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아타루(佐々木 中)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切りとれ、あの祈る手を)』

  : 둘째 밤 독서



2016년 1월 21일




    붉은 단어. 혁명. “붉다.”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크게 변질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멀리서 보니 그렇게 보였다. 그 단어와 함께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운동권 학우들 곁에서 봉기와 투쟁과, 그런 말들로 이뤄진 뜨거운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낀 교수들의 경험담 듣는 걸 좋아했다. 교문이 걸려 있어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거나 교실 창문으로 최루탄이 날아 들어와 신촌 오거리까지 냅다 뛰었다거나, 그런 재밌는 이야기들. 모르니 재밌던 것이다. 메케한 CS탄의 냄새가 갑자기 떠오르기도 했다. 콧물과 눈물도. 그런 무용담은 나른한 봄날의 수업에 없어서는 안 될 쉼터였다. 창가에 지정석 갖는 걸 좋아하던 내게 그런 날들의 봄바람은 잊히지 않는다. 혁명. 그건 아주 먼 것이었다.


    그것이 붉었던 까닭은 유혈과 닿아 있는 역사를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오후 가족과 함께 K사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대결. 사실적 묘사를 위해 배우들이 열연을 했고 그래픽도 상당했던 프랑스의 수작 다큐멘터리였다. 그걸 보다 말을 던졌다. 얼마나 미칠 수 있으면 참호에서 날아오는 총탄을 맨몸으로 맞을 생각에 뛰어갔을까. 전쟁 없는 시대에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평화를 가장한 기만적인 말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사실인 걸, 이런 변명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여기서 불현듯 그 다큐가 생각났던 건 전쟁과 혁명의 유사, 낭자한 피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모든 혁명은, 아니, 조금 양보해서 ‘대체로’ 혁명은 “폭력이고 유혈이며 참극”(73쪽)으로 기억된다. 그런 관점의 역사책은 얼마든지 찾아 읽을 수 있다.


    사사키가 우리를 두고 혁명의 후손이라 일컬은 건 역사적 사실을 소행해서 내린 결론이다. 그럼 물어볼 수 있다. 우리는 전쟁의 후손이다, 우리는 향신료 무역의 후손이다, 등등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체의 형성에 대한 모든 걸 가져다 붙여놓을 수 있고, 얼마 후 개성이 출현하는 장면까지 목격하리라. 물론 이런 오류를 범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유치함이야말로 본질로 가는 길이라고 믿어본 적이 없던 게 아니라 그냥 해본 질문이었지만, 사사키는 그 모든 걸 뛰어넘고 결론짓는다. 우리는 혁명의 후손이다. 그 무엇보다도. 그렇다. 둘째 밤 독서에서 중요한 단어는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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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이야기가 나온다. 좋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루터를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루터 전집을 다 읽어야 그를 이야기해볼 수 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술회하는, 그럼에도 기꺼이 대혁명을 들여다보는 사사키처럼 나는 겸손한 사람은 못 된다. 루터는 미술사를 공부하는 내게 중요한 이였다. 이쪽에서, 그러니까 미술사 입장에서 보면 그는 하나의 필터다. 그의 개혁은, 대혁명은, 로마 가톨릭을 저 꼭대기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거대한 일을 오로지 문자만으로 격파한 그는 미술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에게 반격하려는 가톨릭 측의 반종교개혁만 보더라도 그렇다. 미술은 오로지 신에게 봉사해야 된다는 중세적 관념이 르네상스 이후 느닷없이 강화됐다. 아니, “느닷없다.”는 표현은 단락을 무시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그만큼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르네상스 정신의 일면은 몸을 움찔했고, 대신 기이할 정도의 화려함이 강조됐다. 그래서 바로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여하튼 눈살 찌푸리게 하는 검열의 칼날이 거장들을 법정으로 줄지어 소환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베로네세를 들여다본 적이 있다. <레위의 집에서 열린 축제(Cena a casa di Levi)>라는 대형 유화 때문에 그는 1573년 종교재판에 회부됐고 혼쭐이 났다. 난잡한 군중들의 묘사가 성화를 왜곡한다는 게 공식적인 소환 이유다. “저희 화가들은 시인과 광인들과 같은 파격을 사용합니다.”라고 말했다가 재판 말미에 결국 재판관들 앞에 몸을 숙여 황급히 절을 하며 반항의 뜻이 없음을 드러내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파격, 즉 license는 예술적 파격이다.)


