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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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 074. 부활. 톨스토이.


이미 읽은 지 한참 지난 책... 세네 줄로 짧게 써본다.


분명히 읽었던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내 기억의 <부활>은 죄지은 남자가 죄 때문에 한참 고뇌하다가 결국 유죄를 받아들이고 유형을 가는 이야기다. 거기에 쏘냐라는 여자가 옆에 붙어 함께... 읽다보니 기억났다. 이 스토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물론 죄와 벌도 온전히 읽은 게 아니라, 맨 앞과 맨 뒤 각각 수십쪽씩밖에 읽지 않았다)


러시아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그렇게 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들(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을 무진 재미없게 읽다가 때려쳤던 나로서는 러시아 소설은 항상 무섭다. 빅토르 위고처럼 곁가지로 빠지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집중하기 힘들다. 거기엔 러시아식 이름도 한몫하는데, 이놈의 이름은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는데다가 지들 맘대로 애칭으로 부르느라 더더욱 헷갈린다.


부활도 그러긴 마찬가지다. 주인공격인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의 이름이 너무 많다. 거기다 그들이 만나는 인물들도 엄청나다. 감옥과 죄수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상류사회의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제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줄줄이사탕으로 인물 소개가 계속된다. 덕분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감옥에 투옥된 이들의 사연을 깜빡해버렸다. (다른 책을 동시에 읽느라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 아닌 변명)


소설은 제목처럼 부활을 다룬다. 흔히들 생각하는 하나님의 부활은 아니다. 네흘류도프는 땅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며 적은 소작료만을 받고 농민들에게 넓은 땅을 나눠준다. 억울하게 투옥된 이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이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던 네흘류도프는 당시 부조리한 사회관습을 깨는 혁명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젊은 시절, 네흘류도프와 순수한 사랑을 나눴지만 타락한 네흘류도프에 의해 자신도 타락하게된 마슬로바. 억울하게 유죄를 선고받고 유형지로 향하는 마슬로바는 유형수들과 지내며 차차 예전의 순수함을 찾아간다. 감옥에 갇힌 이들이 모두 악한이 아니다. 정치가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택도 없는 이유로 가둔 정치범과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도 있었다. 이들과 가까워진 마슬로바는 타락한 과거를 차차 잊는다.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는 각각 위와 아래로부터의 사회 개혁(또는 인식 바꾸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부활>의 백미는, 과거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네흘류도프의 청혼을 거절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위'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뚝심으로 서려는 '아래'의 결연한 모습이 빛난다.


책은 읽기 자체가 매우 재밌다. 여러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다만 톨스토이가 만년에 쓴 책이어서인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너무나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톨스토이의 생각을 담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의 형태를 빌린 긴 논설문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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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산책자 - 8인의 철학자, 철학이 사라진 시대를 성찰하다
애스트라 테일러 엮음, 한상석 옮김 / 이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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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


  이번에 내게 소개된 세 권의 책은 문학, 철학, 자연과학이었다.(책을 일일히 적지 않겠다) 평소라면 응당 문학책을 골랐을터이나 올해 독서기록을 보니 철학책이 하나도 없다. 작년에는 그나마 개론서라도 읽었는데 말이다. <히틀러의 철학자들>을 읽고서 다시 철학에 관심을 가진 김에 철학 관련 서적인 <불온한 산책자>를 골랐다.


  책은 다큐멘터리 ‘성찰하는 삶’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8명의 현대철학자들을 연구실에서 끄집어냈다. 거리와 공원, 차 안, 심지어 쓰레기장에서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뭔가 고차원적이고 어려워보이는 철학을 현실과 접목시키려는 의도이다.


  소개된 철학자들을 살펴보자. 코넬 웨스트, 아비탈 로넬, 피터 싱어, 마이클 하트, 마사 누스바움, 콰메 앤서니 애피아, 슬라오볘 지젝, 주디스 버틀러. 오 마이 갓. 이름을 아는 건 단 두 명인데다가 둘 다 책을 자세히 읽어보기는 커녕 어떤 사상을 내세우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1장인 ‘진리’를 펴고서 후회했다. 아, 이 책, 잘못 골랐구나.


  확실히 어려운 편이다. 보통의 철학 개론서나 철학사책은 철학적 사고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기본과 시초가 되는 사유와 철학자를 소개하고 단계적으로 쌓거나 반론을 제기하면서 전개된다. 하지만 <불온한 산책자>는 가벼운 마음과 ‘뇌’로 읽어서는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다.


