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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수사 ㅣ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1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강력계 형사로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아 '베테랑'이라 할 수 있었던 카와쿠보 아츠시.
하지만 그는 경찰계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인한 불합리한 인사이동으로 한적한 시골 마을 시모베츠 주재소에 단신부임하게 된다.
학업을 앞둔 딸들을 두고 부부만 부임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가족이 다 함께 움직이는 것 역시 내키지 않았던 것.
인구 6쳔 명의 작은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그다지 범죄 발생률이 높지도 않고, 아니 거의 없는 평온한 곳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와쿠보는 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몇 개의 사건을 통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끼기 시작한다. 과연 이 평화로워 보이기만 했던 마을 속에 감춰져 있던 악의는 무엇이었을까?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에 등장하는 경관 세이지와 다미오는 덴노지 주재소의 경감으로 일하면서 주변의 주민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그들의 치안을 돕는다.
이 작품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없는 '주재소 경관'이라는 존재가 상당히 친숙해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복 수사>에 등장하는 카와쿠보 역시 금방 친숙해졌다.
이 마을 주재 경관은 기껏해야 2년이면 교대되지. 마을 일이라고는 하나도 파악 못하고 다음 근무자랑 교대된다고.
마을 일을 도통 모르니,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국도에서 일어나는 일밖에 눈에 안 들어오는 거야.
결국 마을 뒤나 깊은 데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들 따위는 전혀 모르고 딴 데로 가게 돼.
-p.35, 「일탈」
주재소 경관의 업무는 주로 주민과의 교류 그리고 그들의 신고를 받으면 사건성에 따라 근처의 경찰서에 신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평소 제복을 입고 다니며 '여기 경찰이 있다'라는 것을 외부인 혹은 나쁜 범죄에 마음을 먹고 있는 이들에게 어필하고 주민들의 마음을 안심시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덕분에 신고식 겸 인사 겸 주재소로 찾아온 방범회장 등등의 노인들을 모질게 내쫓아버려 그들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것 역시 현명한 처사는 아니다.
경관인 남편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고, 주재소가 비워져있는 사이 부인은 전화기를 지키고ㅡ라는 주민들의 카와쿠보의 단신 부임에 대한 불만도 없는 것은 아니다.
"카와쿠보 씨, 당신은 주재 경관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시오?"
카와쿠보는 질문의 진의를 알 수가 없어 빤한 대답을 토했다.
"지역의 치안 유지겠죠."
"그게 구체적으로 뭘까?"라고 묻는 타케우치의 목소리에 다소 심술궂은 기운도 묻어났다.
카와쿠보는 말을 바꿔 대답했다.
"범죄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거겠죠."
"아냐." 콧방귀 뀌듯 타케우치가 고개를 저었다.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게 아냐. 범죄자를 만들지 않는 거지. 그게 주재 경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야."
-p.311, 「가장제」
분명 카와쿠보가 부임하고 난 뒤 몇 년에 걸쳐 벌어진 다섯 건의 사건이지만, 단편 속에 등장하는 사건은 결코 사소하거나 조그만 일이 아니다.
또래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소년의 실종, 악의적으로 개가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뒤 개 주인과 경쟁관계에 있던 유력인사의 죽음까지는 그럴 수도 있었다 치자. 하지만 처음 유리가 깨진 곳을 시작으로 이리저리 깨진 유리창이 드러나듯 범죄들은 점차 악의를 띠고 더 잔혹해진다. 끝내 연속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13년 전 소녀의 실종 이후 잠잠했던 큰 축제가 다시 부활해 또 다시 소녀가 실종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오래 전부터 조용히 감춰져 있던 마을 사람들의 악의가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ㅡ.
사사키 조가 쓰고 있는 시리즈 두 편 중 한 편이라는 카와쿠보 시리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복 수사>는 하지만 카와쿠보 경관의 활약이 담겨 있는 단편집이라고 하기에는 작품집 그 자체로서의 완성도가 상당히 뛰어나다.
각각의 단편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주재소 경관인 카와쿠보의 마음에서 쉽사리 떠나지를 않는다. 이 사건과 이어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하는 식으로 잠자코 단편 하나에서 조용히 언급하고 넘어갔을 뿐이지만, 그 모든 일들이 엮여 마지막 단편인 「가장제」에 이르러서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의 적은 인구의 사람들이 쉬쉬 숨겨왔던 일들이 모두 복선이 되어 한꺼번에 연결되어버리고, 덕분에 이 책은 단편집이 아닌 장편소설을 읽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하게 이어졌다.
이것이 주재소 경관으로서 카와쿠보의 활약뿐 아니라 그 이면을 훨씬 잘 그려낸 것 역시 마음에 든다.
경찰이지만 한없이 인간적이고 고뇌하는 카와쿠보의 모습. 각 부서의 베테랑들을 그저 겉으로만 '유착을 막는다'는 핑계로 무리한 인사이동을 시켜 사건의 해결에 베테랑을 투입하지 못해 흐지부지하게 넘어가버리는 홋카이도의 경찰에 대한 비판ㅡ물론 실제로 그러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를 일이다ㅡ. 덕분에 강력계 베테랑 형사로서의 감을 발휘하는 카와쿠보의 활약 역시 놓치기에는 아쉽다. 또는 오래 전 사건으로 이어진 작은 마을 주민들 사이의 유대감과 경찰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이어지는 비협조적인 사람들의 태도 등은 작은 마을 어디에나 한두명 씩은 꼭 있을 법한 불량배들의 괴롭힘보다 훨씬 더 악의적이다.
또 시골 마을의 유력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비리, 겉으로 '평화로운 마을'로 비치길 바랐던 사람들의 의도적인 행동 등, 이들이 한없이 고즈넉하고 권태로워보이기만 했던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시골의 작은 마을인지라 그 주민들 사이의 유대감은 훨씬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로워 보이기만 했던 마을이지만, 그만큼 소문은 빠르다. 덕분에 마을에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해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과 그들에게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은 은밀히 감춘다. 그리고 겉으로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을 보여준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고 어찌 마냥 평화롭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잠들어있던 추악한 모습들을 그려낸 <제복 수사>.
실제로 사사키 조는 첫 번째 단편 「일탈」을 끝으로 카와쿠보 주재 경관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쓸 계획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구 6,000명의 홋카이도 주재 경관을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그런데 시리즈화가 결정되었고,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범죄의 종류가 한정되어있다보니 상당히 곤란해졌다, 경시청을 배경으로 쓸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라고 사사키 조는 블로그에 토로했다고 한다(역자 후기 참고).
하지만 그 곤란함 치고는 상당히 완성도, 재미, 이면의 즐거움의 측면에서 모두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역시 이런 사사키 조의 진가 덕분에 그의 작품이 국내에도 속속 소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갈수록 사사키 조의 작품이 더 좋아지고 있다. 또 출간될 카와쿠보 시리즈의 두 번째, <폭설권> 역시 상당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