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2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대학 입시에서 본격적으로 논술 평가가 도입되고 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교육정책, 특히 대학 입시 정책은 정책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들쑥날쑥 날림 정책이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평가를 반영하겠다는 논의는 전부터 있어 왔지만, 이번 입시부터는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학 입시에 목맨 사람들은 또 난리다. 고3들은 논술학원까지 다니느라 난리고,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학원에서 논술을 배운다고 난리다. 이 난리의 중심에는 학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야 어쩌겠는가? 날림 정책으로 인해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릴 뿐이다. 학부모들은 논술에 좋다는 학원이니, 과외니 찾기 여념없다. 그도 부족해서 논술에 좋다고 나오는 책들은 죄다들 꿰고 있다. 고3들은 물론이거니와, 중학생, 심지어 멋 모르고 놀아도 될 초등학생들까지 그들 부모들의 열화와 같은 논술 열기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니, 이 아니 불쌍한가?

최근에 글쓰기 관련 도서들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이런 경향을 교묘히 반영한다. 논술에 가장 기본은 '글쓰기'겠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것이어서 대학 입시에서의 논술 평가에는 그다지 실효를 주지는 못 한다. 그러나 이 기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 국어교육의 현실이니, 이 맹점을 출판사들이 간파하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게대가 무슨 논술 특효약처럼 선전을 해대니 이런 시류와 더불어 잘 팔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글쓰기 관련 도서들과 함께 '국어학' 관련 도서들도 이 시류에 편승하고 있다. 대부분이 문법, 그 중에서도 맞춤법 등의 어문규정과 어휘, 문장론 등을 다루는 그야말로 문법책이다. 이것들 또한 '글쓰기'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사항이겠다. 그러나 이것들의 홍보전략 또한 그 기본됨의 불과함을 넘어 무슨 논술의 지름길인냥 한다는 데에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문법책들이 이른바 대한민국의 대표 '국어책'이란 이름을 내걸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어느 국어책이 달랑 '문법' 만을 다룬단 말인가? 말하자면, 이들 '국어책'들은 다분히 사기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기성을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이하 『국밥』)가 아닐까 한다. 정말로 대한민국에서 '국어 실력'만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국어 선생도 '국어 실력'이 있어 밥 먹고 산다기에는 좀 어폐가 있어 보인다. 그 선생들이 다분히 '국어 실력'으로 밥 먹고 사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는 어렵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시류에 편승하는 교묘함과 아울러 제목의 이 다분한 사기성은 열 달 만에 나온 두 번째 책 『국밥 - 낱말편2』에 이런 띠지를 하나 달게 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국어책"이는 자랑이 보락색 띠지에 세로로 걸려있다. 앞서도 말했거니와 이 책이 엄밀히 '국어책'은 아니기에 이 자랑 또한 거짓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울러 이 책의 이런 상업적 전략이 얼마나 성공했고, 논술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열기에 찬 학부모, 학생들이 얼마나 우롱당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의 이런 사기성과 거짓말이 애당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올해 초에 이 책 첫 권을 사보게 된 것은, 과연 얼마나 잘 써놓았기에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고 떠벌리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호기심을 씁쓸함으로 마감했지만, 뭔가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 - 낱말편1』리뷰 참조 http://blog.aladin.co.kr/criticahn/1048754) 그 가능성은 '뉘앙스 사전'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어에 대한 연구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미치지 못했기에 이렇다할 만한 사전도 변변치 않다. 거기에 '뉘앙스 사전'에 대한 기대는 가소로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기대에 한 줄기 빛을 주는 의외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번째 책을 나오자마자 사들고 읽었던 것이다.

이 책의 상업적 전략에 대한 허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의외의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기에 나는 과감히 별 4개를 주었었고 이번 책에서도 예의 별 4개를 선뜻 주고 있다. 이 책이 분명하게 '뉘앙스 사전'을 표방했더라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리기는 힘들었겠으나, 나에게 별 5개를 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나한테 별 5개 받자고 출판사가 '뉘앙스 사전'으로 제목을 바꿀 것은 만무할 것이다. 하여간에 이 책은 '국어책'이라고 보기에는 협소하고, "밥 먹여준다"는 뻥은 너무 지나치더라도, 그 담고 있는 내용인즉 한국어에 있어 아주 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시다'와 '들이켜다'의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들이켜다'의 어감이 '마시다'보다 급하고 강하다. 대부분의 언중들은 이 미묘한 차이를 자연적으로 감지하여 무의식적으로 구분해 사용하고 있지만, 간혹 이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이런 뉘앙스 사전이 필요한 부분이 되겠다. 미묘한 말의 차이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은 보다 명확하고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가져오게 한다. 이것은 곧 우리의 언어생활은 보다 명쾌하고 풍요롭게 하는 첩경이 된다. '두렵다'와 '무섭다'의 구분도 자못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 언중의 현실이다. 이 둘의 의미차이는 대단히 크다. '두렵다'가 "공포의 원인이 내재"해 있는 것이라면 '무섭다'는 그 원인이 "외부의 사물"에 있다. 이도저도 아니고 다만 '무섭다'로 통일하는 것은 언어 안에 담긴 인간의 사고작용을 무시하는 것이다. 즉 현실의 문제에 대한 그 원인에 대한 사고의 판단이 내포된 의미 자체가 무시되고 획일화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를 궁핍하게 만들고 만다.

