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다가 일민미술관 외벽에 걸린 플레카드를 보면서 챙겨 봐야 할 전시로 찍어두었던 건축전시 <감응: 정기용 건축>(2010. 11. 12 ~ 2011. 1. 30)을 끝내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씨네 큐브 광화문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보면서 정기용에 대해 다시 더듬어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가 정기용은 1996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동안 전북 무주군에서 면사무소, 공설운동장, 납골당, 버스정류장 등 30여 개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영화 제작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는 현대 한국 건축계에서 한 명의 건축가가 하나의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공건축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랜 시간을 들인 우리 건축계의 사건이었다.”

   

정기용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건축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내가 그의 책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열화당에서 나온 하싼 화티의 <이집트 구르나마을 이야기> 번역서이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났다. 가까이에서 뵌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고인이 된 작가를 회고하는 나의 방식으로 그를 읽는다.

인문과 자연의 향기를 담아내는 건축이 부재한 시대이다. 국토를 도륙내고, 흐름을 제 맘대로 바꾸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토목공사를 무슨 거창한 업적처럼 도배질하는, 그 권력자의 무지와 오만과 천박함에 역겨운 심사를 주체할 수 없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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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지누는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호미, 2006)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본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하는 것보다 지니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진득하게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었으며, 나에게서 뚝 떨어져 나를 물끄러미 볼 수 있는 거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폐사지만한 곳이 없었다. 스쳐가는 사람들도 드물며 미술사의 눈으로 볼 것 또한 그리 많지 않은 그곳이 나에게는 곧 독락(獨樂)의 선방(禪房)이었으며 무문관(無門關)이었던 것이다.”

     

그는 폐사지, 그 독락의 선방에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진득하니 기다려야만 열어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휑하니 다녀가서는 결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아름다움이다. 빛이 적어서 한없이 기다리노라면 셔터를 누를 수 있을 만큼의 빛을 열어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컷 사진도 가져가지 못할 때도 있다.

기다림은 결코 사진을 찍기 위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머리말대로라면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과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이제 폐사지 답사기 2권을 더하였다. 전남 편인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알마)에 이어, 전북 편인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알마)가 그것이다. 이 책들 역시 행간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다. 땅과 바람 속에 묻어둔 독락의 흔적을 더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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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은 상품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웰빙음식을 사먹고 웰빙상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웰빙을 실천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 같은 착각이며, ‘자연’에서 떨어져 나온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문명의 처방전을 쓰는 식이다.”

- 정승희,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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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나는 학생이다』(임국웅 옮김, 들녘, 2004)를 읽다.
인상 깊은 구절 두 군데를 옮겨본다.


“없다라는 뜻은 아주 간단하다. 속일 마음과 꾀를 부릴 마음이 없으며 이름을 얻고 실리를 추구하려는 마음을 줄이거나 제거하면 된다. 당신이 이 ‘네 가지 마음’을 버리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면, 미안하게도 이때는 정말 나도 별다른 방도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이 ‘네 가지 마음’을 제거하고 비운 다음에도 성실하고 진정한 견실과 재능과 사려가 남았다면 당신은 진실한 모습으로 진실한 사람이 되면 된다.” (263p)

“열정과 함께 동반하는 것은 지극히 유치한 성급함으로 하루아침에 일을 성사시키려는 조급함이다. 그러한 열정과 연소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당신은 내일 아침, 늦어도 다음주에는 일이 성사되어 단번에 히트치기를 바라고, 즉시 호동환우 하기를 바란다. 빨리 성공하려는 심리의 반대편에는 급격히 기가 떨어지고 맥이 풀어질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 빨리 성공하려했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다면 기가 약해지고 맥이 풀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일이든 급히 성공하려는 것은 유치한 환상이다. 급히 성공하려고 하면 오히려 성공하지 못한다.”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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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in>이 창간된 지 몇 주 지나 뒤늦게 정기구독을 신청하며 관리담당자에게 잘 보인 덕에 어렵게 창간호부터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메모와 낙서가 된 것일망정 받아들고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귀도서 수집이 취미는 아니지만, 창간호부터 채워놓고 싶은 정기간행물이 있다. <시사in>이 그런 잡지이다. 그런데 그렇게 창간호부터 잘 챙겨 놓고도 간수를 잘 못하는 편이다. 한겨레신문도 창간호부터 100호까지 알뜰히 챙겼더랬는데, 결혼을 하고,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종적을 감춰버리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시사저널> 정기구독을 중단하고, 몇 개월 있다가 정기구독을 신청한 <시사in>에 ‘영화만담가’로 영화평을 쓰고 있는 김세윤 씨의 글을 읽고서 그가 쓴 책을 구해 읽어봐야겠다 하고 인터넷 서점을 뒤져 알아낸 것이 『헐크의 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Media2.0)이다. 책을 받아들고 몇 꼭지를 읽으면서 “캬, 이런 말발로도 글발이 되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한정된 분량에서 해야 될 말을 절묘하게 다하고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분량이 한정된 글을 쓸 때는 전략이 필요한다. 황순원 선생처럼 단편소설 한 편을 쓸 때 장면과 묘사마다 원고지 매수를 모두 계산해 놓고 소설을 시작하여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을 때 정확하게 처음 예정한 원고지 매수가 똑 떨어지게 하는 신기는 아닐지라도 한정된 지면 속에서 자유자재하게 할 말을 구사한다는 것,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까지 받기도 한다.

지금은 소설가이자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인, 소설가가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그러나 소설집보다 산문집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한겨레출판)를 먼저 출간한 조선희 씨는 <씨네21>의 편집장으로 있을 때 “편집장이 독자에게”라는 200자 원고지 7.5매의 꼭지글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월간지 편집 책임자로, 매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편집장 레터를 읽기 위해 정기구독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라지 않은가. 그의 그 글을 찾아 읽기 위해 나도 <씨네21>을 부지런히 주물럭거렸던 것이 사실이고 보면 일단 그 말들이 맞다는 심증은 간다. 하긴 모 도서평론가가 모 잡지에서 책 소개를 하면서 다른 수많은 단행본을 젖혀두고, 그 주에 나온 <씨네21> 서평을 떡 하니 쓰면서 “편집장이 독자에게”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것을 읽기도 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필자 조선희의 글쓰기의 괴로움이 바로 열혈 독자들을 생성시킨 모태가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한정된 지면에 글을 쓰면서 빛나는 성취를 이룬 사람으로 정운영 선생도 들 수 있겠다. 수많은 독자들을 이끌고 다녔으니 그의 글에 대한 나의 찬사야 사족만 될 뿐이고, “그의 글을 읽다보면 명치가 아려온다”는 한 마디만 더하고 싶다. 철저하게 말을 아끼는 것도, 그렇다고 아픈 곳만 골라서 찔러대는 필창(筆戈)도 아닌데,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 같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가지고 가는 듯이 싶어진다. 왜 통증이 오는 것일까. 그의 글이 겨눈 창이 결국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오랜 뒤에 혼자 생각했더랬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서 김세윤 씨의 글은 문(文)과 언(言)의 구분 없이 넘나드는, 그러면서도 화해롭고 발랄하다. 블로그시대의 글쓰기의 한 연결선상에 놓일 법도 하지만, 하는 말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헐크의 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는 독자들의 집요한 궁금증과 필름2.0의 기획과 인내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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