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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김진송 지음 / 난다 / 2012년 12월
평점 :
013.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세이분야) 활동의 차원에서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이다. 평가단은 전 달에 출간된 책 몇 권을 고르고, 알라딘 측에선 그걸 취합해 두 권의 책을 제공한다. 평가단을 시작한 지 세 달이 지났는데, 내가 택한 책이 모두 선택된 건 첫번째 달뿐이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이하 '이야기')는 내 선택지에 없던 책이다. 각종 인터넷 카페에서 진행되는 서평단 등의 활동을 관둔 건, 그저 '공짜'를 바라고 관심도 없는 책을 억지로 읽고 맘에도 없는 감상을 써내려가는 데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표지와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른다. 나도 제목에 혹해 <이야기>를 1차 후보군에 넣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야기'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만으로도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의 가장 큰 미덕(?)인 미리보기를 누른 순간 바로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한두 페이지를 가득 메운 인형 사진과 스케치, 짤막한 토막글이 보였다. <끌림>(이병률)의 느낌도 났지만 인형의 이미지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이때문에 1월의 신간에세이로 <이야기>가 선정됐을 땐 적잖이 실망했다.(12월에 출간된 에세이 중 읽고 싶은 게 많았다) 인형과 글로 어줍잖은 감성팔이나 하겠구나, 지레짐작하고 대충 거들떠보려 했다. 사실 초반 몇 이야기는 그랬다. 인터넷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이미지와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읽으면서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비밀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은 매번 달라졌습니다.
아니 사건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사건은 매번 똑같았지만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언제나 달라졌지요. 말하자면 그 집은 끔찍한 사건을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만 끔찍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바로 당신이 지금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_'비밀의 집', 63쪽
이 이야기의 이미지는 육각면체의 벽돌집이다. 그 위엔 사람이 하나 앉아 있고, 집 안에는 해골이 누운 관과 밖을 빼꼼히 쳐다보는 유령이 있다. 집 아래에는 이 인형들을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들이 있다. 무언가 그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물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사물을 보는 사람인 나다. 길거리는 다 큰 어른에게는 그냥 길거리일 뿐이지만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에게는 모험을 떠나는 여행길이다. 사물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이야기를 만든다. 찰나의 틈바구니에서 새어나오는 이야기를 읽는 맛이란 얼마나 달콤한지!
<이야기>에서 인용한 장 그노스의 '암흑의 신 페트롤리우무스의 전설'은 매우 재밌는 텍스트다. 석유를 비유한 암흑의 신 페트롤리우무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도 적절히 어우러졌다.(원 텍스트인 <인간과 사물의 기원>을 장바구니에 넣는 계기가 되었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아내의 꿈>은, 비록 오래된 클리셰지만 흥미롭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인 '개와 의자 이야기'는 그 자체로 뛰어난 단편소설이다. 인간과 개, 의자의 관계, 외형적 닮음에 대한 글인데 꽤나 통찰력 있다.
의자가 독립적이면 독립적일수록 인간은 오히려 의자에게 의지하려 들었다. 인간의 움직임은 조금씩 둔화되었고 점점 더 한 곳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많아졌다. 그게 새로 발견된 인간의 습성이었다.
인간은 의자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이 개에게 의존하는 일이 많아졌다. 개가 진간에게 충성할수록 그리고 인간이 개에게 의존할수록 어찌된 일인지 개의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다. 개는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고 불만은 없었다.
인간은 늑대의 후손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어 친구라고 부르는 대신 원래 자신과 똑같은 특성을 지닌 늑대에게는 악마의 탈을 씌워 박멸해버렸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친구를 만든다.
_'개와 의자 이야기' 중, 276쪽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엽편소설집이고, 상상력의 보고이며, 사물을 다르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은 의외의 곳에서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자명한 원칙을 알려준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