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인청부업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맛깔스럽게 요리해낸 <설계자들>을 통해 작가 김언수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캐비닛>이라는 발칙한 소설로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나는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그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킨 화제작을 뒤늦게 펼쳐들었다.
 
  주인공이 회사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캐비닛에는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p30)에 대한 자료가 있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심토머'라고 했다.
  <캐비닛>에는 "진화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p33) 심토머의 이야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손가락에서 나무가 자라는 사람이나 도마뱀을 입에 넣고 다니는 여인,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고양이가 되고 싶은 사람, 시간이 사라져버리는 여인 등 <믿거나 말거나>에서나 나올법한 기괴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교모하게 비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모른 체 멍하게 살아갔으며 근시안적인 태도로 자연을 마구 훼손했다. 스펙으로 점수화된 사랑은 더 이상 진실할 수 없었고 시간에 묶인 체 계획과 규칙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캐비닛>은 빈틈없이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느긋하게, 이웃과 주변 환경도 둘러보면서 띄엄띄엄 살아볼 것을 은연중에 '썰'한다. 자기가 없다고 직장이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니니 지나친 근심, 걱정은 붙들어 매라고 말이다.

 

  기괴한 이야기로 우리들의 허점을 파고드는 김언수님의 글은 놀랍기만 하다. 허구의 언저리를 돌며 멋지게 풀어놓는 그의 ‘구라’는 단순한 유희거리를 넘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했다. 결국, <설계자들>에서 보여준 그의 기량이 한 순간 타오르다 마는 불꽃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그의 다음 작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욕망, 우리 안에 감추어진 은밀한 욕구를 양파껍질을 벗기듯 사정없이 까발린다. 한 꺼풀씩, 더 이상 벗겨낼 것이 없어 보이다가도 또 다른 속살을 들춰낸다. 어느새 세상 앞에서 발가벗겨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글을 읽는 동안 한없이 불편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당혹스러우면서도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는 자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욕망에 대한 저자 김두식의 독백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중반, 책을 읽거나 여행을 다녀온 뒤에 글을 적어 홈페이지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무슨 책을 읽었고 어디를 다녀왔다는 식의 목록만 남겨두는 정도였는데 이런 기록들을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하나 둘 나만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기록 자체만을 즐긴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생소한 개인홈페이지를 관리하고 글로 올려놓는 과정에서 오는 시선을 즐겼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강의실에서건 어디서건 크게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나를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너희들처럼 멍청하게 강의시간만 때우지는 않아. 아무렇게나 살지도 않아. 내 홈페이지를 봐, 나는 이런 것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어"라는 자랑을 무언중에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이런 욕망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싶다. 인정받고 싶다는, 나를 과시하고 싶다는 욕망!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대학 신입생 때 줄기차게 따라다녔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얼굴이 예쁘다거나 키가 큰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보여준 작은 배려와 관심을 계기로 푹 빠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의 관심이 높아지고 서로 간에 조금씩 알아갈 즈음 그녀는 나에 대한 바람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더 적극적이고 다양해졌으면 좋겠어. 말도 좀 많이 하고. 소극적인 모습보다는 적극적이고 활기찬 모습이 좋아. 차 마시고 맥주 마시는 것 말고 색다른 것을 원해. 옷도 좀 바꿔 입고 멋지게 꾸며봐."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변화시키고도 싶었다. 활동적인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다른 이벤트를 마련해보기도 했지만 20년 가까이 살아온 내 삶을 한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녀 곁을 맴돌았지만 그녀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렇게 나는 군대를 갔고 휴가 때마다 전화를 걸어 시큰둥한 그녀를 몇 번을 만나기도 했다. 약속을 잡고 설렜던 기억과는 달리 상당히 어색한 만남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허둥댔고 이런 내 모습을 그녀는 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뻘쭘한 시간을 매우기 위해 그녀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고 나는 맥주만 쉴 새 없이 마셨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이렇게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가 좋아? 나를 바꾸면서까지 이런 자리를 유지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모든 것이 분명해 졌다. 소극적이라지만 책이나 여행에 대해서는 나만큼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고, 말이 적고 변화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진중하다는 이야기였다.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자신감이 있다는 증거였다.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자 그녀에 대한 집착은 물론 타인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침몰하는 난파선의 구석에서 구명조끼를 하나 발견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라는 대학 논술문제에서 모든 학생들이 '자신이 입고 도망간다'는 답변 대신에 '불쌍한 사람에게 건넨다'는 답을 선택했다고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도덕성 문제를 떠나서 우리는
이미 자신의 욕망보다는 사회에서 바라는 답만 내 놓도록 학습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사회는 자기 내부의 욕망을 숨긴 체 얼마나 가식적으로 살아가느냐가 성공의 열쇠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다. 욕망 자체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감추고 억압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욕망에 솔직해지자.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자. 중요한 것은 욕망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자신, 우리 자신이니 말이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김종대 지음 / 시루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마음에 담아둔 인물이 한두 명은 있게 마련이다.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처럼 일상 속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감화를 받은 경우도 있고,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책이나 언론을 통해 알게 된 유명인도 있다. 아니면 사회의 음지에서 조용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이가 될 수도 있고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 대상이야 어떻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을 가리켜 흔히 우상이나 위인, 영웅이라 한다. 나에게도 수많은 관객을 휘어잡으며 정열적으로 노래하는 영국의 보컬리스트나 소박한 생활과 글로 텅 빈 충만함을 알게 해 준 스님처럼 특정 세대나 한정된 시대를 빛낸 우상이나 위인은 있다. 하지만 국가나 민족적인 차원의 장벽까지도 뛰어넘어버린 '영웅'은 늘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거북선에 대해 객관적으로 쓴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정광수, 1989)를 읽었는데, 막연하게만 다가왔던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후부터 이순신은 나의 영웅이 되었다.

