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보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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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 도무지 멈출 수 없이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 결국엔 밤을 새워 다 읽고 말았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일 뿐인데 이렇게 박진감 넘칠 줄이야. <뉴 보이>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쓴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다시 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대학생 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묶어놓은 책에서 <오셀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줄거리만 대충 파악했었던 그때는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란 생각에 역시 옛날 이야기는 막장 성향이 강하군, 하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뉴 보이>를 읽으면서 원작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친숙한 시대적, 장소적 배경을 바탕으로 오셀로의 주인공들을 이름만 살짝 변형시켜 등장시켰지만, 훨씬 구체적으로 와닿는 상황묘사와 흥미로운 아이들간의 정치관계 묘사 덕에 훨씬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소설이다. 

<뉴 보이>는 백인들만 다니는 초등학교에 전학오게 된 유일한 흑인 '오'가 하룻동안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전학온 날 아침부터 수업이 끝날때 까지의 짧은 하루동안 아이들간의 복잡한 정치관계는 시시각각 변해간다. 모두가 꺼려하는 검은 피부의 '오'는 이미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뉴욕과 런던같은 다양한 도시의 학교를 경험하면서 자신을 향한 백인들의 불편한 시선을 여러 번 느낀 바 있다. <뉴 보이>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이다. 흑인도 평등하다고 사회적으로 외치곤 있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아직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 '오'에게 유일하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소녀 '디'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아름답고 똑똑한 소녀다. '오'와 '디'는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사귀기로 한다. 순식간에 배척받던 흑인 전학생에서 단숨에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녀의 남자친구가 된 '오'는 누군가의 질투 대상이 된다. 이를 띠껍게 바라보던 소년 '이언'은 질투에 눈이 멀어 이 둘의 관계를 파괴시키기 위해 은밀한 작전을 시작한다. 

「그는 이제 자기 반 줄에 선 오를 찬찬히 살폈고, 이제 이 새로운 지도자를 포함하여 재배치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식물들이 태양을 향하듯이, 그 애가 마치 따라가야 할 빛이라도 되는 양, 학생들이 미묘하게 그 애를 향하는 변화, 이언이 지켜보는 동안, 캐스퍼가 오의 뒤에 서서 그 애에게 말을 걸었다. 오의 공차기 실력에 대해 얘기하는지 캐스퍼는 울타리 너머를 몸짓으로 가리켜 보였고, 두 아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렇게, 흑인 소년은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년의 존경을 얻었고, 가장 인기있는 소녀와 사귀게 될 것이었으며, 이언의 여자친구와 함께 웃었다.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
< 뉴 보이 , p.107>

소설은 학교에서 흔히 있는 아이들간의 은밀한 정치를 테마로 오셀로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초등학생이라곤 하지만 곧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아이들은 2차 성징이 막 시작된, 완전한 아이도 어른도 아닌 존재들이다. 책을 읽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딱 이 시기에 새로운 초등학교에 전학간 경험이 있었다. 졸업이 몇개월 남지 않은 시점에 다른 지방에서 전학 온 나라는 존재는 아이들이 무시하기 딱 좋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전학을 가자마자 첫번째 친 시험에서 전교 2등 정도 되는 성적을 내자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졌던 기억이 난다. 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껌 좀 씹는다는 무서운 아이가 날 데려가서 몇 마디 협박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 그 시절, 학교에서 느꼈던 아이들간의 은밀한 정치가 생각나서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뉴 보이>의 주인공 '오'는 오셀로, '디'는 그의 연인 데스데모나, '이언'은 계략으로 주인공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이아고다. <뉴 보이>의 이언은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몇 마디 말로 '오'가 '디'에게 증오를 품도록 조정한다. 한없이 자애로워 보였던 맑은 눈빛의 '오'는 의외로 '이언'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간다. 아마도 '오'는 '디'가 겉으로는 친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흑인인 자신을 비웃고, 조롱한 것일 거라고 생각하는 자기 비하가 경험적으로 어느 정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오셀로도 원작에서 극 중 무어인, 즉 흑인으로 등장한다. 배척받는 인종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영웅으로 많은 것을 가지게 된 오셀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데스데모나를 가지게 되지만 이를 질투하는 이아고의 계략에 휘말려 그녀를 증오하게 되고 기어이 죽이고야 만다. 

원작의 이야기를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로 살려내기 위해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깨알같이 정교하게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원작의 줄거리를 알고 있더라도 다시 쓴 소설을 읽게 되는 이유는 얼마나 맛깔나게 그 상황을 다시 살려냈느냐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봤을 땐 이야기를 아주 잘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별개의 소설로 봐도 아주 훌륭하다. 셰익스피어의 소설들은 몇 백년 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형을 제공해주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고전이 오래도록 계속 읽히는 이유는 그 이야기들의 메시지가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과 다시 쓴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재미난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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