    이게 바로 루터 반대편에 있던 가톨릭의 모습이었다. 사사키는 르장드르를 빌리더니 이미 사목 권력이 그 운을 다한 당시 모습을 여러 부패와 연관하여 그린다. 다 사실이다. 나는 냉담자라 성당에 나가진 않는다. 하지만 성경을 읽고, 종교 비판 저서들을 탐독하며, 여러 종교의 경전들을 곁에 두고, ‘영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 그 사이에서, 아니, 그 차이에서 조화와 궁극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나의 기대는 영성의 추종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런 태도 덕분에 나는 모든 종교의 왜곡에 집중한다.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대』를 여기서 다시 한 번 언급하게 되는데, 그 책이 내게 그 무엇보다도 충격을 줬던 이유는 어쩌면 그런 일이, 그러니까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이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설에서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구원 받지 못한 채 타락과 피폐의 구렁텅이를, 히에로니뮈스 보스의 <건초수레 삼단화>에 나오는 것 같은 무지몽매한 수레 위의 중생들로 남아 있을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리를 위해 죽지 않았다. 이 말을 하는 구 유고의 도발적인 작가가 그 누구보다도 성경을 탐독하고 그 안에서 진리를 찾아내려고 했던 자라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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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족의 사교장으로 굴러 떨어진 수도원은 물론이고 면죄부(대사부, 속유장)도 언급된다. 루터가 그리고 나타났다. 단언해두는데 루터는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을 선언 받았을 뿐, 그가 정말 ‘이단(異端)’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조르다노 브루노의 우주관을 얼마든지 변호할 것이다. 기득권 종교는 ‘전통’이라는 기관(器官)에 목을 매고 있었다. 그 전통 속의 신이 반격의 대상이 되며, 그렇게 이단은 정의의 편에 서서 새로운 신을 갈구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단이 된다. 신이 양분되어버린 상황이다. 한쪽의 신과 다른 쪽의 신. 그 같은 이름. 루터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릴 억압하는 전통의 신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신에게로 회귀할 것인가. 그렇다. ‘회귀’라는 표현이 딱 맞다. 그건 성경으로 돌아가는 작업이었으니까. 그래서 루터는 사사키의 말마따나 [읽기-씀]의 철저한 작업을 거쳤다. 자신이 미친 것인지, 세상이 미친 것인지를 묻는 지점에서는 용기도 발휘했고.


    이걸 문자주의라 부르며, 혹은 일부 몰상식한 견해로 ‘복음주의’라고까지 부르며 매도하는 이들이 있을까 모르겠다. 루터가 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그걸 “종교적 언어도 과학적 진술처럼 의미가 분명하고 알기 쉬워야”(카렌 암스트롱,『신을 위한 변론』, 370쪽)한다며 과학을 이기려고 한 전략적 복음주의자들의 어리석음에 닿아놓겠다는 건가? 아니다. 후세의 과오를 그에게 바르진 말자. 루터는 읽고 쓰는 고독한 싸움 끝에 현실의 문제를 타파할 새로운 준거로 성경을 선택한 이다. 농민전쟁의 야기는 비판할 점으로 회자되겠으나, 여기서는 혁명을 본다. 사사키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는 언어의 사람입니다. 그는 읽고 썼습니다.”(사사키의 책, 88쪽) 그리고 보름스 국회에서 교황을, 공의회를 겨냥해 신의 도움을 청한다. 오늘날 신이 갈라져 있다고 말하지 못할 바는 하등 없다. 그러니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


    사사키가 루터의 설교 능력(카리스마)과 음악 사랑을 곁가지로 언급한 건 읽고 쓰는 것의 정적인 격렬함 외에 그가 가지고 있던 또 다른 면을, 하지만 결코 떨어뜨려 생각해볼 수 없는 면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리라. 그를 따르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정확히 말하자면 ‘농민’들이. 요한 하위징아가 『중세의 가을(Herfsttij der Middeleeuwen)』에서 묘사한 그 인산인해의 풍경이 16세기라고 해서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글을 모르는 이들은 책을 사서 읽어달라고 했다니. 이런 면도 혁명의 한 축이었다. 하지만 사사키가 내내 집중하는 건 그보다는 [읽고-씀]이다. 그것이 『야전과 영원』에서 뭐라고 언급되었던가. 역사의 도박장에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준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법이 여기서 빠질 수가 없다. “대혁명은 법의 혁명이기도 했습니다.”(98쪽)


    그런데 법은 그 준거를 거듭 소행해서 끝까지 추궁하다보면 난제에 봉착한다. 우리에게 행동의, 더불어 생각의 울타리를 치는 강력한 법은 실은 사례와 근거를 들며 우리를 설득하지만 그 근본의 근거가 없다. 이 근거율과 인과율의 분리는 사사키의 앞선 책에서 독자를 괴롭힌 문제였다. 칸트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법의 법은 없다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 해석의 법은 없다고. 누구나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법은 힘이다. 법의 해석이 곧 힘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래서 데리다가 『법의 힘(Force de loi)』에서 칸트를 빌려 “힘이 없이는 법도 없다”(데리다 책, 15쪽)는 말로 그 강제성을 우선 환기시킨 것이다. 그러면 물어볼 수 있다. 루터는 어떻게 법의 변혁을 이뤘는가? 다시 말해 그는 ‘법의 힘’을 어디서 끌어다놓았는가?


