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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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나는 없다. 대신 나무가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 그녀일 수도 있지 않냐고? 아니다. 이 나무는 남자가 맞다. 여자나무는 따로 있다. 계속 읽다보면 나온다. 그녀의 이름은 '이졸데'다. 그는 당연히 '트리스탕'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다. 오, 차라리 애증이라면 모를까. 트리스탕, 그러니까 나(나무)는 이졸데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게 쏟아져야 마땅한 스포트라이트와 내가 받아야 할 눈부신 태양의 햇살을 가린 몹쓸 그녀였을 뿐이다. 나는 이졸데에 대해 말할 생각이 거의 없다. 그녀 보다는 '란 박사'가 내게 더 소중하다. 그리고 나로 인해, 나를 향해 비춰질 모든 이야기들이 중요하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하자.

 

내 이름은 트리스탕, 삼백 살이 조금 못 되었으며, 란 박사가 키우는 배나무 두 그루 중 하나다. (p.8)

 

이 나무가 배나무라는 게 이 소설에 영향을 미칠 지는 모르지만 이 나무가 남자라는 것은 대단히 영향을 미친다. 어느 날 강한 돌풍을 맞고는 트리스탕이 쓰러진다. 혼자만 희생되었다.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지만 중요한 것들은 아니다. 트리스탕이 쓰러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쓰러진 트리스탕이 자신의 일기를 쓴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가 들어야 할 모든 것, 우리의 모든 것, 나무의 모든 것이 트리스탕의 독백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단지 나무, 오로지 나무, 그것보다 훨씬 더 깊고 크고 놀랍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나무는 누군가 자신에게 토로하는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은 갖지 않는다. 자신이 지각하는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태풍이 불고, 화제가 일어나고, 가뭄이 닥치고, 나무꾼이 나타나리라는 예감 외에 다른 불안은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들도 느낄 수 있는 이 같은 불안감은 인간들이 느끼는 불안과는 다른 데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아니다. 조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pp.13-14)

 

나(나무)는 그렇다. 인간들은 제 눈(기준과 잣대)으로 나를 봐서는 안된다. 내 불안을 재단하려 해서도 안된다.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내가 하려는 얘기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만도 한데, 그래도 모르겠다면 귀찮지만 계속 이야기해보자.

 

나는 죽어가고 있다. 쓰러진 건 처음이지만 이미 뿌리가 하나 밖에 남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내 주인 조르주 란 씨가 돌아오자마자 장작이 될 것이다. 나는 루이 15세 치하에 태어났다. 1727년생. 나는 당신들이 모르는 300년 가까이의 역사를 살았으며 그중 몇몇은 실제로 겪기도 했고, 당신들이 아는 나 외에도 나만이 가진 '인간화 된' 추억들이 있다. 아, 물론 내가 죽는다는 것이 내게 무척 슬플 거라고 슬프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그건 내 뜻이 아니다. [죽음=슬픔]의 등식은 인간들의 의식일 뿐 내게는 아니니까.

 

마을에서 나는 평판이 나빴다. 마을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은 나를 이 외진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연루시키더니, 결국은 그 책임자로 만들고 말았다. 나는 한 마녀를 불태워 죽였고, 신부들을 목매달았으며, 한 시인을 자살로 몰아갔고, 한 영국인을 불구자로 만들었으며, 아이 하나를 총살시켰다... 게다가 가지 치는 일꾼이 머리를 땅으로 향한 채 곤두박질치게 했다. (pp.21-22)

 

내 몸에는 '자크'의 두개골을 박살 낸 총알이 박혀있다. 프랑스에서 제일 작았던 레지스탕스 '자크'는 내 주인 조르주 란 씨의 아들이다. 그는 총알의 추억으로 나를 사랑한다. 조르주 란의 도움을 받아 나(트리스탕)에 대한 책을 쓰려던 야니스, 내 이름을 붙여주었던 조르주 란의 오페라 가수 아내 자클린, 옆 집에 살며 나의 일부로 새로운 나(나무의 꿈)를 만들어준 꼬마 마농. 많은 식구들이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 다음 얘기는 열세 살 마농을 훌쩍 키워 아리따운 숙녀로 만들어준다. 15년 후.

 

갑작스런 차사고로 부모를 잃은 마농은 조르주 란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랐지만 양부모의 죽음 이후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에 의해 쫓겨난다. 하지만 나(나무의 꿈)만은 항상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조각실력과 사랑하는 남자 야니스를 찾아주었으니 대체 내가 행운의 나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둘은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나눈다. 게다가 그보다 더 중요한 일마저도 해치우기로 한다.

 

그들의 추억과 꿈이 담긴 나(트리스탕)의 역사와 세월과 이야기가 담긴 영화와 책을 만들기로. 제작의 기회는 마농(이제 트리스탄)의 능력으로 붙잡고, 야니스는 글(시나리오와 책)을 쓰기로 한다. 아참, 트리스탄은 트리스탕의 여성단어로 마농의 자작 닉네임이기도 하다. 사랑스런 나의 트리스탄.

 

그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요. 게다가 등장인물도 다들 쟁쟁하잖아요. 루이 15세, 발자크, 나폴레옹 2세, 드레퓌스 대위, 파블로 피카소... (p.113)

 

사실은 이와는 많이 다르고 훨씬 사소한 주인공들이 등장해야 하지만 알다시피 영화와 책은 허구일 수록, 저 너머 세상을 다룰 수록 더더욱 부풀어 가는 성질의 것이라서.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그들의 아이가 생긴 것이다. 야니스는 바라지 않고 마농(트리스탄)은 죽도록 원하는 바로 그 아기. 그녀는 몰래 낳으러 가고 그는 오로지 나(트리스탕)에 대해서만 골몰한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별처럼 쏟아진다. 내가 가진 이야기들은 아는 것부터 모르는 것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흘러넘친다.

 

그들이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거두지 않아서 기쁘다. 물론 그것들이 거의 사라져버려 헛간 구석이나 집안 난로의 장작으로만 멀뚱히 지내야 한 적도 꽤 오래 있었지만 슬프지 않다. 나는 그들에게 추억을 되찾아주는 소중한 기억이자, 과거 300년 역사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존재다. 기죽을 필요 없어. 기죽지 마.

 

들어봐, 이제부터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는지. 사실 나는 내 이야기가 마음에 들거든. 때때로 야니스가 꾸며낸 이야기마저도. 그 시작은 클래런스 해트클리프 경이 조르주 란(그러니까 내 주인)의 지붕 위에 불시착하게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게 나의 모든 것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는 레지스탕스(제2차 대전 때 독일점령하에 놓인 국가들의 지역에서 일어난 저항운동)를 피해 -사실은 영국으로 밀려드는 레지스탕스들을 피해 망령한 것- 공군을 꼬드셔 기어이 낙하산으로 날다가 떨어진 잉글리쉬(영국인)였다. 내가 나의 기능과 인간의 정신에 대해 탐구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그였다. 그는 기발하고 무모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무질서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의 종식을 내 주인의 초가집 지붕 아래에서 지켜보았다. 당연히 나도 그를 지켜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트리스탄, 야니스, 그들의 아들 토에, 나를 훔쳐 달아났던 샤픽 그리고 트리스탄이 죽은 후 야니스에게 생긴 애인 오드리, 토에를 키워낸 아마존 부족, 환경과 나무를 파괴하려는 이들과 싸우는 과정,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던 야니스와 토에가 한 경매장에서 기적적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모습 등 아주 크고 긴 이야기다. 트리스탄이 자신을 떠나 죽어버린 후 삶의 끈을 놓으려 했던 야니스의 부활기이기도 하며, 야니스가 나(트리스탕)에 대해 쓰기 위해 내 과거, 현재, 미래를 탐험하는 동안 나 또한 동시에 나의 모든 것과 이들의 모든 것,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오래 전부터 내게만 들리는 두 아이의 목소리, 드레퓌스 사건, 히틀러의 출생, 비시 정부 등의 오브제를 좇아 낚으러 간다. 탄생과 소멸까지 내 위대한 비밀들이 드디어 풀리는 순간은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망각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인간의 학살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지구는 스스로를 제어하고, 땅은 피를 마시고, 나무들은 그대로 머무른다. 종교라는 말이 지성이라는 말과 같은 유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말고 누가 기억하겠는가? 관계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상호작용을 하도록 강조하는 것... (p.199)

 

아, 나는 인간의 비루함, 낭비, 실수, 오욕을 너무나 많이 또 정확히 보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 뿐 아니라 우리도, 모든 자연(환경 혹은 생태계) 또한 조정하고 진화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은 늘 불평할 뿐이다.

 

21세기 말 인간 전문가들이 예언하는 기후온난화와 핵겨울 대신 이루어질 인간 재고 정리는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많은 수의 인간들이 갑작스레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우울증에 저항하는 유전자를 발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생명 형태가 지상에 존재하는 목적이 공감을 통한 인식의 확대이고, 이 같은 기능은 증오와 무분별한 이기주의와 절망 속에서는 완수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p.239)

 

시간이 흐르고 야니스는 어느새 백발이 되었다. 더이상 사랑을 나누지 못하게 된 그가 몰두하는 것은 과거다. 그가 나이를 먹고 더욱 더 현재나 미래에서 등 돌릴 수록 과거에 집착하게 되었고, 나는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루이 15세 통치 하, 생메다르 묘지의 얀센파 광신자 사건과 왕의 두 아이에 대한 은밀한 살인. 그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던 "루이 14세가 좋아해서 매일 아침 먹었고, 모든 귀족에게 하사했던 품종인 빌구테 배"(p.250). 배의 씨까지 남김 없이 먹다 경련을 일으켜 숨을 거두어 매장된 아이들. 쌍둥이의 위 속에서 싹을 틔워 자라난 배나무 두 그루가 바로 나(트리스탕)과 이졸데였다. 이후 내게 생긴 모든 비극적 사건들과 내 아래에서 죽어간 사람들, 내가 흡수한 피들은 모두 쌍둥이의 저주 때문이었나.

 

하지만 나는 달라지고 있다. 상시 전시 박물관에 안착된 유일한 나(나무의 꿈)는 이미 사람들에게서 잊혀진지 오래다. 설상가상 야니스가 죽어버린 이후로 나에 대한 책, 그러니까 내 자서전은 그다지 인기도서가 되지 못했다. 이제 나는 없다. 나는 폐기되는 걸까. 이토록 오랜시간 동안 내가 뿌리고 흩어놓은 기억들을 따라 이리저리 시간여행과 공간여행을 했던 나는 나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가장 많이 알게 된 지금, 이 세상을 떠나야 할까.

