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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 바람 최종회입니다. 우리는 많은 순간 세상에 태어나 불공평하게 살아감을 경험합니다. 남녀의 차별로 인한 불공평, 형제간의 불공평, 직원들간의 불공평. 또 사람과 사람 사이간의 불공평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차별을 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몹시도 힘들어 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저보다 더 대접을 받는 거 같을 때, 저는 그때 몹시도 그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대접을 받는 사람도 대접을 하는 사람도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답은 하나입니다. 제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뚜렷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직장을 구할 만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저도 충분히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분들을 통해서 저를 일으켜 세우시고 계십니다. 예수님만의 방법으로 예수님만의 도우심으로요. 저는 그래서 예수님께서 순종합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으신데 어떻게 순종을 해야 하냐고요? 순종한다는 것이 대답이 없으실 수도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을 정독으로 전체의 흐름을 파악해서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들으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부탁이냐고요? 내가 너와 함께 하겠으니,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보지 않으련? 내가 너의 어떤 고민이든지, 어떤 문제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울 터이니, 그래서 내게 기도를 하면, 어떤 어려운 문제든 길을 만들어놓고 기다릴 터이니, 나와 함께 이 길을 걷지 않으련?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면서 우리에게 함께하자고 부탁을 하십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삶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바람을 마치며, 제 인생에 끊임없이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 인생의 변화는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예수님이 늘 동행하시길. 예수님이 마음으로 그분의 섬김을 받으며, 예수님께 순종하며,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하시길. 예수님 바람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고마운 마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그날이 오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예수님 바람을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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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록빛의 0

2. 그대 앞의 소멸

3. 아주 치열한 슬픔이

4. 0시 속() 0

5. 남자일기



초록빛의 0

 

 

 

빛이 빛을 쪼여 한낮의 모든 걸 매기고 있다 그 빛은 내게 모든 걸 다 주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빛에게 말한다 내게 바람을 달라 내게 비를 달라 내게 구름을 달라 그 빛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을 쐬러 모두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푸르른 하늘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숲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이야기는 저 바다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슬픔이 슬픔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사랑을 하기만 하고 싶던 그 날에 나는 삶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내게 이야기를 붙이지 않게 될 그 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바다에게 투정했더니 바다는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바다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그것은 꿈인 듯 지금인 듯 나중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지금은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나중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지금은 내게 꿈이냐고 꿈인 거냐고 나는 맞을 거라고 맞을 거라고




그대 앞의 소멸

 

 

 

 

어느 누구가 되든, 그대 앞에 무언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맞나요? 이 물건이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대답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라고 나는 추측하겠소.

 

어느 날 내 앞에 그가 나타나 저 말을 하던 어느 순간, 나는 그에게 이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럴까? 그렇다면? 그래서? 그러면? 그런 건가? 그리고 그에게 이 단어들의 속뜻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 말이 정말이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모르고 묻는 것인데, 당신은 왜 그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나요? 그가 계속 우물거렸다.

 

그는 별걸 다 기억한다면서, 계속 우물거렸고 나는 내가 뭘 기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에게 별 투정을 다 부리고 있었다.

 

그대 앞에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정말 맞나요? 이 물건이 정말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추측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추측하겠지, 라고 나는 대답하겠소.





아주 치열한 슬픔이

 

 

나를 둘러싸고 누른 건 슬픔이 아닐까

슬픔이 아니다

 

나를 들처메고 벼른 건 기쁨이 아닐까

기쁨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고 깨운 건 절망이 아닐까

절망이 아니다

 

나를 일으키고 이룬 건 출구가 아닐까

출구가 아니다

 

나를 바람에다 재운 건 세월이 아닐까

세월이 아니다

 

나를 별빛까지 태운 건 버튼이 아닐까

버튼이 아니다

 

나를 깨우기만 하는 건 채움이 아닐까

채움이 아니다

 

나를 재우기만 하던 건 이별이 아닐까

이별이 아니다

 

 


0시 속() 0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귀뚜라미, 울지 않는다

창밖, 이미 떠 있는 달은

이별을 삼키고 날아가는

슬픈 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허공에 뜬

해돋이가 선명하다, 어둠 속에서

귀뚜라미 울지 않고,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과거로 돌아간 이별도

슬픔으로 남지 않는다.

