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세계사 - 거꾸로읽는책 3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거꾸로 읽는” 인가?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제목 그대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인가? 여기서 거꾸로는 내가 생각할 때 유시민이 이 책에서 14가지의 사건과 인물의 세계사 에피소드를 들추어내는데 그 취사선택한 것이 ‘거꾸로 읽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억울하고 힘든, 다소 숨겨진 이야기Behind Story가 엿보인다. 

첩보와 혁명과 전쟁과 사건과 대공황과 사회주의를 발발케 했던 사건과 세계 대전과 억압과 울분과 눈물과 강대국과 약소국의 갈등과 대립과 인종차별과 역사왜곡과 힘의 논리 등....

그러기에 그의 책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인 것이다. 독자들은 그의 글을 대하면서 마치 예전에 알지 못했던 역사의 비밀단지의 뚜껑을 여는 호기심으로 가득차게 된다. 하지만 그 어둡고 유쾌하지 못한 역사의 면모들에 의도적으로 포커스를 두는 유시민의 관점 자체가 바로 ‘거꾸로’인 것이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으로 점철된 캠퍼스생활 속에서 그가 틈틈이 적었던 글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젊은 열정과 운동의 와중에 역사를 읽고 ‘거꾸로 읽는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도였지 역사학도는 아니었다. 꼭 그 분야에 전공을 해야 그 분야의 책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곰브리치는 세계사 전공이 아니지만 세계사를 썼고, 슈바이츠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했고, 수많은 위인들이 자신의 전공 이외의 분야를 연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작품을 내놓지 않았는가?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정말 자기가 전공한 영역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도 많지만 반대로 자기의 전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연과 필연의 결과로 업적을 성취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Ph. D는 예전에는 철학박사를 가리켰다(Doctor of Philosophy). 하지만 이제는 Ph. D란 말은 모든 박사에게 다 해당되는데 특히 Ph. D학위를 받은 사람은 다른 전공에 손을 대도 손색이 없을 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학위인 것이다. 아무리 오늘날의 박사가 ‘파리 뒷다리만 연구해도 박사학위를 받는’ 시대이긴 하지만 ‘파리 뒷다리를 연구할 줄 아는 능력’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술문화 뿐만 아니라 건축과 다른 분야에서도 팔방미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학문과 지식은 갈구하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극하는 에너지원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부류의 책에 대해서 머라고 해야 할까? 참고도서도 없고 단지 몇 권의 책들을 아우르며 정리하여 출판하는 책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그래도 이런 책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힌다는 것은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 있는 책이다

세계사의 도서들을 찾다가 이 책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줄기를 보고자 하는 독자들은 피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세계사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컬렉션 같은 것이다. 하지만 재미와 흥미는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자주 찾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책은 이야기가 있다. 요즘 문화는 전부 이야기가 있다. 광고CF조차 이야기가 있다. 뮤직비디오도 이야기가 있고 에피소드가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에게 ‘재미난 이야기 해 주세요, 옛날 이야기 해 주세요’라고 칭얼댔다. 이런 기억은 인간이 원래부터 이야기를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인간의 습성에 대해 기대 부응하는 책이다.

나는 근래에 세계사에 대한 흥미로 말미암아 세계사의 책들을 섭렵하는 중에 있다. 그런데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애가 이야기하기를 세계사, 역사는 전체적인 흐름을 대하면 굉장히 흥미 있고 재미있지만 막상 그 구체적인 사건들, 디테일에 들어가면 머리가 아프고 복잡하다는 평을 했다. 그렇다. 역사는 사건이고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건과 사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의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붙기 때문에 역사가 굴절될 수도 있고 왜곡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한 년도까지 여러 가지 이론과 설이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전체적인 역사 조망은 힘들지만 부분적인 접근은 다소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글을 엮어나간다는 것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유시민을 ‘얼치기 역사가’라고도 하고 정치가로서의 유시민에 대해서 정색을 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의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잘 모르겠다. 역사를 쓴 작가로서의 판단도 보류하고 싶다.

다소의 독자들이 ‘자본주의를 혐오하고 사회주의를 은근히 찬양하는 이념적 편향성’을 지녔다며 노파심을 표현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체제 붕괴와 독일 통일>에 대한 글을 덧붙여서 개정판을 냈다. 20세기 인류역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보여주고자 한 면도 있겠지만 자신의 다소 편중된 시각, 거꾸로 보는 역사관(?)을 다소 무마하기 위해 마지막 장(章)인 ‘20세기의 종언, 독일 통일. 통일된 나라 분열된 사회’라는 글이 추가한 것은 아닌지...바라보기 나름이겠다.

Epilogue...‘거꾸로 읽는’-‘신데렐라맨’의 제임스 브래독의 복싱 이야기

우리는 러셀 크로우와 르네 위젤거가 주연한 복싱영화, ‘신데렐라맨’을 감명 깊게 읽었다. 그 영화는 미국 대공황 시절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복서 제임스 브래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검은 이카루스, 말콤 X-번영의 뒷골목 할렘의 암울한 미래 ’장에서 보면

‘1937년 6월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가 백인 제임스 브래독을 KO시키고 헤비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때 모든 흑인은 기뻐 날뛰었다. 적어도 권투에 관한 한 이제 그 누구도 흑인이 ’열등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라고 적고 있다.

우리는 관객의 입장에서 단순히 바라보았던 영화의 또 다른 측면을 들추어내는 ‘인종차별’의 문제. 단순한 복싱경기에서도 가난과 싸우며 복싱으로 일어서는 한 개인, 제임스 브래독(우리는 그가 흑인이건, 백인이건 그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영화가 그랬다.

하지만 조 루이스가 제임스 브래독을 Ko시킴으로 백인들에게 늘 짓눌려 차별대우 받는 흑인들의 아픔과 애환을 위로하고 승화시킴으로 오히려 ‘흑인들도 할 수 있다’는(단순한 복싱경기, 스포츠경기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꿈과 희망을 얻기도 하고 때론 절망과 좌절을 하기도 하지 않는가?) 꿈을 심어주는 관점도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보여주는 ‘거꾸로’의 관점은 바로 이런 관점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머리말 

드레퓌스사건-진실의 승리와 더불어 영원한 이름



피의 일요일-혁명과 전쟁의 시대가 열렸다



사라예보 사건-총알 하나가 세계를 불사르다



러시아 10월 혁명-세계를 뒤흔든 붉은 깃발



대공황-보이지 않는 손의 파산



대장정-중화인민공화국을 낳은 현대의 신화



아돌프 히틀러-벌거벗은 현대 자본주의의 얼굴

 

거부하는 팔레스타인-피와 눈물이 흐르는 수난의 땅



미완의 혁명 4.19-자유의 비결은 용기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골리앗을 구원한 현대의 다윗



검은 이카루스, 말콤 X-번영의 뒷골목 할렘의 암울한 미래

 

일본의 역사왜곡-일본제국주의 부활 행진곡


과 인간-해방된 자연의 힘이 인간을 역습하다



20세기의 종언, 독일 통일-통일된 나라 분열된 사회

 

 

그림과 같이 제 글에 대한 감상을 보시려면,

http://blog.naver.com/karl21/15002317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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