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퀼리브리엄 - [할인행사]
커트 위머 감독, 크리스찬 베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매트릭스는 잊어라'라는 도발적인(-_-?) 카피를 달고 있는 이 영화, 발음도 어려운 [이퀼리브리엄]은, 실제로 상당히 스타일리쉬한 액션신을 자랑하는 영화였다. 특히 '건 카타(gun kata)'라는, 새로운 개념의 마샬 아트는 정말로 매혹적이었다. 사실 내가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건, 소문으로 어떤 명장면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감정을 제거당한 한 예술품을 파괴하는 요원이, 어느날 고흐의 작품을 눈 앞에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차마 파괴하지 못한다는. 물론 이런 장면은 없었다 -_-

현란한 비주얼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인 면에서 영화는 상당히 혹평을 받고 있었다. 먼저, 파시즘(혹은 전체주의) 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부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이 소설은 예브게니 자먀틴의 소설 [우리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퀼리브리엄]은 [1984]보다는 [우리들]과 더 직접적으로 유사한 면모도 있다)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 등 비슷한 디스토피아 영화들을 떠올려 본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특별히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파시즘과 더불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파시즘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라는 점 그리고 이 감정의 통제를 위해 약물을 복용하고 예술품을 말살시킨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이 유감스럽게도,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화씨 451](트뤼포가 영화화하기도 했댄다)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물론, 다시 한 번,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또 할 거면, 더 재미없게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여기서 잠깐 영화의 미국 개봉명이 [Librium](신경 안정제의 일종; 상표명 - 네이버 영한사전)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 Libria는, 라틴어 어형변화에 의하면 librium의 복수형이 된다. 또한 영화 속에서 감정을 억제시키는 약물 Prosium(어딘가 항우울제 Prozac 또는 '무미건조한'이라는 의미의 단어 prosaic을 연상시키는)을 공급하는 곳의 이름이 바로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 마음의 평정을 의미한다 - 이다.

이 정도면 커트 위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비중을 두는 부분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현란한 액션신도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도 중요하지만, 감독은 (적어도 의도는) 스스로 감정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인류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추려고 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이 영화를 보려고 결심하게 만든 그 소문의 명장면은, 실제로는 크리스찬 베일이 베토벤 9번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부분이었다. 소문만큼은 못했지만; 상당히 감동적인 장면이었던 것은 사실이고, 또 그 짧은 장면에 감독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전반적으로는, 감독의 그 시도는 실패했다. 베토벤 9번 장면에 좀더 무겁운 훅이 실렸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유감스럽지만 누가 봐도 [이퀼리브리엄]은 [브라질]만큼 기발하지도 못하고 [매트릭스]의 아류(액션뿐만이 아니라 사상 면에서도)이자  [화씨 451]의 모작이다. 오리지널리티의 부재. 거기다 엉성한 구성과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까지. 액션신만이 그나마 반짝했던 영화였다.

05-6-19, 필유

 

특별부록: 별도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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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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