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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심리학 - 페이스북은 우리 삶과 우정, 사랑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수재나 E. 플로레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9월
평점 :
2015.11.02
“정작 온라인 세계는 사람들 간의 접속이 지속되는 시간을 오히려 축소시키는 방식을 통해서 그런 사람들 간의 접속을 무한히 증대시킨다. 그 결과 지속적인 접속 기간을 요구할 뿐 아니라 때로는 그 지속 기간을 더 강화시켜야만 유지될 수 있는 그런 인간들의 유대관계는 오히려 약화시킨다.” (지그문트 바우만,『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41~42쪽)
두 세계가 각기 다르다는 것은 온라인 세계를 충분히 만끽한 세대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은 마음껏 꾸밀 수 있는 무한의 세계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거의 직감했다.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처음인 세계였다.) 그렇게 우리는 아바타를 사고, 프로필 사진을 위해 사진 각도를 배우며, 좀 더 생각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자 아포리아들을 찾아다녔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말의 진의는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다’였다. 선망의 영역 언저리에서 우리는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문제는, 그렇게 멋진 ‘나’와 ‘나’들이 서로 만나면 나체도 아닌데 왠지 헐벗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일찌감치 하차했지만 아직도 그 선로 위를 달리는 이들이 많다. 온라인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죽음도 0과 1 사이에서 맞이한다.
수재나 E. 플로레스 박사의 <페이스북 심리학(원제 : Facehooked)>은 온라인에 묶여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하지만 극단적이거나 선정적인 사례들이 주목을 끌었다. 불편하긴 했다.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우리가 익히 들어온 온라인의 폐해 지적과 비교해도 딱히 변별되는 주장이나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온라인 중독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되는 ‘인터넷 끊기’ 류의 일반적인 대책을 제시한 것도 평범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온라인 세계의 발달과 같은 궤도 안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강박적으로 SNS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한, ‘좋아요’ 반응이 올라오면 그때만 반짝 흥분하는, 전형적인 IAD(인터넷 중독 장애) 증상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나타나고 있다면 이런 책에서 탈출의 실마리를 찾아봐야 한다. 이 책은 기호에 맞춰 읽는 종류의 책이 아니다.
SNS 사용을 위해서는, 아니 최소한 그 세계에 접속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보여주고 공유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그 이미지는 대개 이상적인 페르소나로 편집된 것이다. 그런 페르소나를 향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지나친 기대를 부과한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는 물론 인터넷 상의 ‘나’가 먼저다. 현실은 낮은 자존감, 우울증, 의존증 등에 시달린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페르소나 편집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게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는 게 문제다. 편집된 페르소나가 현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면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로그아웃하는 순간 까마득한 높이를 떨어지는, 기분 나쁜 현실의 중력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공감과 동의, 그 ‘좋아요’를 눌러주는 세계로 들어가려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SNS의 친구는 과연 진짜 친구일까? 우스갯소리지만 진짜 친구와 SNS를 하는 경우는 제외하자. 수재나 박사는 온라인의 친구는 ‘관객’이라고 일축한다. 물론 건강한 온라인 친구도 있다. 얼굴도 본 적 없고 서로 전혀 몰랐던 사이인데 장문의 편지만 주고받으면서 평생 서로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고 인생의 멘토가 되는 사례는 컴퓨터라는 걸 상상할 수도 없었던 옛날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이를 기대하기에 우리의 ‘온라인’이라는 환경은 참을 수 없이 가볍다. 수재나 박사는 “태생적으로 가볍고, 정보나 긍정적 반응, 지지를 받기 위해 유지된다.”(95쪽)고 썼다. 이런 가벼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라인 친구와의 문제를 인생 최대의 미제로 남겨놓은 채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례가 있다. 심리치료 분야의 흔한 주제라고 한다. 가짜 페이스북 프로필을 보고 사랑에 빠지거나, 질투, 스토킹, 강박, 복수 등 극단적인 애정 행위를 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이 양날을 갖고 있다면 이런 비극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베어내는 날만 휘두르는 셈이다.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갈라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합하도록 만들어진 소셜네트워크다.”(132쪽) 혹 이런 문제는 사용자 본인이 한 번만 깊게 생각해보면 익히 해결될 것은 아니었을까.
