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일곱 겨울 그애의 입술 감촉, 비오는 토요일 오후의 도서관, 텅빈 휴가지에서의 우리 넷, 커다란 고무통에 들어가 샤워하던 포항 민박집에서의 이틀, 국제시장통 작고 허름한 식당의 김치찌개맛, 스물두살 여름 주민센터에서의 둘도셋도 맛난 점심식사, 아지트처럼 모여들던 극장과 카페, 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 한여름의 휴게소 번개나들이, 한겨울밤의 공원, 검고 질펀한 모래사장, 소금기 절은 비릿한 바다내음, 가장 어린 날에 가장 높은 곳을 훔쳤던 해운대 스카이라운지 야경, 동네 쉼터 어둠속에서 나눴던 미래, 독서의 처음, 창작의 첫문장, 바다가 보이는 모텔, 처음의 수치, 엄마의 눈물과 아빠의 한숨, 영원할 줄 알았던 우정이 깨지는 걸 눈앞에서 보던 날, 비맞고 교문을 넘던 노을진 저녁과 물에 젖은 생쥐꼴을 한 우리, 그애와 이어폰 나눠끼고 듣던 곡, 밤 늦은 공부, 너무 빠르고 너무 늦은 울음, 기약없는 이별과 기다림, 서글픈 바닥을 확인하는 시간, 보잘것없는 날 향한 누군가의 질투, 시기, 외면, 잊히지 않는 표정과 몸짓과 외양과 행위 그리고 말.말.말. 기억.기억.기억. 당신이 뭐라든 유일한 나만의 것. 덧그림과 채색과 마무리. 삶은 기계적이고 프로그램적이고 규격화, 일률화된 규칙을 벗어나서야 비로소 진짜다.

 

<투명사회>에 의하면, 내가 본 투명사회는 상상과 확장, 예측불가능의 개념이 완전히 무너진 사회다. 거리(distance), 아우라, 비밀, 어둠, 눈속임, 전략, 비유, 파손, 구석, 차이, 내재성, 상징, 초월, 굴곡, 빈틈, 불투명, 즉흥성, 우발, 자유, 자연발생적, 깊이, 베일, 가림, 굽은 것, 우회적인 것, 중간지대, 불명확, 은둔, 균열 등 총체적으로 뭔가 정의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사라진 영역이다. 그러므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사진과 그림은 진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요구되고 아름다움은 본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과다와 과잉은 지양되어야 한다. 관계는 투명하게 내보이는 게 아니라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공평, 온당, 적절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더 오래 더 유익하게 유지될 수 있다. 즉, 투명의 지향점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 즉 무엇도 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예전에 노무현 전대통령이 지금 당장은 역사가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큰 틀에서 보면 결국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투명사회의 대항마는 가시적 과정이 가속화되는 속전속결의 프로세서가 아니라 고유한 시간, 리듬, 박자를 가진 상태에서 때로는 뒤로, 때로는 미확정적인 공간으로 또 부정적인 곳으로 가기도 하지만 결국 이 네거티브한 것들이 시너지를 일으켜 근원적 변화를 일으키는, 기능적이지 않은 사회다.

 

우리는 길 위에 있어야 한다. 삶이란 투입과 산출을 순환반복하는 기계적 서사에서 움직이는 결말 정해진 책이 아니라 중단, 종결, 상실, 심지어 결핍과 무(空)의 상태에 도달하는 한이 있어도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창의의 영역에 존재해야 한다. 관광자의 삶과 여행자의 삶이 다르듯, 경계와 문턱 없는 도전이 무의미하듯, 매끈하고 평탄한 인생이 재미없듯. 동경과 희망과 기대는 무조건 긍정적인 것의 증식과 대량화가 아니라 나와 너와 우리와 너희가 뒤죽박죽으로 꽉 차 있는 창고와 같은, 정돈되지 않은, 파란만장한 역사야말로 제대로된 매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투명성은 입때껏 말한 수많은 개념들의 반대편에 존재한다. 예상가능한 것, 박자도, 리듬도, 향기도, 아름다움도, 시간의 층과 침전물, 시간의 서사성과 비유의 매력이 사라진 현상, 내면의 심리나 주관성이 아닌 객관적 감정의 표출, 전시, 판매, 재현의 무대. 그래서 필름에 가둬진 시공간을 반복, 전시하는 영화와 즉흥성, 미묘한 차이, 느낌과 욕구에 치중하는 연극의 차이를 되짚어보기도 한다.

