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단순한 삶의 모습은 이렇다. 
느지막히 푹자고 일어난 아침, 향기 나는 커피 한잔과 함께 빵이나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초록빛 풀들이 자라나는 정원에서 햇빛을 받으며 광합성을 한다. 오후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글을 쓰기도 한다. 노을이 번지는 저녁쯤이 되면 동네 한바퀴를 돌며 산책 겸 장을 봐와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먹는다.  저녁을 먹고는 와인이나 맥주 한잔과 함께 까만 하늘에 뜬 별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든다. 
이 얼마나 꿈같은 시나리오인가. 내가 원하는 단순한 삶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우선 이런 삶을 살려면 한적하고 깨끗한 땅에 정원 딸린 전원주택이 있어야 하고, 매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지만(ㅠ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내 꿈이다. 요즘엔 그냥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해서도 참 많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삶에 매년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고 싶다거나 하는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으면 불가능한 삶이다. 요즘은 참 단순하게 살기도 힘든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삶이라는 키워드에 이끌려 읽게 된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의 스크루지들을 위한 철학의 변명'이었다. 알고 보니 《단순한 삶의 철학》의 원제는 the wisdom of frugality였다. 해석하자면 "절약의 지혜" 쯤 될 것이다. 단순하게 사는 삶이 절약하며 사는 삶과 동의어라니 좀 의외이긴 하다. 내가 생각하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삶의 끝판왕은 아마도 제주도의 소길댁, 이효리가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서였으리라. 원하는 만큼 돈을 벌어놓고, 사랑하는 사람과 예쁜 집에서 살며 마음대로 시간을 누리고 사는 삶.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인생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삶, 그것이 내가 본 단순한 삶의 미학이었다. 제주도 하면 이효리가 생각날 만큼 그녀는 내추럴 라이프로 사람들에게 또다른 로망을 심어줬다. 

책에는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것의 미덕과 그것을 반박하는 주장들이 함께 실려있다. 다만 책에서 말하는 단순하게 사는 삶은 아끼고 근검절약하며 사는 삶을 말한다. 

「19세기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같은 맥락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지나치게 지루하지만 않다면 단순한 인간관계와 단조로운 일상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한다."」
< p. 52>

「소박한 삶을 살게 되면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것들에게서 흥미를 느끼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사소한 현상을 기적과도 같이 느끼며 때로는 작은 것에서 깊은 성찰을 얻게 된다. 에머슨이 말한 대로 "가까이서 보는 세상은 멀리서 볼 때보다 아름답고 놀랍다."」 
< 단순한 삶의 철학 p. 155>

위의 의미에서 볼 때 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반론들을 보면, 

「당신이 신형 아이패드를 가졌다는 사실이 남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같은 상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만일 먼 바다를 돌아 바하마를 거쳐 오늘 미국에 도착했고 곧 <니벨룽겐의 반지>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독일 바이로이트로 떠난다면,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 대화를 유능하게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상대방의 최근 여행이나 여가 활동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차별화시켜주는 방식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휴가나 나들이, 모임, 콘서트, 스포츠행사 등에 쓰이는 돈이 유형의 상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큰 행복감을 가져온다. 우리는 새로운 물건에 쉽게 익숙해지지만 좋은 기억은 쾌락의 원천이 되어 오랫동안 남아있기 때문이다. 」 <p.243> 

사치는 때로 삶의 재미와 활력을 선사한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신형 아이패드를 사고 싶어 눈독들이고 있는 와중이라 책 속 문장을 보고 깜놀했다. 난 유형의 물건을 지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것도 인생에 꼭 필요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왜 시간만 나면 해외여행을 떠나려고 하는지, 이번 휴가때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왔다고 자랑하는지 알 것 같다. 그 여행이 실제로는 얼마나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든 간에 시간이 지나면 두고두고 얘기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위해 여행에 투자하는 것은 분명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다만 남에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과시하는 소비는 지양해야 할테지만 말이다.

현대 사회는 사람들의 소비로 경제가 굴러간다. 앞서 내가 말한 단순한 삶이 돈을 아끼고 마냥 근검절약하는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듯, 적절한 소비와 쾌락은 사회가 유연하게 굴러가도록 만들어주는 기름 역할을 한다. 《단순한 삶의 철학》은 소박하게 근검 절약하는 삶에 대해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과 의견을 조사한 다음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정리한 글이다. 결론적으로는 소박한 삶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지나친 근검절약은 인색함을 불러오고 사회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이어질수도 있다는 말을 전한다. 많은 철학자가 등장하고, 그리 쉽게 쫙쫙 읽히는 글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문장들이 있어 공감되는 부분은 많다.

나는 앞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근검절약 하되, 나머지 부분에서는 비용이 허락하는 한 가끔은 사치도 누려볼 생각이다. 옷이나 가방 사는데 큰 욕심이 없는 만큼 책이나 문구류, 전자기기 처럼 나에게 큰 기쁨을 주는 지름에는 돈을 열심히 쓸 생각이다. 또한 생각의 틀을 넓혀줄 다양한 여행과 무형적인 경험에도 좀 더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하려고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니 만큼 아끼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단순한 삶 속에서 마음껏 작은 사치를 누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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