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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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 연표도, 지도도 없이 우아하게 읽는 세계사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저널리스트는 스스로를 아마추어 역사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계사를 전면적으로 다루기보다 과감하게 세부를 무시하고 핵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방문한 아테네에서 이 책의 도입부를 쓰는 저자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독자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저자의 입담은 책을 읽는 내내 유지됩니다. 스토리텔링처럼 흐르는 방식이면서도 핵심은 어찌나 잘 붙들고 있는지, 게다가 신선한 내용도 많아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저자의 독창적인 생각과 주장을 드러내지는 않았다는 걸 분명히 밝힙니다. 돌팔이의 영역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까지. 이 저자 볼매더라고요.

 

세계사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저자는 먼저 왜 인간은 과거의 이야기에 사로잡힐까 묻습니다. 지나온 발자국을 반성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일까, 차라리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그에 대한 답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과거다."라는 데 있습니다. 인류를 중심으로 창조 또는 진화가 완성되었다고 전제하기에 역사는 결국 인간입니다. 46억 년의 세계사 중 7만 년의 인류 역사는 지극히 짧은 시간임에도 말입니다. 인간이 자연에 맞선 시점부터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 접근 방식인데 이것 역시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아닌 자연의 정복자로서 가치를 두었을 때라는 걸 짚어줍니다.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과 주요 도시의 발전을 통해 세계사를 설명합니다. 과거의 사례들을 통해 역사를 만든 영웅들과 악당, 역사를 바꾼 중요한 사상 및 작품 그리고 세계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룹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이름, 사건, 날짜가 없습니다. 그림, 연표, 지도도 없습니다. 옛사람들의 생활방식이나 그들이 어떤 걱정에 빠져 있었는지 진심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말이죠. 그래도 태초의 역사부터 인지 혁명, 농업 혁명 정도까지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축약본 느낌처럼 빠르게 짚어주니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쇤부르크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목적에 더 집중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그들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의미 있다는 것을요.

 

역사에는 일종의 가속 추진제인 빅뱅의 순간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알아채는 때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입니다. 역사적 사건이 가진 결정적 의미는 나중에서야 드러나는 겁니다. 어쨌든 역사가 결정된 대전환의 순간들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사건들을 먼저 다룹니다. 그리고 모든 도시의 어머니 바빌론을 시작으로 현대 상하이까지. 세계의 중심지가 이동한 경로를 살펴보면서 인류사의 진행 과정, 고등 문명의 흥망성쇠에 관한 지리적 의의를 살펴봅니다.

 

 

 

앞서 다룬 주제를 요약하는 Top 10 목록만 쭉 모아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바꾼 영웅 Top 10에 알렉산더, 나폴레옹 같은 인물은 없습니다. 오히려 마리 앙투아네트, 할리드 아사드가 자리 잡고 있어 신선했어요.

 

아테네는 역사상 가장 고상한 척했던 도시라 설명하고, 잊힌 여왕인 알자바에 대해서는 <헝거게임>의 캣니스에 비유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와 칭기즈칸을 합한 것보다 더 대담하고 당돌했던 여성이라 소개하질 않나, 미친놈과 영웅은 한 끗 차이라는 점도 짚어줍니다. 꼼꼼히 읽으면 빵 터지는 포인트가 제법 많습니다.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이름 모를 꽃 이야기를 하며 이름을 아는 순간 달라 보인다는 말이 기억나는데요. 쇤부르크 저자도 인류 역사를 바꾼 말들을 소개하는 파트에서 비슷한 의미의 말을 합니다. 부재하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면서, 상상 속 대상을 언어로 지칭하는 순간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게 됨을 역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파트에서는 언어가 가진 폭발력에 집중해 인류 역사를 바꾼 연설들을 Top 10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외 서양에서 형성된 정신을 살피며 인류가 만들어낸 이념을 다루고, 역사를 바꾼 발명, 발견, 기술혁신을 통해 인간의 시대를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중심적 역사 서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로 역사철학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뒤늦게 알아차린다."라는 말처럼 파국을 경험한 후에 깨닫게 되는 인간.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사를 세계를 파괴하는 자기애와 자신을 포기하기에 이르는 이타적 사랑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극단적인 다툼의 과정으로 바라봤습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인류의 진보라고 부르고 있고요.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에서 다룬 역사적 사건과 인물 스토리는 우리 미래의 모습이 어떨지 예측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덜 사악한 행보로 방향 잡을 수는 있습니다. 역사를 되짚어보는 의미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려준 책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네요. 우리가 모르거나 잘못 알았던 역사적 진실들을 보너스로 소개합니다. 오해, 의도적 조작에서 비롯된 것들의 진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에 의문을 가지도록 끝까지 당부하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유럽 중심 세계사임에도 조금은 특별한 세계사 이야기책입니다. 책 속에서도 내 친구 유발 하라리를 몇 차례나 강조하는 쇤부르크 저자, 은근 재미있는 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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