 

아니었다. 나는 70년 전 어린 마농이 뱉어놓은 한 알의 씨로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느껴졌다. 나는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고, 가고 싶은 모든 곳들에 갈 수 있었고, 다른 모든 이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휴면 중이지만 곧 깨어날 것이다.

 

나는 그 씨앗에서 내 존재의 향기가 풍기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을 알고 놀랐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깐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새로운 성장에 나 자신을 맡겼다. 내 기억은 멈췄다. 그리고 다시 삶의 침묵이 시작되었다. (p.256)

 

나는 부활했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전생을 잊게 될까 기억하게 될까. 기억해도 좋겠고 잊어도 좋겠지. 하지만 더이상 인간의 의식과 정서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싶다. 나는 나무니까 그들과는 다르니까. 나는 내가 느끼는 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많은 것을 기억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즉, 역사를 담고 있는 나무니까.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나무로 태어날 것이다.




 
 
소이진 2012-02-04 00:03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이님께서 작성하신 리뷰들은 댓글을 달기가 너무 힘들어요.
리뷰가 너무 좋기도 하지만 또 그에 따라 어렵기도 한걸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 대단하구나,하고 추천만 콕 박고는 감히 댓글 달 엄두도 못내고 뒤로 버튼을 누르시는 것 같아요 ㅎㅎ 저야 이 책의 표지의 귀엽지만 장엄한 모습에 반해 댓글을 남기지 않을수가 없지만요.

pek0501 2012-02-04 00:13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긴 글이라니... 제 글은 여백이 많아 사실 그렇게 긴 글은 아니거든요.
님의 글은 글자수가 많아요. 그래서 알찬, 꽉찬 리뷰의 이미지를 풍겨요.
나도 추천만 누르고 사라질래요. ㅋㅋ
 
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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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극단과 기다림이 삶의 전부라고 말하는 두 자매가 나온다. 이건 초반이니, 자매의 가치관이 쭉 가게 될 지 어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상관도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 늘 선택에 강요 당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극단이 아니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니나가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1930-1940년대 독일을 살았던 니나의 정신상태와 결정과 경험에서 오는 삐뚤빼뚤한 착란들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극단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외치는 의견이 때때로 더 옳게 보인다. 명확한 것을 안정으로, 불명확한 것을 불안으로 느끼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 알레고리와 알고니즘, 추상성 속에 놓인 시대의 상처와 불안이 개인의 삶을 어찌 좌지우지하지 못하겠는가.

 

이제 믿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것이 살아있는 증명이라는 것을. 대신 믿는다. 죽은 듯 고요한 삶 속에도 아니, 평온해보이는 심장 안에 요동치는 불꽃이 숨어있기도 한다는 것을. 니나는 모든 것이고, 니나를 탄생시키기에 그즈음 독일의 불안은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다름을 향해 그토록 처절하게 내달려왔으면서 차이를 알기 무섭게 상대를 쳐내는 교묘함. 고통과 격정이 살아있는 증거라면, 어째서 니나는 지금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왜 슈타인을 받아주지 못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녀로 인해 온전히 그에게 안기지 못하도록 만든 것일까. 

 

내가 인생에서 아무것도, 어떤 의미 있는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내 인생은 그냥 사라지고 있으며 나는 살지 않았다는 불안감, 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영원히 내 인생은 작은 궤적 속에서 움직일 뿐이라는 불안감들입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한테서 어떤 의미 있는 것이 나올 수 있겠어요. 이 무슨 오만인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당신한테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너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어> 하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무언가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까봐 불안합니다. 그 무언가를 영원히 상실할까봐 불안합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안의 가장자리, 아직 포착 가능한 불안의 제일 바깥 가장자리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뭔지 모릅니다. (pp.20-21)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던가. 사랑을 내려놓음으로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 말하는 대신 침묵을 택하는 일, 묻기 전에 끙끙앓는 일, 니나처럼 뒤늦게 안 사실에 대해 이제와서 돌이키려 하지 않는 일 모두 용기로만 가능했다. 고전문학이 다 그렇지만 지독하게도 밑줄을 많이 그었다. 누구에게나 좋게 읽히는 책, 누구든지 좋다고 하는 책, 작가도 작품도 너무 유명해서 흠이 없는 책은 유난히도 태클을 걸고 넘어지고 싶은 법. 그래서 더 줄줄이 문단마다 밑줄을 아니 포스트잇을 붙여뒀을까. 붙이는 것도, 떼어내는 것도 모두 내 것이나, 붙이는 나와 떼어내는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삶이 불편한 사람은 니나를 보며 전후 불안에 미쳐버린 광기어린 여자의 하염없는 독백, 쓸데없는 하소연으로 일축할지 모른다. 니나의 갈구하는 삶 전부를, 그녀 안에 도사리는 불안과 광기와 체념을 감싸기가 벅차다. 그래, 이건 벅찬 일이다. 동시에 어린 날들 날 괴롭힌 모든 고민이기도. 어째서 내가 너로 인해서만 증명되나. 모든 화두를 풀지 못하는 숙제에 맞춰놓고 낑낑대다 날이 새도 그때는 두렵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못된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됐다. 그런 내가 요즘 데스노트를 쓴다. 없어져버려라, 쓰고나서 멈칫, 어쩔 땐 움찔, 그렇게 심장에 못을 하나쯤 박아넣는 기분을 느낀다. 피노키오 인형이 되어가는 고독을 맛본다. 흔들리지 않도록 꽝꽝 박혀버린 못, 스며들 수도 튀어나갈 수도 없는 불안. 불안 속에 더욱 또렷한 나의 존재감. 나는 불안으로만 존재한다. 그러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렇지만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폭풍우에 의해 약간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았다. 이 배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어딘가 자기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해안으로 가게 되리라고 믿을 것이다. 니나의 절망이 진정에 와닿고 나의 가슴을 후벼팔지라도 내가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닐지. (p.101)

 

몸이 다 커버렸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망설임없이 니나를 만나야 한다. 흔들리는 배에 올라탄 힘 없는 승객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내 안에 무엇을 키우며 사는지 알고 싶다면 그래도 니나를 만나야 한다. 니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비로소 모든 것이 된 여자. 슈타인의 마음 속이나 언니의 삶의 지표에서도, 니나 자신의 의식 안에서도 모두 불완전함으로서 완벽해진 여자다. 니나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곁에 가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재능을 타고 났지만 더 쓰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러고도 집시여인처럼 하염없이 헤맨다.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삶. 흔들림이 그녀를 뿌리째 털어낸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을 노래하는 건 시인만이 아니었나 보다. 늙은 남자 슈타인이 어린 여자 니나를 욕심낼 때 슈타인은 이러한 모든 니나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녀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하겠다는 뜻이다.

 

누가 누군가를 가질 수 있는가.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갖지 못한 건 니나였을 뿐인데 슈타인은 모든 것을 갖지 못한 것과 같다. 뿌리, 용기, 안정, 평온, 사랑이 그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많은 것을 가진다. 불안, 흔들림, 경이, 전율, 열망, 폭발하는 삶의 의미들. 척박한 삶의 빈틈으로 하염없이 스며드는 모든 것들은 사랑으로 퇴치가능한 불안이 아니었다. 훨씬 더 밑바닥에 존재했다. 소극적인 그의 사랑을 비웃을 수 없었다. 그를 홀대할 수도 없었다. 나는 완전한 절망을 원했다.

 

내 시가 형편없다면, 정말로 형편없어서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감상적이고 싸구려라면, 나 자신의 내부에도 감상벽과 싸구려 경향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거야. 누구든 그가 쓴 것과 똑같아. 이걸 분리시킬 수는 없어. 만약 언니가 좀더 날카롭게 주의해 본다면, 모든 가짜를 꿰뚫어볼 수 있을 거야. 슈타인의 말이 전적으로 옳아.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 (p.119)

 

나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 유혹 당하는지,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지, 인간적으로 매료 되는지 비교적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소용돌이 치는 느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알 것 같으면서 알 수 없어 다시 안달한다. 그래, 나는 안달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할 때 소용돌이는 얼마나 미치도록 안락한가. 여기도 저기도 아닌 곳이라던가. 숨을 곳과 증발할 곳이 있어 평온함을 느끼던 삶. 뽐내고 아는 체 하고 싶어 안달하던 삶.

 

나는 니나가 느끼는 감정과 니나의 삶, 부러워하면서도 선뜻 니나처럼 살지 못하는 언니, 니나를 사랑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사랑하지 못하는 슈타인의 심장, 어느 한 곳에 놓이지 않는 수선화 같은 삶을 알 것 같다. 강처럼 흐르고 싶지만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는. 갖기는 싫고 남주기도 싫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원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어 고뇌하는. 모든 것들. 이름 없는 뚜렷한 것들. 삶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지배하는 어떤 영역의 중요한 혹은 사소한 일부분들. 무엇을 사랑했었나, 우리는. 어디를 향하는가, 내 심장은. 내가 원하는 것과 이루어진 결과가 꼭 같아지는 날이 오기나 할까. 나의 질문은 공허한 공간을 떠도는 울림으로 되돌아온다.

 

니나는 엘베 강과 같은 존재다. 유혹적이고 순진하며 도덕에 얽매여 있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낯설게 느껴져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또한 니나가 언젠가 여자가 되었을 때 가지게 될 얼굴을 이미 보았다. 니나가 자신의 인간적인 영혼을 인식할 때까지 무슨 일이 더 일어나야 할 것인가? (p.123)

 

얽매이기 싫은 삶을 감당하려면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본능대로 살기 위해 원하는 것 앞에 더 원하는 것을 놓을 수밖에 없다. 선택의 순간에 비교적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영혼이라면 여자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을 감싸야 한다. 총소리, 숨소리, 한숨소리가 지배하던 땅이 있었다. 인종 싹쓸이가 위험한 이유는 숙청 자체가 아니라 남은 자들의 혼란 때문이다. 혼란. 대재앙. 홀로코스트. 테러. 척결. 땅과 지배 전쟁이 타당성에 골몰할 때, 니나는 내면에 귀기울임으로서 침잠한다.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그녀는 더이상 이 땅에서 사람 답고 여자 답고 어른 답게 살지 못한다. 겪지 않고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버린다.

