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기 전 나는 봄으로 돌아갔다"
 
열네 살
다니구치 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샘터사
 
'우리들 대부분은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는 인파에 묻혀, 그저 이 기차에 올라탔다 저 기차로 갈아탔다 정신없이 삶을 내몰게 된다. 어느 봄날의 꿈같은 과거로의 기차 여행. 꽃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 그 꽃을 지켜봐 주어야 한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의 추천사 중
 
마흔 여덟 살의 중년 남자. 물론 그에게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번듯한 직장이 있다. 기차로 시작한 출장길에서 어이없게도 열네 살로 돌아가버린 주인공. 바이어를 상대하던 솜씨를 발휘해 영어시험에서도 1등을 하는가 하면, 어른의 체력으로 달리기 1등은 맡아놓은 당상이다. 와하, 이거야말로 내가 꿈꾸던 세계가 아니던가. '이 정신, 이 머리 그대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우린 아마 다른 삶을 살고 있을꺼야'라고 항상 떠들던 나와 친구들이었으니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만화는 그렇게 신나지만은 않다. 말 한 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졸업했던 반의 미인인 여학생이 관심을 보이고, 무뚝뚝한 담임선생님은 부쩍 오른 성적을 대견스럽게 칭찬한다. 그러나 이 남자의 머리는 내내 복잡하고 고민스럽다. 열네 살 무렵 돌연 가족을 버리고 사라져버린 아버지 때문이다. '붙잡을 수 있는 지금이라면, 아버지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돌아간 열네 살에서야 알게 된 미묘한 가정사, 마흔 여덟 해를 경험한 후에 마주 보게 된 마흔 여덟 무렵의 아머지. 결말이 어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아직 서른 살을 넘지 않은 여자이다. 그러므로 "마흔 여덟 살 먹은 아저씨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달됐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이 책을 읽고 가슴 한 켠이 시큰했다. 그리고 '좋았다'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이 아닌, 다른 이의 인생을 살아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는 요즘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여겨졌다.
 
자칫하면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문학적인 내음이 물씬 풍기는 만화로 꾸며낸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온통 흑백으로 된 가느다란 펜선의 만화이지만, 갖가지 단상을 안겨주는 그림체도 편안하게 다가오는, 모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만화였다.
 
* 덧붙이자면, 다니구치 지로는 아직 국내에는 생소한 만화가이다. 산악만화인 <K2>가 유일하게 소개되었지만,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과 유럽에서는 그의 만화에 더욱 열광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일찌감치 이 만화에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안겨준 바 있으며, 일본에서는 그의 작품들을 학급문고의 단골도서로 추천하고 있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나의 슬픈 마음을 고요하고 확고하고 기쁜 것으로 해준 음악이여, 그림이여"
 
랩소디 인 블루
백순실 그림, 이인해 글 / 한길아트
 
어제까지만 해도 여기에 이 책을 가져올 생각은 없었다. 이번 달에는 내가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 나왔으니까. 나름대로 어떻게 쓸지도 대강 생각해 두었다. 그러나 어제 배달된 이 책을 보고, 사람은 진실로 한치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진 책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비발디의 사계 등을 듣고 백순실이 그린 그림과 이인해가 쓴 해설을 겸한 글이 실려있다. 소개된 곡들을 부분적으로 실은 76분 분량의 CD가 부록. 또 출간을 맞아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헤이리에서 백순실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그야말로 3차원 구성이다. (책의 표지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에 대한 백순실의 그림 중 부분)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이 그 음악에 대한 나의 감상과 맞아 떨어지더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 그림들이 모두 마음에 들더라고도,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곡을 마구 잘라내어 하나의 CD를 만든 것이 참신한 시도라고도, 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진심으로 즐거웠으며, 음악과 미술과 그 표현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 Mr. 츠바이크, 나의 사랑이 식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여전히 '정신적인 작업이 언제나 가장 순수한 기쁨이었고, 개인의 자유가 지상 최고의 재산이었다'는 당신의 삶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 많은 계획들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실행에 집중하라
래리 보시디 외 지음, 김광수 옮김 / 21세기북스
 
수많은 경영서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완벽한 기업, 성공의 최정상에 오를 만한 기업을 그려보게 된다. 인재는 어떻게 관리하고, 전략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경쟁사에는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음, 이 정도면 완벽한 기업이군'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요소, 바로 '실행력(Execution)'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아마존이 '2003년 최고의 비즈니스책'으로 주목했다는 이 책에는 현재 미국 기업 경영자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완벽에 가까운 전략, 훌륭한 인재,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환경...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건 더 많은 전략, 더 좋은 전략이 아니라 바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행동'이다.
 