저 혼자 우는 달,

저 혼자 뜨는 해,

세상이 비춰진 곳에서는

이별을 슬픔이라 말한다.

세상의 뒷골목에서

날지 못하는 새

목마른 울음에 지쳐간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0시를

조금 지난.





남자일기

 

 

나는 이 상황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말 잘 알고 싶다. 알고 싶기 때문에 나는 이 남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잘 모른다.

 

이 상황은 정말 기가 막힌 상황이다. 기가 막힌 상황은 어딘가에서 이 남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나는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이 남자는 지금 잠을 자고 있다. 잠을 자는데, 나는 그 남자를 똑바로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남자가 상황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황을 모르니까 이 남자는 내가 노려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이 남자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남자를 보지 않는다. 보지 않기에 그 남자는 지금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남자가 분명 좋은 남자라는 걸.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정말 왜 그럴까. 나는 생각해 봤는데,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 있었다. 바로 그 남자를 사랑하는 일. 나는 사랑을 모른다. 그러나 그 남자를 사랑해 보려고 한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그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랑을 구할 수 있을까. 정말 좋은 일일 텐데. 정말로 행복한 일일 텐데.

 

나는 남자다.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반한 남자다. 반했기 때문에 나는 그 여자의 남자가 된다. 남자가 되고, 나는 그 여자의 애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남자다. 그러므로 나는 남자다. 이젠 나도 여자가 되려 한다. 나도 여자가 되려 하기 때문에 나는 남자가 되고 있다. 드디어 나도 남자다. 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다. 나는 분명 남자였고 여자도 된다. 나는 정말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된다. 그래서 나는 남자다.




https://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964514 (네이버 웹소설 "머니머니")

https://novel.munpia.com/257538 (문피아 웹소설 넋두리의 빛깔 바람)

https://novel.munpia.com/257710 (문피아 웹소설 양심연애쓰기)

https://britg.kr/setting/mynovel/?act=posts&novel_post_id=137826 (브릿G 웹소설 양심연애쓰기)

https://britg.kr/setting/mynovel/?act=posts&novel_post_id=137823 (브릿G 웹소설 바람의 옆에 산다)

http://www.joara.com/nobless/bookPartList.html?bookCode=1537022&refer_type= (조아라 웹소설 양심연애쓰기)

http://www.joara.com/nobless/bookPartList.html?bookCode=1536914&refer_type= (조아라 웹시 그대 앞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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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바람 제 2 화 나는 예수님의 섬김을 받아야 하나요?

 

 

1.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의 섬김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리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섬김을 이미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지켜 주시니까요.

 

많은 목사님들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고 그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단호하게 이 말이 틀렸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기도하기 전에는 관여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시련에 빠질 걸 아십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 우리가 빠지는 고난은 스스로의 선택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빠질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고난에 빠진 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이전과는 다른 뭔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뭔가가 뭘까요?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섬긴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뭘까요?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서 많은 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신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 감동을 받게 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섬기게 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 저 신통한다이어리란 사람은 사람을 진짜 섬기려 하는 걸까? 그렇다면,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사람을 섬기려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진심을 느꼈다면, 누군가가 즐겁고 행복한 게 보이면 내 마음도 즐겁고 행복해진다는 사실 말입니다. 더더군다나 그 사람이 아주 조금 전까지는 전혀 행복하지 않고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 이런 사람이었다가, 이제 너무 행복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할 때, 저는 그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그 행복이 저 때문이라면, 저도 더없이 행복한 마음이 됩니다.