  책은 철학자들이 쉽게 설명하기보다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다. 첫 독서에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이고 니체, 로크, 데리다(겨우 1년 전에 처음 들어본 데리다라니!)까지 기저에 알아야 한다. 진입장벽이 너무나도 높아서 진땀 흘렸다. 게다가 1장(코넬 웨스트, 진리)과 2장(아비탈 로넬, 의미)이 다른 장보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다.


  앞의 두 장은 ‘철학은 거리에서 이루어진다’라는 책의 카피를 (적어도 내게는) 잘 반영하지 못하지만 다행히도 3장(피터 싱어, 윤리)부터는 읽는 재미가 생긴다. 3장은 아주 재밌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전략) 당신이 얕은 연못 옆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연못을 다 지나갈 때쯤, 어린 아이 한 명이 연못에 빠져 죽을 위험해 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중략) 당신이 연못에 들어가 꺼내 주지 않으면 아이는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는 상황이지요. 물에 들어간다고 당신이 위험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연못이 얕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 그러나 당신은 좋은 구두를 신고 있죠. 아무리 연못이 얕아도 연못에 들어가면 구두는 십중팔구 망가질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할 거냐고 물어보면 누구나 당연히 구두 따위는 잊고 아이를 구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하죠. “좋습니다. 나도 당신 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지금 신고 있는 구두 값 정도만 <옥스팜>이나?<유니세프> 같은 곳에 기부한다면, 가난한 나라의 아이를 한 명 이상 구할 수 있을 겁니다.” (121쪽)


  어찌 보면 궤변이라 할 수 있겠지만, 원래 무언가 의미를 담은 말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어쨌든,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적금 10만원을 줄이고 그 돈을 유니세프에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바꾸는 자기계발서적이나 경영서보다 이런 책이 떄론 도움이 될 때도 있단 말이지.


  이외에도 몇 구문을 집어두었지만 모두 파편적인 의미만을 가지기 때문에 메모만 해두었다. 파편적이라는 것 어려움과 동시에 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한 권으로도 모자를 사유의 향연을 짧은 부분에 담으려니 전체적으로 욕심이 과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이들은 독자(또는 시청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뭐,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만.


  겨우 마지막 장을 덮은 나와 달리 책을 같이 읽으신 분은 재독을 하셨다.(난도가 있는 1, 2장은 빼고!) 이분도 처음엔 나와 같은 느낌을 받으셨단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책을 덮고 싶고. 재독하니 그나마 인터뷰어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정말 어렴풋이 알겠다고 하셨다.


  그렇다. 이 책은 난이도도 높은 주제에 두세 번은 읽어야 큰 의미로 다가오는 책이었다. 깊게 읽기보다는 넓게 읽기 습관을 가진 나로서는(사실 그리 넓지도 않다) 힘들 수밖에 없던 책이었다. 철학이 사라진 시대를 성찰한다는 멋진 카피가 마음에 콱 와닿는, 철학을 좀 공부하셨던 분에게는 추천드릴 만한 책이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22쪽)


지적 쾌락은 늘 특정한 사회질서, 즉 지배구조를 통해 형성된 사회질서를 전제로 하고 그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34쪽)


일종의 이차적인 보완 장치인 글은 모든 것을 적어 놓기 때문에 모든 기억을 지워 없앱니다. 글은 망각을 조장합니다. (68쪽)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이론가의 의무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사적인 작은 전쟁터에 서는 겁니다. 사람들은 공포탄만 쏘아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당신의 의무는 큰 목소리를 내는 것, 당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 추문을 의식하고 실망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확신하더라도 성실하게 그런 일을 해 나가는 겁니다. (80, 81쪽)


토머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한에서 재산을 향유할 자연권이 있다. 그러나 필요를 모두 만족시켰다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다면, 반면에 다른 살마은 자기 필요를 충족시킬 만큼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떄 재산에 대한 우리의 권리는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그 사람의 권리를 능가하지 못한다. (130쪽)


적절한 말투로 말하면 어떤 헛소리라도 심오한 생각처럼 들ㄹ비니다. 내가 지혜라는 것에 철저하게 반대하는 이유죠.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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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프리모 레비


  리뷰글은 아니고, 책을 읽고 생각나는 것과 생각해야 할 것들을 몇 자 적는다.


