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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2
메리 셸리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5월
평점 :
수술자국 가득한 흉측한 얼굴을 하고 기다란 팔과 거대한 몸집으로 어둠속을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괴물! 프랑켄슈타인하면 으레 생각나는 장면으로 마치 ‘괴물’이라는 대명사처럼 기억되는 이름이다. 하지만 정작 원작소설은 읽어보지 않은 채 주워들은 이야기나 삼류영화를 통해서 얻은 얇은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과연 프랑켄슈타인이 누구며, 어떤 내용이기에 아직도 많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직, 간접적으로 차용하고 있을까. <드라큘라>,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함께 공포물 최고의 고전에 올라있는 ‘배역’들이기에 그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다.
소설은 북극해를 탐험하던 로버트 월튼이 동생(사빌)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시작된다. 윌튼이 탐험 중에 구조하게 된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가 어떻게 과학(특히 화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생명을 창조하게 되었는지 듣게 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창조한 생명체의 추악하고 흉측한 그 몰골을 보자 극심한 공포와 회의에 휩싸인다.
“아! 그 소름끼치는 몰골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살아난 미라도 그 추악한 놈만큼 소름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놈을 완성하기 전에도 놈을 찬찬히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그냥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근육과 관절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놈은 단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그런 괴물이 되고 말았다.”
괴물!
그렇게 탄생한 괴물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분노와 자책감에 슬퍼하던 프랑켄슈타인은 우연히 자신이 창조한 괴물과 마주하게 되고 피조물(괴물)의 입을 통해 그간의 일을 듣게 된다.
흉측한 외모로 사람들에게 쫓겨나왔지만 한 가난한 농가에 숨어살면서 인간의 말을 배우고 그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깊이 느끼고 동경하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흉측한 외모에 놀란 사람들에 의해 다시 모든 걸 빼앗기고 급기야는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창조자를 찾아 복수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괴물은 자신의 불행한 운명과 창조자에 대한 복수를 대신할,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여자를 하나 만들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사라진다.
“내 동반자를 만들어준다면, 나는 그녀와 함께 인간 세상을 영원히 떠나 가장 황량한 곳에서 살아가겠소. 그때는 내게도 동정을 보일 존재가 있으니, 나의 사악한 열정은 사라지게 될 것이오! 나는 조용히 삶을 살아갈 것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나를 만든 사람을 저주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그와 같은 괴물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롭게 탄생할 그녀가 얼마나 사악할지 모를뿐더러, 숨어 살겠다는 맹세 역시 생각할 능력이 있는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거기다 아이까지 태어나게 된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은 작업 중이던 새 창조물을 파괴해버렸고 이에 격분한 괴물에 의해 그의 가족을 비참하게 살해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프랑켄슈타인은 복수를 결심하고 괴물을 찾아 길을 떠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갖고 있던 선입견 때문인지 적잖이 방해가 된 것도 사실이다.
먼저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시체를 조합해 만들어 탄생한 괴물이 아니라, 그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 그는 사회에 극도의 불만을 품은 소수자도 아니고 과학에 미쳐버린 정신병자도 아닌, 가족을 사랑하고 생화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도일 뿐이었다.
또한 ‘괴물’이라는 선입견을 갇혀 소설을 읽다보니 기괴하고 무서운, 피가 낭자한 하드코어에만 편협해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다. 사실 공포물이기 보다는 인간의 관계를 다룬, 사회에서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소수자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생명체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 휴먼드라마인데 말이다.
거기다 여성작가가 썼다는 생각 때문인지 괴물이라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치중하지 않고 그 사건의 경위와 배경, 주변의 상황묘사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핑크빛 문장과 서정적이고 묘사적인 글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야 할 사건을 다루기에는 조금 역부족인 듯 보였다. 사건의 도입부에서 보여준 섬세하고 장황한 묘사가 괴물의 탄생과 살인과 같은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형식적으로 넘어간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여성스러움은 소설의 거친 표면을 세련되게 다듬어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추어지고 절제된 부분에 대한 소설적 장치를 치밀하게 마련해 놓은 작가의 안목이 눈에 띈다.
<프랑켄슈타인>은 흉측한 모습의 괴물을 통해 인간사회의 이중성을 잔잔하게 고발한다.
인간은 물질문명의 끝없는 맹신과 오만함으로 얼마나 많은 자연을 파괴했는가. 겉으로 드러난 물리적 우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였던가. 인간만이 세상의 주인인 듯 모든 것을 소유하고 파괴해버렸다. 결국 그 피해는 흉포하게 변해버린 자연재해를 통해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으로 되돌아오리라.
또한 다른 모습의 이웃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사랑과 융화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차별과 멸시를 해왔었던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활 방식이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동남아 노동자, 다문화가정, 혼혈인들을 ‘사회적 떠돌이’를 만들어 버렸는가. 타인에게는 완고하고 자신에게는 부드러운, 타인의 존재에 인색한 인간의 이중성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괴물’이 아닌 이상,
나 아닌 존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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