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고에 빠져있다.
어젠 <뚱보, 내 인생> 이라는 외국작가의 책을, 오늘은 <주머니 속의 고래>라는 이금이 님의 책을 읽고 있다.
중고생들이 읽기 편한 내용과 분량으로 어렵지 않게,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재밌게 읽혀진다.
깊이 있는 사상이나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는 건 아니지만 청소년들의 시각에서 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학생들 선물해 주려고 구입한 책을 하나씩 읽고 나니 괜히 나눠주기가 싫어진다.
또다시 고개 드는 책 욕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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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분 책읽어주기의 힘 -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짐 트렐리즈 지음, 눈사람 옮김 / 북라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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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 책, 책을 읽자.
그 속에 길이 있다지 않은가.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끈기를 갖고 찾다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시공을 체험해볼 수 있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 책!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을 읽고 있다.
하루 15분씩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줌으로써 아이의 성적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읽어주는 책에선 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나는 과연 얼마나 읽어주었던가?
앞서도 언급했듯 책이 갖고 있는 ‘길’의 의미를 느꼈기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책 읽어주기에 대한 중요성을 통감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저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지 실제로 읽어준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나 자신의 책 읽는 시간 역시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많이 갖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하루 몇 분만이라도 좋으니 꾸준하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라고 말한다. 거기다 책 읽어주기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을 오랜 경험에서 얻은 사례와 함께 제시한다. 책의 유익함을 알고 있지만 그 활용에 대해선 소극적인 우리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길 바라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15분을 투자라고 이야기한다.
많이 읽어줄수록 아이들은 책 읽기를 즐기게 되고 그에 비례해 어휘력이 증가할 것이다. 이를 통해 쌓인 배경지식은 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바탕이 될뿐더러 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책읽기의 모범을 보여줄 것이다.
이런 책 읽어주기는 믿기 어려운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다. 주의력결핍장애를 갖고 있던 아이가 책을 통해 차분함과 집중력을 높였고, 장애아 판정을 받은 아이가 부모님의 끈질긴 노력으로 정상인과 다름없는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소원했던 가족들 역시 책 읽기를 통해 더욱 친밀해졌다. 단순하고 더딜 것 같은 책 읽어주기의 효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책 말미에는 ‘책 읽어주기’에 활용할 수 있는 적당한 책을 연령대별로 소개하고 있어 지금 당장 마음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입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이 외국 번역책이라 조금은 아쉽다. 저자가 외국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겠지만 출판사가 저자와 국내 전문가를 연결, 조율해 우리나라 책도 몇 권 추천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리고 역자의 말처럼 조금 반복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책 읽어주기의 모범적인 사례를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그 만큼 중요한 것이겠지만 자칫 지루하게 들릴 수 있겠다. 260여 쪽에 이르는 페이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사례를 조금 줄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겉으로만 교육, 교육 하면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려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진작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을 알고 많이 읽어줬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야겠다. 나의 작은 관심과 노력은 아이의 장래에 큰 밑바탕이 될 수 있으리라.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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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2
메리 셸리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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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자국 가득한 흉측한 얼굴을 하고 기다란 팔과 거대한 몸집으로 어둠속을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괴물! 프랑켄슈타인하면 으레 생각나는 장면으로 마치 ‘괴물’이라는 대명사처럼 기억되는 이름이다. 하지만 정작 원작소설은 읽어보지 않은 채 주워들은 이야기나 삼류영화를 통해서 얻은 얇은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과연 프랑켄슈타인이 누구며, 어떤 내용이기에 아직도 많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직, 간접적으로 차용하고 있을까. <드라큘라>,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함께 공포물 최고의 고전에 올라있는 ‘배역’들이기에 그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다.


소설은 북극해를 탐험하던 로버트 월튼이 동생(사빌)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시작된다. 윌튼이 탐험 중에 구조하게 된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가 어떻게 과학(특히 화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생명을 창조하게 되었는지 듣게 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창조한 생명체의 추악하고 흉측한 그 몰골을 보자 극심한 공포와 회의에 휩싸인다. 