'좇다'와 '쫓다'의 심각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결같이 '쫓다'를 '좇는다'. '좇다'는 어떤 것을 "추구하거나 따르는 일"이고, '쫓다'는 잘 알듯이 무엇을 "몰아내거나 추적하는 일"을 말한다. 이 심각한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발음의 유사에 천착해 우리는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 무분별함을 줄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뉘앙스 사전'인 것이다.

이런 '뉘앙스 사전'으로써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이 책은 지금까지 2권이 나왔지만, 그 두 권을 통들어도 다루고 있는 낱말이 그리 많지 못하다. 이 점은 사전으로서의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뉘앙스 사전'으로서 쉽고 간결한 설명과 다양한 삽화와 깔끔한 정리, 그리고 재밌게 풀어볼 수 있는 문제까지, 말의 '뉘앙스'를 익히고 연습하기에 아주 유효적절하다. 그래서 이 책이 좀 큼직한, 그야말로 '사전'이라고 부르기에 족한 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 이 책까지 두 권이 나와 있으나, 10권까지는 나와야 좋은 '뉘앙스 사전'이 마련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이 책이 왜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면서 '국어책'을 표방했는지는 저자 중 한 명인 김철호의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국밥』은 스무 권까지 쓰는 게 목표다."라는 그의 얘기에서 이 책의 원대한 구상이 '뉘앙스 사전'에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국밥』이 두 권까지 나오면서 '낱말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앞으로 '문장편', '맞춤법', '말소리' 등의 시리즈로 계속 출간될 것이라 예상이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총 20권을 만들어서 제대로 된 '문법책'을 내겠다는 심산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좀 아쉽다. 이 책이 애당초 『국밥』이 아니었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다. 『국밥』인 이상 앞으로 제대로 된 '뉘앙스 사전'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이제 마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20권으로 된 '문법책' 만들겠다는 저자의 가상함에 다소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까지 '국어책'이라면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문법책'들이 다들 거기서 거기였던데 반해, 20권까지 찍어내면서 얼마나 제대로 된 '문법책' 만들 수 있을지 좀 의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제대로만 만든다면 20권짜리 '문법책'도 나름 의미가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자들이 좀 생각을 바꿔보는 것이 좋겠다 싶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권으로는 미미하기에 역량이 허락된다면 이 작업을 꾸준히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쉬움 남으면서 다음편이 아직은 '낱말편3'이었으면 하는 바람가지면서 리뷰를 마친다.

 

* 저자들이 뒷부분으로 가면서 좀 꼼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자나 비문법적 표현이 있어 여기에 적어둔다. 앞부분은 내가 대강대강 빠르게 읽어서 이런 것들을 세밀히 찾아보지는 않았다. 뒷부분은 읽다가 확연히 눈에 띄는 것들이어서 이 책을 읽는 뒤의 독자제현들께 알려드리고자 한다.

296쪽의 예문 중에 "다음 신호등에서 좌회선 차선으로 붙어."에서 '좌회선'은 '좌회전'의 오자로 보인다.

312쪽 두 번째 단락 세 번째 줄 중간에 "발음이 비슷하면서 느낌이 훨씬 강한"에서 '발음'은 '의미'로 바꿔야 한다. '틀리다'와 '다르다'는 '발음'이 비슷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책 뒤 저자들의 말 중 <김철호가 김철호를 말한다>의 첫째쪽 밑에서 7번째 줄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한층 깊여주기도 했다."에서 '깊여주다'라는 말은 비문이다. 저자는 "깊게 해 주다"는 의미로 "깊여(이어)주다"를 쓴 듯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동을 쓰지 않는다. 이 문장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한층 깊게 해 줬다."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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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8-24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실력이 밥을 안 먹여주죠. 크흑... 슬퍼요!

멜기세덱 2007-08-24 09:51   좋아요 0 | URL
그것이 그닥 슬픈 일은 아닌거 같아요.ㅎㅎ 말 잘하면 좋을 때가 많으니깐, 어데가서도 국밥 한그릇을 얻어먹을 수 있겠죠...ㅎㅎㅎ
그러면 또 밥 먹여 주는 게 되네....ㅎㅎ 크흑...슬퍼요!

비로그인 2007-08-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리뷰 ^^/

멜기세덱 2007-08-24 09:56   좋아요 0 | URL
아, 좋은 사람 ^^/

나무하나 2007-10-1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저의 생각과 비슷하군요^^반가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