 

버림 받은 삶, 책임 지는 삶, 극단의 삶, 본능의 삶은 되어버리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않던가.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삶도 있지 않던가. 어떻게 나를 빼고 나에 대해 말할 것인가. 편린으로 가득 찬 편협한 경험을 전체의 보편적 진리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좋아하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으로 어떤 영혼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하물며 살아가는 일이 벅찬 감동이라는 걸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영혼을 어느 누가 증명해 보일까. 만약 내 안에 이것들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나아가며 무엇으로 나를 멈추게 할까. 아무도 자신의 심장을 들여다보지 않음으로서 타인에게 상처주는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 알겠다

 

그런데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불편합니다. 당신은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몰아갑니다. 당신은 나를 수줍은 소녀로 만들고, 어떤 때는 성숙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나는 그중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자유롭게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속에 수백 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느껴요. 모든 것은 나에게 아직 미정이고 시작에 불구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어떤 것에다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당신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정말로 나를 모릅니다. (p.127)

 

초반에는 이해할 수 없던 사실들이 중후반을 지나며 차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니나의 삶. 슈타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자유, 평화, 고독, 용기, 어둠, 갈망, 열정 등등. 니나의 언니가 읽는 슈타인의 일기와 편지, 니나와 함께 머문 며칠 간의 대화, 마지막 니나의 언니와 슈타인의 만남 등으로 꾸려진 이 소설은 정확히 누군가의 가슴 정중앙을 겨냥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 순응하게 하는 특유의 힘을 가진 소설이었다. 자유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거대담론이 없었다. 니나는 바로 그 자유를 위해 사랑마저 회유당한 장본인이었고, 슈타인이나 니나의 언니 의견과는 달리, 나는 니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가 누군지 그게 슈타인인지 끝까지 알 수가 없어 초조했다.

 

아마 그녀는 나를 사랑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나는 그녀가 내 안에서 보기를 원하는 것만 사랑할 수 있었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노여워했다. 그러나 나는 자기 합리화나 안일한 생각들을 폄훼하는 그녀의 고귀한 습관이 나 때문에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pp.177-178)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로 종결짓기에 이야기는 너무나 크고 무겁다. 니나 신드롬. 우리가 니나에게서 본 것, 내가 니나에게 마지막까지 바란 건 사소하고 잔인한 사랑은 아니었다. 어째서 니나가 되길 바라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할까. 어째서 니나는 그 불안과 흔들림으로 모든 남자들의 불씨가 되었나. 하는 것들에서 자주 멈칫했다. 도망가지 않는 것과 손을 맞닿아 보는 것. 하지만 그를 위해 피해버리는 것. 이 모든 것을 글로 쓰기가 두렵고 벅차다. 니나는 글로는 표현되지 않는 더 깊고 은밀한 곳의 간절함인 것 같다. 모든 순간에 나서 싸움으로서 존재를 드러내었던 니나가 결국 슈타인을 만나지 않고 영국으로 가버린 것으로 나는 모든 생의 의지를 본다. 어째서 슈타인에게만 그토록 냉정하고 모질게 굴었는지. 삶의 위험한 순간들마다 그에게 상담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를 거부했던 까닭은 무엇인지.

 

그때 나는 생각했어요. 봐라. 너는 중요한 인식의 순간에, 적나라한 진실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 다시 들어가라. 노인을 보고 너 자신을 보라. 비록 두렵기는 하겠지만 전혀 해는 안 되는 법. 이것도 삶의 일부일 뿐.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 추악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p.190)

 

마지막에 이르면서 드디어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와 도전으로 얼룩진 삶이야 말로 니나가 불안했던 이유이자 용기였다는 것도. 평온한 세상이었다 해도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기에 적절치 않은 여자였을 것이다. 모험과 도전으로 너울거리는 격정스런 일생이야 말로 그녀가 가장 바랐던 삶이니까. 가만히 앉아 정말 신나고 즐거운 일 없을까 외치는 우리의 심장에도 니나의 붉은 열정 한 가닥이 박혀있음을 이제는 알겠다. 무언가는 유혹하고 나는 유혹을 외면하고 유혹은 누군가의 삶 한가운데 들어가 똬리 틀고 기다린다는 걸. 꺼내줄 날만을 학수고대 한다는 걸.

 

내가 우는 것이 슈타인의 지난 고통과 니나의 엄청난 이별 때문만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리고 축축하고 촘촘한 회색빛 그물에 얽혀 있듯 자신의 운명에 얽혀 있는 인간들 때문에 우는 것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그 그물을 찢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p.370)

 

그러면 이제 우린 니나처럼 한치 두려움 없이 -행여 두렵더라도-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그물에 걸려 징징대고만 있을 것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할 것인가. 내 삶에만 도전과 모험과 기적이 없다고 목소리 높일 것인가. 다 여기, 삶의 한가운데 있는데!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고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내 인생의 주도권은 원하지 않는다 해서 넘겨줄 수도 없는 일. 아마 니나는 불꽃으로 장미가시로 빛으로 모두의 안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안에서 니나는 열정이고 용기다. 오래도록 꺼져서는 안될 빛이다. 빛은 나를 향해서만 비친다. 한 줄기 빛은 나를 따를 것이고 나는 눈감지 않을 것이다. 니나가 그러했듯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켰듯이.

 

그렇게 모두 그물을 찢어낸 작은 구멍 사이로 진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구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것이므로. 그 안에 진짜 내가 있을 것이므로.




 
 
소이진 2012-02-03 19:09   댓글달기 | URL
이 책 수다쟁이님의 소재에서 봤어요.
저 표지의 여성분이 작가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적이게 생긴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책에도 더욱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2-02-03 20:52   URL
맞아요, 수다쟁이님 서재에서 봤어요. 제 책장에는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필독서지만 저는 예전부터 필독서들은 다 멀리해요ㅋㅋㅋ 그래서 이렇게 컸지요^^

말없는수다쟁이 2012-02-03 20:59   댓글달기 | URL
결국 쓰셨군요, 흐흐~ 저는 이 책 리뷰 못 쓸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책이든 그것에 대해서 리뷰를 못 쓰겠어요. 손글씨로 글을 쓸지, 키보드로 쳐서 글을 쓸지도 모르겠고, 문단별로 핵심 내용을 구분해야 하나 그냥 일기처럼 솔직하게 써야 하나, 이래저래 어렵게만 느껴져요. <활자잔혹극>의 유니스처럼 되는건 아닌가 몰라요 ㅠ ㅠ

아이리시스 2012-02-03 21:08   URL
어맛, 수다쟁이님이다ㅋㅋㅋ 요즘 말예요. 카뮈와 지드를 쓰고, 사르트르를 쓸 수 있다면 모든 소설의 리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말테의 수기]도. 난 이거 읽지도 못하겠어요. 진도가 너무 안나가서.. 백만년동안 읽을 것 같아요. :)

너무 많은 게 오면 오히려 쓰지 못하는 거고 어려운 책일 수록 당연히 쓰지 못하겠고 그렇죠! 얼마나 억지로 썼는지 막상 독서를 끝내니까 이 책은 남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뿌듯했죠. 근데 읽으면서 막 써둬서 올릴 수 있었어요. 내가 썼지만 나도 못 읽겠는데 누가 읽을지 궁금( '')


문단구분은 읽는 사람을 위해, 쓰는 건 수다쟁이님 마음대로! 알았죠?ㅋㅋㅋ
유니스가 어쨌는데요? 리뷰를 못 읽어서 읽으러 가요.

2012-02-03 21:14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3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리포핀스 2012-02-03 21:17   댓글달기 | URL
멋진 책, 멋진 리뷰예요. 제가 읽고 갑니다. 한 글자도 안 빼놓고-

아이리시스 2012-02-03 21:31   URL
땡큐 베리 머취. 꼭 다 읽고 독후감 써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2-03 21:27   댓글달기 | URL
와..진짜 멋진 리뷰..아까 와서 읽다가 나머지는 지금 읽었어요. 어렵기도 하지만 문장들이 좋아요
근데 전 이 책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희 집 책꽂이에 있었는데도 한 번도 읽지 않았어요.
제목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50대가 되면 읽어보겠어요...ㅎㅎ

아이리시스 2012-02-03 21:33   URL
역시! 난 대역죄를 지어도 내 편이 되어줄 분들이 있는 거였어..( '') 뭐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요. 제가 문학학사를 딴 사람이 아니고 '이과반'에서 자연스럽게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면 절대 말렸을 거예요. 이걸 읽어서 어쩌겠다는 거예요. 히틀러나 홀로코스트 관련 책 하나 읽는 게 낫지 하면서요. 그러니까 50대에도 읽지 마요ㅋㅋㅋ 60대에 읽어요, 현맘님.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pek0501 2012-02-04 00:19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의 리뷰를 쓰셨군요.
제가 표지가 닳도록 읽은 책이랍니다. ㅋㅋ

"얽매이기 싫은 삶을 감당하려면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본능대로 살기 위해 원하는 것 앞에 더 원하는 것을 놓을 수밖에 없다." - 난 가끔 이런 문장을 쓰는 아이님의 나이를 의심하게 돼요. 너무 성숙하셔서...ㅋㅋ
그리고 우리 아이님의 특징은 열거법을 좋아하신다는... 것... 나도 배워 써먹어야징...
 

좀 색다르고 덜 알려진 여기 아닌 낯선 곳의 소설을 읽고플 때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찾는다. 스스로에게 책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본래 따박따박이 불가능한 성격이라 사모아둔 것은 아니고 몇 권 가진 게 있는데 그 중 이게 제일 얇아서 읽기 시작했다. 책탑 맨 아래에 있어서 꺼낸다고 먼지 다 뒤집어 쓰긴 했지만. 보기 드물게 이탈리아 여성작가인데 태생은 스위스. 아, 이럴 경우 이 여자는 스위스어를 쓸까, 이탈리아어를 쓸까. 아님 둘 모두를 쓸까. 아참, 스위스는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 등등을 섞어쓰는 연방국가였지. 스위스어란 게 없지. 그러면 어떤 언어로 소설을 썼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긴 해도 오래 가지 않는 단편적 의문이라 책을 펼치고 읽어내려가는 즉시 잊어버린다.

 

뭘로 썼든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나는 번역된 글을 읽을 뿐이잖아. 아주 오랫동안 내게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나라는 로망이었다. 그걸 어디서 써먹을 거라고 나는 그토록 열을 올렸던가. 베네치아에서 사온 보라색 목걸이가 유난히 반짝이면 나는 로망 속 바로 그 나라로 꿈나라 여행을 떠난다. 내게는 아주 어릴 때부터 머리맡에 있던 불이 켜지는 커다란 지구본과 색색깔로 칠해진 멋진 세계지도와 이제는 세계지도마저 그릴 정도로 달달달 외워버린 국가와 수도이름. 더이상 그것들이 낯설지 않다. 그래버린 나도.

