장이다.
이들 가운데 4명은 CTO출신이고 최도식 사장만 CFO출신이다.
그는 현재 윤종용 부회장과 보조를 맞춰 정보공개, 재무의 투명화, 주주에 대한 고배당등 초우량 기업으로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흔들면 기획이 쏟아진다. 김순택 (1949. 07. 17 경남 출생) 삼성SDI 사장
평균주가 상승률 44% 이는 김순택 사장이 200년 삼성SDI에 취임한 이후 달성한 기록이다.
이는 비서실에서 기획에 관한 최고의 코스를 밟아온 사람중 한사람이다.
기획이란 회사의 정찰병이며 나침반이기도 하다.
새로운 사업의 영역을 구상해 내고 그것이 방향을 결정하며 결과를 예상하고 더 나아가 그것의 시스템을 갖출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김순택 사장은 치밀하고 신중하며 덕장이라고 불릴 만큼 감성 경영의 선두주자이지만 한번 확신한 일은 물러서지 않는 뚝심이 있어기에 4년 연속 최대의 경영실적을 올렸던 것이다.
그는 밀착경영과 감동경영으로 회사를 이끌어 간다.
그의 감동 경영이 단순히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듯하는 경영이 아니라 엄밀한 도전정신과 현장정신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김순택 사장의 젊었을때 별명이 검객이었다. 이는 감사실 시절 날카롭고 공격적이고 차가운 사람으로 평가 받았기 때문에 삼성 SDI사장으로 취임 했을 때 직원들의 걱정이 앞선 이유였을 것이다.
김순택 사장은 검객의 자리와 장수의 자리를 알고 있다.
검객은 전장의 맨 앞에서 눈앞에 보이는 적군을 베면 그만이지만 장수는 전장의 맨 뒷자리에서 전장 전체를 꿰뚫어 보며 수많은 검객을 조율해야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뚝심의 제왕 이상완(1950. 03. 22 서울출생) 삼성전자 LCD 담당 사장
애니콜 하면 이기태, 보험하면 배정충, 반도체하면 황창규, 이윤우 이렇듯 LCD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이상환 사장이다. 이 들의 공통점은 한 분야에서 오래동안 잔뼈가 꿁었다는 점이다.
이 사람의 별명도 불도저다. 삼성에는 불도저가 두대가 있는 셈이다.
삼성SDI사장 김순택을 덕장이라고 한다면 이상완 사장은 용장이라고 한다.
뚝심 추진형 으로 경쟁관계를 즐기는 사람이다.
향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SDI와의 주도권을 누가 잡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작은 경영의 성공 원대연(1946. 08.19 경남의령 출생) 삼성아트앤드디자인 인스티튜드 학장
제일모직은 제일제당과 함께 삼성의 모태가 되는 회사이다.
원대연 사장의 별명은 독일 병정이다.
경영 스타일은 치밀하고 추진력이 강해서 붙여진 별명일 것이다.
삼성전자의 화형식이 두번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이기태 사장이 이끄는 휴대폰이고 또 한번은 원대연 사장이 이끄는 제일모직에서 이다고 한다.
아마도 사원들의 매너리즘에 대해 경각심을주고 땡처리시 브랜드 가치의 추락을 미연에 막고자 하는 의도 였을 것이다.
SS패션을 제일모직과 통합하고 슬림화하여 작고 좋은 회사를 강조했다. 작고 좋은 회사의 뜻은
질적으로는 좋고 양적으로는 작게 즉 차별화 전략을 모색한 것이다.
골프웨어 아트라스, 로가디스, 겔럭시, 라피도등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 하여 옷의 개념을 진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삼성이 기른 초특급 엔지니어 임형규 (1953. 02. 04 경남거제 출생)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삼성 반도체 혁신 CEO 4명중 한사람이다. 이는 이윤우, 진대제, 임형규, 황창규 이다.
모두들 메모리 분야의 CEO인데 유독 임형규 사장만 비메모리 분야의 사장이다.
그 이유는 CEO이기 이전에 그는 전형적인 엔지니어라고 이건희 회장이 평가하여 맡겼기 때문이다.
메모리 분야의 탄탄한 실려과 기술 개발에 관한 사항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메모리 분야에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비메모리 분야의 제품군은 LDI(LCD DROVE IC), MCU(MICRO CONTROL UNIT), 스마트 카드, 통신용 RF칩(RADIO FREQUANCY)이고 2002년에는 18억 달러의 매출을 이끌어 냈으며 순이익도 5천억원 이상 이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창출해 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높이 사고 있다.
그는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대단히 인화적인고 합리적인 경영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세계시장에서 취약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우수인재 발굴하는데 개발 자금을 집중 투자하고 있으며
비메모리 분야를 선진화 하는데 대장정을 계속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