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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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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7일 수요일







[소다테아게넷(育て上げネット)에 소개된 책 무업사회(無業社會)]

출처 : http://www.sodateage.net/





    오늘 통계청의 발표가 있었다. <1월 고용동향>을 보면 1월 청년실업률이 2000년(11%) 이후 최고치인 9.5%를 기록했다. 사실 1월 실업률은 2~4월의 실업률이 얼마나 되는지 내다볼 수 있는 부정적 지표의 기준이 되곤 했다. 졸업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지만 경기침체의 좁은 문에 머리를 들이밀지 못하는 실업자들 역시 그만큼 생기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그들은 ‘무능력자’일까? 취업의 문턱에서 주저하는 무기력한 이들일까? 아니면 실업자들을 구조적으로 양산하고 방치하는 사회의 문제인 것일까?


    여러 논의들이 있다. 그 중 일본에서 청년무업자들을 돕는 구도 게이(工藤 啓)와 젊은 학자 니시다 료스케(西田亮介)는 공저『무업사회(無業社會)』에서 이 대규모 문제를 시스템의 문제로 환원한다. 『무업사회』는 취업하지 않은 상태의 청년들에 대한 게으른 이미지가 투영된 사회를 비판함과 동시에 일본 사회의 시스템적 한계 역시 비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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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업사회는 “누구나 무업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무업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로부터 빠져나오기가 힘든 사회”(구도와 니시다의 책, 26쪽)를 일컫는 용어다. 이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직업의 문은 그 안으로가 아니라 밖으로 열려 있으며, 직업의 둘레에는 여러 깊은 구렁텅이들이 있는 모습이 된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어느 시대에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현재 청년 세대 앞에 놓인 상황은 과거의 어느 세대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180쪽)이며, 따라서 기존 세대들은 그녀/그들이 단지 게으르고 정신이 박약해서, 그리하여 도전 정신이 없어서 직업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 것으로 곡해하곤 한다. 하지만 시대가 다르다. 지금은 지속적인 고도성장과 베이비붐으로 물적·인적 상승이 동반되던 옛날이 아니다.


    일본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 저출산과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거품이 빠지면서 일본 사회가 겪었던 충격은 대단했다. “고도경제성장기와 같이 개인과 사회의 계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32쪽) 일본은 장기 채무 잔고가 약 1천조 엔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는 이달 5일 기준으로 국가채무가 600조 원을 돌파했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청년 세대를 납세의 주체로 만드는 건 거의 흥망이 걸린 문제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과 같은 저출산 저성장 국가들은 일단 정점을 찍은 이후 한없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재정파탄으로 인한 온갖 사회 문제들이 수면 위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 성장이 국제 경기 악화로 멈췄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저출산이 동반되어 인구 피라미드의 하체가 약해지는 상황이 덧붙여진 사례는 없었다. 국가는 무업사회를 분명한 문제로 보고 있으며,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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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업자 개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무업상태가 지속되면 인간관계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고립되다 보면 동기부여도, 자극도 받기 힘들다. 지나치게 실패에만 신경 쓰게 된다. 무업기간이 길어져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립은 심화되며, 두 저자에 따르면 무업기간이 3년 이상일수록 취업 방법을 모색하려는 무업자의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듯도 하다. 그런 그녀/그들이 어쩔 수 없이 모이는 곳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다. 대학 도서관에는 별도로 취업준비생들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매캐한 고민의 냄새가 가득한 곳. 흡연실에서는 한숨을 연기로 뿜어대는 이들이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간다. 그곳은 공부의 공간이자, 돈이 그다지 필요 없는 무료의 공간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대학은 잠들어도 도서관은 낮과 밤이 분명치 않다.


    아무 일이나 하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중소기업에는 일자리가 넘쳐나니 그곳에라도 들어가서 일단 일을 시작하라고 조언해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제각각 개성에 따라 재능과 적성에 걸맞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98쪽) 있다. 일하다가 골병드는 것이 가장 무식한 일이라고 어른들에게 들어왔다. 무리한 취직이 한 사람의 삶을 망칠 수도 있다. 어른들도 어느 매체든 설문조사를 할 때면 이렇게 대답한다. 직장 우울증 때문에 살기 힘들다고. 그래도 참는 그녀/그들의 생활력은 나 같은 청년이 보면 참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청년의 입장에서 본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세대는 중등교육 과정부터 충분히 겁을 먹어왔다. 우리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학원들의 대나무 숲에서 날카로운 바람을 맞아가며 함께 성장한 세대다.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너무 빠르게 성장했다.