 

 

 

 

 

 

 

 

 

 

 

 

 

 

여기 <아름다운 나날>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표제작 '아름다운 나날'과 '프롤레테르카 호'. 두 편의 상관점을 쉽게 찾지는 못하겠다. 완전히 다르지만 또 닮은 구석이 없지도 않다. 일단 주인공이 사춘기 소녀란 점에서 닮았다. 건조하면서 미끌거리는 문체가 닮았다. 배경이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 설산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아름다움이 연상된다는 점에서도. 일단 '아름다운 나날'은 작가 플뢰르 이애기의 자전적 소설이란다. 아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작가 또한 스위스 산골마을 기숙학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아름다운 나날>의 배경이 바로 스위스 명문 기숙학교로 그곳에서 체험한 일을 담담하고 절제있는 어투로 회상한다. 회상 대부분의 시간을 전학생 프레데리크를 향한 동경과 열망, 시기와 애증 같은 것을 설명하는 데 쓰고 있는 걸로 봐서 아주 완벽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일곱 살에 기숙학교에 넣어진 '나'의 생활은 그저 폐쇄된 여기숙학교에서의 일상 뿐인데, 아무 것에도 애정을 두지 못하던 나에게 프레데리크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무엇, 시크한 매력으로 똘똘 뭉쳐진 그녀를 닮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기숙학교 전체에서 공부는 물론, 사고하는 방식까지 그녀를 따라잡을 자 없다. 오로지 통제, 박탈, 공허, 고독을 느껴야 했던 여학생들 틈에서 프레데리크를 따라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어째서 그녀여야 했을까. 이기고 싶고 넘어서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도를 넘어 나를 괴롭히곤 했다.

 

많은 학생들에게 일기장이 있었다. 돋을새김 장식이 달린 일기장. 열쇠가 달린 일기장. 그들은 자신들이 인생을 독차지했다고 여겼다. (p.44)

 

설명할 수 없는 끌림과 동경으로 나는 프레데리크를 사랑했고, 그애는 나에게 별로 잘 보이려는 관심조차 없었다. 나는 늘, 무엇을 하든 그애를 신경 썼고 그애에게 어떻게 보일 지를 먼저 걱정했으며, 그애가 나를 바라봤으면 했다. 나는 여기는 없는, 먼 곳에 있는 엄마로부터 모든 것을 철저히 통제 받고 있었다. 심지어 독일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 독일 애와 방을 함께 썼으면 좋겠다는 편지에 수도원 원장 부인은 나에게 독일인 짝을 붙여준다. 아, 모든 것이 그랬다. 나는 여기 있는 동안 늘 조정 당하고 통제 당하며 엄마가 원하는 데로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내 생활의 균형에 금을 낸 것이 프레데리크였다.

 

그애의 관심을 조금씩 받으며 프레데리크에게 인정 받겠다는 욕구마저 균열이 일어나자 나는 다른 친구를 사귄다. 프레데리크가 관심사에서 아주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지만, 하물며 다른 친구와 정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딘지 모르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나는 프레데리크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애는 아버지 부고 소식에 '아듀' 한 마디 작별인사만 남긴 채 떠나버렸다. 나는 헤어짐을 예감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 채 수도원과 학교와 기숙사를 배회한다. 졸업할 때까지 기숙생활은 더이상 달라지지 않았고 졸업식 날 모두 좋은 차로 딸들을 데려갈 때 나는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내려서야 비로소 마중나온 아빠와 만난다.

 

후에 다시 기숙학교로 돌아왔을 때 더이상 기숙학교는 그곳에 없었다. 언젠가 다시 만났던 프레데리크의 불행도 그즈음에는 더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소녀는 숙녀가, 숙녀는 여자가 되었다. 그러기까지는 금방이었고 무엇도 제동을 걸 수가 없었다. 지난 날들, 무엇에 그토록 목 매고 바랐던가. 프레데리크. 그토록 닮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그녀는 이제 더이상 그 대상이 아니다. 대체 과거의 여러 날들 나를 사로잡았던 프레데리크만의 싱그러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것이었을까. 난 더이상 그때의 나를 마주할 수 없을까. 그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시간들과 나를 이제 어디에 가면 다시 만날 수 있나.

 

 

<프롤레테르카 호>는 소녀의 은밀한 비밀일기를 훔쳐 읽는 것 같은 감성적임과는 다른 분위기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와 함께 지중해 일대를 항해하는 프롤레테르카 호를 탄 나의 과거,현재,미래의 독백. 독백이 아니지만 독백 같고, 새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나(아마도 여자)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나를 돌봐준 아버지의 엄마, 아빠와 엄마, 나, 그리고 모든 이들을 둘러싼 비밀들. 배는 그리스 전역을 돌며 이곳저곳을 관광객마냥 누빈다. 베네치아에 정박되었던 프롤레테르카 호는 산토리니, 크노소스 등 지중해를 찍으며 나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확대시켜 나간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보다 깊은 애정은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지켜보되 침묵할 것. (p.115)

 

사실 아버지와 나는 그다지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그런 적도, 그랬던 기억도 없다. 하지만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한다. 배는 지루하다. 선장과의 첫경험은 나쁘지 않다. 어른들은 늘 여자아이가 이해 못할 비극적인 비밀을 갖고 있지. 나는 그들의 비밀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알게 된다. 진실이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진실을 알기 전과 후가 달라져야 할까.

 

나는 이해해야만 한다. 진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사악한 열정, 흑사병과도 같이 부부에게 충격을 가져다부었던, 진실에 대한 우상 숭배와도 같은 열정을. 아버지라는 자와 깍듯하고도 열정적인 그 부인. 진실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 진실을 말하는 것. 진실이 아무 소용이 없을 때. 나이 든 자들의 경박한 고집. 그들 두 사람은 만족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것. 그들은 나에게 그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내게 상처가 되었다면 슬픈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진실의 언어를 더 이상 말하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p.206)

 

아빠는 기억을 잃어간다. 나는 진실을 알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와도 부녀관계는 흩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그럴 것이다. 다만 여행만은 또렷하게 남아 내가 살아갈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늘 그렇듯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소녀의 삶은 다시 숙녀로 여자로 그렇게 커가는 것. 명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

 

"황금의 기억과 산의 기억이 황금 산의 기억이 된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기억과 자각과 글은 얼마나 뜬금없는 것인지. 그것들의 간격과 시차는 또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불투명한 아름다움. 알프스의 눈처럼 희고 깨끗하면서 차갑고 절제된 소통공간.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 없는 생명력이 바닥에서부터 차고 올랐다. 이름 모를 두 편의 짧은 소설이 말을 걸어왔다. 과거를 딪고 현재를 무기 삼아 미래로 나아가자고. 스케치 없는 투명한 물감이 수채화처럼 번지는 것을 느꼈다. 감수성이 충만했던 소녀시절, 내 곁에 있던 보물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며 밤을 보내고 있을까. 글을 쓸 때 밤이었고, 지금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소이진 2012-02-03 19:07   댓글달기 | URL
후후, 제가 잠시 잠수를 타시는 동안 글을 올리셨다니. 그래도 첫 댓글을 달 수 있어서 기분 좋군요!
마지막 문단이 마음에 들어요. <아름다운 나날>이라는 책 제목과도, 귀여운 책 표지와도 같은 아름다운 문장이군요.
요새 책을 읽을 때마다 무수히 드는 생각이 "번역본은 작가지망생에겐 좋지 않을텐데.."하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외국 소설을 집어들때마다 잠깐 멈칫한다니까요. 그냥 마음편히 책을 읽고싶은데 말이지요 ㅠㅠ

아이리시스 2012-02-03 20:57   URL
쓰다가 중간에 접어논 리뷰들이기 때문에 따끈따끈하지 않지만ㅋㅋㅋ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한 번에 짠-하고 못 올리고 매일 시간 날 때마다 쪼끔씩 써둬요. 안쓰고 읽기만 하면 좀 아쉽고. 번역가는 작가가 아니니까요. 아니, 번역가도 작가인가. 예전에는 그냥 남의 말 옮긴다고만 생각했는데 인세 지급되는 걸 보면 그들도 작가가 맞지요. 좋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소이진님도 그런 뜻에서 얘기한 거예요? 요즘 한글 이해가 좀 달려가지고ㅜㅜ

그래도 원서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가..( '') 뭐 제가 외국에서 살고 엄청난 배송비를 지불하며 본국의 책을 사들여야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이 읽겠지만요. 한글로 된 걸 읽어도 제가 대학 때 손가락 짚어가면서 떠듬 거리며 읽던 [꿈의 해석] 같은 건 더 어렵잖아요! 그것보다는 소설을 원서로 읽는 게 나아요ㅋㅋㅋ

소이진님은 뭐든 시간 나는대로 많이 읽어두는 게 더 좋을 거예요!(누나 생각^^;;)

소이진 2012-02-04 00:01   URL
음 그런 비슷한 뜻으로 말한 것이에요. 번역본은 역시 문장이 매끄럽지 않을 수가 있겠지요. 워낙에 번역을 많이 하신 김난주, 양억관 부부들이나 짬을 많이 드신 분들은 거의 작가 수준으로 섬세하게 문장이나 단어를 다루겠지만 그마저도 역시 저는 한국말로 쓴 글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예로써 저는 헛헛하다, 라는 단어를 한 달전에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며 처음 접했지 뭡니까. 번역 소설은 사용단어가 한정되어 잇는 것 같아서 아쉽지요.

많이 미치도록 읽어두고 싶은데 게으른 몸이 따라주질 않네요 ㅠㅠㅠ 흑흑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2-03 21:24   댓글달기 | URL
내 시절에도 '아름다운 나날'이 있었을까요?
누가 뭐래도 내가 그렇게 느끼면 그게 나만의 '아름다운 나날'일텐데
전 반짝반짝하던 시절이 기억이 안 나요...흠...회사 다닐 때였을까? 뭐든 열심히 하고 뭐든 즐거웠고, 뭐든 용기있게 했던 그 때였는데 말예요. 그래도 그때도 난 늘 고민하고 갈등하고 힘들어 했었어요.

오늘도 무지하게 추웠는데 뭘 하셨나요?
딸은 세뱃돈 받은걸 털어서 머리를 하고 왔어요. 그것도 친구하고 단 둘이서. 앞머리를 자르고 매직으로 파마 머리를 폈는데 둘이 똑같이 하고 나타나니 이건 중딩 클레오파트라도 아니고...ㅋㅋㅋ
얘네들은 지금이 아름다운 나날일까요? 궁금해 궁금해~

아이리시스 2012-02-03 22:07   URL
중딩 클레오파트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럴 거예요. 이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온종일 저 느낀 대로만 얘기하는데도 딱 하나 맘에 드는 게 사춘기 소녀가 느끼는 세상을 잘 담고 있어요.

