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영어에 대한 김영철 씨의 에피소드 영상입니다. 보고 한참을 웃었는데요,,

영국식 영어는 미국식과 발음이 무척 다른 것 같아요.

'Qbook for English teachers'의 저자 매튜도 영국 사람입니다. 영국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를 딴 정통 영국 발음을 소유한 영어선생님이지요.

제대로 된 영국식 영어를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매튜가 매주 올리는 유투브 영상을 보시면 됩니다.


Qbook 활용을 돕기위한 영상을 매주 2개 이상 올리고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그럼 매튜의 제대로 된 영국식 발음을 들을 수 있는 짤막한 영상 하나 보실까요?^^

 

 



 

 

 

 

영어를 배우고 있는 분들을 위한 Qbook 소개 - G9 Languages 대표 선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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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위기 속에서 잡스와 이순신 장군이 발휘한 창의적인 리더십에는 공통점이 많다. 조직을 위기에서 구해낸 그들의 창의적 리더십을 정리해 보기로 하자.

 

첫째, 창의적인 제품을 고안해냈다. 위기를 혁파하기 위해 그들의 창의적인 사고는 곧 제품으로 연결되었다. 애플은 컴퓨터 업계에서 IBM에 의해 2등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현실에 안주하여 더 이상 치고 올라갈 수 없었다. 애플의 한계는 거기까지인 것처럼 보였다. 애플로 복귀한 잡스는 애플의 한계를 꿰뚫어보았고, 컴퓨터 업계에 안주해서는 발전도 없을 것을 알았다. 애플은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했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주종목이었던 컴퓨터를 배제하고 완전히 다른 분야로 진출할 수는 없었다. 막대한 자본을 들여 신규 분야로 진출한들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잡스는 컴퓨터를 활용해 다른 분야로까지 진출할 수 있는 제품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아이팟, 아이폰과 같은 창조적인 제품을 탄생시켰다. 애플의 제품들은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면서도 마치 예전부터 소비자가 필요로 했던 제품인 것처럼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이순신은 거북선이라는 창의적인 전함을 개발했다. 일본 수군에 비해 월등히 열세였던 조선 수군을 이끌고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함, 군사, 무기 등 모든 것이 일당백을 해야 했다. 그래서 판옥선이라는 기존 전함의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킨 거북선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거북선은 그의 염원대로 일본 수군의 함선 수십 척을 물리칠 수 있는 가공의 화력을 선보였다. 또한 전술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기존의 것과는 달라야 했다. 한산도대첩에서 사용한 학익진 전법은 원래 육지전에서 쓰던 전법이었지만 해전에 응용함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

 

 

둘째,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등용했다. 잡스는 인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은 그걸 잘하는 사람에게 시키면 돼. 나는 그 사람들을 관리하면 되는 거야.' 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잡스는 필요한 인재는 반드시 스카우트하고야 말았다. '평생 설탕물을 팔면서 인생을 보내시겠습니까?' 라는 말로 펩시의 마케팅 전문가였던 존 스컬리를 스카우트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밖에도 그는 제품의 완성도를 위해 뛰어난 디자이너들을 스카우트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기용하는 데 들이는 돈은 훗날 막대한 판매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았던 것이다.

이순신 역시 그의 수하에는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장수들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손발이 되어 움직여주었던 장수들이 있었기에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쟁에 임할 수 있었다.

 

셋째, 성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애플로 복귀한 잡스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너무 앞서 나가고 독불장군 같았던 잡스는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안목을 키워나가면서 그의 감각은 다듬어져갔다. 그리하여 그가 조지 루카스로부터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했을 때 그는 거기서 영화 산업의 미래를 예견했다. 다듬어진 그의 감각은 여지없이 실력을 발휘했고, 픽사는 3D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리하여 애플로 복귀했을 때 잡스는 준비된 CEO였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빛을 발하지 못했다. 훌륭한 장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못하고 올곧은 성격 탓으로 윗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군인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변방의 한직에 있을 때도 그는 전술을 익히고 무예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침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준비가 되어 있었던 이순신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 역사 속 9인의 리더에게 배우는 평생 경쟁력, 서른살 리더십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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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좋아하던 재즈곡인데 유튜브에 이소라씨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부른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있더군요!