  이번에 읽은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는 기존의 임진왜란 이야기나 이순신 전기와는 달리 임진왜란을 중심에 두고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쫓는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 임금에게 올린 장계와 선조로 부터 받은 유서, 그가 언급된 글이나 편지 등을 통해 왜란 중에 행적을 소상히 정리했다. 특히 오랜 기간 하나의 길(재판관)에 매진해 온 저자의 경력답게 많은 부분을 인간관계나 소통과 같은 리더십의 관점에서 이순신을 설명한다. 개인과 국가, 책임과 의무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조직을 이끌어 왔는지를 오랜 병영 생활과 스물 세 번의 해전을 통해 보여준다.
  옥포, 당항포, 한산도, 부산, 명랑, 노량 등지에서 방심한 적의 틈을 노려 공격하기도 했고 물러서는 척 적을 유인해서 섬멸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의 용병술도 주효했지만 이를 추진하는 장수와 병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군율로 엄하게 다스리는 한편 아버지와 같은 신뢰로 장졸들을 보살폈다. 또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한정된 자원으로 싸워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을 믿고 의지한 백성을 온 몸으로 끌어안았고 다른 장수가 적의 수급에 집착할 때 장군은 전투의 과정을 통해 승패를 가름했다. 지극한 정성과 철저한 준비로 왜란을 이겨낸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을 지나치게 신성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에 대한 오랜 연구와 깊은 이해에서 나온 애정임은 알겠으나 아무런 심적 동요도 없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는 식의 표현은 왠지 어색했다. 멀리 있는 영웅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조금 부족하고 모순되더라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위인이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지나친 신성화로 오히려 거리감을 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문득 이순신 장군의 서슬 퍼런 칼날이 우리의 흐트러진 정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오늘날의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정치인들이 남발하는 선심성 공약, 실직과 함께 거리로 내몰린 가정, 거리를 활보하는 파렴치범, 늘어나는 대졸 취업자와 와해되고 있는 공교육 등 연일 계속되는 사건 사고와 어정쩡한 후속 처리는 임진왜란을 당해 우왕좌왕했던 조정과 도망가기 바빴던 일부 장수의 모습이었다. 무사 안일한 자세와 근시안적인 접근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렸고 임기응변식 대처로 매년 불미스런 일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화려한 이상향을 쫓아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달려왔다. 경제적 가치로 세상을 재단했을 뿐 사람과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이순신은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을 사랑했다. 나아가 부모, 처, 자식들과 친척을 사랑하고 부하들을 사랑했다. 그의 충만한 사랑은 사회와 나라로 이어져 백성을 사랑하고 국토를 사랑하는 데까지 이르렀다."(p213)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 누리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나라를 구한다는 거창한 명목은 아니더라도 내 자신과 가족, 이웃부터 챙길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지 싶다. 작은 실천이 모여 자신과 가족, 직장을 변화시키고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있다. '영웅'이란 수많은 적을 쓰러뜨렸기에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세상 위에 꽃피웠을 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영웅은 이제 우리의 몫인 것이다.
.  
 

