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전쟁에 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전쟁과학 이라고 하면 보통 총기, 미사일, 폭탄 등의 무기개발에 관한 것만 상상하기 쉽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현장 군인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소하지만 중대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과학과 해법들, 저자 메리 로치는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무거운 이야기도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전쟁 시 소음, 열기, 설사, 잠 등이 군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큰지 알지 못했고, 구더기가 상처치료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 군인들에겐 다리가 날아가는것 만큼이나 생식기도 중요하다는 사실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어찌보면 광대한 '전쟁'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다루는 책이다. 

화이트는 39분동안 그 문제를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구급 헬기가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거시기가 없어졌다면, 날 그냥 여기 놔두고 가.> 반쯤은 진지했지요. 아직 자식도 없거든요. 그걸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대원들은 그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대위님, 거시기는 괜찮다니까요> 하는 식이었지요.」  
< 전쟁에서 살아남기 p.91>

사람들은 사고로 다리가 날아간 군인에게 의족을 다는 것은 찬성하면서도, 생식기가 없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비뇨기과 의사들은 군인들의 생식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완벽하게 복구해 원래의 성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한다. 전쟁에서 살아나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군인들에게 다리만큼 생식기도 중요한건 당연하다. 

군인들은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뜨거운 태양과 습기때문에 열사병으로 쓰러질 확률도 있다. 4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매고 뜨거운 기온 속을 걷다보면 끝도 없이 땀이 난다. 사람은 생각보다 온도 조절을 위해 땀을 많이 흘린다고 한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시간당 2킬로그램의 땀을 몇시간 동안 흘릴 수 있기에, 열기속에서 군인들은 하루에 10킬로그램의 땀을 흘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이 많은 땀을 흘리고도 물을 제때 마시지 못하고 일을 계속 할 경우 허혈 증상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데, 이를 막기위해 과학자들은 이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 다양한 실험을 함으로써 군인들이 탈수증세 없이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1848년 멕시코 전쟁때 미국인 한명이 전투로 사망할 떄마다 7명이 병으로 죽었으며, 대부분은 설사 때문에 죽었다. 미국 남북 전쟁 때 설사나 이질로 죽는 병사는 95,000명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는 말라리아에 걸려서 입원한 군인보다 설사병으로 입원한 군인이 거의 4배 더 많았다. 
< 전쟁에서 살아남기 p.178> 

설사는 더 무섭다. 이질 같은 병은 화약이나 총알보다 병사들에게 더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설사에 대한 연구를 위해 참여자를 모집하고, 남들이 꺼려하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상처 부위의 옷을 제거하는 순간, 상처에 수많은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 광경에 나는 경악했다.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나는 서둘러서 이 끔찍해 보이는 생물들을 씻어냈다. 그리고 상처를 식염수로 씻자, 가장 놀라운 광경이 드러났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분홍빛 육아조직이 상처를 채우고 있었다. 
< 전쟁에서 살아남기 p.208>

구더기는 죽은 고기나 썩어가는 고기를 먹고 사는데, 이 구더기들이 상처의 죽은 조직들을 먹어치움으로써 감염을 막고 상처를 치유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베어박사는 전쟁이 끝난 뒤 민간인 아이들에게 실험을 해본 후 그 실험이 성공적이자 본격적으로 파리 배양기를 만들어 구더기를 배양하며 연구를 시작한다. 

전쟁에서 무기가 아닌 악취로 공격하는 방법도 있을까. 사람들이 무지 싫어할만한 화장실, 하수구, 썩은 내 등을 모아모아 사람들이 아주 불쾌해하는 악취수프를 만들어 적에게 공격하는 것이다. 그 냄새는 최소 2시간 동안 씻어도 없어지지 않고, 끔찍하게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냄새라는 것에도 맥락이라는 것이 있는지라 세계의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냄새가 어떠냐고 실험을 해보면, 그 악취를 맡고도 음식 냄새같다거나 향수 냄새 같아서 몸에 뿌리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꼭 있다는 사실이다. 어찌됐든 무기가 아닌 악취로 공격한다는 것은 총알이 오가는 전쟁통에서 그나마 애교있는 전술 아닐까. 

전쟁을 이런 식으로 이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이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는 무기를 써서 말이다. 국가의 목표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도덕 방정식의 일부가 아니라면, 원자를 쪼개고 장갑을 뚫는 대신에 사기를 꺾는 방향으로 전력을 쏟아 부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악취 수프와 같은 애교 있는 범주에 속한 것이 또 있다. 라이트 패터슨 공군 기지의 물질 공학자 밥 크레인이 사막의 퐁풍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열린 비살상 무기 브레인스토미 회의에 참석하여 내놓은 안이다. 크레인은 자신의 착상에 맞는 상황을 제시한다. 적은 공격을 받으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보급선이 끊긴다. 그들은 굶주리고 외롭고 화가 치민다. 이제 아군이 비밀 무기를 꺼낸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갓 구운 빵 냄새다. 크레인은 미세 캠슐화 기술의 전문가다. 이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쓰이지만, 긁으면 향기가 나는 스티커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 따라서 가루 형태의 미세한 알갱이에 냄새를 담은 뒤 전투원들이 잠자는 사이에 적 진영에 떨구는 것도 가능하다. 다음 날 그들이 미세 캡슐을 밟고 돌아다닐 때 캡슐이 깨지면서 냄새가 흘러나온다. 너무나 견디기 어렵다. 집이 그리워지고,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그들은 탈영하기로 마음 먹는다. 
< 전쟁에서 살아남기 p.239>

책 내용이 다소 유머러스하게 쓰여지긴 했지만, 여전히 다 읽고 나서 남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우리는 왜 계속 전쟁이란 걸 해야할까.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항상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서로를 죽이고 고통을 주면서 그 안에서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켜 나간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많은 기술들도 대부분은 전쟁 중에 발전된 기술이 많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전쟁에서 그들은 군인들에게 어떻게라도 살아남으라고,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에게는 살아돌아왔으니 어떻게든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수많은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궁극적으로는 전쟁 따위 이제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