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사(時事)에 민감하지 않은 나로서는 일간지 하나 제대로 챙겨보지 않는다. 정 따분하고 심심할 때, 혹은 화장실에 정이 들고갈 만한 것이 없을 때, 그때나 펼쳐보는 것이 신문이다. 그것도 대강대강 제목정도만 훑어볼 뿐이고, 신간안내나 바둑기사 등을 세심히 볼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사에 둔감한 편이다. 세상사에 둔감한 것은 어느 한 군데 흥미롭게 말붙이지 못하는 소외의 삶을 주기도 하지만, 세월아 내월아를 읊기에는 여간 편한 것이 아닐 수 없기도 하다.

요즘은 워낙에 인터넷이 발달해서인지, 워낙에 할 짓이 없어서 죽치고 인터넷이나 들여다봐서인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참 시시한 시사들을 어느 정도는 접하게 된다. 이게 인터넷의 장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행여 요즘 어데 몇 사람 모인 곳에서, 특히나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의 모임에서 이런 시사 얘기는 워낙에 찬밥대우이니, 시사에 대해 자발타발적으로 둔감할 때나, 타발적으로나마 민감한 지금이나 시시하기는 마찮가지다. 그러나 간혹 알고 싶지 않은 가운데 알게된 세간의 소식들이 나를 종종 분노케 한다. 이번의 이랜드 사태가 그렇고, 또한 시사저널 사태가 그러하다.

그런데, 시사에 한 없이 둔감하다는 것이 어느 은둔자적 행각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 이상에는 알고 싶지 않은 것과 더불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상존한다. 어찌 어찌 하여 알게 된, 그리하여 우리를 분노케 하는 사건 사고들이 그런 종류의 것이리라.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 그것이 소리소문 없이 지렁이 담넘어 가듯 넘어갈 때, 우리 한 때 분노하지 않아 좋일지언지, 더 큰 분노와, 어쩌면 분노할 새도 주지 않을 파멸이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른다. 그러나 이 천박한 세상은 만인이 분노하여도 그 분노케 한 자들은 여전히 지렁이론 모자로 구렁이가 되고, 담 넘어가는 것에 성이 안 차, 담을 뚫고 부셔서 지나가버리는, 개탄할 따름이다. 그것은 한 때의 우리 풀뿌리 분노가 결집되고, 연대하여 하나의 거대한 저항이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다. 아직 그 끝을 보지 못한 이랜드 사태에서는 우리 분노하는 사람들이 더욱 큰 목소리로 뭉쳐주길 바라는 바이다.

여기 또다른 분노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곧 시사저널의 전 · 현직 기자들이며(어쩌면 前 시사저널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사저널의 이름이 이미 자본의 노예들에 의해 더렵혀졌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란 이름은 시사저널 기자들과 독자들의 것이지만, 이 더렵혀진 이름을 떨치고 다시 새로이 시작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시사저널을 사랑했던 독자들이며, 또한 이번 사태를 보며 다분히 분노한 이땅의 민중들이다. 그들은 왜 분노하는가? 그야말로 저 더러운 자본세력에 의해 우리 민중들이 끝끝내 지켜내야할 언론이 무참히 짓밟혔기 때문이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 전횡 의혹을 다룬 경제면 기자를 금창태 사장이 인쇄 직전 단계에서 삭제"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에 항의하는 편집장과 기자들을 징계하고, 또한 그에 반발하는 이들에 대해 고소 고발하는 등의 무지목매한 짓거리를 신나게 벌였던 것이다. 이에 시사저널 기자들은 파업이라는 극단적 태세에 돌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하무인인 시사저널 경영진과 결별하고 만 것이다. 결국 시사저널 기자들을 거리로 내몬 자본권력과 그 하수인들에 분노하는 기자들과 그들과 함께 분노하는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발족되기에 이른다. 이 분노하는 사람들을 누가 말리겠는가? 여기서 나는 이런 분노가 강한 저항이 되고, 우리의 권리를 지켜내고, 또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새삼 확인했다.

금창태 사장이 기사의 질이 떨어져 직접 삭제했다는 변명을 한다지만, 수차례의 편집과 교정을 거친 기사가 편집인들의 눈에 이상 없이 통과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장의 눈에만 수준낮은 기사였는지 난 모르다가도 또 모르겠다. 편집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작태에 더욱 말도 안되는 변명을 짓거리는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든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남 우세스러운 짓'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데, 저 사람은 비범하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뭐라고 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이 시사저널 사태의 핵심에는 바로 '남 우세스러운 짓'도 개의치 않는 저 한 없이 비범한 인간 이상이거나 이하의 분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도, 언론의 '정도'를 걷겠다는 이들이 있"는 곳에 말이다. 아 이 비범한 것들을 우리는 어찌 해야 하는가?

