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립간님,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어제 오후는 다른 일로 차분히 글을 읽거나 쓸 수가 없어서 답글이 늦어졌습니다.

1. 우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저는 토론이라는 것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상대방과 생각을 교류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거나 상대를 나의 생각과 같게 교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이나 수학의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명백하게 진위를 밝혀낸다는 것이 무척 어렵고, 그 주제가 ‘가치’와 관계될 때에는 하나의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런 생각을 언어라는 도구로 소통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구요.

2. 제가 지난 번 마립간님의 글에 답글을 단 이유는 ‘이타적인 행위’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이타적인 행위는, 즉 좀더 큰 ‘우리’를 위한 행위의 필요성에 의해 우리 본성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2.1 사회생물학

사회생물학 논쟁을 촉발시킨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보면, 윌슨은 ‘이타주의’에 책의 한 chapter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타적인 행위는 한 개체에는 불리하지만 인간이라는 공동체에는 이익이 되고, 이 때문에 실재로는 이타적인 것도 이기적인 본성의 발로라고 합니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에서도 공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장과 주부가 가족을 위해 일하느라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 국가가 위기에 놓였을 때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현재에도 한 개체의 희생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확대하는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2.2 종교와 본성.

세계의 주요 종교들을 볼 때, 그 가르침에서 이른바 ‘원시 종교’와 다른 주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 그것도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입니다.

악의 퇴치와 기복의 차원을 넘어선, 자기 자신을 다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 자신의 깨달음을 중생들과 나눈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줍니다. 이런 이타적인 메시지는 작은 공동체보다 더 보편적인 인류 차원의 포용을 가르치는데, 이것이 인류 역사에 뿌리내렸다는 것은 이런 메시지에 공명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설사, 제국의 성립시기에 부족적인 기복을 넘어서는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에 의해 선택된 종교라 하더라도, 그 메시지에는 분명 보편성이 있고, 우리에게는 그 메시지에 공명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3.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문명을 이루게 된 주요 요인으로 - 불의 발견 이외에 - 농경의 시작과, 레비 스트로스가 지적했듯이 ‘근친결혼 금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의 공통된 특징이 미래를 위해 당장의 이익을 유보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립간님께서 예로 들으신 모아새 뿐 아니라 많은 생물들을 멸종하게 한 우를 범한 반면, 농경과 가축을 발명해 냈습니다. 즉, 식량이 되는 식물과 동물을 지금 베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잘 익을때까지 기다리는 것, 당장의 식량이 부족하더라도 내년의 농사를 위해 열매의 일부를 남겨 겨울을 나는 것은 인간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입니다.

사회에 성적 도덕이 문란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배우자 이외의 대상에 대한 성적 욕망을 억제하고, 특히 가까운 친족간의 결혼을 금기로 하는 것은 어떤 미개한 부족사회를 가더라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인간사회의 특징입니다. 이 역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당장의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사회와 종족의 보존에 더 유리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숙제나 공부 같은것, 물론 밀리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현재의 노동력을 공부에 투자함으로써 미래의 더 큰 생산성을 바라보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미래의 이익을 위해 당장의 욕망 혹은 이익을 보류하는 인간의 특성에서 나오는 인간의 독특한 행위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두고 농경을 발전시킨 면을 볼 것인지, 동물들을 멸종시킨 면을 볼 것인지,
교육이라는 문화를 볼 것인지, 아니면 숙제와 공부를 미루는 심리를 볼 것인지,
결혼과 근친결혼 금기를 볼 것인지, 아니면 문란한 성도덕과 범죄행위를 볼것인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공중도덕의 존재를 중시할 것인지, 새치기 하는 사람의 존재를 중시할 것인지에는 각자의 시각차가 있겠습니다.

단, 앞부분의 특성을 무시했을 때, 인간이 인간으로서 현재와 같은 문명을 건설할 수 없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 인간의 도덕성은 더 강하게 진화가 될 것인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인간들이 현재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데 현재의 시스템으로 얼마나 더 문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할 문제가 몇 가지 있다고 봅니다.

4.1 의사 결정 과정의 문제

인간은 인간 역사의 90% 이상을 부족사회로 지내왔습니다. 부족 단위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의사 결정 과정이 비교적 공정하고, 빈부격차도 크지 않습니다. 집단 내의 동질성도 큽니다. 그런데 인류가 점점 큰 단위의 공동체와 국가를 이루어 살게 되면서 집단 내의 동질성도 떨어지고, 의사결정 과정이 상층부의 권력계층에 집중되게 됩니다.

