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명랑'의 코드로 읽은 한국 사회 스케치
우석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88만원 세대, 우석훈

올 초, 한미 FTA에 대한 설전이 한참 오가고, 협상 체결이 된 당일 TV를 켜고 토론회를 지켜보았다. 제대로 된 정론을 알기 위해 읽었던, 이해영의 <<낯선 식민지, 한미 FTA>>와 우석훈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정도가 나의 지식의 전부였고, 이해영이 나오는 토론회를 보다가, 왜인지 모르게 고답적이고 쳇바퀴를 도는 듯한 논의 전개에 지쳐 채널을 돌리던 도중, 눈은 튀어나오고 두꺼운 약시용으로 추정되는 안경을 낀 한 남자의 논변이 나를 사로잡았다. 우석훈이었다.

그후, 우석훈을 웹상에서 검색했고, 그의 블로그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의 글들(사실 좀 읽었던 글들도 있었을 것이다.)을 다시금 읽어냈다. 그리고 그의 블로그는 내가 컴퓨터를 켤 때마다 하루에 최소한 한번은 들르는 곳이 되었다.

그의 말에 동의를 하게 만든 것은 바로 <<88만원 세대>> http://blog.aladin.co.kr/hendrix/1515926 이다. 내가 바로 그 대상(82년생 - IMF사태를 중3과 고1에 정타로 맞고 시작한)인데다가, 그가 읽어내는 세상의 이면이라는 것들이 우석훈에 대해서 존경을 하게끔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의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읽고나서,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의 맥을 짚어낼 수 있었다. 그의 사회를 읽어내는 인식,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대안들의 방향성까지.

사실 나의 독서편력과 지적인 편견(http://www.cyworld.com/flyinghendrix/101936 http://www.cyworld.com/flyinghendrix/101938 http://www.cyworld.com/flyinghendrix/101939 http://www.cyworld.com/flyinghendrix/101940 http://www.cyworld.com/flyinghendrix/101941 )들이 구축해 놓은 세계는 여러가지면에서 탈출구를 필요로 했었다. 얼치기로 배운 고전적 맑스주의와(일견 트로츠키주의적이기도 했던), 학교에서 배운 정치학(주로 국제정치학), 또 내 나름의 출구로 찾아냈었던 네그리와 하트에 근거한 <<제국>>의 논의 등은 얽히고 섥혀 있었지만, 현실에 대응시켜보기에 일견 무력했고, 또 내가 원하는 세계에 부합하는 결론을 딱 떨어지게 만들어 주었던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내가 바라는 것에 걸맞는 이론적 짝패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발견한 우석훈은 나에게 다시금 '상상력'을 발휘할, 그리고 무엇을 공부해야할 지에 대해서 한 가지의 통로를 더 뚫어준 은인인 셈이다.

 

명랑 좌파 우석훈, 이 시대를 그나마 버티게 하는 힘

이 책은 우석훈이 썼었던(블로그에서 봤던 글도 다수이다) 글들의 모음이다. 언젠가 그의 블로그에서 읽었었지만, 그는 이 책이 펴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쪽팔려'했다고 했다. '잡글'을 통한 출간을 그리 크게 바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의 등장과 함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난 4년 반 동안의 글들이 부끄럽지만 시대의 기록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위 사람들이 생각한 것 같다. 살면서 작은 부끄러움 하나를 더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들은 따라서 그가 읽어낸 4년간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003-2007 비망록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가 읽어내는 구도는 지금까지 우리가 바라보았던 '정치평론' 혹은 '경제평론'과 궤가 다르다. 왜냐하면 그의 접근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직업을 고려하건데 '경제평론'에 국한하여 보더라도, 그의 '경제'에 대한 접근법은 기존의 '생산담론' vs '분배담론'의 구도를 넘어선 접근이다. '생태담론'이라 칭할 수 있는 접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편견을 깔고 있는 "환경을 살리자"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담론들의 한계가 현실에서 부딪혀서 보여지고 있는 결과물들(혹은 거기에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징후적 현상)을 토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참여정부의 '농정 로드맵 10개년 계획', 이른바 6, 7만, 119라는 숫자에 대한 이야기다.

"6헥타르, 즉 1만 8천 평의 농사를 짓는 농가를 7만 호 육성하겠다는 것이고, 이걸 뼈대로 하는 '농정 로드맵 10개년 계획'에 투· 융자 119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이걸 '농업정책'이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나라 농가당 평균 경작면적이 3천 5백 평, 즉 1헥타르가 조금 넘는다. 농가 여섯 집을 합치면 6헥타르가 되는데, 당연히 6분의 5에 해당하는 농민들은 농업에서 철수해야 한다. 이 사람들이 삶터를 등지고 서울에 올라오지 않게 하는 것을 '농촌정책'(농림부 용어대로 하면 '탈농재촌정책')이라고 부른다. 괜히 서울 가서 사회문제를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둘을 합쳐 '농업 · 농촌정책'이라고 부르는데, 현실에서는 농업 말살, 그리고 지방 토호 부자 만들기 정책이 된다."(p.272)

이런식의 숫자를 토대로 직접적인 결과물들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게 우석훈의 글들이 갖고 있는 강점이다. 이건 그의 정책 협상가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라 볼 수도 있겠고, 기본적으로 그가 갖고 있는 수리 경제학적인 우위에서 오는 강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석훈의 글들은 항상 시작은 우울하다. 극단적인 위기와 붕괴가 기다리는 구조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냉소'나 '회의'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름의 대안들을 보여주고, 우리의 상상력 발휘를 권면한다.

특히 20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런 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스물일고여덟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20대에 작가로 혹은 사상가로 데뷔할 수 있는 인생의 단 한 번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이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명석함과 함께 부끄러움까지 모두 사회에 꺼내놓는 데 머뭇거리지 말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다. ...(중략)...

... 지금부터 1만 명의 20대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삶을 책으로 엮어낸다면, 예비 철학자 혹은 예비 사상가 1만 명이 나이를 먹고 생각이 굴절되면서 진화하는 과정을 이 사회가 같이 볼 수 있게 된다. 생활인은 직업으로 완성될지 모르지만 사상가는 책으로 완성된다... (중략)...

... 지금 책으로 데뷔하는 20대가 10만 명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10만 명의 젊은 사상가들이 서로 논쟁하고, 사회가 그걸 지켜보는 상황은 가히 학문의 백가쟁명 시대라고 할 수 있다."(pp. 163-164)

이런 우석훈의 글은 이 시대를 그나마 버티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나를 더 강하게 추동하여 끌고나가게 하는 버팀목이다.

한동안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쉽다.

한참 자신의 사랑과 행복에 대해서 말해야할 내 친구 누군가가 지금처럼 사채업자 밑에서 일하지 않을 수 있고 오로지 '즐거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맥주 한잔씩 빨면서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고,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대기업 공장에서 주7일 근무를 하는 친구에게 '휴일'과 '휴식'을 안겨줄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되는 세상,

아이들이 아프지 않는 세상이었다(이건 좀 얼마 안되지 않은 생각이지만).

그 꿈을 접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이 읽고, 쓰려던 와중 하나의 통로를, 숨통을 열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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