더욱 가관은 아직까지도 정기구독하는 이들에게 괜한 보상 안해주려는 가련한 심사에서인지, '짝퉁'이래나 '결호 방지용'이래나 하는 것들을 뿌려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들은 코미디언 언저리 어느 쯤에 있는 분자들일 것이다.(이렇게 말하면 코미디언들께서 충분히 화내실만 하지만 참아 주시라.)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시사저널 기자들은 울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웃기지도 않은 자들이 웃기고 있으니 울어야 할 밖에. 그러나 그들의 울음은 분노의 울음이다. 그 분노의 울음의 분노의 울림으로 일파만파 커져갔고, 마침내 그 울림이 하나되어 이 웃기는 작태에 옷깃을 여미고 얼굴빛을 고쳐 서게 만들었다. 시사기자단은 이전의 명품 시사저널의 정신과 가치를, 그리고 이땅의 민중들이 반드시 누려야할 언론의 자유를 저 더러운 자본으로부터 지켜내기로 한 것이다.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힌다, 이해와 화합의 광장을 넓힌다. 자유와 책임의 참 언론을 구현한다."라는 정신아래 그것을 온전히 구현해온 시사저널들의 기자들. 그들은 거리로 내몰리었을 지언정, 굴복하지 않고 울분과 분노를 품었다. 그리하여 강인하게 저항하고 참 언론을 온몸으로 지켜내기 위해 세상에 호소했고, 그 호소에 우리 많은 민중들은 오롯이 화답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것은 그간의 울분과 분노와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거대한 희망과 이상을 심어 놓을 것이다. 아니 이미 심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어쩌면 금창태 사장에게 고마움의 애정을 건내주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사저널을 이제 온 국민의 저널로 날개달아 주었으니 말이다.(맛간 아이디어, "온국민저널"이란 제호 괜찮지 않나요? ㅎㅎ 아 저 못난 '국민'이란 말이 조금 거슬리는구만.)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란 긴 명칭에는 홍길동의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서글픔보다도 더 큰 아픔을 담고 있다. 제 이름을 제가 부르지 못하는 것을 어찌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아픔에 비하겠는가 마이다. 성룡의 'Who am I?"란 영화에서처럼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린 것도 아닌 다음에야 부르고 싶어도 저 더러운 자본이 손에 쥐고 한낱 법이란 칼로 부르지 못하게 막고 있으니 저 긴 이름만큼이나 긴 서글픔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긴 이름을 우리 힘주어 말함에 있어, 우리는 끝끝내 '참언론'을 수호하는 자들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참언론'을 분명히 '실천'하고도 남을 '시사기자단'이 되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 여기 이 책, 바로 시사저널 전 · 현직 기자들이 엮은 『기자로 산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전의 시사저널의 정신과 가치와, 참언론 실천의 노력과, 사실과 진실을 밝히고자한 구구절절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이기에 이 시사저널의 기자들은 오늘 이 험난한 길을 가는 것인가를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란 길고 긴 이 이름이 왜 그들에게 값하는 이름인지를 알고 싶다는 이 책을 읽어보길 강력히 권한다. 여기서 더 이상 떠벌이는 것은 자칫 아둔한 잡설에 지나지 않을까를 염려할 따름이다.(다만 한 가지 잡설을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www.sisaj.com에 당장에 달려가서 정기구독을 단박에 약정하는 단호함과 신뢰를 이 책은 나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승주 모 나무 님과 아프(면) 락사스님의 영향으로 가입한 이 사이트에서 계속 로그인이 안 돼 이래저래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그 고생을 감수하고도 충분한 남음이 있었기도 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을 나는 간혹 꿈꿔보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고 서는 아예 손사래를 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 시사저널 전 · 현직 기자들처럼 살아야 진정한 '기자'가 되는 것이라면 나는 꿈에라도 기자가 될까 두려울 따름이다. 그만큼 기자 한 번 제대로 해보자면 이 사람들만큼 해야되겠고, 그러자면 나는, 한숨만 나올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의 앞으로 보여줄 진정한 저널, 그 저널의 독자만큼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의 독자로 산다는 것은 나에게, 성우제 식으로 말하면 "기적이자 축복"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기자로 살고 있는 한, 자 이제 우리 이런 사람들의 독자로 살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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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3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저도 찬조출연하는군요. :)
이 땅의 정의과 기본이 지켜지는 그날까지.

멜기세덱 2007-07-3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면)약사써 님은 찬조출연이시라기보단, 특별출연이라고 해두죠...ㅎㅎ