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의 하나님 - 젊은 세대를 위한 신학 강의 3
이현주 지음 / 삼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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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Exodus?

마지막 권이다. 탈출의 이야기. Exodus에 대한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성경 뿐만이 아니라 많은 영화와 미디어를 통해서 대충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유대민족의 애굽(이집트)에서의 탈출 이야기임을. 하지만 저자는 조금 더 나아간다.

   
 

 처음에 말했듯이 '출애굽'의 의미를 단순한 민족 공간 이동이 아니라 부자유에서 자유로, 구속에서 해방으로 인간과 세계가 자리를 옮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그보다 더 큰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따라서 출애굽 이전의 모든 역사가 바로 출애굽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조금도 무리가 아닐 게다. 서양 속담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가 마침내 전 인류의 거대한 '출애굽'으로 이어진다는 게 아버지 생각이야.(p.34)

 
   

결국 출애굽은 단순한 애굽에서 탈출한 유대민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의 해방의 역사이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질 역사가 되는 것이다.

1권 <예수의 삶과 길>, 그리고 2권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통해서 주었던 메시지를 생각해 보건데, 3권의 결론은, 다시 어느 정도 주관적인 관점으로 회귀하는 인상이다. 예수가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낮은 자(신분, 계급상으로 비천한자)였고, 그런 메시지들이 어느 정도 전복적 의미를 나에게 주었다면, 2권의 이야기의 마지막에 나왔던 '존재'에 대한 명제(하나님의 명을 받은 자로서의 인간)들에서 부터 사실 아리송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내가 유물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고, 또 한편으로 무신론자(사실은 범신론자)에 가깝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어쩔 수 없는 결론 인지는 몰라도, 3권의 출애굽->탈출이 주창하는 '결단'에 대해서 난 여전히 회의적이다.

그리고 그 '결단'들이 말하는 바가, 자기 희생을 언제나 이야기 하고, 죽음으로 산다는 역설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 여전히 난 어떤 '감화'를 이야기하기 아직 이른 것 같다.

   
 

언제나 무슨 일이나 하나님의 뜻(명령)을 앞에 모시고 그대로 따를 것!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기본자세야. 중요한 얘기니까 한 번 더 되풀이하마. 하나님 앞에, 사람 뒤에! 알겠지? 따라서 만사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 삼가면서 걷게 되는 거야. 그래서 어떨 때는 한없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거란다. 앞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실 때까지는 떠날 수 없으니까.(p.249)

 
   

이런 말들에 대해서 난 크게 agree/disagree를 할 수가 없다. 아직 내가 망설이고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메시지들이 어떤 설득이나 감화로 다가올 수 있는 지에 대해서 21세기에 살고 있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이자 좌파인 나는 여전히 어렵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를 비난할 수 없고, 그의 품성에 감화되지만, 여전히 그 메시지에 대한 그런 경건한 말씀 그 자체로는 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내 주위의 제 조건들과 관계들에 대한 고찰을 더 하게 되는 게 내가 주로 갖게 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는 건데, 예수의 맑은 눈, 하나님의 명을 그대로 이행하는 맑은 영혼은 여전히 나에게서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지행합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기실 그런 이유에 있을 것이다. 알기만 하는 지식에서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 무언가 실천지(praxis)로 전환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기실 실존적인 의지, 그것을 배제할 수는 없는 거다. 그게 출애굽의 메시지일테다. 그렇기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과정안에 인간은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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