 

 



 

 

My one and only love

 

The very thought of you makes
My heart sing,
Like an April breeze
On the wings of spring.

And you appear in all your splendor,
My one and only love.

The shadow's fall ans spread their
Mystique charms in the hush of night,
While you're in my arms.

I feel your lips, so warm and tender,
My one and only love.

The touch of your hand is like heaven.
A heaven that I've never known.
The blush on your cheek,
Whenever I speak,
Tells me that you are my own.

You fill my eager heart with
Such desire,
Every kiss you give
Sets my soul on fire.

I give myself in sweet surrender,
My one and only love.

The touch of your hand is like heaven.
A heaven that I've never known.
The blush on your cheek,
Whenever I speak,
Tells me that you are my own.

You fill my eager heart with
Such desire.
Every kiss you give
Sets my soul on fire.
I give myself in sweet surrender,

My one and only love....♥
 
 
제가 이 곡에 더 애착을 갖게된것은 바로 가사때문인데요
 
I give myself in sweet surrender 라는 한 구절..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하면서요^^;
 
얼마전 영어를 가르치는, 배우는 사람에게 유용한 질문들을 모아놓은 책 'Qbook for English teachers'을 보다가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당신이 영어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
 
게중에 하나가 이런것이 아닐까 싶네요~ 저는 영어를 그리 잘하진 못하지만, 우리와 또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다른 생각과 다른 표현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정말 재밌는데.^^; 공부 열심히 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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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다만 너무 무의식적이라 정작 본인은 모를 수도 있다. 때문에 자신을 잘 알려면, 내가 쓰고 있는 인격의 가면 역시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기도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서, 타인을 향해 가면을 썼다고 비난한다. 반대로 상대가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드러내면 이번에는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이중인격자처럼 겉과 속이 다르다고 비평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 등의 영화를 보면 이중인격자나 다중인격자와 관련된 극단적인 설정들이 등장한다. 이런 영화들이 많아져서인지 ‘인격적 가면’이라고 하면 대다수는 부정적인 측면만 떠올린다. 그러나 융은 적절한 인격적 가면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과연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일까?

 



인격적 가면을 의미하는 단어인 페르소나(Persona)는 ‘극중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 배우가 썼던 가면’을 의미한다. 인물(Person)이나 인격(Personality) 같은 단어도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융 심리학의 페르소나도 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가 내 것이 아닌 다른 성격을 연기할 수 있는 것도 이 페르소나 덕분이다. 즉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가면 또는 겉모습’으로서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좋은 인상을 주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즉 사회생활에서 적절하게 이 사회적 가면(역할, 틀, 이미지 등)을 쓰지 못하면 부득이하게 미움을 받거나, 진급에서 제외되거나, 실직할 수도 있다. 즉 페르소나는 우리에게 보다 만족스러운 물질적인 보상과 자연스러운 사회생활을 선사한다.

 

 

 







 

하루 여덟 시간 동안 회사의 가면을 쓰고 있던 회사원은 직장에서 나오는 순간 그 가면을 벗어버리고 좀 더 충실한 개인으로 돌아간다. 실제로 저명한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는 낮에는 회사에서 열성적으로 일하고, 밤에는 저술과 문화 활동에 주력했다. 친구들에게는 직장이 싫다고 자주 말했음에도, 그의 상사들은 카프카의 빈틈없는 일 처리만 보았을 뿐 그의 심중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유익한 만큼 유해할 수도 있다. 만일 한 역할에 너무 빠져들 경우 인격의 다른 측면이 자아에서 밀려나게 된다.