    양심. 미묘한 단어다. 양심이라는 건. 사사키는 『야전과 영원』의 미완으로 양심을 논하지 않은 걸 꼽았는데, 혹 그와 관련된 책이 있다면 (물론 번역서가 나와야겠지만) 읽어보고 싶다. 저 단어만큼 복잡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이니, 루터파 법학의 양심은, 그러니까 재판관에게 “양심대로 판결하라.”고 넘겨버리는 저 개념은 다소 불안해하다. 무너져버릴 것 같다. 그러나 영미법과 일본의 현행법도 양심에 기초한다고 한다. 이걸 알면 법의 딱딱한 이미지가, 그 입자들의 결합이 풀려 흐물흐물해지는 장면이 상상된다. 이 양심을 통해 신의 법이 민중 사이로 들어와 법의 종교화가 달성됐다.



*   *  *



    사사키는 농민전쟁을 돌아가지 못한다. 루터를 추앙할 생각이었다면, 그런 초보적 글을 쓸 생각이었다면 애당초 읽고 쓰는 고독한 작업을 향한 용기와 그 후 이룩된 법의 혁명만 논하면 됐다. 자크 바전의 『새벽에서 황혼까지(From Dawn To Decadence)』에 실린 루터의 인간미와 맹렬한 투사의 이미지를 교차시키며 혁명의 시초이자 영웅으로 짜내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농민전쟁의 폭력은 루터의 해석을 가로막고 있다. 다시 말해 여기서 갈라진다는 뜻이다. 사사키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 방향으로 이해하려고 했을까?


    이미 일어난 그 폭력이 수많은 희생을 담보로 해야 하는 상황을 연출했지만 실패한 건 아니라고 우선 말한다. 과도한 징세 폐지, 농노제 폐지, 토지 반환 등 농민의 정당성이 권력의 방패를 뚫고 승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를 흘리는 게 불가피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의미일까? [읽기-씀]을 이야기하던 그가 그런 결론으로 갈 수 있을까? 가당치 않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루터는 언어의 사람이었다고 했으니, 그 혁명의 모든 과정에서 폭력은 [읽기-씀]의 밑으로 들어간다. 피해를 거듭 상기시키는 와중에도 그는 분명히 견지한다.


    “텍스트는 폭력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111쪽) 그것은 법을 다시 쓰는 것. 도박에서 이기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단, 의구심은 남는다. 확실한 사례들을 통해 고정관념을 쌓아버린 까닭이다. 역사의 도박장에서 목도한 ‘피의 힘의 대결’이, 그것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것이든 후행하는 것이든 더 본질적인 것만 같은 의구심.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사사키가 ‘혁명의 본질’이라 말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계가 있다. 나에게는. 폭력과 주권 탈취, 그리하여 얻게 되는 자유의 패턴이 우리 사회에서, 내가 일부 교수들에게서 직접 들은 생생한 증언으로 있었다. 그렇게 얻은 자유의 설렘을 뒤로 한 불안함이 만연한 시대에서 나는 태어났고 이렇게 산다. 근원을 따질 때냐고 묻는 이들도 이해되고, 그렇게 겉만 훑다가 텍스트가 아닌 폭력을 지향하는 이들의 초조함도 이해된다.


    다만 나는 조금 멈춰보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이 멀다고 한 것이고. 사사키가 [읽기-씀]이라고 요약되는, 즉 넓은 ‘문학’으로 요약되는 과정이 그 무엇보다도 본질이라고 말했을 때, 그래서 나는 주춤했다. 이것이? 텍스트를 앞에 둔 공포를 공유하고, 읽고 씀의 어려움을 거의 매일 체감하는 나의 이것이? 혁명이라고? 그러니 나도 덩달아 초조해진다. 시쳇말로 농담해보자면, 겨드랑이에 땀이 찬다. 주먹을 쥐고 뛰어나가려는 이의 격정적인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가까이에 있는 듯 상상이 된다.


   그런데 그게 죄란다. 카프카의 말을 빌려, 사사키는 그것이 죄라며 우리의 행동을 잠시 저지한다. 조금 더 들어가 보려는 그가 다음으로 향할 곳을 미리 내다본 건 다행이었을까. 모르겠다. 중세 해석자 혁명으로 갈 참이다. 그건 무엇보다도 [읽기-씀]의 위력을 설명하는 진수. 그렇게 나는 배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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