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삶과 길 - 젊은 세대를 위한 신학 강의 1
이현주 지음 / 삼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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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생활

난 엄마 뱃속부터 교회를 다녔다. 그렇기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아세례를 받았고, 대부분의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교회에 가는 이유는 엄마가 데려가기 때문이었고, 그게 생활이 되다보니, 교회에 가지 않을 때마다 죄의식도 어느 새인가 느끼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 그 시간에 마땅하게 할 것을 찾지도 못했었다.

그런식으로 교회를 다닌 게, 대부분의 모태신앙인 사람들의 경우처럼 고등학교 때까지였다. 주일학교에서의 성경공부와 요절 외우기, 그리고 성경 읽기 등을 했고, 중고등부 때는 성극과 워십, 찬양팀장, 임원 등을 하기도 했지만, 기실 교회에 가는 게 좋았던 건 그 중에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무살, 억압하는 모든 기제들이 사라지고, 교회에 가지 않고도 일요일에 할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교회에 가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그런 것 외에도 내가 가장 크게 교회에 가기 싫어하게 된 이유는, 교회에서 배우는 것, 설교를 통해서 듣는 이야기들과 내가 생각하는 바가 정확하게 부딪히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술, 담배, 스킨십 등 생활에서 생활인으로 겪는 문제등에 대해 쏟아지는 '도덕적' 명제들 그 자체에 대해서 동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17살에 사회과학을 엉겁결에 알게되고, 한겨레와 인물과 사상, 그리고 진중권의 책들을 읽게 되는 덕택에 커버린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라는 것은 어설펐지만, 계속적인 의문과 맹신에 대한 공격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대학에서의 민중가요패 활동과 학생회 활동, 그리고 학회 활동을 하면서부터는 교회에 몸은 주지만 '마음'은 주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달았고, 결국 8살부터 다녔던 동네의 교회에 더이상 나갈 수 없게 되었다. 22살의 일이었다.

22살, 나의 청소년기에 형처럼, 그리고 선생처럼 보여지던 전도사에게 방향을 물었다. 교회 자체에 대한 고민이었지만,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로 둥지를 새로 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경동교회를 권해주었고, 난 경동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모든 문제가 해결이 순식간에 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신을 볼모로 잡고 있는 건 아닌가?"

이쯤에서 새롭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학에 대해서 차근차근 접근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벌레에겐 역시 책부터 시작이다.

사실 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많은 교인들이 했던 성경 1회독 조차 해본적이 없다. 차라리 맑스 전집을 읽으라고 했다면 그건 아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 1회독은 언젠가 도전해야 겠지만, 꺼려지는 그런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개신교와 관련된 책들은 (특히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한 책들) 읽기를 싫어했고 아직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 놓고 교회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어디에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내 나름의 교회에 대한 상을 그리고 있었다.

민중신학에 대해서 사람들에겐 마치 아는 양 대답했고, 복음주의자들의 생각들에 대해서 내 상식 선에서 비판을 해왔지만, 기실 그것들을 제대로 알고 이야기했던 적은 없었다. 나의 역사에 지식과 사회과학적 판단 만으로 재단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현주 목사의 <<예수의 삶과 길>>을 읽게 된 건, 그런 이유에서다. 교회에 새로온 새교우가 이현주 목사의 성서강의를 읽고 있다고 했을 때, 집에 와서 검색을 해 보게 되었고, 이 책의 출판사가 '삼인'이라는 점에서 맘에 들어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하게 되었다.

 

내 성경 읽기의 출발 <<예수의 삶과 길>>

이현주 목사의 이 책은 자기 자식들을 대상으로 대화하듯이 쓴 책이다. 1991년에 쓰여진 책을 2006년에 개정하여 다시금 낸 책이다.

자식들에게 대화하듯 쓴 덕택에 문체는 평이하되, 그 깊이까지 얕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독교 언저리에서 느끼는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흔히 부딪히는 것들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에 대해서 나름의 대답들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보통 그냥 그런 보수적 교회에서 '아멘'만 하는 성찰없는 강요와는 다른 층위의 것들이다.

이 책은 기독교하면 바로 떠오르는 가장 핵심,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첫 이야기는 타 종교에 대한 이야기다. 개신교를 믿는 많은 이들이 유일신론을 통해서 '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을 외부화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심지어는 스님의 머리에 십자가를 내리 꽂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서 나왔다는 가정을 믿는다면, 오히려 다른 종교마저도 하나님의 것으로 보자는 이야기. 조금 이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원론적 존재론에서 벗어난 일원론적인 관점으로 보자는 것.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다.

또 예수가 하려고 했던 바가, '선자를 넘어뜨리고, 넘어진 자를 세운다는 것'이라 했을 때, 그 선자가 억압하는 자고, 넘어진 자가 억압받는 자라고 보는 인식구조하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쩌면 혁명적 구호마저 기독교에서 찾을 수 있게 해준다.(물론 저자는 '전투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리고 베드로를 비롯하여 일하는 어부를 자신의 제자로 삼았던 것에 대해서 저자는 땀 흘려 일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그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출세'와 '성공'의 은총을 이야기하는 교회에서 들을 수 없는 해석이었다. 중요한건 '성공시대'가 아니라 땀방울의 소중함에 대한 만족이다.

마지막으로 와 닿던 이야기는 '밥상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김지하의 말이긴 하지만, 언제나 우리에게 예수가 '밥' 그리고 '생명'으로 와있다고 생각하니, 붕 떠 있는 관념에서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그마를 깨고 성서를 읽게 해줄 수 있는 지도로서 이 책은 충분하고 또 충분하다. 항상 교리에 대해서 자신감있게 접근해 보지 못하고 수세적으로, 그리고 사회과학적 지식만으로 어물쩡 넘어가려 했던 태도에서 조금 더 공세적으로 내 신앙을 키우고, 또 한편으로 영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준 책이다. 새해를 맞이 하면서 이 책의 시리즈 3권을 다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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