 

 

2.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것. 일부러 섬기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진다면, 그런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리의 고난은 예수님이 우리를 섬긴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오게 되는 것 아닐까요.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그 고난은 꼭 해결되는 날이 올 거란 믿습니다. 저도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정해진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저를 섬기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기에 저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렵니다. 그러다 보면, 저에게도 확실하게 보장된 미래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가 오면 예수님의 섬김을 증거 할 날이 되겠지요. 그러나 혹시라도 만에 하나, 그날이 오지 않더라도 저는 예수님의 섬김을 충분히 받았으므로 그러므로 저는 예수님의 섬김을 지금 이 순간 전합니다.

 

이 글을 보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섬긴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었다면,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그린다면, 그래서 이 글을 보시는 당신이 행복해지신다면, 저는 당신과 함께 행복한 지금을 살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가장 큰 행복이니,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신은 제게 너무 큰 행복을 주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 행복한 기억으로 저의 오늘을 살아가게 도와주시는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당신은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한 당신, 그럼 지금부터, 예수님의 섬김을 받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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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바람 제 1 화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

 

 

1. 모든 사람이 구원받길 원하시는 예수님

 

아주 오래 전에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이란 분이 저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시고는 부활하신 다음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자신의 모습이 형편없다고 자신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 들지 마시구요! 그냥, 믿으시면 구원은 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하실 예정이시니제 글에 귀 좀 빌려주시면 땡큐!

 

사실, 고백하자면요,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제 모습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리고 제가 내세울 게 하나도 없어서, 그래서 저같은 사람을 예수님이 사랑해 주실까 하는 걱정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은요, 저를 사랑하시는데 아무 조건이 없다고 계속해서 제게 말씀하고 계셨었고, 지금도 제게 나를 사랑하는데 아무런 조건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모습 그 자체로 사랑하신다고요.

 

그 사랑의 증거가 무엇이냐고요?

 

그 증거를 구체적으로 말하라면 말할 수가 없지만, 이렇게 말씀드릴 수는 있어요. 저의 마음이 불안해질 때마다 예수님께 뭔가 아뢰면, 예수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계획이 다 있다, 라고요. 어떤 순간에라도 믿고 따르면, 분명 너를 들어쓰시리라, 하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누군가가 저의 이 글을 보고 그래, 예수님을 믿자, 라고 결심하셨다면, 그것이 저를 들어쓰신다는 증거가 될 거 같은데요이 글을 보시고, 에잇, 하고 도망치려 하시는 분, 여길 봐 주세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Please~~~

 

 

 

2. 복음과 사랑과 믿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적을 혹시 아시나요? 목적이라고 하니, 예수님이 왠지 세속적 욕망을 쫓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는데, 앞의 의미를 잘 새겨보시면, 그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저의 좁은 소견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첫 번째로 복음. 복음은 예수님 믿기를 전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이유가 뭐냐구요?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요. 살아서 행복하고 죽어서 행복한 것이 가장 좋은데, 살아서 고통스럽다면, 죽어서는 조금 편한 삶을 살고 싶지 않겠어요? 죽은 후의 삶이 편하고 행복하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거예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은 이후의 삶이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죽어가는 과정은 조금 두려울 수도 있어요. 그건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죽어가는 과정도 편안하게 해 달라고 자꾸 예수님께 기도하고 아뢰면 죽어가는 과정도 편안해지는 어느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그러다가 죽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딨겠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목적은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를 바라는 의미가 되죠.

 

두 번째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원하세요.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에서는 설교와 찬양을 통해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게 되죠. 사실은요, 고백하자면요, 저는 이런 사랑 잘 전하지 못해요. 왜냐구요? 제가요, 경제적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아직까지는 뭔가 확실하게 정해진 뭔가가 없거든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 사랑을 전하고 싶은 게 있어요.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죠. 예수님은 저를 무척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니까요. 저요? 저는 예수님 같은 사랑은 못하죠. 제가 예수님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뜻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죠.