 

소셜미디어와 개인화된 검색엔진은 네트워크 내에 외부가 제거된 절대적인 인접 공간을 수립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을 닮은 사람들을 만난다. 여기에는 변화를 가능하게 할 어떤 부정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디지털 이웃 사촌의 공간은 참여자에게 마음에 드는 세계의 단면만을 제공하며, 그럼으로써 공론장, 공적 영역, 비판적 의식을 해체하고 세계를 사적인 장소로 만들어버린다. 인터넷은 친밀성의 영역, 혹은 아늑한 지대로 변모한다. 모든 먼 것이 제거된 가까움 역시 투명성의 한 가지 표현 형식이다. (p.74)

 

눈은 책 속 활자를 좇고, 귀는 음악의 선율과 리듬을 따라 움직인다. 그렇다고 내가 문장과 이미지와 소리 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 당신이 읽은 책을 오늘 내가 읽고, 내일 내가 읽을 책은 모레 당신이 읽는다. 우리는 다른 시공간에서 각기 다른 우주의 길을 걷는다. 책에 대한 느낌도, 감상도, 지식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일부러 그 감상을 일치시키지도 고치지도 않는다. 우리의 거리도, 감상도, 시간도, 공간도 아무것도 투명하지 않다. 내가 당신을 알 수 있고 당신도 그러하되, 서로 포개지지 않는 것. 플라톤의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지 말고 빛의 방향성, 서사와 인식의 세계, 존재의 저편(초월), 유혹과 변신, 환상과 가상, 기호와 시인이 존재하는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당신과 나는 여기서 처음 만났다. 공간은 이 주소 블로그 한곳이었지만 매번 서로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을 통과한 채로. 주로 내가 흔적을 남기면 당신이 그 흔적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식이다. 우리 언제 한번이라도 오롯이 함께한 적이 있었을까. '통제사회' 챕터는 버릴 데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지금, 바로, 여기, 서로가 자유롭고 소통하고 자가발전하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를 지켜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적인 동시에 불가능한 미래인지. 당신이 어디 있을까, 무얼 하고 있을까를 상상하는 시간으로 행복해지는 밤.

 

벤덤과 푸코가 말한 구시대의 '판옵티콘'이 벽과 철창으로 분리된 감옥 안에 든 피감시자를 감시자가 일방적으로 지켜보는 개념이었다면,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현시대의 '디지털 판옵티콘'은 각자가 자발적으로 공론장에 나와 노출증과 관음증을 동시상영하는 개념으로, 모두가 감시자인 동시에 피감시자가 되는 사회다. 후자는 실질적으로 '좋아요'만 존재하는 공간이며(페이스북의 경우), 자타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자발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하는 행위는 결국 강요와 같다. 마치 경쟁하듯 아이 똥기저귀 사진까지 찍어 올리던, 가사와 육아의 뿌듯함과 고충을 낱낱이 고해바치던 맘들은 생산한 정보가 타인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범죄와 협박의 시초가 되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친구수, 시간 등 현재와 최초에 목매고 숫자에 안도하는 모습은 그다지 이상할 게 없다. 그사람이 공개하기로 하는 한, 우리는 얼굴 모르는 사람의 주말 스케쥴과 사생활을 줄줄 꿸 수 있다. 때때로 부분의 합체는 전체의 아류가 되기도 하는 법. 부재하는 사유에 대한 무통無痛은 가시적 소통의 증가를 관계의 깊어짐으로 오해하게 한다. 가보지 못한 지구 반대편 친구를 통해 듣는 단면적 생활이 마치 내가 지구를 누비는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에 시달리게 한다. 때로는 유명인(셀러브리티)들의 삶을 제것으로 여기며 일주일 동안 빽빽하게 우리를 사로잡고 놔주지 않는 티브이 속 가상연애, 가상결혼, 가상동거, 가상육아, 가상여행을 통해 모든 것을 자신의 삶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남의 것으로 보낸다.

 

적어도 허락된 최대한에서 절반 정도는 오로지 내 오감과 관심과 욕망으로 채워지기를 원한다. 궁금한 마음을 보채지 않고 훔쳐본 걸로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내보이면서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 이 말이 저 말로 들리게 하지 않고 섞되 섞이지 않고 얼되 쉽게 녹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저 이치에 맞으면 흘러가기도 하고 아니면 멈추기도 하는 만만한 정거장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 공간에도 예전만큼 의미는 두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의미는 더 커진 셈이다. 잊힐 시간이 필요하다. 색다른 색채와 선율을 발견하고 경악과 충동이 미안하지 않을 때까지. 새 페이지에 당신의 이름을 쓰고 함께 하지 않아도 언제나 내편이란 걸 깨달을 때까지. 그리하여 당신이 그립지 않을 때까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5-22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3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3 0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3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4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6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7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