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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붉은 노을 색깔의 책 표지가 주는 기운.
미련, 집착, 그런 것들로 가득한 애정.
낙하하는 저녁. 하지만... 저녁의 냉철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저녁의 냉철함. 나는 저녁이 되면 신체의 리듬은 최저치인데, 정신의 리듬은 고조를 달리곤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에쿠니 가오리도 그랬나보다. 그 저녁에 낙하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 누구든 한 번 보면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한 여자가 있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누구를 소유하려 하지 않으며, 먼저 베풀려 하지 않을 뿐더러, 타인의 애정을 갈구하지도 않는 그런 한 줄기 바람 같고, 연기 같은 존재.
정말 불행하게도 그 존재는 다른 이들의 사랑까지 깨뜨리게 된다. 어이없게도 이것은 ‘본의 아니게’이다. 여기서 비극의 씨앗이 시작된다. 그 남자들은 자신의 사랑까지 깨뜨리면서 자신의 존재의 뿌리까지 흔들림을 당하면서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며 달려오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고 소망하지 않으니, 말이다.
나, 리카는 학창 시절 만난 남자 다케오와 8년을 연애한 사이다. 연애하다가 결혼 비슷한 동거까지. 그런 다케오가 어느 날 산책 끝에 리카에게 이사를 나가겠다고 조용히 말한다. 왜 일까? 그렇지, 원인은 여자다. 다른 여자. 새여자라고 해야 하나.
나 리카에게서 다케오를 떠나가게 한 여자, 그녀는 하루코이다. 하루코.... 하루코는 다케오가 떠난 리카 네 집에 방세를 절반 지불하는 조건으로 들어와 살겠다 한다. 그리고 다케오와 달리 하루코는 다케오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리카는 모든 것이 너무나 스스럼없고 자연스러운 하루코를 거부하지 못한다. ‘좋을대로~’ 연적인 하루코를 증오할수도 사랑할수도 없는 모호함에 사로잡힌 리카. 알고 보니, 다케오 말고도 아내가 있는 카츠야씨도 이혼남인 미오토의 아버지도 하루코에게 송두리째 끌림을 당하고 있다. 하루코 한번 보면 사랑하게 되는 여자...
다케오는 이제 옛애인의 집에 새애인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셋의 만남.
언뜻 리카가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자신의 남자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은 하루코를 꼴도보기 싫어질 것 같은데....
그렇게 사랑했던 다케오를 빼앗아간 여인에게 저토록 관대해질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그렇게 천천히 장작 1년하고도 한 계절이 지나도록 서서히 리카는 다케오라는 사랑이 이제 완전히 떠나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한다.
이 소설은 그 시간의 기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