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마커스.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패니까. 승리의 맛을 선사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바로 그 실패들이니까.
정수는 매 순간 노력을 기울여 자신을 지웠다.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되 동조하지 않았다. 적당히 기뻐하고 적당히 슬퍼했다. 반복하다보니 감정이 사라져갔다. 좋아하는 날씨도 싫어하는 날씨도 없어졌다.
죽음에 이르는 800만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에는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는 방법도 있다.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다는 말은 미안할 방법이 없다는, 돌이킬 도리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지나온 행로 속에 존재했던 불가해한 구멍, 그 뼈아픈 결락에 대한 무지와 무력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엘레나는 잘 듣지 못하는 자신의 몸이 아무것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다른 인간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은 걷지 않을 때의 그녀의 발보다 더 무감각한지도 모른다. 그들이 상대의 말을 듣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는 심정을 잘 이해한다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앞세우는, 남의 말에 귀를 닫고 사는 인간이라는 것을 엘레나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