언젠가 영화 「주홍글씨」의 여배우 이은주 씨가 자살을 택해 팬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은주 씨가 극중 인물에 지나치게 몰입하다가 우울증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이것을 죽음의 결정적 원인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여러 복잡한 원인 중에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크다. 이처럼 지나치게 팽창한 페르소나는 현실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

융은 팽창한 페르소나에 대해 “이는 정신건강을 위해서 무의식적 위선자가 되기보다는 의식적 위선자가 되는 편이 나으며, 자신을 기만하기보다는 타인을 기만하는 편이 낫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어떤 종류의 기만이나 위선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좋든 싫든 페르소나는 인간 존재에 대한 하나의 사실이자 어떤 형태로든 표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적절한 형태로 내면의 인격을 분출시키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스럽거나 미운 딸이거나 아들이다. 또한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어머니이기도 하다. 더불어 누군가의 직장 상사나 부하다. 누군가의 미더운 친구이자 미덥지 못한 동료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가며, 대다수 사람들은 내게서 이 일부만을 볼 뿐이다. 사회 속에서도 팀장이라든지, 관리자라든지, 사장이라든지 하는 다양한 사회적 가면을 쓴다. 때로 ‘따뜻한, 미운, 존경받는, 싫은, 아름다운, 얌체 같은, 이기적인, 권위주의적인, 나약한, 여성적인, 남성적인’ 등의 인격적 탈도 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모습에만 지나치게 몰입하면, 본래의 모습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즉 팽창된 페르소나가 몰고 오는 심각한 혼란, 정체성의 상실을 막으려면 타고난 내 본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 이제 자신에게 되물어보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인격적 가면은 무엇일까? 잘못된 가면은 무엇인가? 내가 써야 할 올바른 사회적 가면은 무엇일까?”

 

-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중에서 -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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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이야기 세번째 시간,

 

오늘의 주인공은 저희 라이온북스에서 출간한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의 저자이자 최초로 3극점(남극,북극,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현존하는 최고의 탐험가 중 하나인 엘링 카게(Erling Kagge)입니다.

 

모험을 계획하고 탐험을 하면서도 틈틈히 준비하여 탐험가 외에도 변호사, 출판사 CEO, 미술품 수집가, 그리고 세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춥고 고단한 극지탐험만큼이나 힘든 인생탐험을 한다며 계속해서 도전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배울 것이 참 많다고 느끼게 되는군요^^.

 

 

"엘링 카게는 위험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가 있다."  -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엘링 카게 같은 현대 탐험가들은 모험의 한계를 밀어내고 있다."  -  <타임(Time)> 커버스토리"

 

 

 



 

 

엘링카게(Erling Kagge(1963 1. 15~))

 

노르웨이의 탐험가, 변호사, 미술품 수집가, 출판 사업가.

 

엘링 카게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극지방 탐험가이며 현존하는 최고의 모험가 중 한명이다. 인류 최초로 “Three Pole Challenge"라 일컫는 북극점, 남극점,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모두 정복하였으며, 또한 외부의 도움없이 홀로 걸어서 남극점을 정복한 최초의 탐험가이다.

 

1990년, 3월 8일 엘링 카게(Erling Kagge)는 뵈르게 올랜드(Børge Ousland)와 함께 엘스미어 섬(Ellesmere Island)에서 출발하여 58일 후인 5월 4일, 외부 도움 없이 북극점을 정복한 탐험가가 된다. 그들은 800km에 달하는 거리를 스키를 이용해 보급품과 썰매를 끌며 탐험했다.

 

2년이 더 지난 후, 카게는 홀로 남극점을 정복한 최초의 탐험가가 된다. 그가 52일동안 814mile(1310km)의 거리를 탐험하는 동안, 그동안 어떠한 외부와의 무전연락도 하지 않았으며, 그의 이야기는 1993년 3월 1일 TIME지 인터내셔널판에 실리게 된다.

 

그리고 1994년, 카게는 에베레스트산 정상마저 정복하여 마침내 “Three Poles Challenge"에 성공한 최초의 탐험가가 되었다.

 

3극점 정복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뒤, 카게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뒤 1996년, 오슬로에 “Kagge Forlag"라는 출판사를 설립한다. 2000년에 그가 세운 출판사는 빠르게 성장하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하나(J.M. Stenersens Forlag)가 된다. 카게 자신이 쓴 다섯권의 책은 10만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엘링 카게는 출판사업과 동시에, 세계적인 미술작품들을 수집하였으며, Astrup Fearnley Museum for Modern Art.(현대예술을 위한 박물관)에 작품들을 기증하고 있다. 탐험과 모험은 그의 고유한 본질이 되었으며, 90년대에 비해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는 여전히 대단한 도전들을 하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원문)

Erling Kagge (born January 15, 1963) is a Norwegian explorer/adventurer, lawyer, art collector and publisher.

