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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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아리송해진다. 김사과 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뭘까. 책 제목처럼 끝없이 더 나쁜 쪽으로 걸어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자신을 끝없는 밑바닥까지 추락시키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이는 이야기들, 아니, 심지어 이야기 형식이 아닌 혼자만의 독백과 낙서같기도 한, 한글과 영어가 막무가내로 섞여있는 글들. 읽으면서 느꼈다. 이 작가, 끝없이 삐뚤어지겠다는 마음 가짐을 형식 파괴로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ㅋㅋ 인터넷에 김사과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김사과(방실) 이렇게 나온다. 김사과가 본명일까, 방실이 본명일까. 둘다 이런 화끈하고 삐뚤어진 서사에 어울리지 않는 매끄럽고 순한 이름 아닌가. 심지어 내가 받은 김사과 작가의 사인본엔 엄청나게 귀여운 작가의 사인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쓰는 이야기엔 세상의 끝을 발견한 듯한 아슬아슬한 위태로움이 있다. 소설속에는 자신을 놓아버린 듯한, 미래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읽기만 해도 그 수렁으로 함께 빠져버릴 것만 같다. 



오늘은 그의 생일이다.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고, 또 역겨워하는 남자. 그보다 역겨운 인간을 만난 적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매일 조금씩 더 역겨워지는 것 같다. 나는 전혀 과장하고 있지 않다. 그는 역겨운 인간이고 나는 그런 그를 사랑한다. 왜 나는 오직 역겨워하거나 오직 사랑하지 못하나. 왜 나는 단순하게 아름다운 감정을 가질 수가 없나.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믿음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믿기에 나는 지나치게 병적이고 자주 혼란에 빠지며 너무나도 얄팍하고 가벼운데다가... 무엇보다 나 자신을 깊이 불신한다. 아마도 그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인간을 사랑하게 된 이유다. 아니 그뿐인가?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정말 추잡한 느낌이다. 늦은 밤 잠에 취한 거리가 딱 그 꼴이라 생각하는 순간 거리의 추한 어둠이 나를 돌아보며 웃는다. 
< p.20 [ 더 나쁜 쪽으로 ] 중에서 >


소설의 '나' 는 '나' 를 흔한 여자애들 중에 한명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그에게서 진짜를 발견하고 싶었고, 그와 자는 방법이 그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진짜를 봤고, 여러번 지겹도록 하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발견한 그의 진짜는 불면과 외로움 이었고, 그것은 비밀조차 아니며, 결과적으로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결국엔 서로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하며, '나'는 끝없이 거리를 헤매며 걷는다. 더 나쁜 쪽을 향해 걷는다. 외국의 낯선 거리에서 느끼는 황폐하고 외로운 기분, 누구에게서든 진짜를 발견하고 싶지만 결국엔 누구에게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나'는 황폐하다. 



"삶은 호텔 같았고 매일매일은 호텔의 욕실에 놓인 일회용 샴푸 같았다. 그것을 도대체 다 써버릴 수가 없었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것이 놓여 있었다. 거기엔 오직 시작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망쳤다. 시작하고 또 시작했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을 눈치챌 수 없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시작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미쳐버리지도 못했다. " 
<p.47 [ 샌프란시스코 ]중에서 >


뭔가 시작하고 또 시작해도 결국 아무데도 가 닿지 못하고, 심지어 자유롭지도 못한 상태로 거기에 있는 것. 미래라는 것은 나에게만은 허용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아무리 달리고 또 달려도 모든 시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나는 그 시간조차 순서대로 기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p.52) 

김사과의 소설은 이처럼 뭔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인간들의 마음을 퇴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디서도 진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 속에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미래도 없다. 그래서 머리가 뒤죽박죽인,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나간 소설이다.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뭔가 답답하고 그 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주인공들의 답답한 혼자만의 메아리는 느껴진다. 

1부의 소설들은 특별한 줄거리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 이야기라면, 다행히 2부의 소설들은 줄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소설들의 주인공도 뭔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긴 마찬가지다. 

<박승준씨의 경우>의 박승준씨는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중인데 살인적인 학비때문에 고시원에 살면서 옷살 돈이 없어 근처 아파트의 재활용품 수거함에서 괜찮은 옷을 뒤져서 입으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재활용 수거함에서 dior 정장을 줍는다. 금요일밤 혼자 고시원에 쳐박혀 있는 자신의 찌질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dior 정장에 예전에 주운 흰 티셔츠를 받쳐입고, 6년전에 고모가 생일선물로 사준 낡은 리복 운동화를 신고 신사동을 어슬렁 거리다, 얼떨결에 돈있는 사람들끼리의 벌이는 파티에 참여하게 된다. 거기서 한 패션 사진작가는 최고급 dior 정장에 주운 흰 티셔츠에 리복 클래식 이라니 "역시 이친구 힙스터야" 하며 추켜세우고, 다들 모여들어 그의 특이함을 칭송한다. 힙스터가 뭘까 하며 사전을 찾아봤더니,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를 뜻한다고 나와있다.  물론 박승준씨는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를 능력이 없을 뿐 자신의 고유한 패션과 문화따위 없다. 자신의 없어보임을 들키고 싶지 않은 박승준씨의 필사적이고 당황스러운 마음, 소설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다. 소설의 결말마저도 가히 김사과 답다. 

<카레가 있는 책상> 은 역시 고시원에 사는 듯한 주인공의 비틀린 시선을 보여준다, 동네의 버블티 가게에서 알바를 하던 여학생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 대해 마음대로 상상하며, 1년뒤 남자친구와 같이 데이트를 하던 그녀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남성으로써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선사하겠다며 미친듯이 쫓아가놓고선 난 단지 좋은 일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왜 도망가냐며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는 미쳐버린 자의 시선, 방 밖에서 사람이 맞아죽어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잠을 청하는 자들의 무정한 마음이 드러나있다. 이들이 미친 것인가, 세상이 미친것인가. 

이처럼 김사과의 더 나쁜 쪽으로 소설집에는 미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세상끝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같이 한숨 쉬게 되는 이야기 말이다. 김사과는 왜 이런 소설들을 쓰는 걸까. 한번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김사과여, 얼마나 더 발칙해지려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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