20대에서 30대로 슬며시 넘어가면서 나는 SNS를 통한 피드백에 많은 회의를 느끼게 됐다. 좋은 말 남기는 사람들을 ‘팔로우’하던 시절도 있었고, 지금은 없어진 한 커뮤니티 서비스에 온갖 사진을 올리고 방명록을 남기며 옛 친구들(대부분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교우한 적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본다. 그때 방명록에 남길 말들, 지금 SNS에 남길 말들은 전화해서 직접 하면 되는 거였는데. 다른 사람의 말이 좋아서 ‘팔로우’하는 거, 짧고 좋은 말들이나 아포리아 좋아하던 건 그냥 멋져 보여서 였지. 뭐 이런 생각들 말이다. 실제의 만남은 깊고 길다. SNS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짧은 말들은 사실 긴 말의 일부분이라 우리 멋대로 발췌해서 해석하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진득하게 붙어 있어야 할 공간은 그곳이 아니다.
열심히 인터넷에 목을 매던 시절에는 수재나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개인정보가 어디까지 노출될 수 있는지 큰 고민을 하지 않았던 듯도 싶다. 나는 “공개광장을 통한 자기표현을 사회적 표준으로 여기며”(154쪽) 자란 세대까지는 아니다. 자신을 꾸미는 것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를 가감 없이, 일상과 감정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신체까지 노출시키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이들을 보면 우리가 과연 어느 선까지 온라인 세계에 자신을 담아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인터넷 세계의 변화를 목격한 세대는 너무 빨라진 기술의 속도에 일순간 거부반응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하는 것이, 그래야만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의 환경에 적응하게 되는 새로운 세대들은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문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10대들이 유독 SNS 문제에 노출되어 있는 까닭 중 하나가 이로 설명된다. 그 때문에 수재나 박사는 부모들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방법을 적었다. 여러 세대가 조금씩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수재나 박사도 SNS의 건강한 측면을 간과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사 본인도 SNS에 푹 빠져 있던 일반적 경험을 한 당사자다. 다만 그녀가 주목하고 싶은 건 우리가 그 세계에 중독되어 잃어버리게 될 우리 자신의 가치다. 부모가 게임 하는 아이 뒤에서 잔소리를 쏟아낸다. 아이는 당연히 싫어한다. 부모는 격동의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와 사이가 조금 틀어질 수도 있다는, 부모 입장에서는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는 결단을 내리고서라도 아이를 공부시키고 싶다. 아이는 게임과 공부가 서로 상극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그 중독의 대상에게 자기 자신의 많은 부분을 거의 무담보로 넘겨준다는 뜻. 부모는 아이 스스로가 주체로 자라길 바란다.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어른이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하는 것, 그 속뜻을 아이가 알기에는 너무 어리기도 하다. 중독의 대상에 의존하지 말 것. 이것은 중독의 마력을 지닌 무수히 많은 이 세상의 것들 앞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제 1 원칙이다.
“페이스북에 무엇을 올릴지를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근거하여 결정하면 그들에게 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힘을 넘겨주는 셈이다.”(241쪽)
작업수행능력이 떨어진다. 기억력도 감퇴한다. 우울증이 생길 수 있고, 심한 경우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 마약에 가까워질 확률도 높아진다. 강박충동이 일어나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고, 섭식장애가 와서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수재나 박사가 파괴자(사보타주), 나르시시스트, 순교자, 유혹자, 스토커, 이렇게 다섯 부류로 나눈 ‘SNS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들’에게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 때문에 SNS 반응을 받을 때만 반짝 기분이 좋아 감정의 굴곡이 심해질 수도 있고, FOMO(소외 공포증)를 겪어 불안해질 수도 있다. 뭔가 포스팅을 남겨야 할 것 같은 강박 관념에 정작 올리지 말아야 할 것을 올려버리는 말 못할 해프닝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저건 분명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전혀 건강하지도 않다. 박사가 말했듯이 대부분의 SNS는 분명 화합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의 자존감을 스스로 갉아먹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면 우리는 애당초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이용하는 사람 자신에게 있다. 해결책도 개개인에게 다르게 주어질 것이다. 자본의 생리는 앞서 말한 폐해의 책임을 이용자에게 고스란히 넘기곤 한다. 이용자인 우리가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단히 식상한 말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일상 습관을 건강하게 다져놓는 것밖에는 없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보면, 인터넷의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물에서 나오기만 하면 된다. 페이스북 중독 예방책이라고 해서 수재나 박사가 10가지 방법을 적어놓았다. 다 모아서 합쳐놓으면 “담근 발을 조금씩 빼라.”로 일축된다. 금연하려면 담배를 멀리해야 하고, 살을 빼려면 가급적 덜 먹어야 하며, 도박을 끊으려면 도박장 근처에도 가지 않으면 된다. 박사의 지침대로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자신이 일상과 SNS 세계 사이에서 훌륭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온몸에 퍼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