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in>이 창간된 지 몇 주 지나 뒤늦게 정기구독을 신청하며 관리담당자에게 잘 보인 덕에 어렵게 창간호부터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메모와 낙서가 된 것일망정 받아들고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귀도서 수집이 취미는 아니지만, 창간호부터 채워놓고 싶은 정기간행물이 있다. <시사in>이 그런 잡지이다. 그런데 그렇게 창간호부터 잘 챙겨 놓고도 간수를 잘 못하는 편이다. 한겨레신문도 창간호부터 100호까지 알뜰히 챙겼더랬는데, 결혼을 하고,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종적을 감춰버리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시사저널> 정기구독을 중단하고, 몇 개월 있다가 정기구독을 신청한 <시사in>에 ‘영화만담가’로 영화평을 쓰고 있는 김세윤 씨의 글을 읽고서 그가 쓴 책을 구해 읽어봐야겠다 하고 인터넷 서점을 뒤져 알아낸 것이 『헐크의 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Media2.0)이다. 책을 받아들고 몇 꼭지를 읽으면서 “캬, 이런 말발로도 글발이 되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한정된 분량에서 해야 될 말을 절묘하게 다하고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분량이 한정된 글을 쓸 때는 전략이 필요한다. 황순원 선생처럼 단편소설 한 편을 쓸 때 장면과 묘사마다 원고지 매수를 모두 계산해 놓고 소설을 시작하여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을 때 정확하게 처음 예정한 원고지 매수가 똑 떨어지게 하는 신기는 아닐지라도 한정된 지면 속에서 자유자재하게 할 말을 구사한다는 것,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까지 받기도 한다.

지금은 소설가이자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인, 소설가가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그러나 소설집보다 산문집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한겨레출판)를 먼저 출간한 조선희 씨는 <씨네21>의 편집장으로 있을 때 “편집장이 독자에게”라는 200자 원고지 7.5매의 꼭지글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월간지 편집 책임자로, 매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편집장 레터를 읽기 위해 정기구독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라지 않은가. 그의 그 글을 찾아 읽기 위해 나도 <씨네21>을 부지런히 주물럭거렸던 것이 사실이고 보면 일단 그 말들이 맞다는 심증은 간다. 하긴 모 도서평론가가 모 잡지에서 책 소개를 하면서 다른 수많은 단행본을 젖혀두고, 그 주에 나온 <씨네21> 서평을 떡 하니 쓰면서 “편집장이 독자에게”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것을 읽기도 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필자 조선희의 글쓰기의 괴로움이 바로 열혈 독자들을 생성시킨 모태가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한정된 지면에 글을 쓰면서 빛나는 성취를 이룬 사람으로 정운영 선생도 들 수 있겠다. 수많은 독자들을 이끌고 다녔으니 그의 글에 대한 나의 찬사야 사족만 될 뿐이고, “그의 글을 읽다보면 명치가 아려온다”는 한 마디만 더하고 싶다. 철저하게 말을 아끼는 것도, 그렇다고 아픈 곳만 골라서 찔러대는 필창(筆戈)도 아닌데,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 같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가지고 가는 듯이 싶어진다. 왜 통증이 오는 것일까. 그의 글이 겨눈 창이 결국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오랜 뒤에 혼자 생각했더랬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서 김세윤 씨의 글은 문(文)과 언(言)의 구분 없이 넘나드는, 그러면서도 화해롭고 발랄하다. 블로그시대의 글쓰기의 한 연결선상에 놓일 법도 하지만, 하는 말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헐크의 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는 독자들의 집요한 궁금증과 필름2.0의 기획과 인내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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