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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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동물 움짤을 보다가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냉장고를 열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을 꺼내려고 시도하는데 간식이 자기 키보다 높은 곳에 있자 바로 옆에 있는 식탁의자를 끌고 와서 유유히 간식을 꺼내먹는 장면이었다. 이런 사연도 봤다. 집에 정수기를 설치했더니 그 집의 반려묘가 정수기에서 물이 나오는 방법을 알아채고 낮이고 밤이고 정수기 스위치를 눌러 콸콸 쏟아지는 시원한 물을 낼름거리는 바람에 정수기 반납을 신청한다는 유머글이었다.  이런 똑똑한 동물들의 사연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니, 집에서 반려동물을 오랫동안 키워본 사람은 이 정도 일은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난 나의 반려묘 다림이를 보면 이 녀석이 구강 구조만 받쳐준다면 나에게 곧 말을 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이 어디에 들어있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선 너무나 적극적으로 명확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안 들어줄 수 가 없다. 이런 일을 늘 겪으며 사는 나에게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은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렇다. 난 그들의 생각이 알고싶다. 말을 못한다고 생각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와 의사소통 방법이 다를 뿐이고, 생활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여타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전제하에 다른 동물들의 인지능력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폄하하는 시각은 참으로 오만하다.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이 말이 어쩌면 이 책의 전체 내용을 꿰뚫는 질문일 것이다. 책의 초반부에서 놀랐던 점은 동물 연구 초반시절, 과학자들은 동물의 인지능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생각과 인지가 가능한 것은 오로지 인간이라는 것이다. 동물은 오로지 기계처럼 훈련된 법칙대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동물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환경으로 인한 영향을 줄이기 위해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비교연구를 진행했다. 그런 과정에서 동물들이 학대아닌 학대를 당하고 힘들어 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또한 인간이 충분히 똑똑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 아니겠는가. 



행동주의와 동물행동학의 차이는 늘 '인간의 통제' 대 '자연적 행동'의 차이였다. 행동주의자들은 동물을 실험자가 원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약한 환경에 둠으로써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 만약 동물이 실험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런 행동은 '잘못된 행동'으로 분류했다. (...) 반면에 동물행동학자들은 자발적 행동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 동물 행동학은 어떤 종의 모든 구성원들에게서 자연적으로 발달하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가지 핵심 문제는 어떤 행동이 무슨 목적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p.. 65~67>


이 책의 저자는 위의 행동주의와 동물행동학의 장점을 합친 '진화인지'라는 개념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데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고 진화하는 관점에서 발전하는 인지능력을 연구해보자는 것이다. 동물의 진화에 관해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는데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진화론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조금은 어려운 얘기로 시작하지만 (책의 첫 부분은 좀 어려워서 사실 좀 지루할 수 있다;) 그 부분을 넘어가면 재미있는 동물들의 일화가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우리와 진화적으로 가장 비슷한 유인원, 즉 원숭이에 대한 일화는 사실 별로 놀라울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꾀가 많은 사람처럼 능청스러운 원숭이 이야기는 신기했다. 사육사가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여기저기 숨겨놓고서 원숭이들을 풀어줬는데, 한 원숭이는 바로 옆 수풀 속에 있는 바나나를 보고도 마치 못본 척 유유히 그 옆을 지나간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낮잠 시간이 되어 다른 원숭이가 다 잠들자 조용히 일어나서 그 바나나를 찾아내서 혼자 맛있게 먹는다. 동료들이 다 깨어 있을때 바나나를 발견했다면 분명 동료들에게 빼앗길 것을 계산하고 나중으로 미뤄둔 것이다. 처음에 바나나를 발견하고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못본척 지나가는 빠른 계산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능청스러운 원숭이에게 혀를 내두를 일이다. 


그나마 원숭이는 인간과 비슷하게 진화한 영장류니까 그렇다 치고 더 놀라운 것은 조류에 대한 이야기였다. 흔히 머리 나쁜 사람을 보고 '새대가리'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까마귀한테는 절대 그런말을 하면 안될 것 같다. 까마귀는 사람의 얼굴을 한명 한명 기억하고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특정 가면을 쓰고 까마귀에게 안좋은 기억을 심어준 후  나중에 그 가면을 쓰고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해당 까마귀는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를 괴롭힌 그 사람의 가면얼굴을 알아보고 자신의 동료들까지 몰고와서 깍깍거리며 괴롭혔다고 한다. 사람도 사람끼리 못알아보는 경우가 있는데 심지어 까마귀가 사람의 그 비슷비슷한 얼굴을 다 구별하고 알아보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앵무새에 대한 얘기였다. 아프리카회색앵무새 인 앨릭스에 관한 얘기이다. 앨릭스는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는데, 그냥 사람 말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내용을 인식하고 계산하여 대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똑똑해 보이는 새를 보는데, 이 새는 말을 걸면 사물의 이름을 아주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대답을 한다. 이 새 앞에는 물체들이 가득 담긴 트레이가 있는데, 물체들은 털실로 만든것도 있고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것도 있으며, 각자 일곱 가지 무지개 색 중 하나를 띠고 있다. 

이 새에게 부리와 혀로 모든 물체를 만지게 한 뒤 물체들을 모두 트레이에 도로 담고 나서 모서리가 두 개인 파란색 물체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고 묻는다. "털실"이라고 정답을 말할 때, 새는 색과 모양과 재질에 관한 지식을 이 특정 물체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기억과 결합한다. 혹은 하나는 초록색 플라스틱으로, 다른 하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쇠 두개를 보여주면서 "둘의 차이가 뭐지?"라고 물으면, 새는 "색"이라고 대답한다. "어느색이 더 큰가?"라고 물으면, 새는 "초록색"이라고 대답한다

<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p. 168>


이 정도 쯤 되면 이건 인간의 언어와 뭐가 다른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이 새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외워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을 나름대로 결합해서 대답을 하는 것이다. 주인이 흥분하거나 화를 내면 옆에서 나직이 "진정해" 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정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의인화된 말하는 동물, 캐릭터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는 아직 동물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만큼 똑똑하지 못하다. 어쩌면 어떤 동물들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어 속으로 인간들을 비웃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이 지구에서 어떻게 인간만이 진화를 거듭해 언어를 가지고 문명을 만들어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어쩌면 인간만이 문명을 만들어냈다는  말조차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관점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 



이 책은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오만한 관점을 와장창 깨준다. 

누구한테 욕할 때 "이런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하지 말자. 

그 짐승이 인간보다 똑똑할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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