* 서두에 언급한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 (정광수, 정신세계사, 1989>는 절판되었지만 저자 정광수님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이순신역사연구회'를 통해서 <이순신과 임진왜란> (이순신역사연구회, 비봉, 2005, 전4권)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의 책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번 대선에 출마 여부를 놓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은 상태인데다 그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감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책은 예상대로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책에서 이야기한 그의 진의를 놓고 제2의 '안풍'이 시작되었다. 그의 대선 출마가 조심스럽게 기정사실화 되고 얼마 뒤에는 그의 육성으로 이 사실을 천명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대통령 선거와 같은 이런 정치적 사건에 별 관심은 없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자~알 좀 해달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지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등의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그의 등장으로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차기 대통령을 절반쯤 예약해 놓은 것 같았던 여당 후보의 지지율은 기존의 정치인과는 느낌부터가 다른 새 인물의 등장으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고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과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기대가 겹치면서 그의 인기도 더욱 올라갔다
.

  상황이 이러니 나 역시도 그에 대해 좀 알고 싶어졌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든 장본인에다 성공한 기업가,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것 외에는 모르는 부분이 많았기에 이번 기회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떻게 이 나라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안철수의 생각>에 나타난 글을 이해하기에는 내 역량이 많이 부족했다. 제정임 님의 질문에 대한 그의 생각에는 막힘이 없었고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영역에 걸친 심도 깊은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사회문제에 대한 식견도 부족한데다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정치, 경제에 대해서는 더욱 어려웠다. 그저 이렇게 방대한 분야의 걸친 내용을 공부하고 고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답변이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에 대해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었지만 "상호간의 조율을 통해 상생하자"는 식의 이야기는 조금 공허하게 들렸다. 책에 설명된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도 있다지만, 우리사회의 문제를 너무 교과서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닳아빠진 정치인도 해결하기 힘든 고질적인 문제를 책상에만 앉아있었던 학자가 과연 잘 해결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야 되면 좋겠지만 세상은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아니던가...

 

  알다시피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수많은 정치인과 국민들의 역량이 한데 모여야 제대로 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안'이나 '박', '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정치적 입지가 약한 그가 어떻게 한국 정치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지도 유심히 봐야겠다. 어쩌면 그의 성공은 얼마나 역동적인 정치적 역량을 보이느냐에 달려있지 싶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제노사이드 : 특정 집단을 절멸시킬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 "
 