아하하, 계속 중딩 클레오파트라가 연상되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맘님은 지금도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하시잖아요! 그리고 중고등학교 땐 왜 그렇게 친구가 갖고 싶고 질투도 많이 하고 싸우고 토라지고 삐지고 그랬을까요. 제가 친구들 전화도 잘 안 받고 연락도 잘 안하는 걸로 한 순위 해요. 거절도 제법 잘해요. 그런데 중요한 순간에는 또 잘 들어주나 봐요. 안할 만도 한데 자꾸 하는 걸 보면.. 아마 누군가를 붙잡고 늘어져야 내 삶이 챙겨질 것 같던 그때가 지나고 보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 내 맘대로 하는데도 재미가 없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관타나모로 가는 길 - The Road to Guantanam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전쟁의 땅을 아냐고 또래에게 묻는다. 알 리가 없지. 우린 전쟁의 상흔을 안은 곳에 사는 거지 전쟁의 땅에 살고있는 게 아니잖아. 전쟁을 끝낸 게 아니라 잠시 휴전하는 중이라고 해도 알 리가 없지. 설상가상 내겐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줄 어른도 안계신다. 폭격기 한 번 맞아보고 싶다거나 최루탄, 화염병 날아다니는 거 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할아버지만 중3때 돌아가시고 모두 건강하시다)는 분명 그 시절을 사셨는데도, 내가 듣기론 그저 가난 뿐이다. 가난. 뿌리 없고 실체만 있는 그것만이 명확했다고 식구들 모두가 아니, 아빠와 엄마가 말했다. 전쟁영화를 잘 못 본다. 목이 달아나는 장면에 몸서리쳐져서가 아니고 지독한 학살이 오히려 지루하기 때문인데, 그게 인간이 동물을 학살하는 것과도 다를 바가 없어서 비위 상한다. 그건 내 사정이고, 세계는 또 나와 상관 없이 제멋대로 잘 돌아가기 때문에 그걸 알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요 몇 년간 전쟁에 대해 그러니까 전쟁으로 인한 부수적 갈등이나 해당 국가의 관계들,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주로 중동이긴 했지만 모두 서구 선진국들과도 관련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식민 쟁탈전이 결국 모두 전쟁과 관련 있고,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연장선상에서 전쟁영화가 봐지기도 한다. 외면한다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맘 편한 것도 아니라서 바로 그것들이 끈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쏟아지는 전쟁영화 수집에 꽤 열을 올렸다. 그러니까 '제목' 말이다. 어느 영화가 어떤 전쟁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인 정보. 그리고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관련된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보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없애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1세기 역사를 가진 관타나모 수용소는 여전히 굳건히 살아남아 전쟁범이나 정치범의 자유를 뺏고 있으며, 영화는 세미다큐 형식으로 만들어진 실화 바탕의 작품으로 사실감과 진정성을 두루 갖춘 수작이다.

 

관타나모는 쿠바 동부에 있는 관타나모주의 도시로, 미국-에스파냐 전쟁의 결과로 1903년 이래 미국의 해군기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관타나모는 미국의 중남미 군사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 기지 역할을 한다. 미군 관할 아래 거대 수용소가 생겼고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사상,전쟁범에 대한 구속과 구타,고문,학대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정치범 수용이 아니라 무관한 이들을 정치범으로 둔갑시키려는 강압적 처우에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우리 역사에도 공공연했던 인권유린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잘못된 진실과 제멋대로식 억압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한다. 혐의 있는 자, 혐의가 진실로 밝혀진 자에 대한 심한 고문에도 하물며 인권유린이라는 단어가 붙는데, 원하는 진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죄 없는 자, 혐의는커녕 상관없는 자를 잡아와 고문하는 것에는 응당 책임이 따라야 한다. 관타나모 수용소가 생긴 지 1세기가 지났는데도 지금껏 처우나 시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미국의 이득과 기득권 보호를 위해 방해되는 이들이 모진 대우로 죽어가거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유엔과 안보리가 아무리 '국가안전보장'을 외쳐도 해당 국가(미국)만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실제로 미국은 국제사회에 나와 인권에 관한 가장 높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사실상 자국 보호라는 명목 아래 엄청난 인권유린을 타당화 시키고 있다. 제 나라에 불리한 것은 법으로 취급도 안할 뿐 아니라 모두 중동 테러리스트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영화다. 그들이 좀 더 신중을 기하고, 명확한 법집행에 매달렸다면 이런 실화는 있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잘못된 일을 타당화 시키기 위해 또다른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매커니즘이 반복된다. 어느 날 영국 청년 셋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간다. 결혼식을 위해 먼저 떠난 주인공까지 모두 넷. 파키스탄계이기는 하지만 오래 전 영국에 터전을 잡은 이들은 중동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도 친밀감도 갖지 않은 채 단순한 목적으로 향했을 뿐이다. 하필이면 9.11 테러 며칠 후. 그리고 돌아가지 못할 줄 몰랐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도록. 3년 가까이 가족들과 친구들 얼굴을 못 보게 되고 친구 하나를 잃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도 술렁이긴 마찬가지다. 도착 전에는 몰랐지만 막상 파키스탄 전역이 긴장과 도가니 상태였다. 소문이 꼬리를 잇고, 소문이 소문을 물고 늘어져 진실이 되었다. 청년들은 궁금했다. 파키스탄에만 있자니 지루해서 무작정 국경을 넘을 생각을 한다. 별로 어렵게 보이지도 않았다. 칸다하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멀미나 먹는 문제 빼고는 비교적 잘 도착했지만 현지 상황은 달랐다. 밤마다 낮마다 엉뚱한 곳에서 폭격이 시작됐고, 폭탄이 터져나가 많은 사람이 죽었다. 소문은 더 흉흉했다.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가는 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곳곳에 팔,다리,목이 없는 시체가 즐비하고, 피투성이로 울부짖는 사람들도 다반사. 단테가 묘사하지 않은 지옥이 그곳이었다. 미군에게 붙잡히거나 수상한 낌새를 주게 되면 한참을 잡혀 있어야 했다. 깊은 구덩이를 파서 수상한 사람들은 한 번에 사살한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하지만 영국인 청년들은 자신이 영국인이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기만 하면 미군과는 친구가 될 수 있고, 금새 풀려나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차츰 현실이 그렇지 않아지고, 미국 정부의 아프간 압박과 폭격은 도를 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잡혔다. 영국인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순식간에 탈레반 추종자가 되어 알 카에다의 정보와 빈 라덴의 주거지 실토를 압박당해야 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고 있었다.

 

아무 이유없이 수상하다는 점만으로 눈이 가려진 채 총구에 겨눠져 군용차에 올라타 수용소로 끌려가는 영국 청년을 비롯한 각계 중동계 출신들. 그들이 간 곳은 쿠바 관타나모. 부시가 대우는 적당하고 인도적이라고 발표하는 바로 그 관타나모 수용소다. 영화는 생각했던 그대로 진행된다. 실제 주인공들의 인터뷰가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어 생동감 있는 현실을 전해준다는 것과 비교적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점, 영화라기 보다 다큐라고 하는 게 훨씬 어울린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수업용으로도 교육용으로도 교양용으로도 좋은 작품이다. 간단해서 이해 못할 구석이 한군데도 없는데 자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는 인도주의적 인권대우라니, 이런 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나. 나라는 존재는 티끌보다 더 작아서 제 나라 부당 재판에도 뭐라하지 못할 처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재판 하나 없이 주황색 죄수복을 입혀 눈도 가린 채 아무렇게나 끌고 와서 수용소에 갖다 넣고 인권을 유린하는! 어이없는 정부가 말이다. 이게 과연 전시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대처법이란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일까. 무작정 끌고 와서 살인자 취급하는 게? 검색 몇 번으로도 관타나모 수용소에 관한 끔찍하고 잔인한 실상들을 볼 수 있다. 그 고문법 하며, 진실 찾기가 아니라 겁주기식 군 작전들로 점철된 곳에서 과연 진짜 중동 테러리스트 탄생을 바라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보복 공격을 낳을까 두렵다. 그곳은 그런 식으로 미 해병대에 의해 접수되고 있었다. 멀쩡한 사람을 테러리스트, 살인자로 만드는 비밀의 장소로.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전혀 유쾌한 내용이 아닌데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엄청난 몰입을 당한 건 오랜만이었다. 인간 살인병기들이 아니라면 이건 전혀 무의미한 일이다. 테러범 축출이나 살인범죄 퇴출에도 전혀 도움될 리 없는 인력 낭비였다. 이런 소모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겁주기나 협박용인가. 중동계 유럽인까지 전부 테러리스트로 치부하려는 게 목적이라면 적어도 기준을 정해야 한다. 자국의 타당성을 내세우기 위한다거나 본때를 보여주려고 피부색 판별로 무조건 잡아들이는 건 인도적이고 합리적인 선진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테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풀어야 할 매듭이 딴 데 있고, 미국이 그 문제를 바로 서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바, 절대 관타나모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어쩌면 영원히 인권유린의 사각지대가 될 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처럼 무고한 영국 청년이 2호, 3호 계속 나올 것이고 나오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전시라 해도, 재판 없는 구금과 살인이 있을 수 있을까.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많은 것을 묻지만 대부분이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행여 오해가 풀렸다 해도 몇 개월간 고통 받은 무고한 이들의 인권유린과 고문,구타를 어떻게 보상할지 궁금하다. 선진국이라는 이유로 힘 없는 국가들이 늘상 이렇게 당해줘야 하는가. 이럴 때 보면 유엔과 안보리, ICJ의 존재는 더없이 무의미하다. 이미 벌어진 일 수습을 위해 존재하는 국제기구. 그것만으로 이 세계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청년들은 곧 꺼내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듣게 되고, 서로 친구들이 자신을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고발했다는 억측 아래 부당한 자백을 강요 당한다. 고급 정보는 고급 '수' 아래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던가. 비밀정보원이라던가. 비로소 미국이라는 나라에(이 수용소가 미국의 아래서만 힘을 과시하는지, 러시아,독일,영국도 가세하는지 모른다) 눈먼 돈이 어마어마할 지도 모른다는 눈먼 감상법이 나온다. 한둘도 아니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사람 하나 사형시키는 데에 어마한 돈이 든다는데, 배보다 배꼽이 큰 격 아닌가. 하나 잡겠다고 둘셋넷다섯, 몇인지도 모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 자국민들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을까. 제 나라 세금이 쓰이는 요량을 좀 보면 화가 날 만도 한데! 그곳은 서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게 하고는 이리 끌고갔다 저리 끌고갔다, 전통이랍시고 행해지는 명예살인 욕할 가치도 없는 체제 속에 운영되는 곳이다. 벽도 없이 동물원 우리 같은 철창 안에 한 명씩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게 생활하는 삶은 이미 동물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이 한 트럭인데 포로로 잡혀와 얼마간 보낸 이들의 삶이 최악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덜하다고 볼 수도 없다. 일반인을 포로로 잡는 전쟁은 문명의 것이 아니다. 과거 아이들이나 여자를 인질이나 포로로 잡았던 전쟁들은 최고 악질 전쟁으로 손꼽혀 왔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러면서 테러가 끊기기를 바라고, 테러를 축출하기를 바라며, 중동과 화해하기를 바란다. 양심이 사라졌나 보다. 특별구역이라는 수용소 D구역은 더 심하다. 가지도 않은 아프간에 갔다며 비디오를 보여주고는 니가 저기 있는데 설명해 보라거나, 손과 발을 바닥에 묶어놓고 못 움직이게 하고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그런 인권유린은 그야말로 장난이다. 미쳐버리거나 버티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는 걸 이 강한 청년들은 머지않아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강해졌다.