    구도 게이와 니시다 료스케는 고도성장 정지 이후 일본에 등장한 ‘약자로서의 청년 세대’(145쪽)라는 표현을 쓴다. <취직 빙하기>라는 무시무시한 용어는 90년대 말부터 일본에 있었고, 이후 2000년대부터는 고립무원(SNEP) 세대가 증가했다. 당시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취업지원을 해주기 위해 기관 산하 여러 단체들을 운영했는데,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 성과가 거의 없는 모양이다. 두 저자는 회사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사실 구도 게이가 운영하는 소다테아게넷(育て上げネット)과 같은 지원 단체에서 도움을 받아도 막상 취업 이후의 상황은 또 다르니 문제다. 아마 구도는 열심히 키워 떠나보낸 딸/아들 같은 청년들이 다시 튕겨져 돌아오는 사례들을 수없이 보며 사회의 장벽을 무수히 탓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청년 무업자를 대상으로 상담이 가능한 공적 기관은 거의 없다.”(116쪽) 이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충분치 않은 국가의 관심을 지적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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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일본의 상황은 그렇게 된 것일까?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우리와 거의 다르지 않은 사회구조적 배경이다. 두 저자가 ‘일본형 시스템’이라 부르며 지적한 폐해들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신규졸업자 일괄채용, 종신고용, 연공서열형 임근, 기업별 노동조합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적 경영은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나 역시 튕겨져 나왔다가 재진입이 어렵다고 토로하는 주변의 청년들은 여럿 만나왔다. 기업문화에 맞춰 취업준비를 하게 되기 때문에 다른 문화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며, 심지어 그런 문화에는 들어갈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고학력자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복지도 문제다. 가입을 강요당하지만 정작 가입 후 자기 책임이 큰 연금제도는 사회경제 발전을 배경으로 설립된 것. 발전이 더뎌지는 와중에는 임기대응으로 방편을 칠 수밖에 없다. 부모님께서도 연금의 폐해에 대해 불만이 많으시다. 모든 어른들이 이 불만에 공감할 것이다. 소수의 특권을 지닌 이들이 아니라면. (오늘도 ‘갑질’ 기사 하나가 뜨거운 논란거리다.)


    국가는 복지를 위해 어떻게든 수입을 늘려야 한다. 워낙 엉뚱한 곳에, 전시행정이나 해외투자 같은 국민의 비난 대상이 되는 분야에 지출하는 양이 터무니없이 많아 일단 그런 행태들을 감시하는 국민이 되어야겠지만, 국민은 일단 국가에게 납세의 의무를 지니고 있는 구성원이다. “국가가 해주는 게 뭐가 있어!”라든지 “헬조선!”이라고 하면 딱히 반박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일단 개념 자체는 그렇다. 따라서 국가도 적극적으로 청년무업 문제에 관여해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문제에 대한 논의는 NPO 선상에서만 활발하다. 이들은 부분적인 해결책만 내놓을 수 있을 뿐이다. 그 사례들은 『무업사회』에도 충분히 실려 있다. 긴급구제, 취직독려, 재진입시스템 구축 등의 대규모 정책은 국가가 도맡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NPO보다는 훨씬 규모가 큰 단체가 맡아야 한다. 실천할 의지가 있는 단체가 맡아야 한다. 두 저자는 해결 방안이 그것 “이외에는 없다.”(174쪽)고 단언한다. 더불어 청년무업자들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인식에도 변화를 촉구한다.


    정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 예로 일본 아베 내각 1기 때에는 ‘재도전 담당 장관’이라는 신선한 정책이 제시된 바 있었다고 한다.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두 저자는 그와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제스처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르진 않은 듯하다. “칸막이 행정의 폐해를 제거”(184쪽)해달라고 부탁하는 저자들의 목소리에서 어딘가 김이 빠지는 풍선 사회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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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모두 싣지 못하는 NPO의 현장은 구도와 마츠오 사아키 교수의 대담에서 분명히 느껴진다. 구도와 같이 “현장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189쪽) 이들의 노력으로 직장에 잘 정착한 이들의 사례도 이 책에 실려 있다. 하지만 왜 그러한 움직임은 국가 주도로 실천되지 못하는가. 기업에는 애당초 기대하지 않는다. 기업은 ‘국민’이라는 주체에 대한 책무를 이행하지 않고 국가 밖으로 빠져나가도 상관없는 단체다. 기업윤리와 국가윤리는 다른 차원에 있다. 반면, 국가는 국민이 탄 배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치가 ‘정치만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되는 것처럼 그 공간을 감싸고 있다. 『무업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답답한 분위기는 충분히 우리들의 것일 수 있다.


    『무업사회』에는 수많은 통계들이 나온다. 0과 1로 이뤄진 데이터들. 하지만 구도 게이는 그 뒤에 숨겨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그 응축된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본(人本)의 취지인 것이다. 국가가 이런 말을 하고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시대를 바라는 건, 정치와 사회를 잘 모르는 지나친 순진한 바람일 뿐일까. 모르겠다. 무수한 비난들 속에서, 나는 되도록 이 사회를, 이 시간과 이 공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긍정일 수가 없다. 기대를 저버리는 정책자들의 무능과 근근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그리고 우리 시대의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실천들 사이에서 바라볼 뿐이다.


    구도 게이는 한 사람의 청년을 취업시키는 많은 시간과 노력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수고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나의 대답은 늘 ‘그렇다’이다.”(298쪽) 그처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고자 재야에서 노력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의 노고에 고개를 숙이듯 이 책을 덮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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