  책의 중반부는 거의 졸면서 봐서인지 기억에 남은 건 크게 없다. 아우슈비츠에서 가해자의 행동과 피해자의 아픔은 이미 다른 책들에서 많이 봐왔기에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적은 편이다. 또한 수용소 안의 사람들끼리 서로 밀쳐내고 편을 가르는 것 또한 심리학이나 사회학 서적에서 많이 다뤄온 문제이기에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 (1986년에 쓰인 책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슬슬 역사나 정치, 사회학에 관심을 갖다보니 가장 눈에 띄는 건 1장, 상처의 기억이다. 뭐, 이것도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없다. 기억을 피하기 위해 가해자는 ‘나는 위에서 시킨대로 했을 뿐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몰랐다’, 심지어는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라고 뻥을 친다. 반대로 피해자는 아픈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어 기억을 지우고 무의식 아래로 묻어버린다. 외려 피해자들은 (학살 사실을 알았으면서) 왜 미리 피하지 않았냐고 의뭉스러운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것은 기억이 변하면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줄기차게 인용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살면서 타인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머릿속 메모리는 휘발성이 강하고 보존력이 약하기에 불완전한 것들이 모이면 더욱 탁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어떤 의도’마저 섞인다면 ‘사실’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져 본모습을 잃어버린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캐논은 줄기차게 광고했다. 문자화되고 형상화된 기록은 불안정하고 말랑말랑한 기억을 끝내 이기고 그 위에 선다. 영화 ‘메멘토’는 맥락이 없는 기록이 어떤 비참한 결과를 빚는지 처절하게 그린다. 항상 메모장을 들고다니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는 행동은, 언젠가 잊혀질 기억을 끝없이 기록함으로써 조금 더 완벽에 가깝게 가려는 시도이다.


  기록이나 기억은 완전성의 차이가 있을 뿐 무언가를 보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공통점에 ‘의도적인 압력’을 가하는 순간 보존의 의미는 퇴색된다. 단순히 ‘있음’을 의미하지 않고 자신(또는 집단)의 의도를 견지하게 되며 곧 이기적인 싸움으로 변한다. 불완전한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기 마련이고 종래에는 결국 기록이 곧 기억이고 진실이 되고만다. 역사는 결국 역사가들이 쓴 승리자의 기록일 뿐이라는 씁쓸한 사실만이 한번 더 떠오른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고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편 날, 페이스북에서 한 링크를 보았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은 없었고(유대인종 차별은 있었되 몇천만을 이유 없이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각 라거에서의 일은 그저 노동력 확보를 위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과거에 그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사과했지만 근래 들어 고갤 치켜드는 네오나치의 주장이다.


  가까이 보면 일본의 망언도 마찬가지다. 군국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배상을 했다는 이유로 외려 군대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일본뿐 아니라 자칭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미국도 눈앞의 이익에만 돌아서 기억을 망각하기는 매한가지다. 위안부 할머님들도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기억을 해줄 이들이 점점 줄어드어 아우슈비츠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잊혀져가고 남들에 의해 왜곡되고 만다. 그분들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상스러운 소리를 하는 이들이 많다.


  아우슈비츠는 없었어. 위안부는 사실 돈 때문에 우리를 따라다닌 거지. 친일은 무슨, 너희가 종북이야. 광주사태(부득이하게 이렇게 쓴다)는 북괴의 소행이라니까. 이 헛소리를 듣고도 반박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논리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종전에 읽었던 <바른 마음>에서 언급했듯이 사람은 감성이 먼저고 이성이 나중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정해지고 그럴 듯한 이유를 붙인다. 논리로는 웬만해서 이 틀을 깨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둘째는, 다소 시답잖다. 논리로 그들의 생각을 깰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 이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아는 것 없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팩트’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이고, 팩트를 기반으로 한 논리가 없다는 것을 단번에 증명해준다. 이러면 할 말이 없어진다.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이 지식과 논리가 없다면 어린애의 땡깡이나 마찬가지다. (다소 비약인가?)


  당연한 걸 가지고 왜 따지려드냐. 일일히 대응한다는 건 오히려 불씨를 지피는 일이니까 아예 무시해라. 이런 생각을 가지다가 독도는 다케시마가, 동해는 일본해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이기고 싶다면 감정적인 대처보다 우선 무엇이든 알고 대응해야 한다. 이건 대승적인 차원에서도 필요하지만 개개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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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1 - 시즌 1
민 지음, 백승훈 그림 / 네오카툰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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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웹툰 '통'의 원작 소설 <통>을 읽은 후, 엄청 실망했더랬다.
대체 이 웹툰은 왜 인기가 있는 거지?
스토리도, 캐릭터도, 어느 하나 큰 매력이 없던 원작소설...
낮은 평을 주고 덮어버렸던 책이었다.
소설 자체로는 크게 재미가 없었지만 웹툰의 원안으로서는 글쎄, 한번 봐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출간되어 인터넷 상에선 유료화되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웹툰 통 단행본이 손에 들어왔다.



