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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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속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어떤 끔찍한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고, 어떤 이에게 냉담한 취급을 받고 좌절하기도 했다. 꿈에서 깨어나니 기분이 찝찝했다. 왜 하필 이런 꿈은 잠에서 깨어 난 뒤에도 잊혀지지 않는지, 그날은 오후 내내 꿈에서 보았던 모습을 여러 번 리플레이 해서 생각했었다. 요즘들어 시간의 여유 덕인지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좀 많아졌다. 앞만 보고 달렸던 정신없는 20대를 지나, 드디어 내가 원하던 안정된 생활을 찾은 것 같은데 자꾸 이유 모르게 우울해질 때가 있다. 이제야 진짜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생겼나보다. 
어제는 공책을 펴고 지금 내 상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서 생각나는데로 적어봤다. 느끼는데로 적어놓고 보니 신기하게도 뭔가 일관성이 보인다. 좋은점에 적힌 점들은 물리적인 환경에 대한 것이다. 시간과 돈에 쫓기지 않는 여유, 좋은 사람을 만났고, 좋아하는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충분해졌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점에 적힌 글들을 보니 전부 정신적으로 두렵고, 의기소침하고 열등감을 느낀다는 얘기가 한가득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속에는 그렇지 않은 감정들이 쌓여있었던 건가. 

저자 정여울은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를 통해 우선 저자 자신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집안의 장녀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를 만족시켜 드릴 수 없었던 어린 시절, 그로 인해 인생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게 되었단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집안의 맏이로써 어른스럽고 책임감 있는 모습만 보이려 노력하다 보니 진짜 자기 모습을 점점 잃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심리학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점점 자기자신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불사를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치유는 행복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라기 보다 '행복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상태에 가깝다. 그러니까 무너진 결혼 생활을 억지로 재건하기 위해 싫어도 꾹 참고 사는 것이 치유가 아니라, '그 없이도 내가 홀로 설 수 있음'을 깨닫고 과감히 이별을 선택하는 것이 더욱 치유적일 수 있다. '행복한 사람'보다 '주체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분석의 진정한 목적이다. 」
<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p.39>

우리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종종 책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의 숨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모든 독자들은 책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낸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책을 읽으며 위로 받기도 하고, 자신의 상처나 컴플렉스를 똑같이 지닌 인물을 발견하면 불편하고 껄끄럽게 느끼기도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문학을 읽는 이유는 아마 문학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싶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는 여러 챕터에 걸쳐 다양한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버지니아 울프의 『유산』이라는 작품이다. 서로를 완벽히 안다고 믿었던 잉꼬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차도로 내려서다가 사고를 당해서 죽고 만다. 충격과 실의에 빠진 남편은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내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까지 완벽하게 챙기고 떠난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는데, 남편앞으로 아내가 남긴 일기장을 보면서 그동안 그녀가 숨겨왔던 모든 비밀을 알게되는 이야기다. 

「모두가 사랑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사랑의 비밀은 이렇듯 우리의 확신을 비웃는다. 사랑이란, 이제 사랑에 대해서라면 좀 알겠다고 확신할 때쯤 어느새 믿을 수 없이 낯선 얼굴로 돌변하는 그 무엇이다. 심리학자 융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드높은 산맥이라고. 이제 다 올랐다 싶으면 어느새 그보다 훨씬 더 높은 또 다른 봉우리를 보여 주는 험준한 산맥이다. 」
<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p.119>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도 조만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밤마다 옆방에 남자손님을 들이는 아내, 소설 속 '나'는 전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기에 아내가 이따금씩 쥐어주는 화폐를 받아 생활하고, 아내가 아스피린이라 속이며 준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옆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척 약간 모자란 듯 살아간다.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그 두려움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내의 비밀을 알고 난 후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그 고민의 시간을 끝없이 유예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p.221>

두려운 사실은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 것 같다며 모른척 해버린 기억, 나도 언젠가 그런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철저히 무력해져 본 기억이 있었기에 『날개』의 주인공 이야기가 아프게 따끔거렸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상처나 트라우마는 있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나 자신을 탐구해봤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상처를 받고 웅크리고 있는걸까. 나도 어쩌면 집안의 장녀로써 어릴 때부터 어른스럽기를 강요 당해온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동생처럼 어리광 부리면서 멋대로 굴어보고 싶었고,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놈의 맏이가 뭐길래, 난 시키지도 않은 책임감을 껴안고 언제나 반쯤은 어른인 척 살았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된 지금, 난 언제 마음껏 어리광을 부려봤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슬며시 든다. 이제 다 컸으니 오히려 한없이 어린애처럼 굴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고 여전히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그래도 심리치유의 시작은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나를 짓누르는 생각들이 여기저기 숨어서 나를 본다. 아마 앞으로도 많은 책을 읽고, 스스로를 많이 들여다봐야 나에 대해 알 수 있을 듯 하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제대로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소중한 나 자신을 많이 많이 쓰다듬어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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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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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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