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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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기까지

우선 내 이력을 털어놔야 할 것 같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서 '삼순이 식' 남자 꼬시기에 열광했고, <연애시대>를 보면서 오히려 가슴이 애려왔다. 감우성과 문정희의 '노력하지만 되지 않는 사랑'에 대해 절절히 공감했었다. 하지만, <연애시대>는 나에게 '연애'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면, <내 이름은 김삼순>은 남자와 여자의 권력관계, 그리고 한국사회에서의 '여자'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뭐, 나 역시 어쩌면 대한민국의 90%에 속하는 남자일 지 모른다고 요즘 생각하는 바인데, 겉으로는 '여성주의' 운운하지만, 실제로 내 안에 간직되어있는 마초 기질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주 발견하게 되고 그 때 그 때 놀라긴 하지만, 실제로 그것들을 바꾸어 가면서 사는 지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한다. 나 역시 20대 중후반의 대다수 남자들이 그렇듯, 연애가 주는 환상과 상관없이 '작업의 순서'에 대해서 이따금씩 떠올리고 그 교과서에 맞추며, '진도'라는 것에 종종 강박감을 느끼곤 한다.

세상엔 참 많은 연애소설이 있고, 숱한 사람들이 연애소설을 읽는데, 난 사실 연애소설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특정한 국면이 왔을 때에 몰아서 보는 편인데, 예를 들면 연애가 잘 안풀린다거나,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이럴 때에 연애소설을 본다. 전자의 경우 솔루션을 찾고 싶을 때이고(솔루션의 측면에서 연애소설이 수백권의 연애공식에 대한 책들보다 낫다.), 후자의 경우 나와 주인공을 동화시킴으로서 빨리 그런 쓸쓸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이다. 지금이 그 중 어떤 시점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진 않지만, 요즘이 그런 때이다.

한겨레에 쓰는 정이현의 칼럼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냥 요즘 잘 나가는 소설가이겠거니 했다. 그리고 서점에서 봤던 정이현 책들의 커버 '띠지'의 그녀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좀 있었을 따름이다. 이번의 경우에도 그냥 눈에 익고, "남들 다 보니까" 하는 마음에서 샀고,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건 '연애소설'이 아니다. 어떤 솔루션은 커녕, 한국사회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관념들에 대해서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내가 여성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여자들이 말하는 남자의 '기만적 행태'에 대한 기술은 많이 읽었지만, 여자가 말하는 '여성의 환상'에 대한 소설은, 나에겐 처음이었다. 사실, 뭐 내 경험의 일천함일 수도 있다.

여자가 쓰는 '사랑'의 진실

이건 뭐 완전 '난도질'의 연속이다. '연애소설'이 아닌, 여성사회학이라고 해야하나? 근데 여성학이라는 것이 '남성과의 불균등한 권력관계'에 촛점을 둔다면, 작가는 여자에게 촛점을 둔다.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자들끼리 술자리에서 할 법한 '언니들의 연애 테크닉 강좌'를 풀어놨다고 할까?

   
 

키스할 때 눈을 뜨는 건, 나 바람둥이야, 라고 광고하는 일이다. 그러나 첫 키스에서 여자가 너무 적극적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새침한 척, 입술을 아주 약간만 벌려주었다(p.10).

대개의 남자들은 입맞춤 후에는 바로 가슴 쪽으로 관심을 돌린다. 애피타이저 다음에 메인 요리를 먹는 것처럼 당연한 순서로 생각하는 것이다. "너 그 여자애랑 진도 어디까지 나갔니?"라고 서로 비교하는 남자애들에게 연애는 포트리스 게임과 다르지 않다.

아직 확실한 관계가 아닌 남자가 가슴을 더듬기 시작하면 일단 매몰차게 몸을 빼는 편이 좋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남자에게 가슴을 허용하는 것은 보통 이상의 지속적인 친밀감을 허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가슴을 허락한다는 것은 또한 그 아랫부분에 대한 접근을 적정선까지 묵인하겠다는 암묵적인 동의이므로, 일단 가슴을 정복한 남자는 머지않아 더 노골적인 요구를 해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어한다, 는 속담을 한시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p.11).

 
   

그러면서 여자들의 '속물성'이라는 것도 드러내는 데, 차 없는 남자의 피곤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나(p.12), HYATT를 통해 표현되는(p.14) '물신성'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첫번째 단편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결론부에 차를 가지고 있으며, Law School 학생인 어떤이게 꽂혀 자신이 '3년동안 묵은 팬티'를 입으면서 버텼던 '순결'을 쉽게 소멸시켜버리는, 동시에 그 '순결'이라는 것이 어떤 산화의 숭고한 과정(선혈)도 남기지 않는 '허무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 남자의 '전형적 태도'와의 맞물림은 다시금 '연애'라는 것 자체의 계급성, 사회적 성격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달콤하면서도 끝맛은 언제나 쓴 초콜렛이라고 해야하나??

'몸'을 통한 거래를 통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작성하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인 <트렁크>, 아빠의 '번개팅녀'를 산부인과에 보내줄 돈을 만들려고 '로리타 사이트'의 사진을 촬영하는 이야기인 <소녀시대> 등등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뒷맛은 쓰다.

이런 느낌이라면 이해가 될까? 아는 여자애집에서 놀다가 몰래 그녀의 일기장을 보면서 키득키득 대다가 돌아보니 그 일기장에 '바보 같은 년'으로 표기 되어있는 되있던 그 멍청한 여자가 '내 전 여자친구'였다는 그런 느낌?

여자들이 읽는 다면, 아마 꿈 말고, 자기 친구에게 자기가 해주던 그런 이야기처럼 느껴질 테지만, 난 뒤집힌 '신데렐라 스토리'를 읽은 기분이다. 다이어트하기위해서 안먹다가 거식증에 걸린 나머지 간만에 '사과한쪽' 냉큼 집어들었다가 잠들어버린, 백설공주의 느낌?? 백마탄 왕자는 어떤 판단을 해야하는가?? 그런 상상들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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