 

청년들은 거짓 자백을 강요 당하고, 미군은 억지 자백을 받아내어 겨우 재판대에 세운다. 그 어린 청년들이 뭘 어쩔 수 있었겠는가. 대단한 정보통 미국이란 나라가 청년 하나의 거주와 발자취를 과연 조사할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했을까. 너무도 확연하게 영국에 존재했던 청년들의 출입국 기록을 증명할 능력이 없어서? 폭력, 사기 등으로 국가에서 내린 명령의 일환인 사회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알리바이는 더 명확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그들은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윽박지르기만 했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그들의 아집과 오만과 위험은 상당했다.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는 21세기 선진국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 공공연하나 없는 일도 치부하는 여전히 통용되는 일들. 좋은 국가는 좋은 점을 더 많이 만드는 것보다 나쁜 점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먹고 잘 사는 척 까짓 수치에 불과한 GDP 순위로 위선 떨어도 슬럼가나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노인이 버려지고 아이들이 굶는 국가를 좋은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99%가 죽지 못해 사는데 1%가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잘 산다고 그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나중에는 지친 청년이 비협조적이고 호전적이라는 이유로도 억압하고 학대한다. 더 엄격하고 심한 폭력이 묘사되지는 않지만 없는 죄를 고백해야 하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이 있을까.

 

가족과 변호사와의 면회가 허락되지 않고, 알리바이가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건을 들먹이면서 수용소에 더 붙잡아놓는다. 마침내 죄가 있어 수용되었었다는 서류에 사인을 요구하며 하지 않을 경우 집에 보내줄 수 없다고 협박한다. 그들로선 인권유린과 거짓자백요구, 고문,감금,부당심문 등에 자물쇠를 채울 근거가 필요했고, 관타나모 수용소의 타당성을 인정 받아야 했을 것이므로. 청년은 거부한다. 세 청년이 구분 되지만 나로선 셋을 구분하여 이해하기가 벅찼다. 셋에게 내려오는 모든 불합리가 한 사람 아니 전체 포로에게 가해지는 불평등처럼 보였다. 이들이 여기서 이렇게 하기 때문에, 다른 수용소의 죄수들에게도 자국 죄수들에게도 이렇게 하는 국가처럼 보였다. 1000명에 달하는 무혐의 죄수들 중 단 10명이 기소됐지만 그들에게서도 역시 혐의를 찾을 수 있는 강력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으며 그러고도 한 마디 사과나 본인들 잘못을 인정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자유 수호를 위한 명예로운 구속'이라는 수용소 D 앞의 글귀가 그들의 타당성과 정당성을 입증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거의 3년을 죄없이 수용소에서 보낸 후 억류가 풀린 영국인들이 돌아온다. 비로소 석방되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일을 당하는지, 영국이라는 국가에서도 별 수 없었던 셈이다.(테러범죄는 '정치범 불인도' 사유에 해당해 설사 영국이 나섰더라도 석방시킬 수 없었을 것) 이유와 배경이 어쨌건 현 지구에 알 카에다는 테러리스트가 맞다. 그래서 피부색과 인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일이 타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행여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중 한 명이 알 카에다나 탈레반 수장이었다 하더라도 미군이 수용소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용서될 것인가. 형법에 '한 명의 가해자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선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 피의자가 될 지도 모를 선량한 사람을 보호해주는 유일한 단서인데, 지구 어느 땅도 이 말이 또렷하게 지켜지는 곳이 없어 씁쓸할 뿐이다. 죄 없는 이가 끔찍한 곳에 잡혀갔다 3년 만에 겨우 나왔는데 이게 석.방.인.가. 한 명의 청년은 실종되었고, 영국으로 돌아온 세 청년 중 하나는 예의 그 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셋은 여전히 영국에 살고, 입을 모아 한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으며, 수용소 생활 이전과 이후의 삶이 분명히 달라졌음을, 더 좋은 쪽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생경했다.  




 
 
소이진 2012-01-31 00:59   댓글달기 | URL
자기전에 덧추날려주는 센스를 한 번 발휘하고 가야겠지말입니다.
아이리시스누나님리뷰는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역시 좋습니다.
아, 역시 이런게 아이리시스님이지! 하게되는 리뷰어요.
헤헤, 난 잘게요. 굳밤

:)

아이리시스 2012-01-31 01:06   URL
히히히, 소이진님, 리뷰쓰면 어디선가 갑자기 알고 달려오는 것 같다니까요.
오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예뻐라..^^
잘자요. 좋은 꿈 꿔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키 커요^^
굿나잇~^^

p.s. 본인이 정말 예쁘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 해요.

pek0501 2012-01-31 12:57   댓글달기 | URL
나도 소이진님을 따라해서..."자기전에 덧추날려주는 센스를 한 번 발휘하고 가야겠지말입니다."

ㅋㅋ 요렇게 해 놓고 퇴장합니다. 난 나중에 인쇄해서 꼼꼼히 볼까 봐요. 어디에 무엇을 틀리게 썼는지, 검사해야쥐...ㅋㅋ 그리고 지적질해야쥐...하면서... 이것 농담인지 아시죠? 나나 잘할게요. ㅋㅋ 언제나 반가운 아이님, 예뻐 예뻐!!!

아이리시스 2012-01-31 22:57   URL
페크님은 '자기 전' 아니시라는ㅋㅋㅋ 제가 자기 전에 올리니까 소이진님은 항상 자기 전에 온다는^^

인쇄하고 싶은 글들은 종종 만나지만 사무실이 아닌 한 꽤 귀찮은 일인데 페크님 만세. 틀린 곳 없을 거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예쁘니까요! -_-;;

마녀고양이 2012-01-31 13:37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무척 좋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리님, 불과 이 땅에 전쟁이 몇십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실감나지 않지요?
한번도 전쟁을 겪어보지 못 한 세대가 저랑 아이리님 세대인지라, 항상 이렇게 평안할거 같구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광주 사태도 있고 그 이전에도 많은 분들이 희생하셨지만, 아직도 전시 중인 나라에 비한다면... ㅠㅠ

아이리시스 2012-01-31 22:55   URL
좀 흔들흔들 우리 세상이 아닌 것 같지만 이것보다 좋은 교육용 비디오가 없겠다 싶어요.
정치적으로는 그렇다 쳐도 경제를 위협받는 저희 세대가 썩 더 낫다고 말하지도 못하겠지만 폭격 맞는 것보다는 확실히 다행인 것 같아요. 저 이스라엘은 한 번 꼭 가보고 싶은데 요즘 중동영화를 들입다 봤더니 없던 겁이 생기고 있어요. 거기서 위험한 일 당하기는 너무 무섭잖아요ㅜ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31 17:23   댓글달기 | URL
위의 마고님 말씀처럼...그래요 정말.
이 땅에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전쟁은 있지만 그래도 우린 물리적 전쟁은 없으니까 그나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요.

아이리시스 2012-01-31 22:53   URL
같은 말을 매번 하면서도 주제가 비슷한 영화를 보고 또 충격 받고 또 다행이다 싶고 그래요^^
휴.. 그런데 전시.. 어른들도 별로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조부모님들께 여쭤본 건 아니고 부모님이 들은 얘기가 있는지 늘 물어보는데 저희 부모님은 시골이었고 어렵게 사셨고 뭐 그런 기억만 있대요.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전쟁마다 얼른 막내리고 지구상 전쟁도 좀 끝내면 좋겠어요. 그럴 일이 없겠지만 너무 끔찍하잖아요. 이건 최근 꽤 여러 편 본 것치곤 상위권에 속하는 유익한 영화예요.

맥거핀 2012-01-31 22:10   댓글달기 | URL
아니, 설마 이 영화도 IPTV에서도 보신겁니까? 이런 좋은 영화들도 IPTV에 있다면 꽤 괜찮을 거 같은데. 마이클 윈터바텀의 몇몇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에서 흥미롭고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것 같아요. 저는 아니지만, 나름 매니아층이 있는 감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내용상으로 보았을 때 감독의 다른 영화인 <인 디스 월드>가 연상되기도 하구요..혹시 이미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이리시스 2012-01-31 22:50   URL
아, 이거 제가 어떻게 봤더라? IPTV에는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영화가 올라오구요. 이건 하드에 잠자던 파일인데 출처를 까먹었어요. 관심분야여서 당시에 챙겨놓은 것 같은데 DVD가 품절이에요. 이거 보면서 감독 검색은 못해봤는데 <인 디스 월드> 재밌겠어요. 안봤어요. 그런데 이렇게 경계에서 들려줘도 저는 극영화보다 더 재밌기만 하더라고요. 다큐를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극화되지 않아도 충분히 극적인 현실이라 그렇거나..^^
 

볼 때마다 쓰는 이야기.