그것도 네 권 모두... 말이다.
이 많은 걸 한번에 주기도 힘들었을텐데 네오픽션(자음과 모음 자회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현재 티스토리 웹툰에서 시즌 2가 연재 중이다.
통의 팬이 아니었던고로 시즌1이 아닌 시즌2부터 접했는데 생각보다 그림체가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워낙 네이버 웹툰의 깔끔한 그림체만 봐서인지 몰라도, 연필로 거칠게 그려진 톤과 뭔가 연습 같아 보이는 이 그림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 그런데 그 그림체가 통의 묘미였다.
삐까뻔쩍한 그림체보다 투박하고 거친 선이 통의 매력이다.




소설로만 접했던 캐릭터가 그림으로 그려지니 이야기가 더욱 잘 들어온다.
정우는 물론이거니와, 소설에선 조금 찌질해보였던(-_-) 인범이 초절정 간지남으로 그려진다.
정현은 생각보다 덩치가 컸고, 그냥 미친 놈인줄 알았던 진우는 쌩또라이로 그려지는데 생각보다 캐릭터가 잘 그려졌다.
소설보다는 덜 잔혹하지만 웹툰은 나름대로 형상화가 good!








소설을 읽고 별거 아니겠지, 했던 웹툰 통.
간만에 한 자리에 앉아 슈슈슉 읽었던, 오랜만에 읽은 만화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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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14년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완벽한 삶을 살아가던 삼십대 여성 린다가 위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코엘료는 일상의 권태와 사랑의 불안정성 앞에 위태로운 여성의 마음을 청진하듯 짚어내며,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의미와 사랑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린다와 그녀의 옛 애인 사이의 정사 장면이 에로틱하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작품은 단순한 성적 스캔들을 넘어 삶의 권태와 우울 등 인간 감정의 영역을 파고든다. 여성의 복잡한 심리가 잘 드러난 소설로, 전작 <브리다>, <11분> 등과 맥을 같이한다. 

좋은 집과 멋진 두 아이에 전문직 직업까지…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아가던 삼십대 여성 린다. 스위스 제네바의 유명 신문사에서 일하며 십 년째 순탄한 결혼생활을 유지해오던 그녀의 잔잔한 일상에 위기가 찾아든다. 모든 것이 변할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 불현듯 찾아온 우울증과 공허함에 죄의식마저 느끼고, 매일 감정기복에 시달리는 그녀의 삶은 타인의 눈에 비치는 것과 달리 너무도 위태롭다. 

그러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이자, 이제는 재선을 노리는 유명 정치가가 된 야코프를 취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재회한 순간 다시 열여섯 소녀로 되돌아간 기분이 되어, 취재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충동적 행동을 저지른다. 죄의식과 흥분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린다는 뜻밖의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심하는데…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민음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장편소설. 2000년, <향수>가 스페인에서 출간된 이후 14년 만의 소설이다. 첫 소설 <농담>에서 시작되어, <참을 수 없는 존재>에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그의 문학 세계는 <무의미의 축제>에서 그 정점을 이루며("쿤데라 문학의 정점." -「퍼블리셔스 위클리」) '쿤데라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네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진행되는 이 소설은, 새로이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된 여자의 배꼽에서부터 배꼽에서 태어나지 않아 성(性)이 없는 천사, 가볍고 의미 없이 떠도는 그 천사의 깃털, 그리고 스탈린과 스탈린의 농담, 그에서 파생된 인형극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유를 이어 가며 인간과 인간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고은 외, 실천문학사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국가 안전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엄마저 냉혹한 자본의 권력 앞에 무참히 파괴되었음을 보여주었다. 2014년 6월 2일 문학인들은 시국 선언을 통해 정부의 자격을 묻고 권력의 폭력을 고발했다. 그리고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를 출간하였다.