이런 새로운 변화에 의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로 사람들은 민주주의니, 사회주의니, 대의제니, 대표 소환제, 지방자치제, 이익집단의 등장 등, 점차 정교한 사회 시스템을 고안해 왔습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개인이나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대중’으로서의 의사결정이 매우 미숙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기적인 비젼을 제시하고 이끌 지도자는 키워지지 않고, 그때그때의 여론에 정치가 휩쓸리는, 그리고 그것을 잘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편, 의사 결정의 문제에서, 한 지역의 현안울 결정할 때 그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배재한 채, 중앙정부에서 밀어붙이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새만금 간척사업, 부안의 원전폐기물 저장소 건설 문제, 천성산 공사 문제 등은 그 사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당사자의 의견을 소외시켰기 때문에 부작용이 컸습니다. 필요한 일은 진행하되, NIMBY 현상을 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아직 우리는 고안해내지 못했습니다.

4.2 인간의 얼굴을 한 시스템

부족시대에는 부족원들의 친족관계도 동질성이 있었고, 사회의 빈부격차가 있어도 한 공동체 내에서 소외되어 죽어가는데 한쪽에서는 그런 계층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채, 혹은 알더라도 무시한 채 지내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했다고 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이 없도록 시스템을 복원해야 합니다. 최소한 인간적인 삶과 죽음을 영유할 수 있는 사회는 그 수혜자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갈등과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도 줄일 수 있습니다.

계층간의 언어와 세계관과 가치관이 요즘처럼 갈라지고 갈등이 커지는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데 이런 일이 오히려 심화되는 것은 시스템이 거대화 되어가면서 ‘인간적인’ 면을 잃어가기 때문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보지 않고 ‘자본가’와 ‘노동자'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으로, ’빨갱이‘와 ’보수 꼴통‘으로 보면 인간적인 면을 잃어가는 겁니다.

이제는 ‘발전’이라는 단어의 뜻을 ‘인간의 얼굴’을 찾아가는 것과 동의어로 바꾸었으면 합니다.

4.3 자본주의, 그 경쟁력!

이런 사회와 시스템의 물적 바탕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입니다.

금년 초(2월 9일)에 올린 페이퍼 “발자국 - 북방계와 남방계 - 오늘날은?” 에 설명한 대로, 현재의 경제사회체제는 인간이 가장 살기 좋은 체제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가장 경쟁력이 있는 체제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분명히 과학기술의 발전과 시장경제가 인류의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한 바가 크고, 원시부족사회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주객이 전도된 듯 합니다. 인간의 생명보다도 자본의 이익과 특허권이 존중되고 있고, 수백 수천년 한 곳에서 살아온 부족이 지구 반대편에서 사는 기업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납니다. 분명히 재생가능한 에너지체제가 실현 가능한데도, 석유/자동차 산업계와 원자력 산업의 로비가 더 먹혀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체제를 이루면서도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삼켜지지 않을 대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실천으로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한 개인이나 집단, 심지어 몇몇 국가의 힘으로도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국제연합이나 WTO 등의 초국적 시스템을 만들었던 인류이니만큼, 초국적 대안운동도 가능하기를 희망합니다.

5. 그간의 마립간님의 글에서 보수적 - 아버지의 원리 - 사고가 지배하는 것은 익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종교적으로 개신교이신 것과 일맥 상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신교에도 상당히 진보적인 분들도 많습니다만.... )

분석적 사고는 타고난 것일 것이고, 종교는 어려서 주어진 것이든지, 본인의 선택이겠지요.

개신교에 따라 보수적 원리를 따른다기보다는 마립간님의 보수적인 성향이 개신교를 선택하게 했고, 개신교의 성향이 그 보수성을 강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선택해 주셨다’고 하시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립간님의 과학적, 분석적 사고의 틀과 개신교는 어쩐지 묘한 부조화를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 아직 종교 - 개신교 - 가 마립간님의 분석적 사고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의외입니다.

6. 자발적 가난과 녹색당..... ^^ 먼 길을 돌고돌아 의외로 또 일치점이 생기는군요.

저도 지속가능한 인류의 문명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재화의 생산과 소비에 바탕을 두지 않은 가치관과 사회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정치적 성향도 - 원래 회색분자라 자처하지만 - 굳이 정당을 선택하자면 녹색당에 가깝습니다.

