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를 박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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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 태양과 청춘의 찬가
김영래 엮음 / 토담미디어(빵봉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열 개의 거울 뒤에 숨은 카뮈. 눈으로 읽고 이해함으로서 만나는 카뮈, 카뮈, 카뮈에 대한 모든 것들.
세계, 고통,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비참, 여름, 바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알기 위한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마흔 여섯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카뮈가 남긴 소설, 산문, 희곡, 철학적 에세이, 시평, 사적인 글 등 다양한 장르적 탐색은 김화영 선생님의 오랜 노고로 번역되어 있는 전집을 읽음으로서 가능할 수 있다. 그의 글을 차곡차곡 읽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가 어린시절 그리고 삶의 일부를 보냈던 곳으로의 여행이 유일한 차선책일 것이다. 카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찬탄의 일환에서 엮어낸 이 책은 그가 남긴 작품들의 요약별 발췌를 통해 열 개 키워드를 반추한다. 우리가 카뮈를 생각하면 거의 항상 떠올리게 되는 것들. 그 빛나는 문장들을 유영하는 한편의 미장센이다.
그래서 이 책의 타깃은 명확해진다. 카뮈에게로 가는 입문의 역할이 아니라 카뮈의 매력에 다시 취하고 싶은 이들이 찾을 것.
가난과 유약함이 준 유리조각 같은 감성, 그가 살았던 파리와 프로방스, 북아프리카 알제리로의 기행, 저항과 부조리의 상징이 되어버린 작품의 의미를 헤집다보면 어느새 동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카뮈를 엿볼 수 있다. 태양 아래 청춘을 불태웠지만 열정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한 소년과 청년의 모습을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카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눈부심과 괴로움이 공존한다는 사실과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일 따름이라는 몇 개의 깨달음을 제외하면, 카뮈 곁에 놓여 있던 내 모든 경의는 어쩌면 아무런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카뮈라는 사람 자체에 매료된 것인지, 그의 불완전함을 사랑한 것인지, 위태로움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 했는지 알지 못한다. 많이 알아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카뮈에 대해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지만 카뮈는 내 20대의 일부를 채워준 작가에 속한다.
카뮈를 읽는 일은 존재와 존재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일이다. 소설 <이방인>, <전락>, <페스트>가 그랬고, 네 편의 희곡과 그가 발표를 한사코 거부한 처녀작 <행복한 죽음>과 미완성 유작 <최초의 인간>,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을 숨기지 않는 철학 에세이 <결혼, 여름>과 고통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로서의 행복을 찾아나선 <시지프 신화>, <안과 겉> 같은 철학적 사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알기 위해 읽을 것이 문학작품 밖에 없지 않다는 사실은 세 권의 <작가수첩>이 또다른 방법으로 증명한다. 거기다 사르트르와의 이념 논쟁이나 스승 장 그르니에와의 관계, 아름다움으로 존재의미를 다하는 유럽 곳곳의 그의 발자취까지, 이만하면 이름 만으로도 유혹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예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예술을 모든 것을 초월하는 저 꼭대기에 올려놓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반대로 예술이 저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예술이 그 누구와도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제가 모든 사람들과 같은 높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예술은 고독한 향락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공통적인 괴로움과 기쁨의 각별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최대 다수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수단입니다. (중략)' (p.281)
1957년 12월 10일 노벨상 수여식을 마감하는 연회가 끝날 무렵 열린 강연에서 카뮈의 말 중 일부분이다. 내면의 혼란과 광란의 역사, 가난과 병치레를 고스란히 겪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굴하지 않고 의지와 끈기를 보여준 그의 마음 안에 들어찬 예술에 대한 예찬과 작가로서의 다짐은 스물 몇 살의 도서관에서 마주한 이래, 철학과 예술, 사회와 역사를 향해 머리와 마음을 열어두는 일 또한 문학을 사랑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새겨준 계기가 되었다.
저자가 엮기만 했고 비평이 아닌 찬양에 가까운 이 책의 탄생은 별점으로 그 평가를 다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카뮈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책이며, 카뮈의 글을 발췌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쏟은 이가 다른 독자에게 카뮈를 소개하는 일이다. 인간을 하나의 틀에 가두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이라고 할 때, 카뮈가 남긴 작품들의 양 만큼이나 여러 조각으로 분열하는 이 책이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도 분명하지만, 마냥 좋았다. 이 찬연하고도 빛나는 사유 안에서 언제까지나 숨쉴 수 있다는 것이.
카뮈를 좋아한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마음만은 투명하다. 그가 가진 것이 한낱 문학과 이론 속에 머물고 마는 것이었다고 해도 그의 이름에 반응하는 내 속도는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다. 이십 대에는 문학에만 발을 담글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희곡은 손대지 못했다. 다시, 이 책을 발판으로 정의와 영혼에 다가가는 카뮈 읽기를 시작해야지. 어쩐지 햇빛 푹푹 찌는 더위 아래 양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이 청춘이 다하도록, 생각이 깊어지도록 그렇게 읽어야 할 것 같다. 그의 <작가수첩> 마냥 지금 나도 잘 쓰고 있는 것인지.
인생이라는 꿈속에서, 여기 한 인간이 죽음의 땅 위에서 자신의 진실들을 찾았다가 잃고, 전쟁과 함성, 정의와 사랑의 광기, 마침내 고통을 거쳐서 죽음마저 행복한 침묵인 평화로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또 여기...... 그렇다, 나는 적어도 이것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 이 유적(流謫)의 시간에, 인간에 의하여 이룩되는 작품이란, 예술이라는 우회로들을 거쳐서, 처음으로 가슴을 열었던 두세 개의 단순하고도 위대한 이미지들을 되찾기 위한 기나긴 행로에 지나지 않는다고 꿈꾸는 것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20년 동안 일과 작품 활동을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나의 작품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안과 겉> 서문 195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