강은교, 고운기, 고은, 공광규, 곽재구, 구중서, 김기택, 김사이, 김사인, 김선우, 김오, 김은경, 김주대, 김준태, 김중일, 김해자, 나희덕, 도종환, 문동만, 문인수, 박성우, 박찬세, 박철, 박형준, 백무산, 손택수, 송경동, 송찬호, 신용목, 신철규, 신현림, 안상학, 안주철, 유병록, 유순예, 유용주, 유현아, 윤석정, 이민호, 이상국, 이선식, 이시영, 이안, 이영주 등 총 69인의 시인이 참여했다.



이미지 인문학 2, 진중권, 천년의상상


섬뜩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언캐니’라는 표제 아래 파타피지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갖게 되는 세계감정을 탐구한다. 디지털 가상에는 어딘가 섬뜩한 특성이 있다. 실재도 아니고 가상도 아닌 이 유령 같은 존재가 발산하는 으스스한 느낌. 그것이 디지털 이미지 특유의 ‘푼크툼’이다. 18세기에 ‘숭고’의 감정이 그랬던 것처럼, 디지털의 세계감정을 특징짓는 미적 범주는 ‘언캐니’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인문학자 진중권이 말하는 ‘디지털 이미지’는 디지털 합성 이미지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비록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디지털의 미적 전략을 따르는 회화와 사진은 모두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이다. 사진이 등장한 이후에 회화는 더 이상 과거의 회화일 수 없듯이, 디지털 이미지가 등장한 이후에 회화나 사진도 더 이상 과거의 회화나 사진일 수 없다. 뉴미디어가 자의식을 획득하면, 올드미디어는 조만간 뉴미디어의 전략을 수용하게 된다. 그 결과 아날로그 이미지들 역시 디지털 사진의 특징인 언캐니의 분위기를 갖게 된다.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강신주, 오월의봄


철학자 강신주의 본령인 장자와 노자를 본격 탐구한 철학책이다. 현재 학계에서 벗어나 대중과 만나면서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강신주를 서양철학 전공자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는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학위를 받은 동양철학 전공자였다. 그 뒤 동양철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서양 철학을 횡단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사랑과 자유의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는 노자, 장자라는 텍스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다양하게 끌어들여 노자, 장자 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각이 상당히 독특하다. 기존 동양철학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아주 딴판이며 그래서 상당히 논쟁적이다. 거침이 없이 발언하는 그의 기질이 잘 반영되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질서의 효용, 리처드 세넷, 다시봄


용도에 따라 구획된 도시, 같은 처지끼리 이웃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사회학과 교수인 리처드 세넷은 지나치게 질서를 강요하는 사회가 어떻게 어른들의 사고를 경직시키고,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는지를 보여준다. 세넷은 도시의 중산층이 비슷한 여건의 사람들과만 어울려 살면서 질서를 추구한 결과, 배타적이고 협소하며 폭력적인 행동에 쉽게 빠져든다고 주장한다. 

이는 낯선 상황과 맞닥뜨리며 성장해야 할 청소년이 모험을 기피한 결과 미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과 같다. 세넷은 다양성과 창조적인 무질서를 구성원 스스로가 통합해 나가는 생동하는 도시,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시련과 도전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진짜 어른들을 만들어내는 도시를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반비


2013년7월부터 9월까지 방송된 팟캐스트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사사톡)’의 ‘꼬투리 경제학’ 코너를 수정 보완해 묶은 책. 방송에서 공개된 짧은 강연과 대담에, 방송 후에 여러 애청자들의 반응을 참고해 집필한 방송 후기와 참고문헌(더 읽을 거리)를 덧붙였다. 방송의 생생하고 친근한 분위기는 살리면서도 좀더 알차게 활자화하였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케인스, 슘페터, 폴라니, 베블런, 그리고 마르셀 모스까지, 경제학자들의 삶을 살펴보고, 이들이 시대와 호흡하며 진짜로 고민했던 문제들이 무엇인지 그 시대의 배경 속에서 살펴본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를 빌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금융위기, 임금할증률, 비정규직, 식민지 근대화론, 개신교 문제, 사회적 경제, 장기 불황, 복지국가, 창조경제, 협동조합 등등의 한국 사회와 연관된 주제들이 이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새롭게 해석된다. 저자인 조형근은 ‘경제사회학’을 전공한 사회학자로서 왜 경제가 곧 정치이자 사회인지, 왜 경제가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지를 줄곧 설득력 있게 강조한다.



극해, 임성순, 은행나무


2010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컨설턴트>로 1억 원 고료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장편소설 <문근영은 위험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를 출간해 '회사 3부작'을 완성시키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줬던 작가 임성순의 장편소설. 