이사회에서 에커드 파이퍼를 해고한 뒤, 컴팩의 회장이자 창업자인 벤 로슨(Ben Rosen)은 그동안 전략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꿔야 할 것은 우리의 행동입니다...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이고 회사를 더욱 효율적인 조직으로 바꿔야 합니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인생이 안풀리십니까?"
 
마피아 경영학
V 지음, 원재길 옮김 / 황금가지
 
'다른 사람 대신 대답하는 자가 계산을 치른다'
'폭풍을 만났을 때는 신께 기도를 올리되, 계속 해안을 향해 노를 저어라'
'사람을 믿되, 맹세는 믿지말라'
'승리할 수 없다면 적이 승리를 거두기까지 엄청난 댓가를 치루게 만들어라'...
 
어때, '필'이 꽂히는가? 이 책은 96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난 그 판을 소장하고 있다. 내 인생에 무시못할 가치관을 형성해준 책. 이번에 개정판이 다시 나왔다. '현실'이 뭔지 알고싶은 사람, 어설픈 자기계발서보다 100배는 짜릿하고 생산적인 충고가 가득하다. 사실, 마피아만큼 삶이 절박한 집단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정치적 태도란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에 자신을 놓는 것"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 후마니타스
 
"깨어있으렴, 긴장하렴, 니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물으렴, 왜 질문하기를 멈추었는지 물으렴. 하여, 너의 빈약한 정치적 상상력을 뛰어넘으렴" 하고 시종일관 말을 걸던 요 놈! 요 놈과 함께 침대에서 책상으로, 책상에서 다시 도서관으로 헤매던 밤이 며칠이던가... 허나, 기분 좋은 긴장이었다.
 
민주주의에 얽힌 다양한 경험과 주장을 읽으면서,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이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를 줄곧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빈약해졌는지, 실제로 그 빈약한 상상력은 우리의 삶을 얼마 만큼이나 제한해 온 것인지... 차마 이 책처럼 거창하게 근대를 탓하지는 못 하겠고, 다만 잠시나마 눈 닫고 귀 닫고 한 세상 편히 살고자 한 내 게으름을 탓하련다.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다른 가능성을 사유 할 수 있는 힘, 변화를 제도화 하는 힘에 있다고 한다(민주주의만 그럴까 싶지만). 알고 있듯, 변화의 시작은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에 자신을 놓는 것이다. 허니, 대화하자. 이 책 정도면 그 대화상대로 충분하다.
 
사회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알라딘 어린이 담당자의 어린이날 책 구매기"
 
어린이책 담당자로 일하다보면 어린이책을 오히려 많이 안사게 된다. 웬만한 책은 회사 자료용 서가에 다 있고, 신간도 꼬박꼬박 들어오기 때문. 아무래도 한 번 읽은 책들은 다시 사지 않게 된다. 그.러.나. '소장본'은 언제나 나를 유혹한다. 다시 읽기는 힘들어도 책꽂이에 꽂아두고 싶은 거다. 그리하여 이번 어린이날 행사를 맞이하야 벼르고 벼르던 어린이 책들을 사버렸다. 무엇을 샀는고 하면...
 