 

Kagge is among Norway's most acclaimed polar explorers and one of the greatest adventurers of our time. He is the first person to accomplish the "three pole challenge" of reaching the North Pole, the South Pole and the summit of Mount Everest. Kagge was also the first to walk to the South Pole alone.

 

In 1990, Erling Kagge and Børge Ousland became the first men ever to reach the North Pole unsupported. The expedition started from Ellesmere Island on March 8, 1990 and reached the North Pole 58 days later on May 4, 1990. They traveled approximately 800 kilometers on skies pulling their supplies on a sledge.[citation needed]

 

Less than three years later, in 1992-93, Kagge completed the first unsupported expedition to the South Pole, covering the 814-mile (1310 km) route in 52 days.[1] Kagge had no radio contact to the outside world for the duration of his expedition. His was featured on the international edition of TIME magazine on March 1, 1993.[2]

 

In 1994, Kagge summited Mount Everest, thus becoming the first person to complete the "Three Poles Challenge".[3]

 

After his record-breaking feat of reaching the "three poles", Kagge attended Cambridge University to read philosophy for three terms. In 1996, he founded Oslo-based publishing house, Kagge Forlag, which quickly grew to become one of Norway’s most profitable publishing companies. In 2000 Kagge Forlag acquired one of Norway’s oldest publishing companies, J.M. Stenersens Forlag. Kagge himself has written five books which have sold more than 100,000 copies.[citation needed]

 

In addition to running his publishing business, Kagge collects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and Russian icons. He serves on the board of the Astrup Fearnley Museum for Modern Art. Adventure and exploration remain intrinsic to his nature, Kagge continues to do major expeditions, although with a lower profile than in the nineties.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그의 저서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에 수록된 그의 탐험에 관련된 글과 사진중에 일부분을 올립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자신과 대면하는 것이 전부다. 나는 고독을 정복하기 위해 갖가지 도전에 몸을 맡기고 그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그 명상과도 같은 시간에 점차 중독되어갔다. 무언가에 오랫동안 천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나는 그 시간에 과감히 나 자신을 맡겼다는 사실이 기쁘다. 어렸을 때 나는 혼자 남겨지거나 누구도 나와 함께 있으려 하지 않을 때에만 혼자였다. 그건 나의 선택이 아니었고, 그래서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이제 그것은 일종의 사치가 되었다.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고 나자 이제 나는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 더 쉬워졌음을 깨닫는다.

 

 

 

















 

총으로 북극곰을 쏘아야 하는 건 곤란하기 이를 데 없는 문제지만 그것은 누가 누구의 저녁거리가 되느냐의 문제이므로 본능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겁먹고 있을 시간도 없다. 뵈르게는 번개처럼 재빠르게 카메라 필름을 갈아 넣은 뒤 나를 설득해 자신과 곰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게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자마자 곰은 공격할 준비를 끝내고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곰의 최대 속도는 시속 60킬로미터. 우리는 곰을 헛갈리게 만들기 위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린 후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때 동시에 총을 발사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총에 맞은 부위가 가슴이라는 것을 꼼꼼히 기록했다. 자기 방어를 위해 곰에게 총을 쏘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주로 곰의 엉덩이를 맞추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체 어떻게 내려가지?"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다. 나는 늘 고소공포증을 달고 살았지만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절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음으로써 공포를 덜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새로 안전하게 발을 디딜 곳을 찾지 못하면 절대 발을 떼어 놓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방법은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하고, 약점을 인정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중략>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과소평가 하는 이들이었다. 내가 관찰하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위대함을 두려워 해 자신의 모습을 실제보다 더 작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이 두려움은 간혹 밖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저 배후에 도사리고 앉아 모든 것에 재를 뿌린다. 작은 목소리가 되어 '지금이 포기해야 할 때'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더 이상 나아갈 생각따위는 하지 말고 그만 만족하라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렇게 우리는 평범한 것을 위해 비범한 것을 거부한 채, 스스로 발전하고 자신의 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들을 경험하고 여러가지 일에 참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쉽게 잊어버린다.

 

[출처 :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엘링 카게 지음, 강성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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