 

무표정한 아이야,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아이야, 자전거를 사랑하는 아이야, 버림 받았다 생각하는 아이야, 세상이 나 홀로라는 걸 지나치게 일찍 알아버린 아이야. 지켜준다 약속할 순 없지만 네가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 이제 자전거 보다 사람을, 사람 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으면 좋겠어. 자전거가 아니라도 세상 어디든 맘 먹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

 

말로 다 하기 힘든 찌릿한 자괴감이 공기를 감싸면, 길을 걷다 너처럼 무표정한 아이를 만나게 될까 기웃거리게 돼. 어떻게 하면 고독 속에 갇혀버린 순수를 꺼내줄 수 있니? 누가 너를 제자리에 놓을 수 있니? 무엇이 너를 자라게 할까? 어떤 말을 해줄까 오래 생각했는데, 난 역시 할 수가 없나 봐.

 

잊지마, 여기 언제나 노력하는 누군가 있다는 걸. 네 모든 타락과 열망과 터져버릴 듯한 숨결을 사랑해. <자전거 탄 소년>아, 이대로만 자라다오, 부디, 제발.

 

 

 

죽음에 대한, 죽음에 관한, 죽음을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것들. 해가 질 때마다 죽는다고 믿는 새가 있었어. 아침에 일어나면 살아있다는 사실에 매일 놀라. 죽지 않은 게 기뻐서겠지. 우리가 새와 다를 게 뭐야? 차라리 언제 죽을 지라도 알면 좋겠어. 적어도 하루는 맘껏 기쁠 수 있게. 슬픔 속에도 기쁨이 깃든다는 사실을 <레스트리스>를 보며 알게 되었다. 삶과 죽음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도. 우리 모두 여기 오래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보겠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걸까. 어느 누가 사라지고 싶어 하겠는가. 죽음 앞에 자유로울 자 없다.

 

부모의 죽음 이후 세상에서 숨어버린 에녹과 3개월의 빛나는 시간이 남아있는 애나벨의 가슴 설레는 작별. 그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지켜주는 유령 친구 히로시. 사랑은 시간이 남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자,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작별을 위해. 구스 반 산트와 동화같은 색감을 빼면 이를 데 없이 지루했는데, 역시 나는 순수하지 못한 사람. 갈등이 필요하다고 소리치며, 죽음은 갈등이 될 수 없다고 중얼댄다. 죽음은 결국 자신의 것만 소중하니까. 타인의 죽음은 결코 나몰라라 하고 싶은 감정이니까.

 

 

어째서 이게 그러니까 <플루토에서 아침을>이 로맨스 영화라고 쭉 생각했던 거지? 사실은 너무 웃기고 기발하고 생각한 것과 다르고 독특해서 계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재밌어ㅋㅋ 어쩌다 리뷰가 이렇게 된 걸까? 편견이나 선입관을 갖고 싶은 건 아닌데 진심으로는 남자가 어째서 여자가 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반대는 없고 일방향성만 가지는 성 정체성도 가끔 의문.

 

어릴 때 성당 앞에 버려진, 여장남자 패트릭(그러니까 키튼)의 유쾌발랄상큼 엄마 찾아 삼만리. 슬프고 짠하면서 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영상이 좋다. 심각할 거 뭐 있어, 버려졌다고? 자유로워진 거지. 그게 어때서? 화사하기만 하구만! 플루토(Pluto)는 명왕성. 키튼의 모든 비밀을 알고도 발설하지 않는 울새도 곁에 있으면 더 좋겠다. 슬프다. 슬퍼도 웃을 수는 있다. 울어야만 슬프다고 생각하면 오산. 착각. 바보팅이. 장미, 향수, 캔디, 밍크코트 따위 여자들만 좋아할쏘냐!!! 그녀(그)가 걸어가는 세상이 늘 지금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고, 그녀(그)가 살아갈 세상이 그녀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했으면 좋겠다. 앞서 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참신한 감동. 와우, 세상 참 아름답네요!

 

 

이 <타이타닉> 커플을 내가 못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첫 장면부터 막 두근두근. 디카프리오는 싫지만 케이트 윈슬렛은 더 예뻐지고 있구나. 점점 예뻐지고 있구나. 아, 나 좀 오랜만에 봐서.. <더 리더>를 본 지가 어언 몇 년 전.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세월의 무상함이란ㅜㅜ 부부는 다 이렇게 산다. 부딪치고 참고 헤어질 뻔 하고 진짜 헤어질 결심도 하면서. 그들이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아니라 파리에 살아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파리에 사는 이들은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그리워할 것이다. 에이프릴을 이해하지만 프랭크가 그녀를 좀 더 이해해주기를 바라지만 덧씌워진 가족의 굴레와 이상향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고 그녀에게 말해주지는 못하겠다. 한참 영화 곁에 서성댄다.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해도 마찬가지일텐데..

 

그래서 떠나버린 한 여자를 알고 있다. 떠나지는 못한 채 자신의 꿈을 찾겠다며 가족들을 버려놓는 한 여자를 알고 있다. 막상 그곳에 가더라도 거기에 자신이 바라는 게 없을 거란 걸 잘 아는 한 여자를 알고 있다.

 

 

 <르 아브르>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가까운 항구도시. 구두닦이 일을 하며 아내와 견공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던 마르셀은 어느날 불법 난민 소년을 숨겨주고, 설상가상 아내는 쓰러진다. 소년과 아내를 지켜내야 하는 마르셀의 고군분투가 항구도시의 부둣가 풍경과 맞물리며 펼쳐진다. 부산이 항구도시이긴 하지만 나는 더 변두리 부둣가에 산다. 비릿한 바다내음과 갈매기 울음소리, 새벽 뱃고동 소리, 불법 난민까지 어쩜 그곳은 이곳과 뭐 하나 다를 바 없을까. 반가워서 눈이 멀고, 견공 라이카가 포스터에 들어서(그것도 모서리에 귀엽게!) 너무 예쁘다.

 

난민을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줄 순 없을까. 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의 연장선상에서야 겨우 도울 수 있겠지만. 이주노동자 문제는 쉽게 결론내기 힘들다. <웰컴>의 수영해서 런던까지 소녀를 만나러, 라는 코드만 빼면 비슷한데, 그 영화가 사실적 다큐라면 이 영화는 선명한 영상이 오히려 비현실 같다. 아름다운 풍경의 눈물겨운 사연. 어울리지 않는다. 어째서 그들이 위험천만하게 타인의 땅으로 올 수밖에 없는지 더 고민했으면 한다. 비슷한 영화만 만들어내지 말고. 우린 당장 국민(북한-국제법상 반란단체일 따름)의 난민도 어쩌지 못할 형편이면서 여전히 이런 영화가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바로 우리 시선이자 희망인데!

 

 

 '당신 뿐이야'의 기운찬, 서준영은 바른생활 사나이에 타고난 성실함, 속 깊은 마음씨, 배어있는 친절과 매너로 나무궁화 양을 사로잡는다. 기운찬과 서준영의 접점에 푹 빠진 나로선 작지만 단단하고 속이 알찬 이 청년이 과연 다른 역할에도 이토록 몰입할까 갸웃하게 했는데, 사실 <파수꾼> 말고도 그가 나오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는 걸 쓰면서 깨달았다. 이제훈도 예전에 일일극에 나와서 업둥이 아들을 연기했지. 빛이 있었다. 그 빛은 오래도록 한 군데를 비추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리고 지켜졌다면..

 

그 시절 우린 간혹 아니 자주 싸울 태세가 되어 있었다. 부모의 트라우마가 곧 아이의 트라우마, 부모의 컨디션이 곧 아이의 컨디션. 누구보다 예민했던 시절들. 모든 것이 우리가 하나 되게 했지만 모든 것이 우리를 하나될 수 없게 만들기도 했었다. 여자판 '파수꾼'이라면 내가 작품 하나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대학 신입생 시절과 너무 많이 닮아서 거울 보는 것처럼 섬뜩한 이야기. 나는 나의 파수꾼이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나. 빛이 비치는 철로조차 이들의 안식처는 될 수 없는 것일까.

 

 

 

걸어가는 길이 아름다운, 과정이 험난하지 않은 풍경들을 좋아한다. 반대가 훨씬 극적이긴 하지만 성향이 그런 걸 숨기지는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바그다드 카페>도 좋아하고 <엘리자베스 타운>도 좋아진 거구나. 남남이던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가 헤어질 수밖에 없다가 다시 모이는 얘기를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얘기를 몇 번이냐 쓰는 건지. <러브 송 포 바비 롱>은 나를 위해 부르는 당신의 사랑 노래. 나도 아름다운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노래. 포스터를 좀 더 신경써서 만들었다면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섣불리 짐작하지는 않았을텐데.

 

여기, 뉴올리언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한 곳에 모여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게 되는 이들. 지켜보는 이, 살아가는 이가 함께 하지만 여기에 심각한 상처는 없다. 이곳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있다. 둘의 구도가 아니라 셋의 구도인 것도, 현재를 얘기하기 위해 과거를 빌리는 것도. 하지만 더이상 현재의 나를 말하기 위해 언젠가의 나를 빌려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았다는 말이 필요한데 계속 영화와 상관없는 얘기만 하네. 음악이 참 좋다.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시적 문구도 좋다.

 

 

스콧이야, 스콧!!! 선댄스 화제작. 제목이 진부하지만 <웰컴 투 마이 하트>에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나온다니까요. 요즘 제일 핫한. 역시 난 엠마 왓슨이 더 짱이긴 하지만. 본능적으로 유럽인에게 더 끌리는 듯.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네. 둘 다 예쁜데. 블레이크 라이블리, 엠마 왓슨, 크리스틴 스튜어트. 얘네들은 진짜 가십을 몰고다니는 가십걸들. 영화는 꽤 좋았다. 딸을 잃은 부부는 서로에게 시들시들, 권태를 느낀다. 풍요로운 경제력 때문에 남편은 내기 포커를, 아내는 오래도록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한다.

 

어느날 출장간 남편이 전화 한 통으로 당분간 못 온다 전하고, 찾으러 나선 아내는 남편이 딸 또래의 스트리퍼를 돌봐주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를 잃고 스트리퍼 일을 하며 종종 잠자리로 돈을 벌기도 하는 소녀 맬로리. 처음에 어이없어 화를 내던 아내 로이스도 남편 더그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부부는 맬로리가 죽은 딸 대신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맬로리의 정상적인 역할을 바라는 로이스, 맬로리를 돌봐주지만 시간을 주고 싶은 더그. 갈등에 부부는 이만 맬로리 곁을 떠나기로 하고, 맬로리는 그들이 남긴 돈과 사랑과 보금자리를 기억한 채 자신만의 여행을 떠난다.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 내 마음을. <리슨 투 유어 하트> 마음으로 듣는 당신을 위해 부르는 아날로그식 사랑노래. 아, 나 무슨 포스터 문구 쓰는 것 같네. 마음씨 예쁜 커플의 황홀한 사랑법. 뻔한 빈틈을 음악이 메워주긴 한데, 그래도 식상해..