  <제노사이드>에 등장하는 "인류의 멸망 요인에 대한 연구와 정책으로의 제언"이라는 제목의 <하이즈먼 리포트>에는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다섯 가지 요인으로 우주적인 규모의 화재, 지구적인 규모의 환경 변동, 핵전쟁, 역병: 바이러스 위협 및 생물 병기, 그리고 인류의 진화를 꼽고 있다. 
  인류의 멸망을 이야기할 때 주로 다뤄지는 운석충돌, 자전축 변경, 핵전쟁, 전염병 같이 이야기와는 달리 다섯 번째 요인인 '인류의 진화'는 조금 생소하게 보인다. 하지만 진화의 선상에서유인원과 나누어진 이후 생멸을 거듭하며 급격하게 발전해온 현생인류의 궤적을 본다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인다.
  즉, 인류는 계속 진화하고 있으며 어느 순간 급격하게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인류'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신인류의 입장에서 본다는 자연파괴와 전쟁을 일삼는 현생인류는 지구에서 마땅히 사라져버려야 할 종인 것이다.

  <제노사이드>는 아프리카 콩고에서 탄생한 신인류를 제거하려는 정보기관과 이를 지키려는 학자 사이의 미스터리 소설로 미국과 일본, 아프리카를 오가며 방대하게 펼쳐진다.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아들을 둔 존 예거. 그는 아들의 막대한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외국에서 용병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본 적이 없는 생물'과 피어스 박사, 그 주변의 부족 사람들을 말살하라는 임무를 띠고 아프리카 콩고에 침투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다 갑자기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약을 완성시키려는 아들 고가 겐토가 정보기관과 정체불명의 집단으로부터 추적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편 콩고에 침투한 예거 일행은 암살 목표였던 피어스 박사의 곁에 맴도는 이상한 생명체를 발견한다. 어린아이 정도의 몸짓의 이 생명체는 원인모를 유전자 변이를 통해 피그미족 부부에게서 태어난 '신인류'였던 것. 그렇다면 현생인류보다 탁월한 지적능력과 통찰력, 초월적인 도덕성을 지닌 이 생명체는 <하이즈먼 리포트>에서 우려한 인류종말의 씨앗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제노사이드>에서 인류는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를 부정하거나 말살하려고만 했다.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생물학적인 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라는, 이성과 감정의 조화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왔다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지나치게 단순하면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나 이외의 존재에 대해 제노사이드와 같은 방법 이외에는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무식하고 꽉 막힌 존재였던가.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세계 공영을 위해 보다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스스로 답하고 싶지만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되돌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주먹이 먼저인 세상에는 끊임없이 폭력이 벌어지고 있고, 세계인의 무관심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갈등이 증폭되고 급기야 착취나 폭동, 테러, 전쟁과 같은 상처로 다가오고 마는 것이다.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다면, 기쁜 일이지. 현생인류는 탄생한 지 20만 년이나 지나도 서로 죽이는 걸 멈출 수 없는 딱하디 딱한 지적 생명체네. 살육 병기를 모아서 서로를 위협하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는 이 현재 상황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윤리의 한계였던 거지. 슬슬 다음 존재에게 이 행성을 넘겨줘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네."  
  다섯 가지 요인으로 인류의 멸망을 경고했던 하이즈먼 박사의 말처럼 우리는 공멸의 길만 남은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면부지의 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이 성황을 이루기도 하고, 기아와 질병,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자원한 봉사원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존중과 배려, 사랑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다.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동물적인 적개심을 인간이라면 갖고 있을 이타심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으리라.
 
  "진화한 존재로부터 보면 인간은 불쌍해 보일 정도로 하찮은 지력 정도밖에 없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눈살을 찌푸리고 싶을 정도로 야비한 생각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주어진 모든 생물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획득한 최선의 능력이었다. 최선을 다해 이 불완전한 뇌를 연마하며 여려 곤란한 상황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불완전하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존재로 직시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고가 겐토와 신인류를 지키려던 피어스 박사와 위독한 아들을 위해 이들을 돕게 된 예거는 또다른 희망을 찾아 새로운 길을 떠난다.
  소설을 가득 메운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의 여운과 현생인류와 신인류 사이에 급박하게 전개되는 두뇌싸움은 600여 페이지의 분량도 지루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출세작이었던 <13계단>의 치밀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