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
백세희 지음 / 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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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이후부터 마음 한 켠에 우울함 한 스푼은 항상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는 밝은 척, 센 척 웃으면서도 혼자 있을 때면 괜히 눈물이 그렁그렁 서러울 때도 많았고, 수많은 좋고 나쁜 인간관계를 겪어보면서 서서히 겁도 많아지고, 그만큼 자기검열도 강해졌다. 세상에 마냥 밝기만 한 사람이 존재할까. 원래 남의 인생은 좋은 면만 보이는 법이라 나 말곤 다 행복해 보이기 마련이다. 화려한 인스타그램 스타들의 사진들을 조금만 훑어봐도 내 인생이 괜히 구질구질하게 느껴져 우울해지지 않던가.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누구나 슬픔의 결을 안고 산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훗!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하긴 한데, 또 떡볶이는 먹고 싶은 그 마음을 똑같이 느껴봤기 때문이리라. 우울하면 원래 먹을게 더 당긴다. 다이어트고 나발이고 먹고 죽자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


재미난 제목의 책 속에는 바로 저자의 '정신과 상담 일지'를 글로 옮긴 내용이 담겨있다. 저자 백세희는 기분부전장애(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주요 우울 장애와는 달리,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앓고 있다고 한다. 차라리 극심한 우울증이라면 주변의 관심과 걱정이라도 받을 텐데,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계속해서 혼자만의 애매한 우울증이 지속되다 보니 저자는 더 괴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 상태에 기분부전장애 라는 병명이 붙은 걸 보고는 오히려 안심했단다. 이것도 병이구나, 치료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책 내용은 저자와 치료자의 실제 대화가 거의 그대로 담겨있다. 그래서 저자의 개인적인 가정사나 조금은 말하기 민망할 듯한 고민들도 가감 없이 나와있다. 그런데 그런 고민들을 읽다 보면 마치 내 얘기 같아서 뜨끔뜨끔한 순간들도 꽤 자주 나온다. 책 뒤쪽에 실린 '책을 읽은 독자의 한마디'를 살펴보면 마치 내 일기장 같다느니, 발가벗겨지는 기분에 부끄럽지만 개운하다는 말도 쓰여있다. 필명이 아닌 실제 이름으로 책을 내면서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저자는 충실히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낮은 것 같다는 이야기, 끝없는 자기검열에 빠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항상 녹음을 해두고 집에 와서 혼자 들어보면서 안도하거나 혹은 이불킥을 한다는 이야기, 남에게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독립적이고 싶은 마음, 사람들을 대할 때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 눈치 보는 심리, 외모에 대한 고민 등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본 적 있는 감정 아닐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다.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낮은 것 같다는 이야기에 나도 혹시 그런 상태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슬쩍 들고, 녹음을 해서 들어볼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을 만나서 내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고 온 날에는 혹시 실수 한건 없을까 하는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 날도 많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 날엔 스스로 쓰담쓰담해주고 싶을 만큼 자랑스럽다가도, 어떤 날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정의 문제는 참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상황에 따라, 몸 상태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태를 진단해주는 상담을 보면서 나름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나만 이런 거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도 때로 이런 걱정을 하면서 사는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책 속 상담은 2권에서 계속된단다. 열두 번의 상담으로 저자의 상태가 완치되기에는 과연 무리가 있었나 보다.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처럼 저자의 상태가 완치되는 드라마틱하고 사이다 같은 결말은 없다. 하지만 꾸준히 자신을 돌이켜보고 좋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인간을 지켜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던 이야기였다. 


다만 저자가 20대라서 그런가 20대 특유의 걱정처럼 보이는 요소들도 보인다. 나이 어린 여동생의 걱정 상담을 해주는 느낌이랄까. '나도 저랬었지'하고 공감은 가지만, 그런 건 시간이 해결해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점들도 분명 있긴 하다. 20대를 벗어나 30대가 되고 보니 그 당시엔 몰랐던 걸 저절로 깨닫게 되거나, 혹은 마음 편히 내려놓게 되는 부분도 하나 둘 생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솔직함을 무기로 한 이런 유의 에세이가 나온 것은 환영한다. 삶의 빛나는 부분만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어둠을 발견한다는 것도 꽤나 괜찮은 경험이니까.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난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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