 

세 번째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요.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산뜻해져요. 마음이 산뜻해져서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막 들어요. 예수님의 뜻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뭔가를요. 그리고 겸손해지려고 노력하죠.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의 이 섬기는 마음이 느껴진다면, 예수님처럼 겸손해지려고 노력하게 되죠. 그런데요! 아무리 노력해도 예수님처럼 겸손해지기는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도, 노력은 해 봐야 되지 않을까요? 저도 많이 노력하려고 애써 보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하나 남았어요.

 

우리의 행복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을 걸요!

 

 

조금은 긴 거 같은데요.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런 것. 결국은, 모든 사람이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아신다면, 우리의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제가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죠! 전에는 예수님께서 저를 시험하시는 게 아닐까 해서 원망도 많이 해보고, 투정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요. 결국에는 저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저 자신도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니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그걸 바라고 계시니까요. 그럼, 예수님 바람 1화는 이걸로 마칠께요! 다음 시간까지, 좋은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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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 속() 0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귀뚜라미, 울지 않는다

창밖, 이미 떠 있는 달은

이별을 삼키고 날아가는

슬픈 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허공에 뜬

해돋이가 선명하다, 어둠 속에서

귀뚜라미 울지 않고,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과거로 돌아간 이별도

슬픔으로 남지 않는다.

저 혼자 우는 달,

저 혼자 뜨는 해,

세상이 비춰진 곳에서는

이별을 슬픔이라 말한다.

세상의 뒷골목에서

날지 못하는 새

목마른 울음에 지쳐간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0시를

조금 지난.






그대 앞의 소멸

 

 

 

 

어느 누구가 되든, 그대 앞에 무언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맞나요? 이 물건이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대답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라고 나는 추측하겠소.

 

어느 날 내 앞에 그가 나타나 저 말을 하던 어느 순간, 나는 그에게 이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럴까? 그렇다면? 그래서? 그러면? 그런 건가? 그리고 그에게 이 단어들의 속뜻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 말이 정말이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모르고 묻는 것인데, 당신은 왜 그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나요? 그가 계속 우물거렸다.

 

그는 별걸 다 기억한다면서, 계속 우물거렸고 나는 내가 뭘 기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에게 별 투정을 다 부리고 있었다.

 

그대 앞에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정말 맞나요? 이 물건이 정말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추측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추측하겠지, 라고 나는 대답하겠소.






초록빛의 0

 

 

 

빛이 빛을 쪼여 한낮의 모든 걸 매기고 있다 그 빛은 내게 모든 걸 다 주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빛에게 말한다 내게 바람을 달라 내게 비를 달라 내게 구름을 달라 그 빛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을 쐬러 모두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푸르른 하늘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숲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이야기는 저 바다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슬픔이 슬픔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사랑을 하기만 하고 싶던 그 날에 나는 삶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내게 이야기를 붙이지 않게 될 그 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바다에게 투정했더니 바다는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바다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그것은 꿈인 듯 지금인 듯 나중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지금은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나중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지금은 내게 꿈이냐고 꿈인 거냐고 나는 맞을 거라고 맞을 거라고

 






아주 치열한 슬픔이

 

 

나를 둘러싸고 누른 건 슬픔이 아닐까

슬픔이 아니다

 

나를 들처메고 벼른 건 기쁨이 아닐까

기쁨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고 깨운 건 절망이 아닐까

절망이 아니다

 

나를 일으키고 이룬 건 출구가 아닐까

출구가 아니다

 

나를 바람에다 재운 건 세월이 아닐까

세월이 아니다

 

나를 별빛까지 태운 건 버튼이 아닐까

버튼이 아니다

 

나를 깨우기만 하는 건 채움이 아닐까

채움이 아니다

 

나를 재우기만 하던 건 이별이 아닐까

이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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