누구도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전시 상황을 배경으로 태평양 위를 표류하는 포경선 유키마루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 사건과 흥미진진한 서사를 바탕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존을 갈구하며 모멸을 견디는지, 살아남은 약자가 어떻게 사악한 존재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며 나약한 존재로서의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신자유주의의 위기, 제라드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후마니타스


2008년 미국과 유럽의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19세기 후반 이후 발생한, 자본주의 역사의 네 번째 구조적 위기다. 이번 위기는 구조적 위기이며, 몇 달 또는 몇 년 만에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예상하기 힘들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 『신자유주의의 위기』의 주제다.

먼저 책 전반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동역학과 이번 위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금융 및 세계화 과정을 분석한다. 미국 경제의 국제적 지위의 위기 과정의 연관 관계를 파악한다. 2부에서는 ‘제2차 금융 헤게모니’라고 저자들이 일컫는 상위 계급으로의 소득 집중에 대해서 탐구한다. 

저자들은 현대자본주의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저자들의 틀은 20세기 들어 나타난 소유와 관리의 분리와 그로 인한 새로운 계급, 관리자 계급의 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회학이나 경영학에 소개된 관리 자본주의론의 새로운 평가와 그에 따른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이론의 수정이 핵심이다. 

새로운 금융 상품 또는 금융 도구들은 이번 위기의 진폭을 확대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게다가 이런 과정의 세계화는 무역과 자본 이동의 확대를 야기했으며, 캐리트레이드, 조세 천국, 자산 관리와 같은 상위 계층의 국제적 차원의 고소득 추구를 가능케 했다. 그것이 세계경제를 얼마나 취약하게 하고 불안정화했는지가 핵심이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금융 위기로 불리기 힘들다. 이런 금융적 과정은 미국 경제에 특징적인 거시적 궤도의 구성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경제는 취약하지만 자신의 국제적 지위를 충분히 향유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상위 계층의 고소득 추구라는 형세를 뒷받침했다.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 개번 매코맥, 창비


호주국립대학 명예교수 개번 매코맥과 평화운동가 노리마쯔 사또꼬가 오끼나와 저항운동 70년사를 집대성한 저서다. 개번 매코맥은 <종속국가 일본>,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일본, 허울뿐인 풍요> 등을 저술한 바 있으며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사회문제를 역사적 지평에서 고찰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책은 15세기부터 번성하는 해상왕국이었던 류우뀨우왕국의 역사에서 시작해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점령을 겪고 일본에 '반환'되었지만 여전히 일본과 미국의 전략적 군사기지로 사용되고 있는 현재까지의 오끼나와 역사를 총정리한다.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본 현대사 교양서인 셈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운동과도 비견하여 주목할 만한 오끼나와 기지 건설 반대운동은 지역주민의 자치와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전세계적 패권국가에 맞서 동아시아 평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미일동맹의 패권주의적 팽창과 오끼나와 저항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책이다.



괜찮아, 잘될 거야!, 마나 네예스타니, 돋을새김


UN 선정 ‘국제 언론삽화상’ 수상, 이란 혁명의 상징 시사풍자 만화가 마나 네예스타의 신작. 마나 네예스티니는 망명 생활을 하면서 인터넷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이란과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억압과 검열, 종교 갈등, 여성 인권침해, 사회 불평등 그리고 반체제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정치범들을 옹호하는 그림을 게시해 전 세계에 그 실상을 알리고 있다.

2012년에 카프카의 《변신》을 모티브로 자신의 모습을 바퀴벌레로 등장시켜 이란에서 투옥되었을 당시의 상황을 담아낸 그래픽노블 《이란판 변신》을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이는 그림이 ‘카프카적(부조리하고 암울한)’이라며 자신을 탄압한 세력을 정면으로 풍자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에는 그간 그려온 정치풍자 삽화들 중 200컷을 선별해 이 책《괜찮아, 잘될 거야!》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의 제목 ‘괜찮아, 잘될 거야!’는 무척이나 역설적이다. 작가가 담아낸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에서 이 말은 공허한 울림으로 들릴 뿐이다. 그림에는 언론을 방패로 삼은 정부,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시인과 가수,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는 정치가, 짓밟힌 동심, 부정 선거, 핵무기 위협, 타인의 희생 위에 쌓아올린 행복 등 억압과 검열, 잃어버린 자유, 사회적 불평등, 공포심과 좌절감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이 그림들을 통해 중동의 실상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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