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뽀로 여인숙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공지영과 신경숙에게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었던 나에게 하성란은 상큼한 도발이었다. '선입견이 많은 사람'은 싫어하면서도 나같이 무수한 선입견을 짊어진 사람이 또 있을까. '예쁜 여자는 글은 별로다'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지, 겉장 안에 예쁜 작가의 사진은 미간에 살짝 주름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선입견 덕에 글읽기는 더 감칠맛이 났다. 기대가 작았기에 기쁨도 컸다고나 할까. 20살 진명이의 내면 세계를 상황을 통해 들여다보게 만드는 글은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아침마다 가방을 안고 달리는 진명이. 결국 선명이 죽은 후 더 건강하고 성실해졌다는 그녀의 독백은 구구절절한 슬픔보다 마음을 묵직하게 건드린다.

그런데 끝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리가 모자란걸까. 생각의 여지가 지나치게 많은 결말은 미국식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내게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의 다른 글도 읽어본 후에, 꼭 한 번 다시읽기를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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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무라카미 류 지음 / 예문 / 1996년 4월
평점 :
절판


69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나는, 무라카미 류라는 이름과 제목을 보고 '이 사람, 또 시작이군' 하며 뜻모를 미소를 띄웠다. 토파즈로 그를 처음 접한 나에게는 무리가 아니었다. 또 적나라한 성 이야기가 판을 치겠거니 생각을 하자 책을 판매대로 들고 가는 것이 왠지 부끄럽기까지 했다.

헌데 이것이 다 오해였다. 이제껏 읽어본 류의 책중 가장 상쾌한 작품이었다. 음란한 상징인 69가 아니라, 69년을 얘기한 거라니...^^;;;(에구에구 부끄러워라)경쾌하게 전개되는 류의 학창시절을 넘보면서, 나는 왠지 '친구'의 달리기 장면이 떠올랐다. 폭력으로 물든 영화 한 가운데의 그 달리기는 얼마나 기분 좋고 유쾌했던가. 69의 느낌이 꼭 그렇다. '~한 것은 아니고' 하며 끊임 없이 궤변을 늘어 놓는 살짝 뒤틀린 특이한 주인공을 통해서는 류와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사적으로 친해진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69를 류의 대표작이나 역작으로 꼽기에는 무리수가 있다. 하지만, 내가 토파즈가 아니라 69로 그를 처음 만났다면 거부감과 선입견을 해소하는데 걸린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류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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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寓畵箱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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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디어에서 난리를 치고, 발매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을 보면 난 왠지 심사가 꼬인다. 사실 책 선택의 기준 중 큰 자리를 베스트셀러 목록과 작가의 이름이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이름이 작품보다 앞서나가면 왠지 그러면 안될것 같은 불쾌감이 앞서는 것이다. <외뿔>도 그냥 이외수가 써서 유명해진 것 같아 선뜻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것을 그런 삐딱한 심사로 펼쳐들었는데, 그런 오해는 채 10p를 넘지 않아 스르르 풀려버렸다.

대부분의 책들은 읽는이에게 계속 깨달으라고 훈시를 한다. 무릎 꿇고 반성하면서 불편하게 다 읽고 나면, 깨달아야할 것 같긴 한데 당최 뭘 깨달아야하는지, 뭘 고민해야하는지 멍해진다. 하지만 외뿔은 쓸데 없이 가르치려들지 않는다. 킥킥거리며 읽어나가고 가끔 참 마음에 와 닿는 그림이 나오면 한 숨 쉬고...다시 웃고. 그렇게 수월하게 읽고 나면 그 때부터 꼬리를 문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 사랑이 뭘까. 나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내게 소중한 것들이 무어며, 잊고 있었던 것은 없는가...

이번 그림들은 이외수가 파지에 그린 것을 모았다고 한다. 쓸 모를 잃고 널린 이면지가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품다니... 그의 재능이 몹시 샘나는걸 보면, 난 아직 더 깨달아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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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자 the Closer 1
유시진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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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시진다운 상상력에 유시진 다운 결말. 이제 무르익은 유시진의 '유시진 표 만화'이다. 미련한 나는 처음 이 만화를 빌려와서는 잠시 심각하게 고민했다. '앞의 뒤'와 '뒤의 앞'이라... 대체 뭣부터 읽어야 되는거지? (정말 미련했기 때문에 해야하는 고민이었지만, 독자 중 한 사람쯤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주기를 작가는 희망하지 않았을까? ^^;;;)
시작은 굉장히 단조로웠다. 아빠와 아이. 어딘가 독특한 아이의 내면 세계. 그런 종류의 만화는 요즘 흔하다. 하지만 곧 이야기는 숨가쁘게 달려간다. 이상한 사람들이 나오고,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고, 또 다른 이야기와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그 이유가 밝혀지고......결말을 향한 이 복잡한 구성은 여러번 꼬인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스릴과 흥분으로 가득하다.

차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2권짜리 만화에 담다니, 대단한 실력이다. 유시진, 그 이름의 묵직함을 이 작품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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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1
카미오 요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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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참 유치하기도 하다. 뻔하다. 인물들은 전형적이고, 정말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인간들이 만화에서나 일어날법한 일들을 벌인다. 그런데......재밌다!!! '한 번 열면 멈출수가 없다'는 모 과자의 CF처럼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그만둘 수가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 모두 억지에, 우연에, 허황하기 그지 없는데 왜일까? 왜 재미가 있는걸까? 다 늙어서(?!) 주책이지, 츠카사를 보면 왜 가슴이 뛰는 걸까? 그건 아마도, '내숭을 떨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품성 심오한 것처럼 폼 잡던 영화에서 신파적인 요소가 발견되면 그것처럼 꼴불견이 없다. 하지만 '나 신파요. 울고싶은 사람 다 오시오'하는 식의 영화는 한껏 울려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좋다. 바로 이 만화가 그렇다.

애매하게 진정한 사랑이 어쩌고 하며 폼 잡지도 않고 어설프게 사회문제를 건드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재벌에, 키 크고, 잘생기고, 나밖에 모르는 남자!!! 모두가 한 번쯤 은밀히 꿈꿔봤지만 유치해서 감히 이야기도 못 꺼내본 사랑을 시원하게 풀어낸다. '꽃보다 남자'라는 제목부터가 그런 솔직함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사랑의,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만화. 거기에서 얻는 대리만족은 참 배부르게 뿌듯하다.

언제건 도서대여점에 들리면 나는 또 '꽃보다 남자'를 기웃거릴 것이다. 그런데, 솔직한 것도 좋지만 제목 좀 바꿀 수 없을까. 누가 뭐 읽냐고 물어보면 부끄러워서 차마 대답할 수가 없다.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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