/ 레이먼드 브릭스, 비룡소
곰 아저씨에게 물어보렴 / 마조리 플랙, 비룡소
달구지를 끌고 / 바바러 쿠니, 비룡소
까마귀의 소원 / 하이디 홀더, 마루벌
눈사람 아저씨 / 레이먼드 브릭스, 마루벌
은지와 푹신이 / 하야시 아키코, 한림출판사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 한병호, 보림
사과와 나비 / 이엘라 마리, 보림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 코닉스버그, 사계절
 
아직도 어린이라고 주장하는 나를 위한 어린이날 선물이다. 그나저나 <곰>은 과연 꽂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족 1 : 이달에 나온 내맘대로 신기한 책 퍼레이드
<내 맘대로 꾸미는 포피 하우스> 책을 펼치면 인형집이 된다. 가재도구도 갖추어져 있고, 인형에 옷도 갈아입힐 수 있다. @.@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책+인형)> 머리에 따끈따끈한 똥을 얹은 두더지 인형이 들어 있다. ㅎㅎ 얼마나 귀여운지는 직접 본사람만 안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 퍼즐보드북> 책을 열면 그림 부분은 퍼즐로 되어 있다. 퍼즐 맞추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강추!
 
사족 2 : 5월은 선물을 달, 내맘대로 선물받고 싶은 책 퍼레이드
<로알드 달 베스트 - 전3권> 케이스가 예술이다. ㅠㅠ 얼핏 보면 예쁜 초콜릿 상자같다.
<피터 래빗 그림책 시리즈 -전23권> 낱권도 파니, 전집으로 사주기 힘들다면 몇개월에 걸쳐 낱권으로 사줘도 무방!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이 세상엔 이상한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네, 세키구치군."
 
우부메의 여름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펴냄
 
밀실에서 한 젊은 의사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의 부인은 이후 20개월 동안(!) 임신상태다. 갖가지 추측과 풍문이 난무하는 가운데, 소설가 '나'는 독설쟁이 음양사, '남의 기억이 보이는' 탐정과 함께 사건의 해결에 나서게 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썩 잘나가는 소설가 교고쿠 나츠히코의 데뷔작인 이 추리소설은 정말로 대단히 독특하고 재미있다. 굉장하거나 또는 어이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밀실 트릭. 앞부분에 깔린 복선과 암시 하나하나가 결말부에 이르러 풀려나갈 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마음과 의식과 뇌의 관계, 양자역학과 민속학 등에 대해 논하는 도입부 100여 페이지만 어렵게 넘기고 나면 그다음은 일사천리.(설명이 많아 조금 지루해도 열심히 읽어두는 게 좋다.) 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책인데,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해서라도 절대로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대낮에 읽어도 왠지 주위가 어둑어둑, 으스스한 느낌에 휩싸이니 주의할 것.
 
작가의 현란한 지적 이력이 소설의 내용을 탄탄하게 받치고, 사람의 공포와 호기심을 적절히 자극하는 구성 또한 뛰어나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우리는 사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는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될 듯. 한여름은 아니지만 필독을 권하고 싶은 추리소설!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이쁘구나... -_-;;;"
 
대부 - 보급판
마리오 푸조 지음, 이은정 옮김 / 늘봄 펴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사정이 많았던 한 달이라 많은 책을 읽지 못했다. (하긴 뭐 언젠 안 그랬나;;;) 그런데다가 내용과 상관없이 순전히 책의 겉모양 때문에 내맘대로 좋은 책을 선택하게 되니 자괴감 금할 길이 없다.
 
좌우간, <대부 - 보급판>은 그 만듬새가 내 마음에 쏘옥 들어버린 책이다. 이 책은 2003년 4월 나왔던 양장본 <대부>를 작은 판형, 가벼운 종이, 싼 가격의 페이퍼백으로 다시 낸 것이다. 속을 볼라치면, 아아! 가독성도 뛰어나구나! 출간 1년 후 보급판을 내는 관행은 우리나라에선 흔한 것이 아닌데, 그 이유 - 독서시장의 규모가 작아서 여러 판을 낼 정도가 안된다고들 한다 - 야 익히 알아 별 투정을 부리고픈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보급판을 보니 참 좋다. 어디 여행이라도 간다는 친구가 있으면 배낭에 넣어주고 싶다.
 
편집팀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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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긋 2004-05-08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읽고 싶은 책들이 많군요!!!
오늘 여길 들른 게 정말 잘 한 일 같아요. ^^
특히 어린이책 목록은 참 맘에 듭니다.
저도 어린이책이라면 동화든, 뭐든 정말 좋아하거든요.
동지를 만난 느낌임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