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루스 호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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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화제작 영국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The Keeper of Lost Things).

작가 루스 호건이 암 진단을 받고 화학 치료 중에 완성한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문장 하나하나에 추억과 인생의 소중함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찰스 브램웰 브록클리는 14시 42분 런던 브리지에서 브라이턴으로 가는 열차를 표도 없이 혼자 타고 가는 중이었다. 열차가 헤이워즈 히스 역에서 흔들리며 멈춰 서자 그가 들어 있는 헌틀리&파머스 비스킷 통이 좌석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하지만 통이 열차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려는 순간, 어떤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그것을 잡았다." -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첫 문단.

 

믿기 힘든 이야기. '그가 들어 있는 비스킷 통'이라니. 순간 판타지 장르인지 다시 한 번 확인까지. 찰스 브램웰 브록클리의 정체는 후반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데 일단은 어떤 믿음직스러운 사람, 앤서니 퍼듀 작가의 손에 들어온 비스킷 통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합니다. 

 

 

 

 

유명한 소설 작가 앤서니 퍼듀는 결혼 직전 약혼녀를 잃은 아픔을 겪고, 결혼 후 살려고 했던 집에서 평생을 홀로 지냅니다. 그의 비서 겸 가정부인 로라가 옆에서 도와줍니다.

 

앤서니 퍼듀에게는 한 가지 괴상한 취미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주워 와 서재 벽과 서랍 가득 모아두는 거죠. 그 물건을 어떻게 수집했는지 날짜, 시간, 장소 등 간략한 정보를 라벨지에 적어둡니다. 기차 안에서 발견한 비스킷 통 역시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회색 가루가 든 비스킷 통이라니. 화장한 유골이 맞다면 어떻게 잃어버리게 된 걸까... 의아하기만 합니다. 

 

 

 

비스킷 통을 제외하고는 소설에 등장하는 각종 잃어버린 물건들은 숨은 스토리와 함께 소개됩니다. 소설 속 소설 같은 구성이었어요. 앤서니가 수집한 물건들은 단추, 반지, 장갑, 곰인형, 열쇠, 장난감, 우정 팔찌 등 소소한 것들입니다. 지그소 퍼즐 조각도 있습니다. 물건이라 불러도 되는 건지, 쓰레기인지 도통 구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한때는 사람들의 진짜 인생에 속해 있었던 것들입니다. 물건들의 사연은 식상하지 않습니다. 한 편 한 편 진한 여운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앤서니 퍼듀의 기력이 쇠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의 박물관인 서재가 있는 이곳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할 상황입니다. 그의 유언은 가정부 로라에게 모든 것을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불우한 세월을 겪은 로라는 앤서니의 집을 마음의 위안처로 삼아 왔습니다. 전형적인 영국 티타임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빈티지하고 앤티크한 그 집은 그녀가 꿈꾸던 생활이었거든요. 앤서니는 그녀에게 이 모두를 물려줍니다.

 

이제 로라가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가 됩니다. 하지만 로라는 앤서니의 유언에 따라 그가 모은 분실물들을 주인에게 찾아줘야 하는 일까지 맡습니다. 그 과정에서 앤서니가 누군가가 잃어버린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한 이유를 알게 되는데...... 정말 찌릿찌릿해져요.

 

로라의 현재 시점 외에도 40년 전 소녀 유니스의 이야기도 등장하는데요. 1974년에 출판업자 바머를 만나며 결혼하지 않고도 소중한 사랑과 우정을 나눈 유니스와 바머의 인생입니다. 앤서니와 로라 그리고 유니스와 바머의 인연이 묘하게 얽히는 게 이 소설의 포인트!

 

잃어버린 물건을 주인에게 찾아주면서 단 하나의 부서진 심장이라도 고쳐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을 거라는 앤서니의 말은 특히 인상 깊었어요. 그 역시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모든 분실물들을 구출하면 누군가가 세상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아끼는 것을 구출해 주지 않겠느냐는 바람을 가진 그의 마음이 애틋했어요.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에서는 옛 노래도 많이 나옵니다. 에타 제임스(Etta James)의 'At last',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의 'Someone to Watch Over Me', 뮤지컬 라 카지의 'I Am What I Am'. 소설 내내 배경음악이 깔리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특히 앤서니와 약혼녀의 추억이 담긴 알 보울리(Al Bowlly)의 '당신에 관한 생각'(The very thought of you)는 담백한 재즈풍으로 음악을 틀어두고 읽으면 분위기에 더 푹 취할 수 있답니다.

 

삶의 목적의식이란 단어가 종종 눈에 띄었는데 암 진단받은 루스 호건 작가의 심경이 느껴지는 단어이기도 했어요. 인정을, 사랑을 얻고 싶어 하는 소설 속 인물들. 상실의 아픔을 가진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잃어버린 물건이 어떻게 작용할까요. 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를 읽는 내내 소소한 감탄사는 물론이요, 애잔함에 코끝이 찡해지기 일쑤였습니다. 미풍이 불어오는 장미향 가득한 정원에 앉아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때처럼, 굳은 마음을 느슨하게 해주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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