 

레스토랑 웨이터로 일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남자와 듣지 못하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 아리애나는 엄마의 완벽히 차단된 방해와 과보호로 어렵게 시작한 대니와의 사랑을 끊임없이 방해받으며 절망한다. 이게 무슨 신파.. 왜 이런 엄마..여야 하지?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과 애인이 해줄 수 있는 영역이 엄연히 다른데 딸 이메일 해킹까지 시도해서 헤어지게 하고, 성폭행을 시도하는 번듯한 남자에게 딸을 찍어다붙이는 엄마는 미친 여자( ''). 자신을 조정하는 엄마의 알을 깨고 나온 아리애나는 수술로 청각을 찾고 대니도 찾으려 하지만 찾아온 비극. 남은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들을 수 있을까? 아리애나와 대니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새로 시작할 그녀를 위해 그가 남긴 편지를 듣고 있자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내 사랑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카페에서 꼭 레몬티나 레몬에이드만 마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에 레몬나무가 자랄 줄이야. <레몬 트리>는 상큼한 레몬향 속에 숨은 아픈 현실을 그린 리얼리티 영화다. 팔레스타인에서 레몬농장을 가꾸는 살마는 옆집으로 이사온 이스라엘 국방장관에게 테러위협이 있을 수 있단 이유로 농장 폐쇄를 통보 받고 이스라엘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지만 기각된다. 아들 뻘 변호사 지아드가 도와주면서 둘의 관계도 미묘해지고 국방장관의 아내 미라는 살마가 신경쓰여 남편과의 관계가 흐트러진다.

 

항소심으로 간 재판은 이제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구도가 되고, 마지막 재판은 눈물겹다. 소유권 주장은 당연한데,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살마의 삶은 물론, 레몬나무에 담긴 추억과 전통과 삶의 모든 것을 무시하는 현실도 무엇 하나 매끄럽지 못하다. 사과나 이해는커녕 금전보상조차 거부하는 이스라엘 정부 때문에. 레몬나무는 이제 팔레스타인의 모든 것. 간단히 베어버릴 수도, 베어냄으로서 끝날 수도 없는 팔레스타인의 상징. 사회가 지켜야할 상징을 어떻게 없애며, 지워져가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어느 시대나 서툰 손편지로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들의 순애보는 멋져. 꺄악. 나 오랜만에 그애가 훈련소에서 날마다 써서 보낸 서른통의 편지를 받던 날의 감동이 밀려와서 좋았다. 완득이는 분명 이 시대의 표준 남고생이라기엔 넘치는 삶이지만 꿈도 찾고 가족도 찾고 이웃도 찾고 사랑도 찾았으니 와우. 계속 웃다가 영화가 끝났는데 마음 한켠에는 짠한 잔상이 남았다. 문학이 영화가 될 때 내키는 대로 하나만 봐왔는데 <완득이>도 소설을 보고싶진 않았다. 소설을 읽었다면 영화를 안봤을 것이다. 하나만으로 처음 받는 그 감동과 충격이 좋다. 물론 둘 다 보는 것도 의도하든 안하든 많다. 책과 영화를 고르고 취하는데에 원칙이란 게 있을 리 없으니까.

 

근데 완득이 싱크로율 99% 유아인을 보니 <성균관 스캔들>이 생각나고 연달아 <해를 품은 달>이 생각나고 어제 본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면서 수요일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본방으로는 <부탁해요 캡틴>을 보지만. 기대감에 막 두근두근. 거긴 막내 김수현이 연기를 젤 잘하더라. 어쨌거나 우리 동네에도 이런 이웃들, 저런 선생님 한 분쯤 계시면 맨날 엔돌핀 솟구치고 비타민 돋게 살 수 있을텐데.

 

 

주말이 지났다. 나이는 잘 먹고 시간은 빠르고 할 일은 많다.

물론 영화도 많고!

이제 책 좀 읽어야지!(라고 하고 책만 보면 머리 아파ㅜ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30 02:28   댓글달기 | URL
완득이..최근에, 설 연휴 전인가 온 가족이 같이 봤어요ㅎㅎ 아들녀석은 잘 이해 못하겠다며 재미없어했지만 딸아이와 우리는 재미있게 잘 봤다지요~
<해를 품은 달>을 안 보다가 몰아서 보기 시작했어요.
저도 이제 좀 기대되요. 뭐랄까. 성균관 스캔들만큼의 재미는 없는데 김수현의 연기가 볼만해요.
한가인은 이쁘긴 한데...김수현이랑 역시나 나이차이가 나 보이더군요~~
어쨌든, 아주아주 오랜만에 드라마도 보기 시작했고, 영화도 한 편 봤어요.
잘 지내죠?^^

아이리시스 2012-01-31 00:26   URL
완득이는 생각보다 좋았고(기대를 안했어요) 해품달은 아직 3,4부는 못봤는데 그래서 이어지지가 않고 있어요. 얼마나 좋으면 왕이 저럴까 이런 생각만ㅋㅋㅋ
김수현이랑 한가인은 생각만으로도 안 어울리잖아요. 시작하기 전에도 그건 좀 웃기더라고요.

네, 저는 잘 있어요. 현맘님도요?
주말이 지나가고 또 할 일이 너무 많아요ㅋㅋㅋ
내일부터 춥다고 겁주는데 거긴 더 추울 거예요. 감기 조심하세요^^

stella09 2012-01-30 11:41   댓글달기 | URL
참 영화 많이 보네요.
그러고 보니 아는 영화가 있어 반가움에 댓글 씁니다. <플루토에서 아침을>요.
이 영화 좀 엉뚱한데가 있는데 그런대로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을 했어요. 본지 좀 됐는데.

김수현의 입술이 육감적이지 않아요?
그런 입술에 키스하면 맛은 있겠다 싶기도 해요.ㅋㅋㅋㅋㅋㅋㅋ
해품달을 믿어도 될런지 약간의 의문이 생겼는데 지금으로선 다른 대안이 없으니 일단은 계속 보기로 했습니다.
3월에 한다는 패션왕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때쯤이면 해품달도 거의 끝나가겠죠? 바톤터치가 잘 되면 좋겠는데.ㅋ
벌써 1월도 막바지어요. 나참 왤케 빠른 건지...ㅜ

아이리시스 2012-01-31 00:30   URL
네, <플루토에서 아침을> 괜찮은 영화였어요. 기발하고 신선했어요.
그런데 스텔라님, 입술이 육감적인 것도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남자랑 키스하면 아닌 남자랑 키스하는 것과 달라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모르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패션왕도 소문은 들었는데, 저는 일단 <신들의 만찬>의 성유리를 볼거예요. 요리 드라마는 관심 없지만 성유리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왜 이렇게 기준이 없는 건지..( '')

소이진 2012-01-30 12:06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타이타닉의 커플이 나오는 영화가 있단 말씀이어요?
타이타닉이라면 사족을 못쓰는데... 어둠의 루투를 한 번 이용해야하는걸까요 ㅠㅠ

아이리시스 2012-01-31 00:31   URL
저 영화는 소이진님이 볼 영화는 아닌 것 같고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라는 건 제 생각이고) 타이타닉 커플은 환상적이니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타이타닉 안 본지는 꽤 오래됐어요!

구차달 2012-01-30 14:10   댓글달기 | URL
완득이가 가장 기대 됩니다. 다른 영화는 잘 모르는 거라... 상품링크이미지 크기와 문단의 높낮이(?)가 동일하여 일목정연하게 보여서 좋네요. ^^

아이리시스 2012-01-31 00:32   URL
저 일부러 저렇게 딱 맞춰 쓰려고 노력했어요! 가만보니 맞춤증 환자 같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차달님이 일목정연하게 봐주시면 다행인데요^^

마녀고양이 2012-01-30 15:16   댓글달기 | URL
나..... 에너지 모자라서, 페이퍼 다 못 읽겠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아이리님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았음에 의미로, 얼굴만 내밀고 가여... 쪼옥~

근데, 아이리시스님 페이퍼 죽죽 내려가면서 보니,
내가 못 읽은게 왜 이리 많은거얌~ 루이제 린저 있는 저 페이퍼는 읽고 댓글도 안 달구... 아아...
멀라요. 그냥 부비부비..

아이리시스 2012-01-31 00:34   URL
마고님, 아까 문자 늦어서 죄송요. 그래도 제 스타일 아시니까^^
요즘 저도 댓글은 자주 못 써도 마고님 페이퍼도 잘 읽고 있어요.
제가 즐찾 서재가 열다섯 개가 채 안되거든요. 다들 자주 올리시는 분들 아니시고^^

저도 댓글을 좀 아껴서 제 댓글을 소중하게 만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는요, 뭘!
자주 쓸게요, 댓글^^

맥거핀 2012-01-30 17:57   댓글달기 | URL
아니..이런 폭풍영화감상을...설마 이 영화를 한 자리에서 다 보신 건 아니죠? 중간중간에 약간 휴식성(?)의 영화도 보이지만, 한자리에서 이 모든 감정을 다 맛봤다가는 자리에서 못 일어날 듯 싶은데..<웰컴 투 마이 하트> <레몬트리> <레스트리스> 세 편 찝어봅니다.

아이리시스 2012-01-31 00:36   URL
아니죠, 맥거핀님. 제 집중력이 얼마나 들쑥날쑥인데 저걸 한 자리에서 다 보시면(?) 초인이게요? 히히히. <웰컴 투 마이 하트>는 개봉할 거구요(다음 주), <레몬트리>는 생각보다는 지루하더라고요, <레스트리스>는 예쁜 영화예요. 찝어놨다가 꼭 보세요^^

영화를 좀 생활화 해보려는 중인데요, 일일이 리뷰쓰기엔 어렵고(부담이고) 개봉영화들 아니니까요. 이렇게 정리해놓는 게 은근 재밌네요^^

cyrus 2012-01-30 21:12   댓글달기 | URL
저는 혹시 영화 볼 기회가 있다면 아이리시스님 추천하신 영화를 꼭 봐야겠어요,
제가 그나마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쿡TV 밖에 없거든요, 비록 최신영화는 볼 수 없지만요 ^^;;
영화 제목이라도 꼭 기억해두고 있어야겠어요ㅎㅎ


아이리시스 2012-01-31 00:46   URL
시루스님 안녕.
고마워요, 잘 기억하고 있다가 보면서 아이리시스누나 생각도 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