글이 좀 길어졌네요.

서늘한 밤입니다. 평안하세요.


가을산 드림.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태우스 2004-08-30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내공이란 바로 이런 건가봐요.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요트 연습 많이 하세요! 서늘한 밤이지만 전 여전히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답니다. 잘 주무세요.

가을산 2004-08-30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을.... 과연 이 글을 끝까지 읽을 사람이 있을지, 괜히 서버 메모리만 축내는 글은 아닌지 고민인데요.

그리고, 마태님, 부채질을 하신게 아니라 선풍기를 틀고 계신거였군요!

sweetmagic 2004-08-3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우와`~~ !!!!! 저도 저런글 쓰고 싶어요`!!

마립간 2004-08-3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특별히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도 답신은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렸듯이 저의 생각을 흠집을 매우기 위해 가을산님에게 편지글을 쓴 것입니다. 남을 가르치거나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닌 것은 서로가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너무 급하게 답신을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야 저도 천천히 글을 올릴수 있으니까요.

갈대 2004-08-3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시길. 여기 한줄 한줄 천천히 읽은 사람이 있으니까요^^
부족시대의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집단의 일차적인 목표는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죠. 이것만 보장이 된다면 천편일률적인 생존경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다양성을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부작용이 있겠지만 장점이 훨씬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전자가 이기적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이제 지양해야 할 관점이 아닐까요? 당연히 유전자는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이걸 두고 이기적이라고 한다면 모든 유전자는 이기적이겠죠. 하지만 유전자 하나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다른 유전자들과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존속할 수 없습니다. 후세에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다른 유전자들과 협력해야 합니다. 유전자 각각은 이기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타적으로 작동해야 이기적인 목적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이런 식의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유전자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 결과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훨씬 발전적인 접근방법이 될 것입니다.

sooninara 2004-08-3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열심히 읽었어요..^^ 공부하고 갑니다..

가을산 2004-08-3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갈대님, '집단정신의 진화' 읽으셨죠! ^^

바람구두 2004-08-3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읽은 진지한 글이었습니다. 가을산님! 아주 자알 읽었습니다.
윌슨이라.... 윌슨... 저도 종종 인용하는 인물이었는데, 새롭군요. 추천합니다.

갈대 2004-08-3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들켰다!! '집단정신의 진화' 가을산님 리스트에서 봤어요. 읽으셨으리라 짐작했더랬죠^^;
저에게 가장 영향을 쎄게 준 책 중 하나죠. '링크'를 읽고 네트워크에 관심을 가졌고, '집단정신의 진화'를 읽고 '네트워크교'로 개종했습니다^^

ceylontea 2004-08-3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과 마립간님의 이런 토론을 전부터 봤었지요.. 이번에도 열심히 머리 굴려가며 읽었습니다.. 혹시 가을산님 사지는 동네에까지 콰르르릉 콰르르릉 제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털짱 2004-08-3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멋진 글토론을 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지성의 대화란 이런 게 아닐런지..
가을산님은 참 멋진 분이십니다.

책읽는나무 2004-09-0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나는 언제쯤이면 가을산님처럼 저런 논리정연한 멋진글을 쓸수 있을까요??
아마도 죽을때까지 못쓰고 켁~~ 할지도!!..ㅠ.ㅠ
멋집니다...^^

헌데...지식이 짧은 저로서도 한참 머리를 굴렸습니다..ㅎㅎ

2004-09-01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산 2004-09-0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이번주 토요일에는 집안 행사가 있어서 꼼짝 못해요. 그날이 좋은 날인가봐요. 저만해도 세가지 행사가 겹쳤는데 한 군데밖에 못가거든요.

balmas 2004-09-0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잘 읽었습니다.^^
이번 학기 하는 강의 주제가 [현대의 철학적 문명론]인데,
가을산님이 화두를 한 가지 더 던져주시는군요.^^
추천도 하나 꾸욱~

마립간 2004-09-0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사람 중에 한명은 접니다.

가을산 2004-09-0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의 강의 내용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나누어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마립간님, 이틈에 우리 추천 동맹 맺읍시다. 덥썩! ^^

ceylontea 2004-09-0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하하.. 마립간님하고 추천 동맹이요??
그런 것 안하셔도 다른 분들도 추천 꾸욱~~하실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