“아! 그 소름끼치는 몰골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살아난 미라도 그 추악한 놈만큼 소름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놈을 완성하기 전에도 놈을 찬찬히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그냥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근육과 관절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놈은 단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그런 괴물이 되고 말았다.”

괴물!
그렇게 탄생한 괴물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분노와 자책감에 슬퍼하던 프랑켄슈타인은 우연히 자신이 창조한 괴물과 마주하게 되고 피조물(괴물)의 입을 통해 그간의 일을 듣게 된다.
흉측한 외모로 사람들에게 쫓겨나왔지만 한 가난한 농가에 숨어살면서 인간의 말을 배우고 그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깊이 느끼고 동경하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흉측한 외모에 놀란 사람들에 의해 다시 모든 걸 빼앗기고 급기야는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창조자를 찾아 복수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괴물은 자신의 불행한 운명과 창조자에 대한 복수를 대신할,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여자를 하나 만들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사라진다.

“내 동반자를 만들어준다면, 나는 그녀와 함께 인간 세상을 영원히 떠나 가장 황량한 곳에서 살아가겠소. 그때는 내게도 동정을 보일 존재가 있으니, 나의 사악한 열정은 사라지게 될 것이오! 나는 조용히 삶을 살아갈 것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나를 만든 사람을 저주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그와 같은 괴물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롭게 탄생할 그녀가 얼마나 사악할지 모를뿐더러, 숨어 살겠다는 맹세 역시 생각할 능력이 있는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거기다 아이까지 태어나게 된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은 작업 중이던 새 창조물을 파괴해버렸고 이에 격분한 괴물에 의해 그의 가족을 비참하게 살해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프랑켄슈타인은 복수를 결심하고 괴물을 찾아 길을 떠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갖고 있던 선입견 때문인지 적잖이 방해가 된 것도 사실이다.
먼저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시체를 조합해 만들어 탄생한 괴물이 아니라, 그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 그는 사회에 극도의 불만을 품은 소수자도 아니고 과학에 미쳐버린 정신병자도 아닌, 가족을 사랑하고 생화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도일 뿐이었다.
또한 ‘괴물’이라는 선입견을 갇혀 소설을 읽다보니 기괴하고 무서운, 피가 낭자한 하드코어에만 편협해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다. 사실 공포물이기 보다는 인간의 관계를 다룬, 사회에서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소수자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생명체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 휴먼드라마인데 말이다.

거기다 여성작가가 썼다는 생각 때문인지 괴물이라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치중하지 않고 그 사건의 경위와 배경, 주변의 상황묘사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핑크빛 문장과 서정적이고 묘사적인 글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야 할 사건을 다루기에는 조금 역부족인 듯 보였다. 사건의 도입부에서 보여준 섬세하고 장황한 묘사가 괴물의 탄생과 살인과 같은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형식적으로 넘어간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여성스러움은 소설의 거친 표면을 세련되게 다듬어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추어지고 절제된 부분에 대한 소설적 장치를 치밀하게 마련해 놓은 작가의 안목이 눈에 띈다.


<프랑켄슈타인>은 흉측한 모습의 괴물을 통해 인간사회의 이중성을 잔잔하게 고발한다.
인간은 물질문명의 끝없는 맹신과 오만함으로 얼마나 많은 자연을 파괴했는가. 겉으로 드러난 물리적 우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였던가. 인간만이 세상의 주인인 듯 모든 것을 소유하고 파괴해버렸다. 결국 그 피해는 흉포하게 변해버린 자연재해를 통해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으로 되돌아오리라.
또한 다른 모습의 이웃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사랑과 융화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차별과 멸시를 해왔었던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활 방식이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동남아 노동자, 다문화가정, 혼혈인들을 ‘사회적 떠돌이’를 만들어 버렸는가. 타인에게는 완고하고 자신에게는 부드러운, 타인의 존재에 인색한 인간의 이중성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괴물’이 아닌 이상,
나 아닌 존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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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전2권 세트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랭크 밀러 지음 / 세미콜론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배트맨 다크나이트 리턴즈!
지천명(50)을 코앞에 둔 배트맨의 힘겨운 컴백기!
 

정의의 사도인가?
정의를 빙자한 폭도인가?

배트맨이 은퇴하고 자취를 감추길 10년,
범죄로 들끓던 고담 시에 검은 복면의 배트맨이 컴백한다.
늙어버린 육체는 생각만큼 말을 듣지 않고, 강력해진 적을 막기에는 힘이 부친다.
하지만 그의 존재에 대한 엇갈리는 평판 속에도 돌연변이파와의 혈투를 계속한다.
막대한 부와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적과 맞선다.

폭력을 막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모순된 상황,
법적 절차를 무시한 직접적인 처벌과 이에 질세라 이어지는 적의 보복.
더 강한 응징을 바라는 시민이 있는 반면,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도 생겨났다...

배트맨은 악을 응징하는 천사의 모습인가. 아니면,
응징을 빙자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악마의 모습인가?

끊임없는 질문들이 사각형 컷 안에 살아 움직인다.
거칠게 움직이는 배트맨의 몸짓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화처럼 생동감 있다.
책이라는 텍스트를 뛰어넘는 뛰어난 작화법이 돋보인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진 않다.
미국의 이슈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생소함,
- 큰 흐름은 알겠으나 세세한 흐름은 해독 불가능! 약간의 부연설명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으면 좋았으리라.
현란하고 다면적인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텍스트.
- 원작자의 스타일인지 번역상의 오류인지, 툭툭 끊어지는 스토리가 배트맨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으리라.

배트맨의 노년을 그린 한편의 만화로 '배트맨'에 중독된 느낌이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히어로, 배트맨.
다른 배트맨 시리즈를 만나봐야겠다.


배트맨 vs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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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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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계획된, 철저한 규율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원로회는 아이의 소질을 파악해 12세가 되는 해에 평생의 '임무'를 정해준다. 그러면 그 아이는 중대한 과실을 저지르거나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나이가 될 때까지 그 임무에 종사하게 된다.
그리고 적당한 나이가 되면 원로회가 짝지은 사람과 결혼하여 ‘기초가족’을 꾸릴 수 있고 출산임무를 받은 여자들이 생산한(?) 아기를 두 명까지 맡아 키울 수도 있다. 물론 구성원 간의 신체적 접촉이나 성욕은 철저히 금지된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인류는 사회질서유지와 공동번영을 위해 갈등이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왔다. 기쁨이나 슬픔, 사랑, 분노, 육체적 고통과 같이 개인감정에 혼란을 줄 수 있는 것이나, 노인, 미숙아 등과 같이 생산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들을 제거해 안정된 도시국가, 아무런 동요나 갈등도 없는 완전한 사회를 이룩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유토피아’라 부른다.

하지만 생산과 소비만을 위해 최적화된 이곳은 생산 활동 이외의 것에는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인간은 커다란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확한 위치에서 제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부속품으로 변해버렸고 아무런 갈등과 동요 없이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하는 수동형 기계장치로 전락했다. 인간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 부가적인 생산물에 관심이 집중된, 주객이 전도된 죽어버린 도시였다.

12세가 된 조너스는 유토피아 이전의 모든 기억들을 간직해야 되는 기억보유자로 임명된다. 그제야 과거 세대에 대한 기억들, 계획과 규율 속에 통제되기 이전의 '인간적인 맛'이 묻어나는 시간들의 기억을 전달 받는다. 사랑과 가족에 얽힌 행복한 기억뿐만 아니라 전쟁, 기아와 같은 고통스런 기억들까지도 말이다. 그러니까 미래에 겪게 될 오늘날에 대한 기억이랄까.
이렇게 과거의 삶을 엿본 조너스는 왜곡되고 껍데기만 남아버린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긴 여행길에 오른다.

인간이 단지 생산을 위한 부품처럼 변해가는 오늘을 되돌아보게 된다.
생산성을 저해하는 것들이나 경제적 원리에 어긋나는 비생산적인 요소들은 더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하며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도 그저 현실의 방해물일 뿐이다...
이런 사회가 오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이미 ‘왜곡된 유토피아’로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도서’라 단순하게 생각했던 책이 인간을 사회적 소품으로 그려낸 영화, 매트릭스나 아일랜드, 공각기동대처럼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인간’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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